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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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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경기의 흥분을 떨치지 못한 듯 차에 앉아서도 연신 심장이 팔딱이는 얼굴이야. 주차장에서 학교 이름이 박힌 단체 버스를 본 터라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가려나, 했는데 아이는 정렬과 피드백이 끝나자마자 경기장 한쪽에 멀찍이 서있던 제게 팔랑팔랑 뛰어왔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초여름 햇살마냥 웃는 낯에 어떻게 거절을 하겠어. 하루 일정은 다 비워놓은 터라 알겠다고 했어. 그런데 그리고 나서 온 게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파미레라니. 다른 데도 괜찮은데, 하고 재차 묻는 말 속에는 비싼 거 사줄게-라는 속뜻이 있었지만, 아이는 완강히 제 의견을 피력하고는 이제 새빨간 싸구려 가죽 소파 위에 앉아서 저를 보고 있었지. 

아저씨는 여기, 이런 데 와본 적 있어요?

음, 아니.

나도요. 나도 처음이에요. 

그러고서 아이는 의자에서 다리를 약하게 흔들며 온갖 메뉴로 빼곡한 차림표를 이리저리 들여다보지. 가라아게 정식도 맛있겠다. 이거 명란 들어갔대요. 아저씨 명란 좋아해요? 하나 시켜서 이건 나눠 먹을까요? 쏟아지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 테이블 옆 태블릿 패널에서 메뉴를 톡 톡 누르던 아이가 물어. 생맥주 있어요. 생맥주 드실래요? 아니, 난 너 데려다줘야지. 아저씨 은근히 준법정신이 있네요.

그런 자잘한 건 잘 지켜줘야 깡패짓도 잘 돌아간단다. 하는 대답은 삼키고 멋쩍은 듯 웃어 보이자 대만이도 따라 웃어. 그럼 나는 귤 소다 마실래요.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메뉴가 차근차근 서빙되어 와.  아이는 메뉴를 하나하나 맛볼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지어. 조막만한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동오는 내내 아이의 색소 옅은 눈이 휘어지고 동그래지는 모양을 지켜봐. 이거 맛있어요, 하고 포크에 돌돌 만 크림스파게티를 내밀었을 때엔 반응이 조금 늦었어. 느릿하게 받아먹자 다 씹기도 전에 물어봐. 맛있죠, 맛있죠? 응. 괜찮네. 곧 귤 알갱이가 주황빛으로 뜬 소다 잔이 내밀어져. 이것도 마셔 봐요. 완전 맛있어. 단 것은 원래 좋아하지 않아. 그래도 내미는 잔에다 고개를 돌리는 건 아니지 싶어 한 모금 마셔. 

맛있네. 

원래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많이 안 먹어 봐서 그냥 싫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지도. 

동오는 계산을 마치고 유리문을 열어. 조악하게 칠해진, 벅스 버니를 닮은 마스코트 캐릭터 옆에서 아이는 사진을 찍는 중이야. 형형색색 원색으로 칠해진 가게 입구에 멀거니 서 있다가, 새카만 정장 차림의 자신이 얼마나 부조화스러울지 상상하고는 속으로 조금 웃었어. 

집에 태워 줄까. 바로 갈래?

아이가 자기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입술을 톡 내밀어. 아, 저 표정. 

나 귀찮아요?

그건 아닌데. 피곤하진 않아?

하나도 안 피곤해. 좀 더 같이 있어요. 

어디 가고 싶은데? 그렇게 묻자 아이는 짐짓 고민하는 체 하더니 다시 물어와. 아저씨는요? 그동안은 내가 가고 싶은 데만 갔잖아요. 이번에는 아저씨가 가고 싶은 데로 가요. 그 말에 퍼뜩 떠오를 만한 곳이 없었어. 어디 아는 곳이 있어야 갈 텐데. 평일에는 일 다니고 쉬는 날이 생기면 집에서 복싱장이나 설렁설렁 가거나 집에서 담배나 태웠던 게 다라서. 동오의 대답이 늦어지자 아이가 말해. 나 아저씨 집에 가고 싶어.

가서 뭐 하게.

그냥, 궁금해서요. 

새벽에 들어갔다 급하게 벗은 옷가지들이 생각나. 세탁기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로 피에 절어서 널부러져 있을 텐데. 벽장엔 리볼버도 한 자루 있어. 특기인 샷건이 사무실 한켠 자물쇠 채워진 캐비닛 속에 있는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동오의 떨떠름한 표정을 읽은 대만의 얼굴이 살짝 멈칫하다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환하게 밝아져. 

아니야! 괜찮아요. 그냥 집에 데려다주세요. 

아이는 종종 그랬어. 이것저것 해요, 해 주세요- 하다가도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면 긴장 깔린 웃는 얼굴로 괜찮아요, 하는 것- 마치 운동화 신은 발로 운동장에 그려 둔 낙서를 문질러 지우는 것만 같은. 어린 몸에 일찌감치 배어버린 생존법. 

사람 눈 속에 감도는 불안을 쉬이 읽는 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지. 아이의 눈을 내려다보다가, 입 밖으로 자기도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단어가 튀어나와. 

놀이공원에 갈까. 

그 말에 아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해.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모르는 얼굴. 

피곤하면, 다음에...

가, 가요. 같이 가요.

동오는 말없이 차 문을 열어. 대만이 잽싸게 올라타고는 평소에 지적해야 매곤 했던 안전벨트까지 스스로 매. 아이는 목적지로 가는 내내 말이 없어. 
어느 놀이공원으로 가는지, 만약에 거길 가면 자기는 뭘 탈건지 조잘댈 거라고 예상했는데 살짝 바라본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차창만 바라보고 있어. 썬팅에 비친 얼굴을 보다 다시 신호에 맞춰 차를 출발시키지. 아이에게 묻지는 않았어. 왜 울 것 같은 눈이냐고.

출발했을 때가 이미 오후 5시였어. 야간개장을 하는 데가 많지는 않아서 시 외곽까지 나왔고, 도착지는 놀이공원보다 유원지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은 곳이었지. 그래도 조명을 밝혀 두니 그럴듯해. 한층 서늘해진 밤공기 사이로 여름 풀냄새가 밀려들어. 어스름이 내리는 자줏빛 하늘 아래로 아이가 달려나가. 뒤를 살짝 돌아보면서 빨리 오라고 손짓해. 구름 사이로 비치는 주황빛 햇살이 아이의 얼굴로 떨어지는데, 그제서야 동오는 아이의 눈 색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범퍼카를 타고 싶다고 해서 들여보내려고 했더니, 아저씨도 들어가쟤. 마지못해 다리를 구겨 마우스같이 생긴 플라스틱 차 안에 몸을 밀어넣어. 이제껏 리무진이나 세단이나...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만 몰아봤지 이런 작은 차는 본 적도 없어. 아이가 반대편에서 다가와. 부딪히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옅은 스파크가 튀어. 이런 식으로 타는 거군. 익숙해지자마자 아이의 차를 맹렬하게 쫒아. 나와서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 문 아이가 말해. 아저씨 반칙. 

뭐가?

아저씨는 면허도 있고 차도 많이 몰아봤고...나는 무면허예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응?

그러고서 웃으면서 뺨을 툭, 건드니까 먹던 아이스크림이 코에 잔뜩 묻어. 아, 뭐야 진짜!
아이가 휴지로 박박 닦는 동안 그 옆에서 동오는 오랜만에 아주 큰 소리로 웃었어. 반칙이란 뭘까. 제 옆에서 웃고 뛰고 화를 내는, 살아 숨쉬는 이 남자애가 반칙이라면 최동오 인생의 가장 큰 반칙일진데. 

제한 신장인 180센티미터에서 오 센티 초과인 자신은 회전목마에 탈 수 없지. 대신 둥근 난간에 비스듬히 섰어. 말이 이쪽을 돌 때마다 손을 흔들며 스치는 아이를 봐. 저렇게 어리지. 별 거 아닌 모형 위에 올라탄 것만으로 저만치 행복해하다니. 인생에서 찬란하다고 부를 만한 것을 몇 알지 못해. 그런데 아저씨, 하고 부르는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어.

짧은 순간 이 쪽으로 돌았다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자기가 어느 새 그 느리게 달리는 말과 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회전목마를 한 바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의 찬란한 얼굴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종내에는 뛰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동오는 회전목마가 멈춰서야 깨달아.






 


동오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