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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04:15



연반ㅈㅇ 알오ㅈㅇ


노부가 이를 악물고 있는 반려를 품에 안고 은방울꽃궁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산실로 뛰어가자 미리 산실을 꾸며놓고 기다리고 있던 태의들, 궁인들과 내관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아이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산에 필요한 물건들이나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물건들을 다 갖추고 있었지만 물도 끓여야 하고 출산에 들어갈 태의와 의녀들이 소독도 해야 하는 터라 분주했지만 노부는 그런 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대기하고 있던 의녀가 가리킨 침상에 노부가 조심스럽게 반려를 내려놓자, 반려는 식은땀이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전하. 우리 아기는 반드시 무사하게 태어날 것입니다."

그렇겠지. 두 사람의 아이는 청룡이었다. 그냥 평범한 인간 아이라도 출산시 잘못되지 않고 무사히 태어나게 할 수 있지만, 청룡이었다. 이 아이가 출산이 잘못될 리는 없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노부가 아이가 빨리 나오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것은 두 사람의 아이와 반려가 함께 해 내야 할 일이었다. 노부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기나긴 고통을 겪어야 하는 반려의 옆에서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아이의 출산를 앞두고는 그 누구도 봐 주지 않고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의녀들은 태자를 강제로 내보내고 산실의 문을 닫았다. 

태자비는 친정이 너무 멀고, 태자비의 부모는 왕과 후궁이기 때문에 타국의 황실에 방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관례 때처럼 소라를 데리고 올 수도 없었다. 소라는 엄연히 수윤제국과는 적국에 가까운 관계인 풍국의 황자비였으니까 아무리 태자가 요청한다고 해도 태손이 태어나는 자리에 오게 해 줄 리 없었다. 그래서 홀로 산실 앞을 서성거리던 노부의 머릿속으로 전음이 들려왔다. 

[우리 지금 네 제단 밀실에 들어와 있어. 네 힘이 가득한 제단이라 몹시 불쾌하긴 하다만.] 

아마미야의 목소리였다. 걱정돼서 오긴 왔는데 은방울꽃궁 전체가 잔뜩 긴장한 궁인들로 가득하다보니 궁 안으로 못 들어오고 청룡의 제단 내의 밀실로 숨어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청룡의 제단인 만큼 제단에는 노부의 힘이 가득 스며 있으니 다른 신수들에겐 불편할 것도 당연했다.
다른 신수의 제단에 들어가 있으면 청룡의 힘 때문에 불편할 것도 당연했다. 

[내 궁에 가 있어라. 지금 내 궁은 거의 궁인들이 없으니 내 침방에 몰래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으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고맙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지? 너랑 타케루?]
[아니, 나랑 류세이, 류세이의 반 셋이야. 타케루는 안 왔어. 최근엔 연락도 잘 안 돼. 현신할 준비하느라고 제 반려가 태어나는 것도 모르고 있나.] 

900년이나 기다린 반려의 탄생인데 모를 리가 있나.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뭘 하느라 반려가 태어난다는데 오지도 않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더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기 때문에 노부는 타케루에 대한 생각은 지워버렸다. 노부는 불안하게 조여오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반려가 억지로 삼키려 애쓰는 비명 소리와 의녀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산실을 바라봤다. 

아기가 잘못됐을 리는 없는데. 잘못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몇 시간 전 꿈에서 갑자기 쫓겨날 때 아기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도 마음에 걸리고 반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정신을 산만하게 해서 계속 산실 앞으로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였다. 산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은방울꽃궁의 궁인들과 청룡궁의 궁인들이 죄 산실 앞에 모여 이제나 저제나 태손의 탄생 소식이 전해지길 기다리고, 황후궁과 황제의 궁에서 몇 번이나 사람이 나와서 산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만큼 노부의 불안도 점점 더 쌓여가고 있었다. 신수들도 기다리다 애가 탔는지 아마미야가 슬쩍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들어서 산실의 분위기를 살피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진, 두 시진이 지나고... 

아득하게 12시진이 꼬박 지났을 때였다. 쉬셔야 한다. 뭐라도 드셔야 한다 재촉하는 궁인들을 내치기도 여러 번, 하루가 꼬박 흐르는 동안 산실 앞을 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던 노부에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무사히 출산했다는 소식도 뒤디어 들렸다. 12시진을 꼬박 걸렸는데 이게 무사히 출산한 것이 맞는지부터 따져보고 싶었지만 그보다 급한 일이 있어서 태자는 주르륵 무릎을 꿇으며 축하한다 단체로 인사를 건네는 궁인들을 물리치고 곧바로 반려에게 향했다. 반려는 깨끗한 하얀 이불에 감싸인 작은 아기를 옆에 뉘여놓고 지친 얼굴로 웃었다. 

"전하."
"고생 많았소, 정말 고생했소. 나의 비. 우리 아이가 열 달 동안 그리 얌전하게 잘 크더니 이리 애태우며 태어날 줄은 몰랐소."
"건강하게 무사히 잘 태어나 다행입니다. 우리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울음소리가 정말 씩씩했습니다.'
"들었소."

노부는 이불에 꽁꽁 싸여서 조그만 얼굴만 나와 있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불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태어날 때는 눈도 못 뜨는 아기도 많다는 것 같더니 청룡이라서인지 그냥 우리 아기가 특별해서인지 또록또록 눈을 뜨고 있는 아기는 이제 울지도 않고 있었다. 

"우리 타카토가 전하를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청룡이라서 노부를 닮을 건 예상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었다. 반려를 닮은 아기도 정말로 예쁠 것 같은데. 그렇지만 다음에는 그대를 닮은 아기를 낳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 고생하는 건 또 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태의와 의관들은 첫 출산이라 그렇다고 했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고생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래서 그저 고생했다, 수고했다 말만 해 주고 있을 때였다. 

"의관들이 아직 목욕은 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만."
"음. 나도 들었소."
"조금 닦기라도 하면..."

노부의 반려는 매우 깔끔한 사람이었는데 진통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얇은 침의가 피부에 달라붙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히 찝찝했으리라. 노부는 고개를 끄덕이고 궁인들을 돌아보았다. 

"뜨거운 물과 깨끗한 수건을 가지고 와라."
"저희가 하겠습니다. 전하."

태자는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아니 아예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저 궁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궁인들은 화들짝 놀라서 나갔고 곧 출산 때문에 이미 준비돼 있던 뜨거운 물을 담은 대야와 깨끗한 수건을 든 이들이 들어왔다. 노부는 바로 궁인들을 내보내고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을 들고 반려의 팔과 다리부터 닦아주기 시작했다. 땀에 푹 젖은 침의도 벗기고 온몸을 꼼꼼하고 조심스럽게 닦아준 후에 다시 깨끗한 침의를 입히고 깨끗한 침상에 눕혔을 때, 모친이 몸을 닦고 싶어하는 걸 아는지 팔만 휘두르며 얌전히 있던 아기가 그제야 울기 시작햇다. 

"우리 타카토가 배고픈가 봅니다."
"타카토도 몸을 깨끗이 닦고 싶은 건 아니고?"
"아이는 오늘은 닦아주지 말라 했는데."
"밥은 어찌 먹여야 하오?"
"젖을 먹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물리면 된다고 하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부모가 허둥지둥하는 동안 앙앙 울던 아기는 노부의 반려가 급한대로 품에 안자 훌쩍훌쩍 울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냥 혼자 놔 두지 말고 자기에게 관심을 달라는 뜻이었나. 노부와 반려가 허탈한 한편으로도 안아줬다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순한 아이가 예뻐서 둘이 끌어안고 품에 안긴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궁 밖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탄성이 끝도 없이 터져 나왔다. 하도 시끄러워서 은방울꽃궁의 무슨 일인가 확인해 보려 총관태감을 부르자 총관태감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올 때였다.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탄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현무야, 현무!"
"현무다!"
"현무가 나타났다!"

노부는 반려와 아기를 안은 채 황당한 얼굴로 총관태감을 바라봤다. 

"저게 무슨 소리지?"
"지금 은방울꽃궁 위에 현무가 나타났습니다."
"... 현무가? 현무 모양의 구름이라도 떴나?"
"아닙니다. 그 현무, 진짜 현무가.... 검은색의... 아주 신령스러운 느낌의 검은색 신수가 나타나서 은방울꽃궁 위를 빙글빙글 돌며 날고 있습니다. 등에는 단단하고 반짝거리는 거대한 등껍질이 있고 아주 긴 목과 길고 튼튼해 보이는 다리와 꼬리... 마치 태손 저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처럼..."

궁에서 살아온 세월이 긴 만큼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 총관태감이 횡설수설 현무에 대해 늘어놓는 걸 보고 있자, 머릿속에서 다시 아마미야의 전음이 흘러 들어왔다. 

[미안, 우리도 몰라서 못 말렸어. 타케루 녀석 우리가 있는 쪽엔 오지도 않았거든. 우리의 전음도 다 무시하기에 바쁜가 했더니, 청룡이 태어나자마자 제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네.]

노부는 눈이 동그래진 반려를 돌아보며 한숨만 푹 내쉬었다. 





현무는 반 시진도 채우지 않고 하늘에서 사라졌지만 현무의 등장으로 인한 소동은 밤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수윤제국이 청룡뿐만 아니라 현무의 수호도 받게 됐다며 몹시 들뜬 모양이었다. 황궁 밖에서 사람들이 현무와 청룡의 이야기를 하며 밤 늦게까지 흥청망청 축제를 벌이는 소리가 황궁의 높은 담을 넘어 들어올 정도였다. 

그래서 그 현무는 지금 뭘 하고 있었느냐면. 

노부와 케이타, 그리고 타카토가 궁인들에게 태자비가 쉬어야 하니,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은방울꽃궁의 침방에 들자, 곧 공간을 찢고 류세이와 류세이의 반려, 아마미야가 나타났고, 늦게야 타케루가 슥 뒤따라 나타났다. 류세이의 반려는 조카의 얼굴이 몹시 궁금한 눈치였지만 분위기상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것을 아는지 입을 다물고 아기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고, 아마미야와 류세이는 평소 성질답지 않게 노부의 분노가 터져나올 것만 기다리고 있었다. 노부는 당연히 이 미친 짓을 벌인 타케루를 용서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노부의 아이는 태손이니 노부가 황제로 즉위하면 태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자유롭게 살게 해 줄 생각이었다. 원치 않는 용상에 앉아서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며 살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태손이 태어나는 날 현무가 태손이 태어난 궁 위에 나타났으니, 백성들은 전부 타카토가 현무의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고 믿게 됐다.

그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이 아이는 이제 황위를 거절할 수도 없게 되지 않았나. 

그러나 막 분노를 쏟아내려던 노부는 채 입을 열지도 못했다. 노부의 반려 역시 기분이 언짢았는지 아기를 품에 안고 냉랭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곧 그 얼굴에 냉랭함 대신 경악과 안타까움만이 가득해졌다. 그건 다른 신수들, 그리고 그 반려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케루는 말없이 노부의 반려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다가오더니 조금밖에 없는 아기의 머리카락을 스치듯 조금 만졌다. 정말로 그뿐이었다. 타카토는 이제 막 태어나서 머리카락도 얼마 없는데 그 머리카락도 정말 가늘었다. 마치 실같은 그 머리카락. 아주 가느다랗고 가벼운 타카토의 그 머리카락이 조금, 아주 조금 타케루의 손가락에 스쳤을 뿐인데.

타케루는 그 실 같은 머리카락이 제 손가락에 닿는 순간 그대로 허물어지듯 주저앉아서 눈물을 터뜨렸다. 

900년이었다. 

그들의 친우가 보낸 900년이 눈물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