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835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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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4 02:15
밥 별로 안나옴 주의
아 몰라 다 주의
#행맨밥
4.
제이크 세러신이 나타샤 트레이스를 퍼블리시스트로 고용한 이유는 세 가지다. 그녀가 업계 최고이기 때문이고, 제이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기세가 좋은 우성 알파이기 때문이고 -그가 텍사스 출신인 것을 잊지 말자-
"이 미친놈아!"
무엇보다, 그녀가 바로 업계에서 제이크 세러신을 가장 싫어하는 (거의 유일한) 여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나타샤가 그의 트레일러로 들이닥쳤을 때, 제이크는 헤어드레서와 메이크업, 그리고 손톱을 손질해 주는 메니큐어리스트와 의상을 손보고 있는 스태프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쪽 손은 메니큐어리스트에게 맡기고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히죽이던 제이크가 거울을 마주보고 저를 노려보는 나타샤를 힐끔 보곤 고갯짓을 하자, 스태프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조용히 트레일러를 나갔다. 나타샤가 손에 쥔 아이폰은 끊임없이 울리기를 반복했다. 나타샤가 제이크가 앉은 자리를 비껴 뒤에 선 채로 둘은 거울을 두고 마주 보았다. 금방이라도 드잡이를 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니, 사실 나타샤가 더 약이 오른 이유는
"정신이 있니?"
"안녕, 냇."
제이크가 보고 있는 것이 '그 사진들' 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타샤는 드물게 평정을 잃고 언성을 높혔다.
"너 개봉할 영화가 내년까지 세 편이야! 그 중에 하나는 형질을 뛰어 넘은 러브스토리고! 그런데 지금 이딴 짓을 벌여?"
나타샤는 당연히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미국에 사는 유명인이라면 재난같이 마주 할 수 밖에 없는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제이크는 열다섯살부터 파파라치에 시달린 삶을 산 남자였다. 그러니까 20년 간. 해가 갈 수록 그의 사진은 더 비싸게 팔렸는데, 그 이유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는 그의 솜씨가 점점 더 좋아져 그를 찍은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제이크 세러신이, 그의 롱아일랜드 저택 앞 어느 각도에 파파라치가 숨어 있을지 몰랐을리가 없다. 홈웨어를 입은 제이크 세러신이 급하게 떠나는 로버트를 돌려 세워 키스를 하는 모습이 프레임 단위로 찍혔고, 사진은 4시간도 되지 않아 매체를 통해 공개 됐다. 어두운데다가 멀리서 줌을 당겨 찍은 사진에는 제이크의 서늘한 실루엣과, 반쯤 돌려 세워진 로버트 플로이드의 옆모습이 찍혔지만, 그들이 키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타샤 트레이스는 제이크 세러신이 그 순간 카메라 파인더를 쳐다보고 있었을거라는 데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다. 개새끼. 나타샤는 다시 진동이 울리길 반복하는 핸드폰을 꽉 쥐고는 이를 갈았다. 로버트 플로이드를 롱아이랜드 저택으로 부른 것부터가 계획이었는지, 충동적으로 키스를 했던 건지는 몰라도, 이 것은 전부 다 저 교활한 녀석의 뜻대로 된 일이다.
"내가 곧 상원의원 댁 안주인이 되는데, 영화 세 편이 중요한거야?"
제이크는 고르게 갈리고 매끄럽게 폴리싱 된 손톱 끝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나타샤는 제이크의 조각된 듯 잘 손질된 손 끝의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평정심을 찾으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했다.
"너 설마 플로이드 의원 데리고 라스베이거스 갔다 왔단 소리만 해봐."
"오 냇... 날 뭘로 보는거야?"
뭘로 보긴...
"우린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결혼식을 할거야, 나타샤. 물론 너도 초대될 거고"
이 개새끼!!!!!!!
결국 제이크는 머리 손질을 다시 해야 했고, 덕분에 촬영은 2시간이나 지연됐다. 제이크는 예기치 않은 불상사에 사과하는 의미로 스테프 전원에게 그 주 목요일에 출시된 최신형 아이폰을 선물했다.
5.
나타샤 트레이스는 제이크 세러신을 싫어하고, 제이크 세러신은 그런 나타샤 트레이스를 이겨먹기 바빴지만 둘은 호흡이 잘 맞는 페어이긴 했다. 흥분했던 것이 언제냐는 듯, 나타샤와 제이크는 '이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 많은 것을 고려했고 그 준비를 훌륭하게 해 냈다. 우선 개봉을 앞둔 세 편의 영화 (그 중 한 편은 촬영 중이었다.) 제작사에 커다란 머핀바구니와 제이크가 직접 쓴 카드를 보냈다. 감독들에게 영화 프리미어를 포함한 프로모션은 모두 문제 없이 진행 될거라는 사실을 약속하며 안심시켰고, 파라마운트 영화사 대표와 엠버서더로 있는 톰포드에 각각 나타샤의 감독하에 직접 전화를 걸어, 머잖아 들려올 소식에 대해서 미리 귀뜸했다. 톰 포드에서는 결혼 예복은 물론이고 들러리 수트를 디자인 하기 시작했고 파라마운트의 홍보실은 비상이 걸렸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로버트 플로이드 의원실도 분주해졌는데,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여론조사 담당 스태프에게 네개의 포커스 그룹을 대상으로 플로이드 상원의원의 '이 결정'에 대해서 각 그룹은 어떻게 반응할 지에 대해서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공보관에게는 각각의 '가설'에 맞는 경우의 수에 대비해 보도자료를 만들도록 했다. 세러신과의 결혼은 로버트 플로이드의 정치적 신념과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입장 무엇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혹은 의지를 명료하게 표명하는 것은 모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내용이었다. 의원실 스태프들은 당연하게도 의원님의 '이 결정' 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망하거나 혹은 못마땅해 했는데, 그 중 가장 그 정도가 심할 것이리라는 스태프들의 예상과는 달리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침착하고 심지어 어떤 편 이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행동을 개시했다. 캐비닛 스태프들은 내색은 못했지만 하나같이 의아해 했다. 왜냐하면 틈만 나면 베이글이며 샴페인 -아니 대낮에 샴페인이라니 제정신이야?- 산더미 처럼 쌓아 올린 갓 구운 피자가 든 박스 따위를 들고 제이크 세러신이 의원실에 나타났을 때, 제이크 세러신을 내쫓지 못해 안달인 것은 바로 브래들리였기 때문이다. 사실 스태프들은 그 '제이크 세러신'이 의원실을 드나드는 정도는 눈호강 정도로 여겼다. 영화배우 구경을 아무데서나 해? 그런데다 꼭 출출할 때를 귀신같이 맞춰 그가 사들고 오는 요깃거리는 또 얼마나 맛있고, 기름졌는가. 그런데 우리 의원님 그저 -이전과 다름없이- 지나가듯 데이트만 몇 번 하실줄 알았지, 설마 연애까지? 하고 넋을 놓고 있던 스태프들이 결혼이라는 소리가 브래들리 브래드쇼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바로 그 제이크 세러신과 말이다. 그런데 정작 스태프들에 앞장서 이 결혼 반댈세 외칠 줄 알았던 브래드쇼는, 오히려 이 결혼이 완벽하길 바라는 것 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 하느라 벌써 이틀째 햄버거만 먹고 사무실에서 숙식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너 땜에 뒤지게 바쁜거 안보이냐-
니트 재질로 된 폴로 셔츠에 우아한 실루엣의 팬츠를 입은 제이크 세러신이 마치 제 집인양 의원실에 등자하자마자, 눈 밑에 거뭇거뭇 다크써클을 붙인 직원들이 다들 비슷한 각도로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제이크 세러신은 그 시선의 악의라고는 모른다는 듯 싱긋 근사하게 웃고 두손 가득 들고 온 머핀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는 '좀 드시면서 하시죠.' 상냥하게 말했다. 그리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의원실까지 가벼운 걸음으로 다달아 망설이지도 않고 노크했다. 그리곤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묵직한 마호가니 문을 밀어 열고는 쏙 들어가 버린다. 머핀은 갓 구웠는지 따뜻하고 맛있었다. 젠장. 캐비닛 스태프들은 머핀은 죄가 없다고, 음식 버리면 벌 받는다며 보기 싫으니 빨리 치워 버리자고 서로의 입에 하나씩 넣어 주었다.
제이크가 허락도 없이 의원실에 들어섰을 때, 로버트는 브래들리와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제이크 세러신과의 결혼 발표 이후 뉴욕 구역별 지지도 변화에 대해 예측한 여론조사 결과와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토대로 플로이드 상원의원의 주 지지층이었던 진보 백인 중산층, 히스패닉 여성들, 30대 아시안계의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보고가 한창이었다. 브래들리는 결혼 발표를 4월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고 로버트는 그렇게 되면 국회 회기와 겹쳐 준비하고 있던 법안에 가야할 관심이 분산되어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이크는 의원실 중앙 소파 앞의 테이블에 걸터 앉아 두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이 지역에 거주 하던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문화 유산 보존을 위한 법안을 상정한 것에 감사를 담아 로버트가 선물로 받아 협탁에 장식해 놓은 나무 조각 오브제를 만지작 거리다가 문득 제이크는 제 손에 끼워진 '세러신 컷' 웨딩 밴드를 내려다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 심각하게 이야기 중인 로버트 플로이드 상원의원의 손에도 같은 것이 사이즈만 달리하여 끼워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론조사 결과와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분석하느라 제발 집에 다녀오시라는 스태프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 사무실에서 먹고 자던 브래들리는 저 꼴을 보곤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의 이야기가 결론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지, 듣고만 있던 제이크가 불쑥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 결혼식 장소 까지 여론 조사로 결정하자고 할 건 아니죠?"
"제이크..." 로버트가 당혹스럽게 말하자.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죠, 미스터 세러신. 날짜까지 점지해 달라고 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브래들리가 지지 않고 말한다.
"그건 안되죠."
브래들리가 페이퍼를 소리나게 넘기면서 애써 왜 안되느냐 되묻지 않는 것으로 제이크와 기싸움을 했다. 하지만 제이크 세러신은 이틀 전, 로버트 플로이드에게 (제가 골라놓고 결제까지 해둔) 반지와 함께 프로포즈를 받은 것으로 완전히 행복감에 도취되어서 브래드쇼의 도발에도 명랑할 뿐이었다.
"뉴욕에서 한다고만 약속해 주면, 결혼식은 초대장부터 허니문까지 다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했거든요. 베이비가."
브래들리는 애써 페이퍼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어 로버트를 보았다. 로버트는 당혹스럽게 웃고 있었지만 없는 말은 아니다.
"야, 너 무슨 꼴을 보려고 그런...!"
"제이크도 알아서 잘 할거야. 브래들리. 그렇지? 제이크?" 로버트가 애써 안경을 치켜 올리면서 제이크에게 단도리 하듯 눈을 깜박였다.
"그래, 내 알아서 잘 해볼게요. 여보."
제이크는 브래들리와 로버트 사이에 뛰어 들어, 고개를 기울여 부러 소리가 나게 '쪽' 로버트의 볼에 키스를 하곤 그렇게 말했다. 제이크의 어깨 너머로 이마를 짚고 있는 브래들리를 보며 로버트가 어색하게 웃었다.
//
"벌써 퍼스트 젠틀맨이나 된 것처럼 구는 겁니까?"
"그거 두고 보려고 왔잖아요.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브래들리는 딱 한 그룹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여론조사 결과중 일부를 로버트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제이크에게 건넨 파일 철에 그 내용이 담겨 있을 터였다. 제이크는 침참한 얼굴로 그것을 읽어 내리곤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숫자들과 단어들이 나열된 사이에서 어떤 것을 찾으려는 듯이 명도 낮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창틀에 기대어 서 있던 브래들리는 양 손을 교차해 각 반대편의 겨드랑이 사이에 낀 -드물게- 방어적인 자세로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캘리포니아를 제외한 연안에서의 지지율이 25% 낮아지는 대신, 전국적인 지지도는 15%상승,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선 4포인트를 잃고 텍사스에서는..."
"전부 가져갈 수 있다는 거네요."
"... 세러신 패밀리가 지지 한다는 가정 하에요. 미스터 세러신."
제이크와 브래들리의 시선이 어딘가에서 서로 마주쳤다.
##
사실은 야망 덩어리 제이크 세러신
아 몰라 다 주의
#행맨밥
4.
제이크 세러신이 나타샤 트레이스를 퍼블리시스트로 고용한 이유는 세 가지다. 그녀가 업계 최고이기 때문이고, 제이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기세가 좋은 우성 알파이기 때문이고 -그가 텍사스 출신인 것을 잊지 말자-
"이 미친놈아!"
무엇보다, 그녀가 바로 업계에서 제이크 세러신을 가장 싫어하는 (거의 유일한) 여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나타샤가 그의 트레일러로 들이닥쳤을 때, 제이크는 헤어드레서와 메이크업, 그리고 손톱을 손질해 주는 메니큐어리스트와 의상을 손보고 있는 스태프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쪽 손은 메니큐어리스트에게 맡기고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히죽이던 제이크가 거울을 마주보고 저를 노려보는 나타샤를 힐끔 보곤 고갯짓을 하자, 스태프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조용히 트레일러를 나갔다. 나타샤가 손에 쥔 아이폰은 끊임없이 울리기를 반복했다. 나타샤가 제이크가 앉은 자리를 비껴 뒤에 선 채로 둘은 거울을 두고 마주 보았다. 금방이라도 드잡이를 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니, 사실 나타샤가 더 약이 오른 이유는
"정신이 있니?"
"안녕, 냇."
제이크가 보고 있는 것이 '그 사진들' 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타샤는 드물게 평정을 잃고 언성을 높혔다.
"너 개봉할 영화가 내년까지 세 편이야! 그 중에 하나는 형질을 뛰어 넘은 러브스토리고! 그런데 지금 이딴 짓을 벌여?"
나타샤는 당연히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미국에 사는 유명인이라면 재난같이 마주 할 수 밖에 없는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제이크는 열다섯살부터 파파라치에 시달린 삶을 산 남자였다. 그러니까 20년 간. 해가 갈 수록 그의 사진은 더 비싸게 팔렸는데, 그 이유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는 그의 솜씨가 점점 더 좋아져 그를 찍은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제이크 세러신이, 그의 롱아일랜드 저택 앞 어느 각도에 파파라치가 숨어 있을지 몰랐을리가 없다. 홈웨어를 입은 제이크 세러신이 급하게 떠나는 로버트를 돌려 세워 키스를 하는 모습이 프레임 단위로 찍혔고, 사진은 4시간도 되지 않아 매체를 통해 공개 됐다. 어두운데다가 멀리서 줌을 당겨 찍은 사진에는 제이크의 서늘한 실루엣과, 반쯤 돌려 세워진 로버트 플로이드의 옆모습이 찍혔지만, 그들이 키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타샤 트레이스는 제이크 세러신이 그 순간 카메라 파인더를 쳐다보고 있었을거라는 데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다. 개새끼. 나타샤는 다시 진동이 울리길 반복하는 핸드폰을 꽉 쥐고는 이를 갈았다. 로버트 플로이드를 롱아이랜드 저택으로 부른 것부터가 계획이었는지, 충동적으로 키스를 했던 건지는 몰라도, 이 것은 전부 다 저 교활한 녀석의 뜻대로 된 일이다.
"내가 곧 상원의원 댁 안주인이 되는데, 영화 세 편이 중요한거야?"
제이크는 고르게 갈리고 매끄럽게 폴리싱 된 손톱 끝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나타샤는 제이크의 조각된 듯 잘 손질된 손 끝의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평정심을 찾으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했다.
"너 설마 플로이드 의원 데리고 라스베이거스 갔다 왔단 소리만 해봐."
"오 냇... 날 뭘로 보는거야?"
뭘로 보긴...
"우린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결혼식을 할거야, 나타샤. 물론 너도 초대될 거고"
이 개새끼!!!!!!!
결국 제이크는 머리 손질을 다시 해야 했고, 덕분에 촬영은 2시간이나 지연됐다. 제이크는 예기치 않은 불상사에 사과하는 의미로 스테프 전원에게 그 주 목요일에 출시된 최신형 아이폰을 선물했다.
5.
나타샤 트레이스는 제이크 세러신을 싫어하고, 제이크 세러신은 그런 나타샤 트레이스를 이겨먹기 바빴지만 둘은 호흡이 잘 맞는 페어이긴 했다. 흥분했던 것이 언제냐는 듯, 나타샤와 제이크는 '이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 많은 것을 고려했고 그 준비를 훌륭하게 해 냈다. 우선 개봉을 앞둔 세 편의 영화 (그 중 한 편은 촬영 중이었다.) 제작사에 커다란 머핀바구니와 제이크가 직접 쓴 카드를 보냈다. 감독들에게 영화 프리미어를 포함한 프로모션은 모두 문제 없이 진행 될거라는 사실을 약속하며 안심시켰고, 파라마운트 영화사 대표와 엠버서더로 있는 톰포드에 각각 나타샤의 감독하에 직접 전화를 걸어, 머잖아 들려올 소식에 대해서 미리 귀뜸했다. 톰 포드에서는 결혼 예복은 물론이고 들러리 수트를 디자인 하기 시작했고 파라마운트의 홍보실은 비상이 걸렸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로버트 플로이드 의원실도 분주해졌는데,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여론조사 담당 스태프에게 네개의 포커스 그룹을 대상으로 플로이드 상원의원의 '이 결정'에 대해서 각 그룹은 어떻게 반응할 지에 대해서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공보관에게는 각각의 '가설'에 맞는 경우의 수에 대비해 보도자료를 만들도록 했다. 세러신과의 결혼은 로버트 플로이드의 정치적 신념과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입장 무엇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혹은 의지를 명료하게 표명하는 것은 모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내용이었다. 의원실 스태프들은 당연하게도 의원님의 '이 결정' 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망하거나 혹은 못마땅해 했는데, 그 중 가장 그 정도가 심할 것이리라는 스태프들의 예상과는 달리 브래들리 브래드쇼는 침착하고 심지어 어떤 편 이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행동을 개시했다. 캐비닛 스태프들은 내색은 못했지만 하나같이 의아해 했다. 왜냐하면 틈만 나면 베이글이며 샴페인 -아니 대낮에 샴페인이라니 제정신이야?- 산더미 처럼 쌓아 올린 갓 구운 피자가 든 박스 따위를 들고 제이크 세러신이 의원실에 나타났을 때, 제이크 세러신을 내쫓지 못해 안달인 것은 바로 브래들리였기 때문이다. 사실 스태프들은 그 '제이크 세러신'이 의원실을 드나드는 정도는 눈호강 정도로 여겼다. 영화배우 구경을 아무데서나 해? 그런데다 꼭 출출할 때를 귀신같이 맞춰 그가 사들고 오는 요깃거리는 또 얼마나 맛있고, 기름졌는가. 그런데 우리 의원님 그저 -이전과 다름없이- 지나가듯 데이트만 몇 번 하실줄 알았지, 설마 연애까지? 하고 넋을 놓고 있던 스태프들이 결혼이라는 소리가 브래들리 브래드쇼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바로 그 제이크 세러신과 말이다. 그런데 정작 스태프들에 앞장서 이 결혼 반댈세 외칠 줄 알았던 브래드쇼는, 오히려 이 결혼이 완벽하길 바라는 것 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 하느라 벌써 이틀째 햄버거만 먹고 사무실에서 숙식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너 땜에 뒤지게 바쁜거 안보이냐-
니트 재질로 된 폴로 셔츠에 우아한 실루엣의 팬츠를 입은 제이크 세러신이 마치 제 집인양 의원실에 등자하자마자, 눈 밑에 거뭇거뭇 다크써클을 붙인 직원들이 다들 비슷한 각도로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제이크 세러신은 그 시선의 악의라고는 모른다는 듯 싱긋 근사하게 웃고 두손 가득 들고 온 머핀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는 '좀 드시면서 하시죠.' 상냥하게 말했다. 그리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의원실까지 가벼운 걸음으로 다달아 망설이지도 않고 노크했다. 그리곤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묵직한 마호가니 문을 밀어 열고는 쏙 들어가 버린다. 머핀은 갓 구웠는지 따뜻하고 맛있었다. 젠장. 캐비닛 스태프들은 머핀은 죄가 없다고, 음식 버리면 벌 받는다며 보기 싫으니 빨리 치워 버리자고 서로의 입에 하나씩 넣어 주었다.
제이크가 허락도 없이 의원실에 들어섰을 때, 로버트는 브래들리와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제이크 세러신과의 결혼 발표 이후 뉴욕 구역별 지지도 변화에 대해 예측한 여론조사 결과와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토대로 플로이드 상원의원의 주 지지층이었던 진보 백인 중산층, 히스패닉 여성들, 30대 아시안계의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보고가 한창이었다. 브래들리는 결혼 발표를 4월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고 로버트는 그렇게 되면 국회 회기와 겹쳐 준비하고 있던 법안에 가야할 관심이 분산되어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이크는 의원실 중앙 소파 앞의 테이블에 걸터 앉아 두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이 지역에 거주 하던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문화 유산 보존을 위한 법안을 상정한 것에 감사를 담아 로버트가 선물로 받아 협탁에 장식해 놓은 나무 조각 오브제를 만지작 거리다가 문득 제이크는 제 손에 끼워진 '세러신 컷' 웨딩 밴드를 내려다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 심각하게 이야기 중인 로버트 플로이드 상원의원의 손에도 같은 것이 사이즈만 달리하여 끼워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론조사 결과와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분석하느라 제발 집에 다녀오시라는 스태프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레 사무실에서 먹고 자던 브래들리는 저 꼴을 보곤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의 이야기가 결론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지, 듣고만 있던 제이크가 불쑥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 결혼식 장소 까지 여론 조사로 결정하자고 할 건 아니죠?"
"제이크..." 로버트가 당혹스럽게 말하자.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죠, 미스터 세러신. 날짜까지 점지해 달라고 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브래들리가 지지 않고 말한다.
"그건 안되죠."
브래들리가 페이퍼를 소리나게 넘기면서 애써 왜 안되느냐 되묻지 않는 것으로 제이크와 기싸움을 했다. 하지만 제이크 세러신은 이틀 전, 로버트 플로이드에게 (제가 골라놓고 결제까지 해둔) 반지와 함께 프로포즈를 받은 것으로 완전히 행복감에 도취되어서 브래드쇼의 도발에도 명랑할 뿐이었다.
"뉴욕에서 한다고만 약속해 주면, 결혼식은 초대장부터 허니문까지 다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했거든요. 베이비가."
브래들리는 애써 페이퍼에 두고 있던 시선을 들어 로버트를 보았다. 로버트는 당혹스럽게 웃고 있었지만 없는 말은 아니다.
"야, 너 무슨 꼴을 보려고 그런...!"
"제이크도 알아서 잘 할거야. 브래들리. 그렇지? 제이크?" 로버트가 애써 안경을 치켜 올리면서 제이크에게 단도리 하듯 눈을 깜박였다.
"그래, 내 알아서 잘 해볼게요. 여보."
제이크는 브래들리와 로버트 사이에 뛰어 들어, 고개를 기울여 부러 소리가 나게 '쪽' 로버트의 볼에 키스를 하곤 그렇게 말했다. 제이크의 어깨 너머로 이마를 짚고 있는 브래들리를 보며 로버트가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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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퍼스트 젠틀맨이나 된 것처럼 구는 겁니까?"
"그거 두고 보려고 왔잖아요.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브래들리는 딱 한 그룹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여론조사 결과중 일부를 로버트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제이크에게 건넨 파일 철에 그 내용이 담겨 있을 터였다. 제이크는 침참한 얼굴로 그것을 읽어 내리곤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숫자들과 단어들이 나열된 사이에서 어떤 것을 찾으려는 듯이 명도 낮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창틀에 기대어 서 있던 브래들리는 양 손을 교차해 각 반대편의 겨드랑이 사이에 낀 -드물게- 방어적인 자세로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캘리포니아를 제외한 연안에서의 지지율이 25% 낮아지는 대신, 전국적인 지지도는 15%상승,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선 4포인트를 잃고 텍사스에서는..."
"전부 가져갈 수 있다는 거네요."
"... 세러신 패밀리가 지지 한다는 가정 하에요. 미스터 세러신."
제이크와 브래들리의 시선이 어딘가에서 서로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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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야망 덩어리 제이크 세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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