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9469994
view 1832
2023.06.21 22:11
IMG_6657.jpeg
새벽2시, 히라는 연락도 없이 집에 오고 있지 않고있다. 이런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키요이는 히라를 걱정하며 새벽까지 깨있었다. 15분정도 지났을까, 히라가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왔다. 사실 히라는 술에 취해도 비틀거리거나 누군가에게 헛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취한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냄새는 확실한 증거를 준다. 히라가 신발을 벗고 거실에 발을 딛는 순간 알코올냄새와 알 수 없는 향수냄새가 섞여 키요이의 후각을 자극했다.

“..키요이..안 자고 있었네..?“

“대체 누구랑 술을 마신거야?”

“미안 키요이..”

“누가 이렇게까지 마시래? 아니면 누가 억지로 먹인거야? 그리고 이 향수 냄새는 또 뭐야, 여자냐?”

“노구ㅊ..”

히라는 말을 다하지 못한채 키요이 쪽으로 쓰러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순간 키요이는 히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히라에게 깔린 채 거실 바닥으로 넘어졌다. 잠이든 인간은 평소보다 더욱 무거워지지만, 술보다 향수냄새에 더 화가 난 키요이는 초인적인 힘으로 히라를 바닥으로 던지듯(좀 많이 세게)내팽겨치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히라가 마지막에 말한 이름은 분명

“하? 노구치씨?”

노구치였다. 이 새벽에 전화를 걸어 당장 따지고 싶었지만, 키요이는 그렇게까지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노구치에게 전화를 걸어 따질 생각이었다. 히라를 거실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혼자 씩씩대며 방으로 가 잠을 청하는 키요이였다.

다음 날 아침, 7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히라는 아마도 여전히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키요이는 알람이 울리자마자 익숙한듯 노구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그래도 평소에 할 말이 많았는데, 참아왔던 말을 오늘은 모조리 해버리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었다.

“..여보ㅅ..”

“노구치씨”

“어..어? 왠일이지 키요이, 이렇게 아침부터? 요새는 연락할 일이 잘 없지 않나?”

“히라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평소에도 잔심부름 시킨다고 이리저리 부려먹다가 늦게 오는 애를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먹여서 보내면 어떡해요?”

“하지만 키요이, 남자친구를 그렇게 싸고 돌면 걔는 영원히 사회생활을 할 수 없어.. 그건 다 사회생활의 일ㅂ..”

“히라는 원래도 사회생활 안하고 잘 살고 있었어요, 특히 인생에 노구치씨 처럼 여자들은 더욱 없었구요”

이를 들은 노구치도 마음 속으로 공감했다 그러나

“결국 질투군..키요이는 너무 의부증인것 같아”

노구치의 ‘의부증’ 그 한마디가 순간 키요이를 폭주기관차로 바꾸었다

“하? 그럼 어제는 도대체 왜 부르신건데요? 술통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상한 향수 냄새도 섞여서.. 특히 여자를 만나는거면 혼자 즐기세요, 얘는 그런 곳 싫어해요”

“잠시만..어제? 글쎄..어제 나는 ㅈ..”

“이제 앞으로 한 번만 더 히라를 의미없는 술자리에 부르신다면 제 모든 권력을 이용해서 노구치씨를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그 다음엔 히라도 그만두게 하고 제가 얘를 먹여 살릴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키요이, 나는 어제 집..”

“그리고 말나온김에요, 해장국 끓이라고도 아침부터 부르지 마세요 노구치씨도 술을 끊으시던가 직접해드세요, 아니면 제가 인스턴트로 사다드릴게요! 먹고 속 풀어야 할 사람이 누군데”

“어이..! 키요이 그니까 나는 어ㅈ”

“노구치씨는 그래도 히라가 믿는 사람 중 하나여서, 그리고 스승님이니까 여기까지인거지 진짜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저도 가차 없었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노구치는 한 마디의 말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어제 히라와 술을 마신 것은 노구치가 아닌 노구치와 친한 업계 관계자였다. 그것을 히라가 말하다 말아 노구치만 아침 일찍부터 폭탄 맞은 꼴이 되어버렸다.

“키요이는 정말 소녀야..”

“히라의 해장국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리고 히라 이놈은 대체 말을 어떻게 전한거야..?”

노구치는 책상 서랍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사직서를 쓰기 위함이다. 못난 제자는 노구치가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 거부하지않고, 당장 그만둔 뒤 키요이라는 소녀가 있는 곳으로 도망갈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이 그만두는게 빠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는 진짜 내가 그만둬야지”

결국 오늘도 노구치는 4080번째 사직서를 쓰고 있다. 평소 제자놈 커플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자신이 너무 초라할 때마다 사직서를 썼다. 하지만 노구치는 본인이 노구치 사무소의 대표이기에 사직서를 수리할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매번 작성한 사직서는 책상 서랍에 쌓여만 가고 있다.

그리고 노구치는 알고있다. 이 고난은 여기가 끝이 아닌, 내일도, 모레도 어쩌면 자기가 죽을 때 까지 일어날 것을.


앎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