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9133890
view 3017
2023.06.19 19:52
산왕파 와카가시라 바로 밑에서 일하는 최동오..산왕 이제 양지로 간다고 슬슬 적당하게 이름있는 회사들 부도내고 잡아먹기 시작하는데 그 즈음 모 기업이랑 연줄 좀 놔보자고 와카가 동오한테 니가 그 기업 집안 애랑 이어져야 한다 함

어렸을 땐 여기저기 화려하게 놀았는데 지금은 한참 일에 재미 붙인 때라 크게 내키진 않았지만 까라는데 가는 수밖에 없음

그리고서는 일식 정원에서 물이 톡톡 구르는 커다란 요리정 중정 방에서 마주친 게 이제 열일곱이나 됐나 싶은 어린것이겠지
와카 그 젊은 나이에 노망이 왔나 싶어서 다시 한번 봐도 볼에 솜털도 안 가신 아기가 입술 쪽 내밀고 가만히 앉아있는 거

자기랑 열두 살 차이난대.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 했대. 심지어 일학년이야. 졸업하고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내내 어둡던 얼굴이 확 밝아져. 농구요!

아기 농구 잘해?
작년 중학 mvp였어요.

당돌하게 말하는 모양이 영 싫진 않고 다만 너무 어리니까 와카한테 없던 일로 해야지..싶었던 최실장
그래. 먹고싶은거 시켜라. 해서 도톰하게 저민 참치 살점이 입술로 들어가는 거나 한참 구경하다 옴. 웃는 거 예쁘네, 싶음.

근데 이미 협의 다 끝난 일이라 무르기는 뭘 무르냐고 윽박이나 듣고 온 동오 한숨만 푹 내쉬겠지 아니 거기 털이나 났나 싶은 어린애였다고요.

어찌어찌 두번째 만나고 세번째 만나고..네번째 애 학교에서 차 태워가는데 농구화 사러 가야한대. 아저씨가 사줘? 하고 물어보니까 자기 용돈 있다고 괜찮다고 하는게 사뭇 귀엽지.

신발 고르고 결제 때 꿋꿋하게 제 지갑 꺼내는 아기더러 너 생일이 언제니, 묻는 동오. 생일 5월이래. 벌써 두 달이 지났어. 생일선물한 셈 치자, 하고 자기 카드로 긁고 웃는 동오.

고맙습니다아...

하고 슬금 자기 눈치 봤다가 이내 히 웃는데 그렇게 활짝 웃는 건 또 처음이라 조금 놀람.

생일선물 처음 받아봐요.

..너희 집 돈 많잖아.

아저씨도 알잖아요. 나 첩 아들인걸.

그렇다고 애 선물 한 번이 없어?

그런 집이에요.

생일선물 한 번 못 받아본 건 괜찮대. 그런데 자기 농구 경기 할 때 아무도 한번도 찾아와 준 적 없다는 게 더 속상하대. 애비라는 건 안 봐도 애한테 관심 없었을 테고 엄마라는 사람은 집안 눈치 보느라 그랬겠지 싶음


한동안 말이 없어. 아이가 천천히 입술을 열어. 아저씨 나는 버리는 카드예요. 아저씨는 괜히 운이 나빠서 나 같은 애랑 엮인 거예요. 화내도 돼요 그래도..

때리지는 마요.

언젠가 차 안의 아이를 두고 거래처와 전화할 때 골프, 라는 단어를 내 뱉은 일이 불현듯 생각나.아이는 그 단어에 가시라도 돋은 양 어깨를 움찔했던 것도. 이 바닥에서 오래 굴렀던 직감이 머리 한구석을 스쳐. 이 더운 날씨에 체육관을 다녀오면서도 유독 길게 입는 속바지.

미안, 잠시만.

앉아있던 아이의 반바지 속 속바지를 3센티 정도 올려. 새파란 흔적 옆으로 싯누렇게 뜬 것, 자줏빛이 어지러워.

아버지가?

...

아이는 말이 없어. 동오는 와카를 따라갔던 자리에서 마주친 아이의 아버지를 생각해. 줏대없이 굼살대는, 음침한 얼굴. 골프 클럽으로 어린애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다음 경기 언제야.

다다음 주에 인터하이....

어디서?

요코하마요.

그래...

그날은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한 아주 단 것들을 먹었어.
눈치 보면서 하나를 시키길래 그냥 먹고 싶은 건 다 시키라고 했어.
아이는 그 나잇대 운동하는 애들 치고는 꽤나 말랐지. 다 비운 접시들을 보고 애가 고민하고 시키지 않았던 것들을 포장해서 쥐여 줘. 그런데 눈치가 영 불안해 하는 것 같아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집에 가져가면 안될 것 같대.

애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 하나하나 눈치보게 만드는 집이구나.
쓰레기 같은 집구석이네. 이런 애가 살기에는.
동오는 차를 몰고 아무 데나 가까운 공원에 세워 아이를 데리고 내려서 벤치에 앉아. 둘은 해가 질 때까지 앉아서 달고 새콤하고 부드러운 것들을 죄다 남김없이 나눠먹었어.


그리고 경기 당일 그 전날 할 일 몰아 치루느라 조금 피곤한 얼굴로 대강 꽃다발 하나 사서 관중석에 앉는 최실장.. 자기가 농구 잘한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내내 코트를 누비면서 유독 반짝거리는데.. 새삼 어리고 예쁘다 싶겠지
그리고 어제까지 치바에서 채무자가 고용한 어깨들 대가리에 너클 두른 주먹 꽂다 온 아저씨랑은 영 안 어울린다고도 생각함
옷 갈아입을 때 살짝 튀었는지 셔츠 자락에 핏방울 하나 묻은 거 보고 아이 씨발...싶음

경기는 애가 넣은 골이 역전의 불씨가 돼서 이겼음. 환하게 웃으면서 관중석을 보던 아이랑 눈이 마주쳐. 그때 까지만 해도 경기장을 나가야 되나 시커먼 아저씨가 괜히 찾아왔나 싶었는데 동오 발견한 애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져.

내려오라고 방방 뛰면서 손짓하길래 하는 수 없이 경기장 쪽으로 내려가는데 내려가자마자 뭐가 세게 달려서는 안겨와.
턱 끝에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이 스치고 아이한테서는 땀을 흘리면서 뛰었던 게 무색하게 청량한 향내가 나. 아이가 안기면서 살짝 휘청했어. 쥐고 있던 꽃다발에서 델피늄의 흐리게 파란 꽃잎들이 세차게 휘날리고 아이가 말해. 나 봤어요?

응.

어땠어요?

입이 잠시 안 떨어져. 안겨 온 팔이 부드러워서, 경기장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조명 빛이 하얗게 부서져서, 숨소리가 너무 가까워서.

잘하더라, 너.

그 짧디 짧은 말 한마디에 아이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화사해져. 그 순간 동오는 알겠지
너랑은 긴 인연이 되겠구나.






동오대만 존나..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