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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9 22:44
정치인 로버트 플로이드의 트로피 와이프 영화배우 제이크 세러신....
캐붕주의
노잼주의
밥 안나옴 주의
#행맨밥
트로피 와이프
1.
보좌관들은 빨리 걷는다. 보폭을 넓게 여유롭게 걷는 상사의 옆에서 빠른 걸음으로 그 혹은 그녀보다 반발자국 앞서 걸으면서 브리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바로 한시간 전에 마무리한 연설문의 두 번째 문단의 문장의 어순을 바꾸겠다거나, 다음 회기에 발의할 법안의 독소조항을 완화하기 위해 원내대표와 미팅 -을 가장한 읍소- 에 참석해야 한다거나, 여섯자리 규모의 후원금을 기부한 관대한 기부자와의 전화 통화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를 설득하기 마련이었지만 브래들리 브래드쇼가 오늘 뉴욕 특급 호텔의 좁은 복도를 빠르게 걷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안돼요."
그는 심지어 자신이 모시는 상사를 대하고 있지도 않았다.
"미스터 세러신, 이건..."
"내가 로비보다 먼저 연단에 올라갈 일은 없을 거에요. 브래들리"
"미스터 세러신이 의원님을 소개하는 건 큰 의미가 있을거에요."
순간 발볼이 좁고 발등이 낮은, 레드솔의 지미추 커스텀 슈즈를 신은 발이 우뚝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호텔 복도는 카펫이 깔려 있고 그의 걸음은 언제나 그렇듯 사뿐 사뿐 소리가 없었으나, 브래들리는 마치 묵직한 바위가 내려 앉은 것 같은 압도감을 느꼈다. 제이크 세러신은 가만히 서서 고개를 돌려 자신보다 약간 큰 브래들리 브래드쇼를 바라보았다. '톰 포드'의 턱시도를 입은 제이크와는 달리, 어제부터 같은 것이 었을 것이 분명한 셔츠를 입고 듬성듬성 소매를 걷어 올린 남자. 상원의원 로버트 플로이드의 가장 가까운, 그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참모. 시의원을 거쳐 하원의원 시절부터 로버트를 알았고 실지 화물차 노조나 임금체벌 관련 무료 변호에나 관심이 있던 변호사 로버트 플로이드를 정치에 입문시킨 남자이기도 하다. 기골이 장대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언변은 또 얼마나 거침이 없는지. 그가 아니었다면 현직 상원 의원 중 최연소 '민주당의 총아' 로버트 플로이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로버트와 함께 하버드를 나왔다지. 제이크는 사실 그가 싫다. 실지 그가 로버트와 하루 20시간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로버트의 기침소리만 들어도 그의 컨디션을 간파해 버리는 기가 막힌 '로버트 플로이드 레이더'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싫은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죠? 로버트 플로이드에게 영화배우 남편이 있다는 사실? 지금 로비가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 따위에 올라가는게 아니잖아요."
"그 영화 배우가 '세러신'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
"텍사스에서나 통하는 세러신이라는 이름이 뉴욕에서 무슨 힘을 발휘할지 모르겠군요."
"텍사스에서 힘을 발휘해 보자는 겁니다. 미스터 세러신."
"..."
"로버트는... 아니 의원님을 뉴욕 상원의원에 머물게 하실건 아니잖습니까. 미스터 세러신."
그가 굉장히, 서슬퍼렇게 똑똑하기 때문이다.
2.
"화이트, 에그쉘도 아니고 베이지도 아니고 아이보리도 아니고, 화이트! 깨끗한 오프화이트!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회빛을 띄는 색 부터 형광빛을 띄는 색 까지 '화이트'의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모아 놓은 듯한 스와치들을 늘어 놓고 제이크는 그가 고용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에게 소리쳤다. 입주는 벌써 3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제이크는 아직도 벽지 색깔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로버트의 경호팀은 집의 구조가 경호에 불리하다는 불평을 거듭하면서 가이드 라인을 정리하는 문제로 제이크를 신경질 나게 만들고 있다. 이 모든게 다 누구 탓인데, 제이크는 처음부터 로버트와 함께 살 집을 브루클린에 두고 싶지 않았다. 제이크는 뉴욕에 살면서 윌리엄스버그 브릿지를 건너본 것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남자였다. 첼시가 아니면 5번가의 고급 주택, 제이크가 생각했던 로버트와의 보금자리는 그정도였다. 로버트는 제이크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이 후부터 -그들이 함께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다름 없이- 집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제이크에게 일임했는데 정작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바로 그 브래들리 '루스터' 브래드쇼다.
'5번가라뇨. 미스터 세러신, 의원님을 당장이라도 정치적 위선자로 낙인 찍으실 셈입니까?'
젠장. 제이크는 분했지만 그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로버트는 노동자들 무료 변호를 하던 변호사 출신의 민주당 상원의원이다. 그는 칵테일 파티에서 턱시도를 입기보다는 '갭'에서 산 플란넬 셔츠에 '리바이스' 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여전히 학생인양 해사한 얼굴로 거리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진 따위나 찍히는 정치인이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페르소나의 거의 모든 것을 설계하고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브래들리 브래드쇼가 용납할 수 있는 '그들 집'의 지리적 위치는 브루클린의 브라운 스톤 정도가 한계였다. 침실은 다섯개를 넘지 않는게 좋겠군요. 마치 죄를 지은듯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 로버트 옆에 선 브래들리 브래드쇼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제이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가 되면 로버트가 처음 자신과 데이트 하겠다고 했을때 저 새끼는 존나 반대 했겠네. 물론 맞는 말이다.
캐붕주의
노잼주의
밥 안나옴 주의
#행맨밥
트로피 와이프
1.
보좌관들은 빨리 걷는다. 보폭을 넓게 여유롭게 걷는 상사의 옆에서 빠른 걸음으로 그 혹은 그녀보다 반발자국 앞서 걸으면서 브리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바로 한시간 전에 마무리한 연설문의 두 번째 문단의 문장의 어순을 바꾸겠다거나, 다음 회기에 발의할 법안의 독소조항을 완화하기 위해 원내대표와 미팅 -을 가장한 읍소- 에 참석해야 한다거나, 여섯자리 규모의 후원금을 기부한 관대한 기부자와의 전화 통화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를 설득하기 마련이었지만 브래들리 브래드쇼가 오늘 뉴욕 특급 호텔의 좁은 복도를 빠르게 걷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안돼요."
그는 심지어 자신이 모시는 상사를 대하고 있지도 않았다.
"미스터 세러신, 이건..."
"내가 로비보다 먼저 연단에 올라갈 일은 없을 거에요. 브래들리"
"미스터 세러신이 의원님을 소개하는 건 큰 의미가 있을거에요."
순간 발볼이 좁고 발등이 낮은, 레드솔의 지미추 커스텀 슈즈를 신은 발이 우뚝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호텔 복도는 카펫이 깔려 있고 그의 걸음은 언제나 그렇듯 사뿐 사뿐 소리가 없었으나, 브래들리는 마치 묵직한 바위가 내려 앉은 것 같은 압도감을 느꼈다. 제이크 세러신은 가만히 서서 고개를 돌려 자신보다 약간 큰 브래들리 브래드쇼를 바라보았다. '톰 포드'의 턱시도를 입은 제이크와는 달리, 어제부터 같은 것이 었을 것이 분명한 셔츠를 입고 듬성듬성 소매를 걷어 올린 남자. 상원의원 로버트 플로이드의 가장 가까운, 그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참모. 시의원을 거쳐 하원의원 시절부터 로버트를 알았고 실지 화물차 노조나 임금체벌 관련 무료 변호에나 관심이 있던 변호사 로버트 플로이드를 정치에 입문시킨 남자이기도 하다. 기골이 장대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언변은 또 얼마나 거침이 없는지. 그가 아니었다면 현직 상원 의원 중 최연소 '민주당의 총아' 로버트 플로이드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로버트와 함께 하버드를 나왔다지. 제이크는 사실 그가 싫다. 실지 그가 로버트와 하루 20시간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로버트의 기침소리만 들어도 그의 컨디션을 간파해 버리는 기가 막힌 '로버트 플로이드 레이더'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싫은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죠? 로버트 플로이드에게 영화배우 남편이 있다는 사실? 지금 로비가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 따위에 올라가는게 아니잖아요."
"그 영화 배우가 '세러신'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
"텍사스에서나 통하는 세러신이라는 이름이 뉴욕에서 무슨 힘을 발휘할지 모르겠군요."
"텍사스에서 힘을 발휘해 보자는 겁니다. 미스터 세러신."
"..."
"로버트는... 아니 의원님을 뉴욕 상원의원에 머물게 하실건 아니잖습니까. 미스터 세러신."
그가 굉장히, 서슬퍼렇게 똑똑하기 때문이다.
2.
"화이트, 에그쉘도 아니고 베이지도 아니고 아이보리도 아니고, 화이트! 깨끗한 오프화이트!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회빛을 띄는 색 부터 형광빛을 띄는 색 까지 '화이트'의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모아 놓은 듯한 스와치들을 늘어 놓고 제이크는 그가 고용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에게 소리쳤다. 입주는 벌써 3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제이크는 아직도 벽지 색깔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로버트의 경호팀은 집의 구조가 경호에 불리하다는 불평을 거듭하면서 가이드 라인을 정리하는 문제로 제이크를 신경질 나게 만들고 있다. 이 모든게 다 누구 탓인데, 제이크는 처음부터 로버트와 함께 살 집을 브루클린에 두고 싶지 않았다. 제이크는 뉴욕에 살면서 윌리엄스버그 브릿지를 건너본 것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남자였다. 첼시가 아니면 5번가의 고급 주택, 제이크가 생각했던 로버트와의 보금자리는 그정도였다. 로버트는 제이크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이 후부터 -그들이 함께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다름 없이- 집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제이크에게 일임했는데 정작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바로 그 브래들리 '루스터' 브래드쇼다.
'5번가라뇨. 미스터 세러신, 의원님을 당장이라도 정치적 위선자로 낙인 찍으실 셈입니까?'
젠장. 제이크는 분했지만 그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로버트는 노동자들 무료 변호를 하던 변호사 출신의 민주당 상원의원이다. 그는 칵테일 파티에서 턱시도를 입기보다는 '갭'에서 산 플란넬 셔츠에 '리바이스' 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여전히 학생인양 해사한 얼굴로 거리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진 따위나 찍히는 정치인이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페르소나의 거의 모든 것을 설계하고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브래들리 브래드쇼가 용납할 수 있는 '그들 집'의 지리적 위치는 브루클린의 브라운 스톤 정도가 한계였다. 침실은 다섯개를 넘지 않는게 좋겠군요. 마치 죄를 지은듯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 로버트 옆에 선 브래들리 브래드쇼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제이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가 되면 로버트가 처음 자신과 데이트 하겠다고 했을때 저 새끼는 존나 반대 했겠네. 물론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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