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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9 10:19
사서 고생하는 게 보고 싶다

난장판 된 집안에서 덜덜 떨고 있는 초딩 밍힝이 보고 쟤 그냥 냅두면 자기처럼 클 거 같아서 있지도 않은 모성애 폭발해가지고 형이랑 같이 가자 하고 애 손잡고 홀라당 지 사는 아파트에 데리고 와 버린 동오

장부 정리하던 낙수가 밑에 부하들한테
야 이 집에 애 하나 있다 안 그랬나? 걘 어쨌어
그... 어...

동오 형님이 데려가셨는데요
에?

낙수 어이없을 무!
최동오 평소에 지나가다 쪼꾸만 애기 보면 낙수는 귀엽다고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주는데
동오는 관심도 없었거든
그런 애가 뭐 애를 데려가? 데려가서 뭐할라고...
전화 존나게 때려도 받지도 않고
김낙수 최동오 집에 쳐들어 감

문 벌컥 열고 들어가니 까까 냠냠 먹고 있는 입술이 도톰하니 귀여운 애 하나
낯선 사람 등장에 먹다 과자 입에 물고 눈알만 도르륵 안절부절

아 나 동오 친구. 하고 명헌이 앞에 서서 아래위로 훑는데
진짜 애구만... 애 데리고 뭐 하려고...

동오는?
일하러 가신다고용...
일은 개뿔..
동오가 너한테 뭐래
넹?
너 여기 데려오면서 뭐라 그런 거 없어?
그냥... 형이랑 앞으로 같이 살면 된다고 그랬어용...

뭐... 밥은 먹었니? 물으니까
열심히 먹던 오레오 들고 보여준다
그거 말고 밥
그러니까 이거 먹고 있잖아 하는 눈빛으로 낙수 쳐다보는데
슬쩍 뒤돌아 보니 이미 쓰레기통에 오레오 상자 몇 개 더 있음

독특한 애네

그것만 먹어도 돼?
넹 맛있어용
그래 많이 먹어라... 담에 또 보자
하는 낙수 손에 오레오 두 개 쥐여줌

안녕히 가세용

으 달어...
아파트 로비 앞에서 들어오는 동오 마주치고 오레오 하나 다시 동오 손에 쥐여줌
니네 애 독특하더라 야...
응?
간다

집에 들어가니 이제 과자 다 먹고 배 통통통 하면서 티비보고있는 명헌이
아가 밥 먹었어?

하고 빈 오레오 봉지 자랑스레 쳐다보는 명헌이
아까 형 친구 오셨어용
아 봤어
밥 먹어야지 과자만 먹으면 어뜨케
이게 맛있는데...
앞으로 과자는 한 개씩만
그럼 명헌이 입 삐죽 ... 이해 못 했음
맛있는데 왜...

이건 시초에 불가했다고 한다
동오 갑자기 바빠져서 애 용돈 주고 과자 말고 밥으로 사 먹어야 돼~ 하는데 집에 오면 항상 카레 냄새남
슈퍼에서 3분 카레 하나씩 사다가 이제 박스째 사놓고 1달을 내리 3분 카레만 먹음
동오가 고기반찬 사다 놔도 몇 점 먹다가 카레 먹음
애가 좀 노래진 거 같기도 하고

동오한테도 3일을 카레 먹으라고 내주는데 동오 첨엔 걍 빨리 먹고 가야 하니까 먹는데 물려가지고
...
형 이거 못 먹겠어... 하면
명헌이 또 이해 못 함ㅋㅋㅋ
왜... 맛있는데용....

동오는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고 이제야 깨달았겠지

옷도 한번 꽂히면 그것만 입음
형이 옷 많이 사줬잖아.... 해도 네이비 바탕에 갈색 곰돌이 그려진 티만 주구장창 입음
빨아 입고 섬유 유연제 뿌려 입고 덜 마르면 드라이기로 내내 말려가지고 입고 나감
결국 동오가 똑같은 거 3벌 더 사줘서 동오 붙잡고 볼따구에 뽀뽀 열 번 해줌
형 최고에용

똥고집 음청 나서 한겨울에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나갈 거라고 현관 앞에서 땡깡을 땡깡을
밖에 영하라고 춥다고 달래 보다가 윽박지르다가 왜 이렇게 말 안 들어 하고 애 손목 부여잡고 엉덩이 찰싹찰싹 때려줘도 찡찡 울면서 슬리퍼 신고 나간다 또...
추워서 발 빨개졌는데도 좋단다 참나
슬리퍼로 눈 쌓인 거 폭폭 밟다가 보다 못한 동오한테 덜렁 업혀서 다시 집에 들어가겠지
동상 걸린다 진짜 너
집에 잡혀들어와서 뜨거운 물에 발 녹히고 동오한테 내내 잔소리 들어도 담날 또 몰래 슬리퍼 신고 눈 밟고 있다가 동오 눈에 딱 걸리고 집에 끌려들어 가서 혼나겠지
으이구...
한여름에는 어그 부츠 신겠다고 난리 치더니 이 청개구리야

동오네 오기 전엔 맨날 집안은 싸우고 깨부수고 쭈굴... 눌려 산다고 하고 싶은 거 하나도 못했는데 지금은 명헌이가 하려고 하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걍 동오가 첨에 그래그래 하면서 냅둬가지고 애 지금 신난 상태라 더 그럼

크면 낫겠지...
그래도 가끔 열 뻗쳐서 땡깡 피우는 애 무릎 위에 엎어두고 형이 혼난다고 했을 텐데 하면서 엉덩이 뻘개지게 맴매하면 그땐 잉잉 울고 다른 반찬도 먹다가 하루 지나면 또 스팸만 주구장창 먹겠지
동오가 쓰읍 하고 어제 신나게 엉덩이 얻어맞았던 쇼파 쪽으로 턱짓 하면서 또 혼날까? 응? 하면 눈치 보고 슬쩍 콩나물 찝어먹는 밍힝이
혼나고 눈치 보는 거 맘 아파서 다시 스팸 앞으로 밀어주는 최동오지 뭐... 버릇 누가 들였어 이거

쪼끔 더 크면 어디서 모험심이 나왔는지 전화도 안 받고 혼자 머얼리 놀러 갔다가 형아 줄 거라고 이상한 돌멩이 주워서 주머니에 한가득 쑤셔 넣고 버스 대기실에서 졸다가 최동오 식겁 쳐서 달려온 일
학교 안 가고 등굣길에 있는 강가에 산책로 잔디 복복 밟다가 물에 발 담그고 놀아서 학교 빼자 먹는 건 일상이고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어벙한 교복 입고 놀고 있는 애 하나 눈에는 또 얼마나 잘 띄어
엄하게 혼내면 이제 쪼끔 커서 한 일주일 가긴 하는데 또 칠랄레팔랄레 돌아다녀가지고 동오 늙는다 늙어

그래도 애 데리고 산 이후로 시꺼멓기만 하던 동오 세상에 밝은 빛이 하나 들어 온 느낌이겠지
피비린내 나는 지친 몸 이끌고 오면 현관에 자기 마중 나와서 보고싶었어용 하고 꼭 끌어안아주고
형 지금 더러워... 하고 애 밀어내도 형 좋다고 꼭 안겨 있는다
학교에서 만들었다고 현란한 카네이션 짜잔 하고 보여주고 선물이에용~ 하고 동오한테 달아주고
...아가...ʕ •̥ ˕ ก ʔ

어느 날 집에 농구공 하나 들고 오더니 자기 농구부 들어갔다고 집에서 오늘 배운 드리블이라고 보여주다가 밑에 집 올라와서
아...죄성;; 거린 적도 있고

가만히 자는 명헌이 들여다보고 통통한 볼따구 쓸어주면서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하는 동오
동오 마음 통했는지 통통한 입술에서 형아...하고 잠꼬대 나오고

이명헌 또 비 오는 날 슬리퍼만 찍 신고 동오 우산 가져다준다고 뽈뽈 나왔는데 그대로 발 삐끗해서 동오한테 업힌 채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들으면서 집에 가는데
동오 그냥 암 생각 없이 한숨셨는데 그냥 숨소리가 좀 컸을 뿐인데
살짝 잠든 명헌이 잠결에 형... 명허니 이제 말 잘 들을게... 명헌이 버리지 마용 웅얼 거리는 거
빗속에 최동오 그 말 듣고 눈물 뚝뚝 흘려버림

묘하게 그 담날부터 땡깡도 안 부리고 학교도 안 빠지고 하는 명헌이에
명헌아! 왜 어디아퍼? 왜 반찬 골고루 먹어 왜 학교에서 전화 안 와! 하는 동오
용...?
명헌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형이 다 해줄게 형 옆에만 있어주면 돼 아침부터 왁왁 대는 동오에
으응...
동오 앞에 서서 동오 꼭 끌어안고 살짝 몸 떼서 동오 빤히 바라보다가
동오 입술에 쪽 뽀뽀하고 얼굴 시뻘게져 가지고 학교 갈 거에용! 하고 뿅다다다닥 뛰어나가버리는 이명헌

뭐 그날 담임선생님한테 명헌이가 학교에 안 와서요ᅲᅲᅲ 하는 전화 오랜만에 받겠지
명헌이 늘 가는 공원에 차 끌고 가서 분수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명헌이 옆에 서는 동오
아니 형이 여길 어떻게!!! 눈 똥그래지는 명헌이 인사치레로 엉덩이 한대 짜악 때리고 아픈지 비비적대는 애 앞에 서서
우리 날라리 이걸 어쩜 좋아
오늘 무지개 볼 수 있다고 했단 말이에용...
그래? 하고 고개 든 하늘에 쨍한 무지개 그거 보고 우와 입 벌어진 명헌이 입술에 다시 입 맞추는 최동오
시원하게 떨어지는 분수대 앞에 꼭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이 보고 싶다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냐 쟤네
지나가던 현철 낙수한테 딱 걸린 건 안 비밀
애 곱게 키우나 했네

곱게 키웠거든!

동오명헌
산왕 느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