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게 거짓말을 친게 아니었음. 그럴 위인도 못됨. 그저 또 불림당해 니가 좋아해 라는 뻔한 고백을 듣고 있는데 저 뒤로 강백호가 지나가길래 무심결에 강백호... 라고 했고, 마침 혹시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는거냐고 묻고 있었던 학생에게 그게 대답이 되버리고 말았지. 강뱁호? 농구부에 그 강백호랑 사귀는거야? 태웅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됐지만 그냥 그렇다고 했어 '어' 이 단 한마디 대답이 고백의 거절이 될테니까.



그리고 강백호는 그 소문이 퍼진지 일주일은 지나서야 서태웅도 아닌고 타인에 의해 너 서태웅이랑 사귄다던데 진짜냐? 라는 말을 듣게 됐음. 주변 반응은 더 가관이었겠지. 그렇게 싸우더니 사귀냐고. 어쩐지 둘이 붙어다니더라. 어째 거짓말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없어.




저것들 다 무슨 개소리야!

태웅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도 태웅은 그저 가만히 있음. 그러더니 귀찮잖아 한마디 해. 농구하기도 바쁜데 그런 고백들을 언제 다 들어주고 거절하냐고 그것도 시간낭비라는거였지. 서태웅에게도 우연히 생긴 상황이었지만 실제로 농구하는 태웅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줄어들긴했음.

그러니까 그냥 평소대로 해.

태웅은 뭐 대단한것도 아닌걸로 유난을 떠는거마냥 취급하며 백호한테 농구 해야지 라며 동의도 없이 협조를 구함. 그저 평소처럼 같이 농구나 하면 되는 일이었어.


백호는 태웅이 가고 혼자 고함을 지르겠지. 내가... 내가 왜! 그런 백호의 얼굴은 조금 붉어져 있었음. 평소대로라니.. 평소대로 뭐? 여우자식 좋아하는거 숨기면서 옆에서 농구하는거?
그랬음. 서태웅은 아닐지 몰라도 백호가 짝사랑 하는 상대는 태웅이었던거지. 평범한 상대였다면 몰라. 여태 죽일듯이 굴던 상대를 좋아한다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태웅을 대하는 것도 백호에겐 어려움 투성이었음. 처음에는 서태웅과 자신이 사귄다는 소문이 자신의 짝사랑이 들켜서 나는 소문인줄 알았지. 강백호는 그래도 서태웅 남친 타이틀은 한번 가지는거니 이거 기뻐해야 하나 헷갈려 하기도 함. 거기다 서태웅이 다른 사람과는 사귈 마음이 없다는거기도 하잖아. 백호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하는 수 없지... 라고 작게 본인에게 속삭임. 이 천재가 힘써준다!



라고 했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음. 둘은 그저 계속 농구를 했고, 농구를 하다가 싸우기도 했고, 가끔 같이 하교를 하는것이 다였어. 그것만으로도 주변인들은 둘이 정말 사귀나 보다 하는 이야기를 하겠지.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내밀면서 아무렇지 않게 애인이잖아 씌워줄게 같은 말을 하는 서태웅 때문에 조금 설렌적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건 강백호 자신뿐이고 태웅은 자신이 금방 한 말도 잊은듯 했음. 그건 또 그거 대로 아쉽지. 그리고 데이트... 같은걸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 백호는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본인 때문에 오늘도 잠 못드는 하루가 쌓여만감.



사건은 수학여행가서 터지면 좋겠다. 어차피 막역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건 백호밖에 없었던 서태웅이라서 백호군단과 관광지를 둘러보고 의도치 않게 둘이 다니며 추억 비슷한걸 쌓은거까지는 좋았음. 온천이 있는 여관에 남자애들 끼리 조를 묶어 방이 배정되었고 백호는 태웅과 한방을 쓰게 되겠지. 물론 다른 애들도 있었지만 이거까지도 나쁘지 않았음.

문제는 다른 애들이 들고 온 술이었지. 솔직히 불량아 생활 하며 안먹어 본건 아니라 거부감은 없었어. 술게임 같은걸 한다고 할때도 좋다고 환영하며 서태웅까지 끌어들인건 본인이었음. 나무젓가락을 뽑은 애가 자신을 지목하고 서태웅과 뽀뽀해봐라고 시키기 전까지는...

왜 너네 사귄다며
이여어얼! 뽀뽀해! 뽀뽀해!


남들이 걸리는걸 보며 낄낄 웃었고 자신이 걸렸을때도 걱정보다는 즐거움이 앞섰는데 저딴걸 시킬줄은 몰랐음.



여기서는 좀... 그건 좀... 하며 말을 아꼈음. 슬쩍, 몸도 태웅에게서 떨어져 앉았지. 왜그렇게 부끄럼을 타냐고, 그럴거면 벌칙주를 마셔라고 내밀어지는 그릇은 보기에도 역해 백호가 아랫입술을 아득 깨뭄. 야 서태웅이랑 하는게 싫은거야? 벌써 권태기야? 너네 싸웠어? 한마디씩이 나오다가 그럼 둘이 하는게 싫으면 옆에 승운이랑 해 하는 말도 나옴. 빼는걸 보는게 지겨우니 아무나 대충하고 넘어가자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음. 백호도 알겠지. 이런 자리에서 본인이 걸렸다고 정색하는 놈은 재미 없었어. 아 씹... 차라리 그럴까? 백호는 그 승운이라는 애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음. 그 찰나 반대쪽에서 턱이 잡혔지만. 입술에 닿는 부드럽고 말캉한 감각, 약간의 술냄새가 섞여 있겠지.


서태웅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뚱했고 환호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건 강백호 하나임.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자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백호는 황급히 일어났음.

야. 강백호. 어디가?

친구들이 부르는 사이 직접 일어난건 서태웅이겠지. 나가기전 아주 잠깐 본 강백호의 얼굴이 당장 울거같이 보였으니까. 저녀석은 뻑하면 우네. 그게 뭐라고. 다른 놈이랑 뽀뽀를 하려던 주제에 왜 자기랑 하고서는 저런 표정을 짓냔 말이야.

야. 멍청이. 강백호. 몇 번 이름을 부르면 멈출법도 한데 끝까지 성큼성큼 걸어가길래 결국 달려가 붙잡음. 뭐가 문제야? 백호는 당연히 고개를 들 수가 없겠지. 얼굴이 터질거 같음. 혼자 좋아하던 상대와 입을 맞췄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으면 좋겠다. 턱을 잡혀 순식간에 당한 건 자신인데 서태웅한테 못할짓 한거처럼 느껴짐. 입술이 닿았다고 심장이 뛴건 본인이었으니까. 백호가 야! 하고 부르는데 긴장으로 목소리 크기가 조절이 안됨. 불러놓고 자신이 더 놀랐어.



이거, 사귀는척하는거 그만해.
.....
하기 싫어. 이런거나 하고..
너 지금 목소리 이상해
내가 찬거다. 애들한텐 내가 찬거로 해줘.
....
사귀는척 해줬으니까 그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