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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1 09:55
무소유의 사나이 이명헌
처음으로 소유욕에 들끓어서 덜렁 업고 온 거
정우성.

얘 빚... 내 월급에서 까라 할까 하다가
지 회사 지분 넘겨서 한 번에 처리해 버림
그건 다시 찾아오면 되니까용

그렇게 애 데려오고 난 후 얼마 안 지나서
동기들 손잡고 다 갈아엎어서 다시 내 몫에 플러스알파까지 챙겨오기 완.

전 보스 모가지 썰고 있는데 울리는 벨소리

혀엉... 나 배고파서 라면 끓였는데
다리에 뜨거운 물 쪼끔 튀어서 닦긴 했는데에
아직 쪼끔 아파요...

뭐???????? 찬물에 씻었어?
빨리 찬물에 담가용!!!!!!

동오 니가 마무리해용
하고 썰다 말고 집으로 달려가는 이명헌

얼굴 허옇게 질려서 애 다리 들여다보는데
음... 어디가 아프다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애가 아프다잖아!!!!
병원 가자 옷 입어용
그 정도는 아니고오.. 형 보고 싶은 게 쪼끔 더 커서... 혼자 있으면 무섭단 말이에요!
어휴...
찡찡거리는 애 달래서 화상 연고도 찾아와서 발라주고 재워가지고 침대에 눕혀놓고 거실 나와서 티비나 트는데

어이고 공포 특집을 보셨어? 그래서...
쪼끄만 게 여우 다 됐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우성이
커가면서 오냐오냐 했더니 워낙 말썽쟁이라 혼날 짓이 늘어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회초리 들고 종아리 몇 대 때려줬는데 저 왕방울만 한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이명헌 가슴 미어진다...
이때까지 이명헌한테 처맞은 사람 줄 세우면 저기 개마고원부터 제주도까지 일 텐데 그런 건 뭐 모르겠고.

회사일로 전화 와서 애 달래주지도 못하고 급하게 튀어나가는데
일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오니 거실 바닥에 색연필 꼬옥 쥐고 자고 있는 우성이

테이블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형아 우성이가 이제 말 잘 들을 게
우성이 미어하지 마
적혀있는 종이 한 장

내가 너를 어떻게 미워하나용
우성이 들어서 우성이 방... 아니다 자기 방 침대에 뉘여두고 빨개진 종아리에 약 발라주고
얼른 씻고 나와서 아까 우성이 반성문 아닌 반성문 들고 실실 웃으면서 우성이 옆에 눕는 이명헌

그 이후로 우성이 혼나는 루틴에 추가된 반성문 쓰기

이런 거라도 모아두면 나중에 덜 외롭지 않을까용

눈에 눈물 방울방울 달고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서 꼬물꼬물 반성문 끼적이는데
아까 신나게 얻어맞은 종아리 아파 죽겠어서 꿈지럭 거리면
이명헌 엄하게 쓰읍 거려서 우성이 또 눈물 뚝뚝 흘리겠지

이거 이거 잘못했고 다시는 안 그럴 거고 어쩌구 저쩌구 또 구구절절 마지막엔 형아 사랑해
그거 보고 귀여워 죽겠는 거 억지로 참고

다음에 또 그래 안 그래
안 그래요오...
억지로 엄한 척
애 약 발라주고 안아도 주고
들어가

애기 반성문 모아 둔 거에 한 장 더 추가하고 심심할 때마다 꺼내본다

그 와중에 글씨 날려쓰면 빠꾸 시켜서 정우성 수상하리만치 글씨가 정갈하고 문장구조가 깔끔한 아이로 성장함
저번에 대애충 썼다가 손바닥 맞아서 이제 성심성의껏 쓰거든

나 죽으면 이것도 같이 묻어주세용 지옥 가서 몰래 읽을 거에용
애기가 형아 사랑한대
형 뭐 이쁘다고 ...

야무지게 우성이 키워서 산왕공고 보내놓고
기숙사 가기 싫다고 형이랑 같이 살 거라고 펑펑 우는 애
여기가 1등이니까 우성이 여기서 1등 하면 전국 1위겠네용 어르고 달래고
주말마다 형이 보러갈게용

팅팅 부은 밤톨 보니까 마음이 아파용...

이제 슬슬 우성이 보내 줄 준비하는 명헌이
그동안 너무 좋았어용
앞으로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용 우성아

나는 너무 어두워서 우성이처럼 밝은 사람 옆에 있으면
그 환한 밝음을 어둠으로 다 덮어버릴지도 몰라용

애 중학교까지만
아니 고등학교까지만
아니...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보고 놔 줘야지 하다
어느덧 우성이 3학년 인터하이 결승전
4번 주장 달고 환하게 웃으면서 관중석 두리번거리는 아이
자길 못 찾았는지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는데 그거 보고 웃기다가도 마음한편이 쓸쓸한 명헌이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저 구석에 명헌이 보고 손 막 흔드는데

화이팅
다치지 말고용

당연히 산왕은 승리 한다구요!
진짜네용

온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산왕! 산왕! 산왕! 팬들의 응원소리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산왕의 제군들
그 안에 가장 빛나는 빛 정우성

학교 일정이 다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서 명헌이 껴안고
형이 보러 와줘서 이길 수 있었어요!
그런 게 어딨어용 우성이는 어딜 가나 잘 할 거예용


그렇게 둘이 오랜만에 같이 쉬다가 애 비싼 밥 사 먹이고 집에 돌아와서
우성이 몫으로 돌려놓은 통장, 각종 재산들
우성이 이름으로 사둔 건물, 땅 정리해 놓은 거 다 보여주면서
이건 내 마지막 선물이에용
형...?
이제 대학도 가고, 대학 졸업하면 프로 리그 선수도 될 거고
우성이 발목 잡는 건 내가 될 거예용
그동안 내 동생으로 살아줘서 너무 고마웠어용
앞으로 내가 얼마나 어떻게 살아 갈진 모르겠지만 우성이랑 있었던 순간이 젤 기억에 남을 거에용

담담하게 말하는 명헌이에

형... 어디 아파요? 오래 못 살아...?

그런 건 아닌데용.....

그러면 왜
왜... 내가 뭐 잘못해서...? 왜 떠난다니 어쩌니 해요...
잘못이 있다면 내 잘못이겠죠 우성이 같은 아이를 너무 오래 품고 있던...
그런 게 어딨어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오늘만을.................

그 순간 우성이 울면서 명헌이한테 안기고
명헌이가 토닥여 주려는데

어.....
그대로 몸 살짝 떼더니 명헌이 입술에 제 입술 겹쳐오는 정우성
놀라서 벌어진 입술에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혀

<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

형 사랑해요
나 키워줘서, 아빠 같아서, 우리 형이라서가 아니고
나 그냥 이명헌 사랑해

형 어디 못가
내가 이명헌 사랑하는데 어딜 가 형이



우성명헌



애가 사랑한다는데 뭐 어떡해


-

몇 년 뒤

정우성!!!!!!!!!! 형 서랍에 도장 좀 꺼내 와봐용 방에 서랍!!!!
네에 하고 서랍 뒤적거리는데
응 이게 뭐야...?
빛바랜 꾸깃한 종이부터 다발로 쌓여서 정리되어 있는 종이들

와.... 글씨 봐 이거 몇 살 때야 형아 우성이 미엌ㅋㅋ 미워하지 말래
그래 우성이 미워하기만 해봐 이명헌

형!!! 이거 뭐야!!!! 이런 걸 왜 모아뒀엌ㅋㅋㅋㅋㅋㅋㅋ
아.... 아 도장 갖고 오랬지 누가 그런 거 보랬나용...

진짜 내 반성문들 다 모아 논거에요? 와 최근 것도 있어
술 안 먹겟습니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씨 막 형이 이 가녀렸던 애기 우성이 종아리 막 맴매 하구 무릎 꿇고 앉으면 애기가 을마나 아파 엉!

그러니까 누가 연락도 없이 그 밤에 피시방 가라고 했나용

와 다 기억해.....
근데 좀 감동인데여 이런 것까지 모으고

그거야...나중에 못 보면 보고 싶을 거니까
편지 써달라고 하는 건 민망하고 혼내는 김에 흔적이라도 남기려던 거죵
다행히 우성이가 사고뭉치라...

내가 언제 사고를 쳤다구

이 형은 처음 부터 나 보내줄려 그랬었나...
그 이후로 틈만 나면 편지 써서 명헌이 주머니 속에 넣어놓고 가는 정우성
형아 사랑해 근데 이제 이건 안 모아도 돼 왜냐면 평생 옆에 있을 거니까

그래도 그거 다 모아놓고 밤마다 꺼내서 보고 실실 웃는 이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