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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04:12



연반ㅈㅇ 알오ㅈㅇ

노부는 타케루의 조언대로 3개의 팔찌에 상대를 즉사시킬 수 있는 저주처럼 보이는 가짜 저주를 걸었다. 단, 무슨 수를 다 써 봐도 절대로 저주를 발동할 수 없고,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저주라고는 그저 역겨움이나 어지러움, 우울, 구토 정도뿐인 망가진 저주를. 그리고 태자비가 쓰러졌다는 말에 저주가 제대로 발동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황궁 주변을 서성거리던 연국 8왕자의 심복을 사로잡아서 금위군에게 넘기기도 했다. 금위군들은 아주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결국 8왕자의 심복에게서 수윤제국 4황자와 연국의 8왕자, 연국의 귀비까지 얽혀 있는 황위찬탈 음모까지 파해칠 수 있었다. 원래 반역죄는 증거없이 의심만으로도 고발이 가능한 죄라고들 하는데 이제는 증거와 증인까지 갖춰졌다. 4황자비의 옛 시녀는 모아두었던 찻잎찌꺼기와 약재 찌꺼기들을 제출했고, 고문을 못 이긴 연국 8왕자의 심복은 8왕자와 4황자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전달했던 서찰들이 있었다는 것도 증언했다. 4황자는 그 서찰을 나중에 8왕자를 협박할 떄 쓰려 했는지 서찰들을 다 모아두기까지 했었기 때문에 증거는 차고 넘칠 정도였다. 

그렇게 한쪽에서 피바람이 부는 동안에도 노부의 반려, 마치다 케이타는 순조롭게 회임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저주에 걸릴 뻔했던 것이 액땜을 해 준 것인지 아무도 감히 태자비를 건드려 볼 생각을 하지 못했고 괜히 은방울꽃궁 주위를 지나가다 엄한 일에 휘말리거나 덤태기를 쓸 것이 두려운지 궁인들마저 빙 둘러서 다녔기 때문에 지나치게 심심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은방울꽃궁의 결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지만 감히 궁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없어서 노부의 반려는 편안하게 태교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은방울꽃궁이 허가받지 않은 이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으니 태자비와 복중 태손에게 해를 입힐 사람은 없다고 해도 청룡을 잉태했다는 것은 비밀 중의 비밀이라 태자비는 아기청룡의 태교일기도 못 쓰는 것을 아쉬워했다. 늘 꿈에서 아기청룡을 보는데 누가 볼까 봐 아가청룡의 귀여움을 활자로 남길 수가 없다고. 그래서 노부는 노부의 반려를 위해 아득한 기억 속에 파묻혀 있는 고대문자를 끄집어내 알려주었다. 지금은 정말로 신수들 정도가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연구하는 이들도 거의 없는 문자였다. 그러니 누가 무리하게 은방울꽃궁에 침입해서 태교일기장을 숨겨둔 곳을 기적처럼 찾아내고 청룡이 직접 걸어 둔 봉인도 풀어서 일기장을 열어본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고대문자로 적어놓은 태교일기를 해독하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하리라. 

다행히 노부의 반려는 매우 영리했기 때문에 노부의 무릎 위에 앉아서 고대 문자를 열심히 익히더니 한 달도 안 지나 고대문자로 태교일기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청룡이 오늘 날개를 힘껏 펼쳤을 때 재 보니 날개폭이 내 손가락 마디 두 개만했다. 아직 날기엔 많이 이른 듯하지만 어제보다 손톱의 1/10... 1/20 정도 될 길이만큼 더 자랐으니 태어나기 전에 조금은 날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가청룡은 태어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타케루가 벌써부터 장난감과 옷을 보내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아가의 옷이 너무 크다. 아가가 어지간히 크게 태어나지 않는 한은 한 살이나 되어야 맞을 것 같은 옷이어서 황당했지만 옷이 예뻤기 때문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입히기로 했다. 장난감은 아이의 침상 위에 걸어놓는 장식이었는데 웃고 있는 현무, 날아가는 현무, 불길을 내뿜으며 싸우는 현무, 멋있는 척 서 있는 현무였다. 전하께서 보시더니 정당하게 나중에 아가청룡에게 선택받기로 했으니 이건 반칙이라고 아주 깊숙하고 구석진 곳에 숨겨 버렸다. 맞다. 타케루는 비겁했다. 꿈에서 만난 아가청룡에게 현무의 비겁함에 대해서 성토하려다 이런 것도 반칙일 것 같아서 참았다.'



'아기청룡의 몸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아무리 길어졌어도 아직 내 손 길이를 조금 넘는 정도지만 그래도 머리에 비하면 많이 길다. 전하께 여쭤 보니 청룡은 원래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길다고 한다. 전하의 본체는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수윤제국의 황궁 전체를 더 덮고도 남을 정도라고 하셨다... 날 놀린 거겠지?'



'아가청룡에게 이빨이 났다! 진짜다! 내 새끼손톱의 반의 반의 반의 반만한 이빨이 뾱 튀어나와 있었다. 너무 귀엽고 신기해서 입을 벌릴 때마다 이빨을 만져봤더니 기분이 나빠졌는지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정말로 내 손가락에 조그만 이빨자국이 푝...은 아니고 뵥... 뵤... ㅂ... 정도로 패였다. 잠에서 깨자마자 전하께 자랑했는데 전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어차피 태어날 땐 이빨은 없을 테고 태어나면 이빨도 다시 나야 하는데 두 번이나 이빨이 난다니 우리 아기가 고생이 많소."

난 신기하고 기특했는데 내가 나만 생각하는 건가. 내가 너무 못난 부모같아 아가에게 미안하다.'



'아기청룡에게는 발이 네 개가 다 있지만 몸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서 발을 움직여 기어가기도, 그냥 뱀처럼 몸통을 움직여 기어가기도 버거워하는 것 같아서 아기와 산책을 할 때는 늘 너무 빠르게 걷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기가 물은 좋아해서 아기청룡의 몸이 길어진 뒤로는 개울에서 노는 일이 늘었다. 전하께 원래 청룡은 발을 이용해 기어가는지 몸통으로 기어가는지 물어보니 청룡은 원래 날아다닌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짓궂게 웃으셨다. 

"저런, 우리 아가청룡은 아직 날지도 못하는 것이오? 그래서야 청룡이라 할 수 있을지."

날 놀리려고 일부러 우리 아가청룡을 놀리려 드는 말인 줄 이제 알지만 화가 난다.'





노부의 반려가 보기에 처음에는 정말로 작고 작아서 '청룡인가? 청룡이겠지' 싶었다던 아기청룡이 점점 성장하면서 청룡의 태를 갖춰가는 것이 신기한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오늘 아기청룡이 얼마나 자랐는지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오늘은 아기청룡이랑 뭘 하고 놀았는지 또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노부가 직접 봉인을 해 준 태교일기장을 펼쳐서 또 열심히 기록하는 게 귀여워서 조금 놀려 주려던 것이 과했던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황제의 일을 돕고 나서 태자비를 무릎 위에 앉히자 늘 생글생글 웃으며 보여주던 일기를 내놓지 않았다. 

"오늘은 태교일기를 쓰지 않았소?"
"썼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어도 일기장도 펼쳐주지 않고 눈도 마주쳐주지 않아서 손가락을 톡 건드려보자, 잔뜩 경계 중인 고양이처럼 손을 확 오무리더니 몸도 반쯤 틀어 앉았다. 그 와중에도 노부의 무릎에서 내려가지는 않아서 노부는 오늘따라 뾰로통해 보이는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반려를 불렀다.

"태자비?"
"네..."
"화났소?"
"흥."

부루퉁하게 내민 입술이나 빵빵해진 보드라운 뺨을 보니 정말 맘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노부는 반려의 다리를 쭉 펴 주고 조물조물 주무르며 말랑하고 빵빵해진 뺨에 입을 맞췄다. 

"내가 너무 놀렸소, 미안하오, 나의 비."
"... 우리 아기청룡이 작은 몸으로 열심히 커 가는 것이 제 눈에만 신기하고 기특합니까?"
"그럴 리가. 나도 물론 신기하오. 나는 이런 식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이빨이 나고, 몸이 길어지고, 날개가 커져가는 이야기를 듣는 게 신기하고 아이와의 만남도 더욱 기대되지."
"그런데 왜 맨날 저를 놀리십니까."

그동안 많이 서운했는지 눈에 서운함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어서 노부는 반려를 품에 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출산도 해야 하고, 곧 명실상부한 부모가 될 터인데도 아직도 이렇게 귀엽고 아이 같으니, 놀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자꾸 놀리는 말이 나갔다. 몸은 다 자랐어도 여전히 앳된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노부의 반려는 10살 때부터 노부가 애지중지 키운 이였다. 물론 노부와 노부의 반려는 명실상부한 부부였고, 반려가 관례를 치르고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살아가기로 한 밤부터 숱하게 함께 나눴던 설레고 기뻤던 밤들의 기억도, 노부의 품에서 흐드러질 때 가장 아름다운 반려의 기억도 물론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쌓인 기억들이 많았다.

정말로 콩알만하던 몸을 곱게 접으며 절을 올리던 첫만남부터, 무릎 위에 올려 앉혀주자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입 안에 맛있는 고기안주가 들어가기 시작하자 척척 작고 귀여운 손가락으로 먹고 싶은 안주를 가리키던 첫날밤, 머리꽂이를 꽂아달라며 도도도 달려오던 매일 아침, 처음 저잣거리에 나가 보고 신나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모습과 무뚝뚝한 아몬에게 칭찬을 받았다며 볼이 빨개져서 달려온 날 그리고 처음으로 금으로 한 곡을 다 연주할 수 있게 된 날 처음 제 곡을 들어준 사람이 전하라며 감사하다고 웃던 그 말간 얼굴까지. 

매일매일 열심히 자라던 그 작고 어린 반려의 성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어디 가야 말이지. 너무 소중한 기억들이라 어디로 보낼 생각도 없지만. 

"그대가 귀여워서 내가 자제를 못했소, 미안하오."

노부의 반려는 여전히 입술을 불퉁하게 내민 채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안 놀리실 겁니까?"
"안 놀리겠소."

나이도 저보다 10살이나 많은 반려가 하도 철없이 구니까 화는 한 번 내 봤지만, 노부의 반려는 짜증도 길게 내지 못했다. 노부는 금방 마음이 풀어져 버린 반려를 품에 안은 채 한숨을 삼키고 너무 착한 반려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반려가 이제야 생글생글 웃으며 펼쳐주는 태교일기를 같이 들여다봤을 때였다.

 
'이제 날개의 폭이 내 손가락 마디 반만큼 더 길어졌길래, 날개가 조금만 더 커지면 날 수 있겠다 했더니 아가청룡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아직 말은 못하지만 말을 알아듣긴 잘 알아듣는다. 아빠보다 낫네~!'


일기를 쓸 때는 노부한테 화가 많이 나 있었는지 니 아빠보다 낫다는 말을 당당하게 적어놨는데 마음이 풀어진 뒤에 일기를 펼쳐놓고보니, 그제야 이런 말을 썼다는 것이 떠올라 놀랐는지 반려는 허둥지둥 태교일기를 덮으려 했다. 노부가 분주하게 허둥거리는 반려의 손가락을 잡고 입을 맞추자 노부의 반려는 금세 어릴 때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오."
"저도 이런 거 적어놔서 죄송합니다."
"아니, 속상하게 한 내가 잘못이지."

노부는 마음이 상했던 반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반려의 옷을 걷고 이제 많이 부푼 배가 드러나게 했다. 소라가 아마미야 편에 연고를 보내주면서 조언해 준 대로 연고를 배에 발라주면서 배를 풀어주는 것은 요즘 매일 해 주는 일이지만, 지은 죄가 있는 노부는 평소보다 더 정성을 들여서 부드럽게 배를 문질렀다. 그러자 나른한 얼굴로 누워 있던 반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그림 솜씨가 좋다면 우리 아가가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전하한테도 보여 드릴 텐데."
"기왕이면 아가가 그대의 꿈에만 나타나지 말고 내 꿈에도 나온다면 좋을 텐데 말이오."
"전하도 우리 아가청룡이 보고 싶으십니까?"
"보고 싶소."

그러자 노부의 반려는 부드럽게 배를 문질러주고 노부의 손에 제 손을 얹고 같이 배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가야, 나 말고 부친의 꿈에도 가 볼래? 가서 내 꿈이랑 뭐가 다른지 보고 와서 말해 줘. 부친의 꿈 속에 내 꿈보다 더 근사한 숲이나 강이 있으면 내 꿈도 우리 같이 바꿔 보자."

노부는 아기를 사랑하지만, 그리고 자신 말고 또 다른 청룡이 생길 것이라는 점도 기쁘고 기대되지만, 노부의 반려가 밤마다 꿈을 꾸는 건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노부의 반려는 회임을 한 후에도 매일 열심히 공부도 하고 수련도 하고 일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푹 쉬어야 할 밤에도 꿈에서 매일 아기용과 놀아주고 있다니 이 사람은 대체 언제 쉬란 말인가. 청룡의 반려라고 해도, 아직 인간의 몸인데. 

자는 동안 몸은 쉰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계속 아이를 돌보느라 바빠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반려가 너무 걱정된 노부는 반려와 함께 반려의 배를 조심조심 쓰다듬으며 진심을 다해 속삭였다. 

"그래, 아가. 내 꿈에도 놀러오렴. 꿈 속에 근사한 숲을 만들어주마."





그날 밤, 이제는 똑바로 누워 잠들기 어려워진 반려를 옆으로 눕혀서 토닥토닥 부드럽게 재워준 노부는 평소와 달리 맑은 공기가 흐르고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숲에서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꿈이란 걸 알아채고 시선을 돌리자 노부의 발치에 앉아서 한껏 고개를 꺾고 올려다보고 있는 작은 아가청룡이 보였다. 노부의 반려가 왜 그렇게 우리 아가, 우리 아가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귀엽고 깜찍한 청룡이었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