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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3 04:52


연반ㅈㅇ 알오ㅈㅇ



태자비의 의복 단장은 물론 궁인들이 해 주지만 혼례를 치른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태자비의 청룡과 은방울꽃 머리꽂이를 꽂아주는 것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태자의 일이라 오수를 즐긴 뒤 머리꽂이가 든 함을 들고 나오던 태자비는 낯선 손님을 보고 발을 멈추었다. 

"괜찮소. 예를 차릴 필요가 없는 자이니 이리 오시오, 나의 비."

태자비는 낯 모르는 손님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면서도 태자를 믿고 천천히 다가왔고, 태자는 태자비를 앞에 앉히고 머리꽂이를 꺼내 예쁘게 꽂아 주었다. 그리고 손님을 경계하는 태자비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이쪽은 나의 벗인 백호요, 나의 비."

아마미야는 태자비가 뭐라고 답을 하기도 전에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 살다보니 청룡에게 벗으로 인정받는 날도 오고, 역시 삶은 알 수 없는 것인 모양입니다."

태자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아마미야는 예를 갖춰서 고개를 조금 숙이며 인사했다. 

"백호입니다. 현재는 아마미야 료이치로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수윤제국의 태자비..."

태자비는 커다란 눈을 한 번 빙글 돌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입니다."

말을 놓으려다가 백호라고 하니 말을 높여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런 것까지 귀여워서 뺨을 살짝 쓰다듬어주자 아마미야가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다 헛웃음을 지었다.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태자비 전하. 그나저나 거참... 저 목석이 사랑에 빠져서 헤롱거리는 꼴을 다 보고 내가 참..."
"목석이라고 하셨습니까?"

태자비는 태자를 바라보더니 곧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전하는 제게 항상 다정하십니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하신 분이십니다."
"오호... 사신수 중 제일 목석인 녀석이 청룡이었는데."

태자비는 다시 태자를 바라보다가 눈을 도르륵 굴리더니 배시시 웃었다. 

"제가 현무는 보지 못했지만... 류세이 황자보다는 태자 전하가 아무래도 더 진중하시다 보니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태자는 웃음을 참았지만 아마미야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맞습니다. 태자비 전하. 류세이에 비하면 누구나 진중해 보이지만 주작과 청룡의 성격이 완전히 반대였던 건 사실입니다. 태자비 전하를 만나기 전의 노부유키는 말도 없고 웃음도 없었습니다. 류세이나 저와 달리 인간으로의 현신도 즐기지 않고 내내 멍하게 있기만 하는 녀석이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팔불출이 될 줄이야."

아마미야가 놀리거나 말거나 자고 일어나서 출출해졌을 태자비의 앞으로 다과 접시를 옮겨다 주면서 잘 먹는 것들을 입에 쏙쏙 넣어주고 있자, 태자비는 아마미먀의 말이 기분 좋은지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다과를 쏙쏙 받아먹었다. 아마미야는 능글맞은 구석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잘 맞춰주는 편이라서 태자비는 처음에는 예의를 차리고 있다가 나중엔 마음이 편해져서 평소처럼 노부의 무릎에 올라앉아서 아마미야와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됐다. 류세이가 예전에 벌였던 어이없는 장난 이야기를 들으며 경악하기도 하고, 노부가 류세이의 장난에도 멍하게 있고 아마미야의 시비에도 아무 반응도 안 하던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기도 했다. 한창 사신수들의 이야기를 듣던 노부의 반려는 노부가 입에 넣어주는 떡을 냠냠 먹으며 노부가 잠행에 데리고 나가 줬던 일이나, 직접 양갱을 만들어줬던 일, 금을 가르쳐주고 노래를 불러줬던 일을 자랑해서 아마미야를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신수들의 불안을 감추고 유쾌한 오후를 보내고 난 후였다. 

"나의 비, 자당께 그대의 회임 소식을 직접 알릴 겸해서 연국에 작은 사절단을 보내려고 하오. 열흘 후에 출발할 예정이니 자당께 서신을 준비하시겠소?"
"연국에 사절단이 갑니까? 준비하겠습니다!"

어차피 태의가 태자비의 회임을 확인한 순간 수윤제국 황궁 전체로 소문이 퍼졌을 것이고 당연히 풍국과 연국 등 타국으로도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황궁은 비밀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사실 이미 연국에서 회임 축하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차라리 연국의 왕궁에 들어가서 사정을 직접 알아보는 편이 나았다. 물론 타국의 사절단이 궁을 헤집고 다닐 수는 없지만. 





노부는 얼마 전부터 노부의 임시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은방울꽃궁의 별실에서 아마미야와 마주앉았다. 

"귀비의 둘째 아들, 연국 8왕자가 올해 22살이네. 그런데 아직 혼처가 없지."
"음인?"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국은 나와 내 반려가 혼인하기 전까지는 풍국과만 교류하고 수윤제국과는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케이타를 태자비로 청했을 때 수윤제국의 상황이나 내 성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네. 그래서 순순히 케이타를 태자비로 보내줬으나, 케이타가 편히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고 몹시 후회하고 있는 것 같더군."
"연국의 귀비가?"
"귀비와 둘째 아들."
"흐응. 목석같고 재미없는 네 진짜 성격을 안다면 그리 아쉬워하지 않을 텐데."

노부는 이죽거리는 아마미야를 노려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귀비와 그 아들은 나의 비에게 궁인을 딸려 보내서 수윤제국의 분위기와 나의 성정을 파악한 뒤 나의 비가 성년이 되기 전에 그 둘째아들을 보내서 나의 비를 밀어내고 정비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었지."
"저런. 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아마미야가 계속 이죽거리고 있어도 노부가 너무 굳어 있으니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해 주려고 하는 너스레일 뿐, 아마미야가 정말로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니란 건 알아서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나의 비가 관례를 치를 때도 8왕자는 화려한 치장을 하고 와서 나의 마음을 사려고 했었지. 그때는 그냥 돌려보냈기 때문에 포기한 줄 알았는데 22살이 된 지금까지도 혼담을 다 거절하고 있다고 하니 의심이 가는데..."
"그냥 돌려보냈다고?"
"..."
"먼 길을 달려서 수윤제국까지 왔는데 그냥 가라고 하니까 갔어?"
"내 정비 자리를 노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로 독한 말을 해 주긴 했지."
"네가 성질도 부릴 줄 알고?"
"... 아마미야."
"내가 그걸 봤어야 하는데. 좋은 구경을 놓쳤네."

노부가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자 아마미야는 씩 웃더니 빈 잔에 차를 다시 따라주고 어서 말을 이으라는 손짓을 했다.

저런 게 신수라니.

"연국은 왕이 귀비 하나만 총애하고 있는지라 다른 비나 왕자녀들은 경계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두루두루 살피되 귀비와 8왕자를 중심적으로 조사해 봐."
"좋아."

아마미야가 현신한 몸은 수윤제국의 백성이긴 하되 고관대작 집안의 자식은 아니고 부유한 상인 집안의 한량 자제였다. 노부는 이번 사절단에 연국 왕실의 왕후와 후궁들을 위한 선물 납품을 아마미야 집안에 맡기고 아마미야를 사절단에 넣어서 보내기로 했다. 직접 장신구들을 가지고 왕후궁과 후궁들의 궁을 돌 수 있으니 정보를 수집하기에도 유리할 것이었다. 

"내가 또 혓바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일에는 자신이 있으니 맡겨줘."

정말로 혓바닥 하나로 사람들을 홀리는 일에 뛰어난 건 현무였지만 타케루가 잠들어 있으니 아마미야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 노부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려의 모친인 윤비가 내 반려를 걱정하지 않도록 잘 안심시켜 드리고."
"그래, 그래. 저렇게 고운 이를 낳아준 모친이라니 만남이 기대되네."
"아마미야."

아마미야는 부채를 탁 펼치더니 얄밉게 부채를 흔들었다. 

"확실히 정보를 모아올 테니까 걱정 마. 넌 이쪽 황실 정보나 잘 모아 봐. 부친께 이야기를 듣자 하니, 네 형 중 하나가 정비의 상을 곧 끝낸다고 하던데."

노부는 미간을 찌푸렸다. 수윤제국의 황제는 황후와 금슬이 좋았으나 혼례를 치르고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었기 때문에 황제는 후궁들을 많이 두었고 노부에게는 이복형들도 많았다. 연국과 마찬가지로 수윤제국도 적장자의 왕위계승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왕후의 첫아들인 노부가 태자가 되긴 했으나 이복형제들의 불만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황위를 노리는 형제들이 있나?

"넷째 형님?"
"응. 아이가 없어서 탈상하면 정비를 새로 맞으려 한다던데."
"측비가 세 명이 넘을 텐데?"
"새 정비를 원하는 모양이야."

노부가 말없이 탁자를 톡톡 두드리자 아마미야가 다시 물었다. 

"내 부친도 넷째 황자 정비의 사인은 모르는 모양이던데. 병사였어?"
"... 병사였는데..."

건강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구토를 하고 배앓이를 하더니 음식을 넘기지 못하다가 사망했다. 넷째 황자는 관례를 치른 후 궁 밖에 왕부를 얻어서 지내고 있었고 넷째 황자가 정비는 병사였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따로 조사도 하지 않았었다. 병사가 아니었나? 설마... 황위를 위해 몇 년을 함께 살았던 정비를 없애 버린 거라고? 대체 그깟 황위가 뭐라고. 

노부는 넷째 형의 정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지만 넷째 형과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던 그의 정비는 성년이 되자마자 혼례를 치러서 넷째 황자와 꽤 오래 함께 살았고 금슬도 좋아 보였었었다. 넷째 형의 정비는 어린 노부의 반려도 좋아했어서 가끔 넷째 황자의 친모인 후궁이나 황제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입궁할 때마다 태자비에게도 선물을 주거나 바깥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다. 어쩌면 그 정비가 태자비를 좋아했기 때문에 더더욱 살해당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노부가 아마미야를 보내고 반려와 함께 석반을 들기 위해 방으로 향하자, 조금씩 움직이는 편이 좋다는 태의의 충고를 흘려듣지 않고 매일 산책을 하는 태자비가 궁인의 손을 잡고 정원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노부는 반려를 수윤제국으로 데리고 올 때부터 태자비 궁은 태자궁 이상으로 철저하게 보안과 방어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반려가 회임을 했다는 걸 안 이후에 반려의 거처를 청룡궁으로 옮기는 대신 태자가 은방울꽃궁에 들어와서 함께 지냈고 손님을 맞아야 할 때나 가끔 청룡궁에 다녀오곤 했다. 물론 태자비 궁의 궁인과 내관들을 뽑을 때도 철저히 조사를 하고 뽑았지만. 

노부는 식사를 위해 손을 씻고 있는 반려를 보며 은방울꽃궁의 총관태감에게 조용히 말했다. 

"은방울꽃궁의 궁인들과 내관들을 전부 재조사하게. 본인이든 본가든 어떤 수상한 점도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태자 전하."

노부가 어두운 표정을 지워내고 웃으며 들어가자, 손을 씻고 석반상을 받기 위해 앉으려던 노부의 반려는 환히 웃는 얼굴로 노부에게 다가오며 노부를 폭 끌어안았다. 

"배가 더 나오기 전에 아기에게 금을 많이 연주해 주려고 오늘 아기에게 금 연주를 해 주었습니다."
"나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뭘 연주해 주었소?"
"전하께서 제가 금을 배우기 전에 연주해 주셨던 곡들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그랬소?"
"다음에 제가 배가 많이 나와서 금 연주가 어려워지면 전하가 아기에게 연주를 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오. 우리 아기에게든 그대에게든, 그대가 원할 때마다 연주해 주겠소."
"그럼 오늘 석반 후에 연주해 주시겠습니까? 오랜만의 전하의 노래도 듣고 싶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밤에 노래를 해 주면 설레서 잠 못 든다고 하지 않았소?"

이제는 10살이 아닌 반려는 눈꼬리를 접어 사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기 직전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우리 아기도 좋아할 겁니다."

어릴 때처럼 한없이 순진하진 않지만 그만큼 더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진 반려를 품에 안은 노부는 웃으면서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췄다. 
 
역시 노부는 이 사랑스러운 반려를 절대로 잃을 수가 없었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