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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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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니는 처음부터 아다치가 싫었다.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처음 본 순간부터 싫었다. 이유? 이유를 물어보면 그건 또 애매하다. 너무 어렸을때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를 대체한다는 미안함을 느껴서 그런건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타니의 소중한 아빠를 아다치가 빼앗아갈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의 직감은 때때로 묘하게 날카로워지는 법이다. 아빠는 타니에게 전부였고, 세상이었다. 그걸 빼앗긴다는건 타니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타니는 아다치만 보면 쿠로사와의 뒤에 숨고, 잽싸게 방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아직 다섯살밖에 안된 타니지만 타니는 아다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다 알고 있었다. 저 사람은 단란한 우리집에 쳐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타니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제게 손을 내미는 아다치의 손을 팍 쳐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좋아. 꽤나 매몰찬 거절이었어!
한껏 의기양양해진 타니의 생각과 다르게 아다치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채로 "아직 아기라서, 타니가 낯을 가리나보다" 하고 또 웃었다. 타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게 아기 취급인데!! (아마 이때부터 사이가 틀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타니는 근래 쿠로사와가 아다치와 논다고 늦게 들어오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다치의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고, 심지어 집으로 초대하는 것에 잔뜩 이골이 난 상태였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야? 타니는 쿠로사와가 웃으며 건네는 말에 그만 손에서 포크를 놓치고 말았다. 타니가 제일 좋아하는 문어 소시지가 꽂혀있던 포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식탁 아래로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문어다리가 몇개 떨어져나간 모양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타니는 입만 떡 벌린채 제 아빠를 바라보았다. 쿠로사와는 대수롭지않게(타니의 시선으론 뻔뻔하게)  "타니. 포크는 손으로 꼭 붙잡아야지" 하고 포크를 주워줄 뿐이었다. 타니는 그런 쿠로사와에게 화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다치가 이제 우리랑 같이 산다고? 이건 타니에게 평생 놀이터에 가지말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타니는 턱이 고장난 사람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삐그덕 삐그덕 고개를 돌려 '그' 아다치 키요시를 바라보았다. 타니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아다치는 쑥쓰럽게 (타니의 시선으론 가증스럽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랐지? 미리 말해줬어야하는데.. 그래도 앞으로 잘 부탁해!"


타니는 그제서야 작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 뒤로 따라오는 새엄마니 뭐니 그런 말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 엄마는 무슨!! 타니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있는 힘껏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방으로 달려갔다.


"싫어어어어!!!!!!"


타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망했어. 다 망해버렸다. 아다치가 집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실행했던 오조오억개의 작전들이 모두 실패해버렸다. 아다치가 올 시간에 맞춰 문 앞에 설치한 끈끈이 트랩도. 아다치 자리의 소파에 설치한 방구패드도. 아다치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시끄럽게 두드렸던 장난감 드럼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단 말인가! 이제 아다치는 나를 내쫓고 아빠를 독차지할거야!
그럼 나는 성냥팔이소녀처럼 성냥을 팔아서 살아야하나? 그치만 동화에선 겨울에 팔았는데 지금은 여름이잖아.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타니는 절망했다.


"쿠로사와 타니! 버르장머리 없이 이게 무슨짓이야!"


가뜩이나 서러운데 성난 목소리로 문을 두드리는 쿠로사와 때문에 타니는 더 서러워졌다.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말리는 듯한 아다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타니는 곰인형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2.



그렇게 시작부터 요란했던 동거가 시작되었다. 평상시엔 그 누구보다 다정하지만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쿠로사와의 서슬퍼런 눈길에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지만 타니는 여전히 아다치를 미워했다. 쿠로사와가 아침에 타니가 아닌 아다치에게 먼저 모닝키스를 하는 것도 밉고, 타니가 두번째로 아끼는 컵에 커피를 따라 아다치에게 주는 것도 싫고, 타니가 제일 좋아하는 복숭아를 아다치가 먹으면 안된다는 이유로 더이상 복숭아를 먹지 못하게 된 것도 싫었다. 그 중에 제일 못마땅한 것은 타니가 흥흥, 성을 낼때마다 엄하게 다그치는 쿠로사와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건 쿠로사와가 혼을 낼 때마다 옆에서 그러지 말라고. 아직 낯설어서 그러는 거라며 말리는 아다치였다. 원래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들 하니까.


아무튼 온갖 설음을 다 참아내던 타니는 결국 아다치를 아예 쫓아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지난 작전에서 아다치의 파자마를 숨긴건 쿠로사와가 너무 빨리 찾아내는 바람에 무산됐고, 제일 무섭게 생긴 토끼 인형을 아다치의 침실에 두어 겁을 주려했던 방법도 아다치가 "너무너무 귀엽다. 이거 나 주는거야?" 하며 반색을 하는 바람에 망해버렸다. 또다시 실패는 없어야한다. 타니는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며 좋은 작전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형님반(5세반)으로 올라간 뒤로 그만두었던 행동이지만 머리를 써야할 때 이것 만큼 좋은게 없었다.


유치원에서부터 하루종일 고뇌하고 또 고뇌하던 타니는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손뼉을 짝 쳤다. 아다치에게 복숭아를 먹여 쫓아내는 거야! 이전에 쿠로사와가 아다치는 절대로 복숭아를 먹으면 안된다고 엄하게 말했고,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는걸 보면 아다치는 복숭아를 정말 정말 싫어하는게 분명했다. 싫어하는 음식을 매일매일 먹이면 아다치는 질색하고 집에서 도망치겠지? 타니는 너무나도 완벽한 계획에 혼자 계속 키득키득 웃었다.



유치원이 일찍 끝난 날, 타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터인 히데아키 누나를 졸라 복숭아 크레페를 만들었다. 타니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타니를 돌봐주었던 히데아키는 웬 크레페냐며 웃었지만 타니는 앞뒤 다 자르고, "만들어줘!!" 하고 졸랐다. 솜씨좋은 그는 금세 반죽을 하고 빵을 구웠다. 타니도 옆에서 물을 뜨거나 복숭아(집어먹다 남은 반)로 장식하는걸 돕는 등 나름 열심히 거들었다. 제법 그럴싸하게 완성된 작품에 타니는 환하게 웃었다. 작전에 실패가 없으려면 끝까지 완벽해야한다고 생각한 타니는 히데아키가 잡아주고 저가 손을 움직여 비뚤비뚤하게 초콜릿으로「ADACHI」라고 글자도 썼다. 타니의 음흉한 속내를 모르는 히데아키는 그저 아다치씨가 보면 너무 감동받겠다며 칭찬해주었다.



타니는 아다치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쿠로사와가 늦어서 아다치와 단 둘이 저녁을 먹어야하는 날이었다. 타니는 까치발을 들어 크레페가 담긴 접시를 냉장고에 넣었다. 커다랗게 쓰여진 초콜릿 글자가 복숭아를 완벽하게 가려주었으니 안에 뭐가 들었을지 아다치는 상상도 못할 것이었다. 어디 맛 좀 보라지! 타니는 아다치가 와서 복숭아를 먹고 질색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나서 킥킥 웃었다.


"타니, 엄마 왔어-"


드디어! 아다치가 왔다! 히데아키에게 가볍게 인사를 나눈 아다치는 저를 기다리고 있는 타니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도 두 손가득 사온 선물을 내밀었다. 매일 사오는 뇌물따위, 타니에게 잘보이려는 수작인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오는것마다 어쩜 이렇게 타니가 좋아하는 것 뿐인지.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 오늘도 타니는 거기에 홀랑 넘어가버렸다. 어느새 아다치가 사온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신나게 놀고있던 타니는 저녁을 먹으라는 아다치의 부름에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다섯살이나 먹고서 이런 바보같은 실수를 하다니! 괜히 부끄럽고 성이 나서 쭈뼛쭈뼛 식탁에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엔 저녁 식사 메뉴에 홀랑 넘어가버렸다. 쿠로사와는 몸에 안좋다고 웬만해선 안사주는 햄버거 세트였다. 타니는 정말정말 신이나서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다치에게 매몰차게 대한다고 해놓고 또. 또다시 이런 뇌물에 넘어간 자신이 바보같아 저녁 시간동안만큼이라도 아무 말 없이 뚱하게 있고 싶었지만 아다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원체 아이를 좋아하는 아다치인지라 언제나 타니의 시선에서, 타니의 흥미를 돋울 수 밖에 없는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타니는 저도모르게 신이나서 쉼없이 종알거렸다. 유치원에서 술래잡기를 한거랑. 다른애들보다 제일 먼저 정글짐 꼭대기를 차지한거랑,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아서 별 스티커를 받은 이야기까지. 타니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다치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어주니 타니의 어깨는 늘 으쓱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 단란했던 (타니의 시선으론 자신이 아다치에게 어울려주었던)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고 디저트 타임이 다가왔다. 타니는 아다치가 바친 뇌물들과 제 기분을 맞춰주느라 한껏 굽실거렸던 식사 시간을 떠올리며 오늘은 용서해줄까.. 살짝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원래 훌륭한 어른은 피도 눈물도 없는 법이야! 그래서 타니는 냉장고를 뒤적이는 아다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했다.


"타니, 이거 네가 만든거야?"


아다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타니에게 물었다. 타니는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다치.. 라고 이름 적혀있는데?"

"응."

"설마 나 주려고 만든거야?"


타니는 얼른 먹고 쓴 맛(아니 복숭아 맛인가?) 좀 보라는 심정으로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의심하고 인상을 찌푸려야하는 예상과는 다르게 아다치는 여지껏 봤던 미소 중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활짝 지었다.


"세상에!! 나한테 주는거라고? 정말? 타니가 직접 만든거를 말이야?"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감탄사를 내뱉은 아다치가 한걸음에 달려와 타니를 꽉 끌어안았다.


"너무 고마워, 정말 잘만들었어. 진짜 정말 너무 고마워 타니야!!"


타니는 얼결에 아다치를 마주안았다. 볼이 짓눌러지도록 내려찍는 입술도장을 멍하니 받던 타니는 갑자기 마음이 콕콕 찔리는걸 느꼈다. 아다치는 잔뜩 흥분해서 유이치한테도 말해줘야겠다고 재잘거렸고, 타니는 그런 아다치를 볼수록 마음이 더더욱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도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아다치가 붙잡기도 전에 제 방으로 쏜살같이 도망친 타니는 재빨리 문을 닫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마음이. 심장이 아플만큼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먹지 말라고할까? 너무 미안하잖아. 타니는 문을 등진채 무릎을 끌어안았다. 저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 타니는 다시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벌인데.. 저건 아다치가 제일 싫어하는 복숭아인데. 왜 좋아하는거야? 타니는 엄지를 불안하게 빨고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채 가만히 앉아있던 타니는, 별안간 부엌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쨍그랑!


이건 아니야. 본능적으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타니는 벌컥 문을 열고 부엌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엔 엉망으로 부서진 크레페 접시와, 목을 부여잡고 연신 컥컥대는 아다치가 있었다.


타니는 덜컥 겁이났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서 눈물이 비처럼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아다치? 엄마, 왜그래? 왜그래요?!!"


타니는 아다치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매달려 울었다. 그렇게 복숭아가 싫어? 그래서 얼굴이 새빨개지는거야? 너무 싫어서, 뱉어버리고 싶어서 자꾸 목을 긁는거야? 그래서 숨도 못쉬는거야?


아다치는 엉엉우는 타니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뭘 하던 일그러진 표정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다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비틀거리다가 결국 식탁을 놓쳐 쓰러지고 말았다. 새햐얗게 질린 몸이 꽉 틀어막힌 기도를 열기 위해 아무리 발악해도, 아무리 목을 미친듯이 긁고 입을 벌려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깜짝 놀란 타니가 저를 붙들고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것조차 달래주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아다치는 떨리는 손을 뻗어 타니의 등을 쓸어주려했지만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급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반쯤 죽어가던 아다치는 때마침 귀가한 쿠로사와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아다치는 새파랗게 질린 쿠로사와에게 간신히 서랍을 가리켰고, 재빨리 알아챈 쿠로사와는 손에 있던 짐을 다 내팽개치고 서랍으로 달려가 주사기를 가져왔다. 쿠로사와가 아다치의 팔에 주사기를 꽂자마자 몸을 움찔한 아다치는 곧 허억. 하고 그토록 간절했던 산소를 들이마셨다. 쿠로사와는 얼음처럼 차가워진 아다치의 몸을 품에 안고 이곳저곳을 주물렀다. 식은땀에 푹 젖어 완전히 늘어진 아다치를 부축하던 쿠로사와는 아직도 울고있는 타니를 달래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쿠로사와의 기가막힌 귀가 타이밍과, 빠른 처치 덕분에 다행히 아다치는 그냥 수액 정도로 퇴원할 수 있었다. 복숭아 알레르기인걸 알고있으면서 미련하게 먹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의사는 잔뜩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아다치는 그저 허허실실 웃었다. 제 부주의 탓이라고 하면서, 그냥 잘못했다고만 했다.


아다치는 쿠로사와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쿠로사와도 물어보지 않았다. 아다치는 내내 제 품에 안겨 훌쩍이는 타니를 토닥여줄 뿐이었고, 쿠로사와는 묵묵히 운전만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무슨 상황이었는지 알 것 같아 쿠로사와는 백미러 너머 뒷자리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있는 타니와 아다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타니는 너무 울어서 눈을 뜰수 없을 정도로 부어버린 얼굴을 아다치의 가슴팍에 비볐다. 이대로 아다치가 집을 나가버릴까봐 두려워 간절하게 옷자락을 붙잡은 작은 손은 집으로 향하는 내내 떨어지지 않았다. 타니는 아다치에게만 들릴정도로 조그맣게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아다치는 고개를 저으며 놀라게해서 저가 더 미안하다며 타니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그날 이후 타니는 아다치가 아프면 곧 죽을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챙기기 바빴다. 가끔, 아니 그것보다는 더 자주 타니가 일찍 잠든 다음날 아침에 아다치는 허리를 부여잡고 잘 걷지도 못했다. 엄마가 저렇게 아파하는데 아빠는 도대체 뭘 한거야!! 묘하게 개운해보이는 쿠로사와의 번듯한 얼굴을 타니는 야무지게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곧 물수건이며 약상자를 부지런히 아다치에게 배달했다. 아다치는 제 허리에도 오지않는 조그만 어린애가 동분서주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버릇은 타니의 키가 아다치의 가슴팍을 넘어서고, 아다치와 눈을 마주보게 되고, 이젠 그보다 머리 한 개 만큼 더 클 때까지 이어졌다. 타 지역으로 대학까지 갔으면서 한달에 한두번은 꼭 집에 돌아와 아다치에게 건강식품과 뽀뽀를 바치는 타니에 아다치는 언제나처럼 활짝 웃어주었다.


"엄마 보고싶었어요" 하며 그 큰 덩치로 아다치에게 안기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언젠가 아다치가 쿠로사와에게 그때의 진실을 털어놓는 바람에 타니는 쿠로사와와 진지한 몸의 대화를 나눠야했지만 아다치의 중재 덕분에 타니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일도 있다.


이젠 쿠로사와보다도 커져버린 타니에게 그때 이후로 생긴 작은 버릇이 하나 또 있었다. 바로 때때로 아다치의 옆에서 꼭 붙어자면서 아다치가 얼마나 좋은 엄마인지 속삭여주는 것이었다. 아닌척 부끄러워하지만 아다치가 그 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서 타니는 다 큰 후에도 그 버릇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타니를 아는 다른 사람들이 알면 지구의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놀라 뒤집어지겠지만, 어쨌든 타니는 그랬다. 이젠 자신이 너무 커버려서 제 품안에 쏙 들어오는 아다치를 꼭 끌어안고, 타니는 오늘도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요, 엄마"


어둠 속에서 아다치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니는 "나도 사랑해, 아들." 하고 중얼거리는 제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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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가 쿠로사와 아들이어도 재밌을거같아서 싸봄ㅎ 노잼이면미안 


쿠로아다타니 마치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