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대임




줄창 삽질만 하다가 윈터컵 예선 첫 경기 들어가기 직전에 아드레날린 수치 맥스 찍은 송태섭이 바지 안에 넣은 손 떨면서 ‘선배도 나 좋아하는 거 맞잖아요. 몰라 이제 다 모르겠고 이번 대회 끝나면 우리 사귀는 거예요.’ 했고 마지막 경기날 비록 졌지만 시원섭섭 홀가분한 기분으로 ‘고생했다.’ 하고 땀에 젖은 곱슬머리 쓰다듬은 정대만이 슬그머니 손 잡으면서 사귀기 시작한 태대. 송태섭은 솔직히 정대만이 자기 말 못 알아듣거나 분위기 못 타고 헛소리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당황하기도 했고 생각보다도 훨씬 쑥스러워서 얼굴부터 목까지 다 벌개졌을 듯.

근데 당연히 얼마 안 가서 대만이 졸업하고 대학 가는 바람에 연애다운 연애는 해보지도 못했겠지. 대만이 신입생인데다 농구부까지 들어갔으니까 당연히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태섭이도 태섭이대로 주장이다 입시다 뭐다 바쁜데 그래도 드문드문 메세지 나누고 거리도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주말에도 약속 잡고 만나서 소소하게 데이트도 함 물론 농구바보들이라 둘이 뭐 다른 거 할 줄을 몰라서 공원 돌아다니면서 원온원이나 하고 가끔 말 거는 사람들 있으면 같이 섞여서 3ON3도 함.. 그게 아니면 강변 산책로에서 달리기 내기 해서 진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기 이딴 거나 하고 있음...

그렇게 봄 지나고 여름이 한참 무르익을 때까지 무시무시하게 건전한 교제를 이어온 태대 지금까지 최고 수위 스킨십이 공원 농구장 구석에서 짧게 나눈 도둑 키스임. 그것도 정수리에 깡생수 한 통 다 들이붓고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숨 고르고 앉아있는 정대만 보고 꼴린 송태섭이 먼저 갈겼음. 이후로 가끔 입술에 가볍게 쪽 하고 떨어지는 것까지는 하는데 그 이상은 영 진도 나갈 생각 없어보이는 정대만이라 송태섭은 좀 심란하겠지. 역시 남자끼리란 게 문제인가.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혹시 죽이 제법 잘 맞는다던 그 새로운 팀 메이트랑 관련이 있는 걸까. 어쩌면 애초에 연애 감정이 아니었는데 거절할 방법을 몰라서 여기까지 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나. 대놓고 묻지는 못하고 속 끓이는 송태섭이지만 정대만이 언뜻 물러보여도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확실한 성격이고 뒤에서 헛짓거리 할 만한 위인도 아니니까 당장은 정대만이 꼬박꼬박 시간 할애해서 만나주는 걸로 만족하고 괜히 들쑤시지 않기로 했음.

그러다가 어느 금요일날에 연습 끝난 태섭이가 뭐하냐고 메세지를 보냈는데 한참 뒤에 전화가 와서는 농구부끼리 밥 먹고 술 한잔 할 것 같다는 정대만. 저는 메세지 했는데 전화로 답이 와서 괜히 간지러웠던 송태섭은 그러냐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어차피 간지러운 김에 제딴에 남친다운 잔소리도 와르르 하고서 끊으려고 하는데 대만이가 작게 송태섭, 하고 부름. 끊겠다고 입으로만 말하고 아직 핸드폰 귀에 대고 있던 태섭이가 네? 했는데 한참 뜸들이던 정대만 어… 아니다, 끊을게. 잘 자. 하고는 뚜뚜 기계음 들리겠지. 그때부터 송태섭은 간지러운 건지 불안한 건지 아무튼 심장이 찡 하고 녹는 것 같은 기분에 견딜 수가 없어서 집에 바로 못 들어가고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충동적으로 도쿄행 전철에 올랐음.

목적지에 내린 송태섭 집에다가는 농구부 애들이랑 놀다가 조금 늦게 들어갈 것 같다고 연락해놓고 근처 규동집 같은데 들어가서 허기진 배도 좀 채우고 큰 길가 표지판 찾아보면서 슬렁슬렁 대만이네 학교로 걸어감. 대학가 금요일 밤이라 여기저기 반짝반짝하고 사람들 웃고 떠드는 소리 넘치는데 아직 자기랑은 먼 세상이고 근데 정대만은 이미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렴풋이 가늠하고 있던 둘 사이 격차가 체감돼서 살짝 기분 다운 되겠지. 깊생 빠져서 걷다보니 학교 앞에 도착했고 교문 지나서 정대만 사는 제3기숙사 찾아서 가는데 이번엔 또 내가 여기 무슨 생각으로 온 거지, 선배 언제 돌아오는지도 모르고 돌아오더라도 시간 늦어서 피곤할텐데 방해만 되는 거 아닌가, 그냥 이대로 돌아가는 게 맞나, 그래도 시간 들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몰래 숨어서라도 얼굴은 보고 가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두서 없이 밀려들었음. 그렇게 제3기숙사를 가리키는 표지판 옆 구석진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이도 저도 못하고 고민에 빠져있는데 마침 저기 멀리서 정대만이 비틀비틀 걸어 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앉아있는 동안 기숙사 주변으로 다른 사람들도 꽤 왔다갔다 했는데 그게 대만이인 거 용케도 한눈에 알아봤겠지. 꽤 마신 건지 춤추는 것처럼 걷는 정대만이 넘어져서 꼭 무릎 깰 것 같이 보여서 태섭이는 여태 하던 고민들이 무색하게 몸이 먼저 튀어나갔음.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어…? 송태섭…”

잔뜩 흐물흐물해져서 발음도 다 뭉개지는 주제에 불쑥 나타나서 한쪽 겨드랑이에 팔 끼우고 부축하는 태섭이 얼굴 보자마자 술 깨려는 사람처럼 몇 번 도리질 치던 정대만은 자연스럽게 태섭이가 여태 앉아있던 벤치쪽으로 걸어감. 벤치 옆에는 가로등이 하나 있었는데 고장이 난 건지 전구가 오래된 건지 아주아주 흐릿했고 드물게 깜빡거리기도 했음. 가로등 밑에 금방 다다라서 태섭이가 자기 앉았던 자리에 대만이 앉히려는데 취해서 장사같은 힘으로 버팅긴 대만이가 실눈떠서 태섭이 얼굴 확인하더니 덥썩 끌어 안아오면 좋겠다.

“…으으.”
“왜… 왜 그래, 속 불편해요? 그러게 왜 이렇게 마셨어.”
“…태섭아.”

태섭이 팔 움직이지도 못하게 양 팔로 꽉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 묻은 정대만은 계속 송태섭 이름만 중얼거리는데 가만보니 숨 쉬는 게 아니고 태섭이 체향 들이키는 것 같겠다. 태섭이 그거 깨닫는 순간 잠깐동안 그 많던 생각 싹 사라지고 자기도 코에 닿은 정대만 어깨에 좀 파묻혀 보려는데 눈치가 없는 건지 갑자기 빈틈 없이 붙어있던 몸이 떨어져 나가겠지. 절로 인상 구겨진 태섭이 습관처럼 뭐냐고 타박하려는데 그것보다 정대만이 냅다 얼굴 붙잡고 입술 붙여온 게 빨랐음.

“…읍…”
“…….”

심지어 여태 하던 베이비 키스 아니고 놀란 태섭이가 신음하느라 벌어진 입 안으로 무려 혀까지 들어오는 거. 정신차리고 보면 술 냄새에 고기 냄새에 난리도 아닐텐데 그런 거 하나도 모르겠고 정대만이 먼저 자기한테 달려들어 키스하고 있다는 게 안 믿겨서 얼마간 얌전히 당하고만 있는 태섭이.. 키스는 그렇게 서툴지도 않고 능숙하지도 않고, 그냥 딱 정대만같이 정직한데 그래서 더 야할 것 같다. 제법 한참 혓바닥끼리 엉겨붙고 치열도 훑어보고 입술도 빨고 하다가 떨어지는데 또 곧바로 송태섭 목덜미에 얼굴 묻고 안겨오는 정대만 이렇게 중얼거릴 듯.

“맨날 보고 싶어서… 죽겠어. 송태섭.”
“…….”

…진짜, 누가 할 소릴.

그거 들은 송태섭도 이제 버튼 눌려서 눈에 뵈는 거 없고 찰거머리같이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려는 정대만 팍 떼어내서 여태 참았던 만큼 키스 존나 퍼부을 듯. 정대만도 술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는 주제에 송태섭 체향이랑 손바닥에 닿는 까슬하고 곱슬대는 머리카락이랑 작지만 딴딴한 어깨랑 등허리 같은 거, 자기가 좋아하는 송태섭 맘껏 만지고 끌어안으면서 한참동안 키스 하는 거... 존나 보고 싶다..

나중에 듣자하니 대만이는 아직 미성년자인 태섭이하고 어디까지 해도 좋을지 몰라서 일단 지 혼자 선 긋고 고민하고 있었던 거였음. 이쪽 속이 어땠는지도 모르고 적반하장식으로다가 ‘야, 내가 참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 허리손까지 하고 큰소리 땅땅 치니까 빡쳐서 이마 짚은(근데 그게 또 쬐끔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저 지켜주려고 그랬다느니 하는게 쫌 애틋하기도 해서 스스로도 중증이라고 생각하는) 태섭이 며칠 뒤에 갑자기 전화 걸어서 이러겠지.

“이번 주말에 시간 비우고 우리 집 와요.”
“어? 갑자기?”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ㄹ…, …뭐…?”
“선배가 지켜줘야 할 사람도 없고 선배 지켜줄 사람도 없어요. 그런 줄 알라고요.”

그렇게 건방진 고등학교 후배 남친한테 홀랑 따이는 OB 정대만 선배..




고작 1살 차이인데 고딩과 대딩/미짜와 성인/재학생과 졸업생이라는 간극에 걸쳐진 풋풋한 태대 존나 맛잇음 ㅜㅜ

태섭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