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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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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귀걸이와 목걸이를 걸고서야 전장에 나갈 준비를 마친 기분이 들었어. 회장실에서 나올 때와는 사뭇 달라보이는 모습일거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수트 위로 갑옷을 두른건 나오토만의 작은 반항이었지. 차림새까지 허락을 받고서야 선자리에 나가는 자기 처지가 서글프다가도 이렇게라도 해서 퇴짜 맞으면 좋겠어.

거울 앞에서 셔츠 위로 드리워진 무거운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던 나오토는 아-낮게 탄식하곤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들었음. 피부톤보다 조금 짙은 색의 컨실러. 거울을 보고 자연스럽게 펴바르는 모습이 많이 해본 솜씨같아 보이겠다. 뺨에 남은 흔적을 컨실러로 덮은 나오토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을 나섰음. 그리고 안내받은 자리에 가서 앉았지. 아직 상대가 도착하기엔 이른 시간.

나오토는 제 차림을 보고 실망한 상대가 자기와의 약혼을 파기하길 바랐음.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귀에는 덜 부풀려진 이야기가 전달되길 바라겠지. 이러고 선자리에 나온 걸 알면 뺨 몇대로 끝나진 않을 것 같으니까. 움찔, 잘 갖추어 입은 옷 안쪽. 마른 어깨가 겁에 질려 오그라들었음. 입술이 바짝 마르고 혀가 조이는 것처럼 목이 타는데도 앞에 놓인 물잔조차 집지 못하는 건 떨리는 손을 숨기고 싶어서. 볼썽사나워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펴고 턱을 당겨 눈을 내리 깔고 표정을 숨겼지. 카타오카가에서 삼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늘은 건 이런 것 뿐이야.

이렇게 팔려가듯 결혼을 하고 싶진 않아. 지옥같은 곳에서 그래도 이제껏 버틴 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였는데.

축축하게 땀이 난 두 주먹을 꾹 쥐었다가 바지에 문질럿음. 그리고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제 선 상대가 도착했지. 고작 이름정도만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곧은 걸음으로 자리를 향해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 얼어붙어. 커다란 남자는 무서우니까. 제 아버지도, 형들도. 커다랗고 고압적인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했으니 본능적으로 두려울 수밖에.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 것도 잊어버린채 자기 앞까지 다가온 남자를 올려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겠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형들보다, 아버지보다 커다래서 간신히 숨을 집어 삼키고서야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설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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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필요 없어요.

목소리로 찍어누르는 기분. 일어나려던 몸이 절로 주저 앉는 것 같았지. 까칠한 입술을 마른 혀로 축이고 표정을 감추어 보려 애를 써.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부풀리고 카타오카 나오토라고 저를 소개하고서야 앞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지.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하고 서늘한 얼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듬을 수조차 없어서 나오토는 천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선을 떨어뜨렸어. 지금 자기 차림을 보고 혀를 차고, 실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후폭풍이 두려워. 기다란 속눈썹이 창백한 뺨에 그늘을 만들었음. 코바야시 나오키라고 짧게 자기를 소개한 남자가 자연스레 주문을 해. 못먹는 거라도? 묻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고갤 흔든 자기가 바보같아. 그치만 거대한 산같은 남자 앞에서 숨이나 간신히 쉬고 있는 걸. 

음식이 서브되었지만 나오토는 겨우 먹는 시늉을 하는 중이었지. 손이 떨려 물도 삼키지 못하는데 포크나 제대로 들수가 있나. 나오키의 그린 것 같은 눈매가 잠시 가늘어졌고 곧 나오토 앞의 와인잔이 채워졌음.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든 나오토에게 나오키는 짧게 말했지. 마셔요- 고양이 앞에 쥐도 이렇게 무서워하진 않을 것 같아서였음. 잔뜩 긴장해서 대답도, 그렇다고 식사도 못하는 꼴을 보니 술이라도 삼켜 긴장이나 풀라고.

나오토는 나오키의 말이 꼭 명령같아서 하는 수 없이 잔을 붙들었지. 향이고, 맛을 음미할 사치도 부릴 틈이 없어서 꿀꺽꿀꺽 가뭄이 든 것처럼 마른 입을 적셨음. 식사내내 나오키도 이렇다할 이야기를 건네진 않았고, 나오토는 그의 침묵이 거절이라 생각했지. 부디 적당한 말로 아버지께 사양해주길 바라며 길고 길었던 식사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음.

-다음엔 조금 더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죠.

거울같이 반들반들하게 닦인 승강기 앞에서 건넨 나오키의 목소리에 나오토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어. 당연히 거절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내내 내리깔고 있던 눈이 둥그렇게 커져서 나오키를 올려다봄. 나오키와 시선이 마주쳤고, 곧 그의 눈이 귀. 그리고 목을 향해 떨어지는 걸 바라봐야했음. 분명 귀걸이와 목걸이를 쳐다보는게 맞는데..그런데 왜?

-...노력은 가상하네요.

속을 온통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라. 나오토는 놀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주춤, 걸음을 뒤로 물렸지. 하지만 나오키 역시 자기가 걸음을 물린 만큼 다가올 줄은 몰랐어. 나오토의 중심이 흐트러졌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밀려 등이 벽에 부딪쳤음. 거울같이 번들거리는 승강기의 문짝에 겁에 질린 옆얼굴이 고스란히 비추었음. 나오키의 커다란 손이 얼굴까지 뻗쳤고, 나오토는 숨을 멈추고 눈을 꾹 감아버리고 말았어. 버릇같은거라 자기가 눈을 감는줄도 몰랐겠지. 손이 올라가면 뒤이어 오는 손찌검은 공식같은거라서. 

이것 참, 이미 뻗은 손을 거두기도 우스워. 나오키는 나오토의 마른 턱을 쥐었어. 움찔, 몸의 반동이 나오키에게도 전달됐고 곧 작은 떨림역시 느껴졌지. 자기의 커다란 손에 비해 한없이 작은 얼굴이라 한숨이 나오겠다. 기다란 엄지 손가락을 움직여 아까부터 내내 신경쓰이던 뺨을 슬쩍 문지르자 파르르 눈꺼풀이 떨리더니 잔뜩 겁먹은 눈동자가 드러나. 이 정도로 이렇게 놀라서 어쩌나- 혀끝에 맴도는 말을 꺼내야할지 망설여져. 하지만 이왕 저지른 일이니 알게 해줘야지. 

-실망시켜 미안해요. 내가 거절하길 바란 눈친데.
-...읏.

힘을 주어 문지르자 조잡하게 발린 어울리지 않는 색이 벗겨지며 뺨에 남은 푸르스름한 멍자국이 드러나. 손대는 것도 어릴때나 해야지, 나오키는 짧은 한숨과 함께 미간을 좁혔음.

-근데 어쩌나. 이 자리도 내가 만들어달라고 청했는데.

커다래진 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웃는 얼굴만큼이나 못견디게 마음에 들어. 하지만 울릴 수야 없지. 천천히 나오토의 마음을 열어보려는 나오키일거다. 헌데 방법이 글러먹은건 자기만 모르겠지.

나오키 처음부터 나오토 알고 있었어. 어차피 이 바닥이야 거기서 거기. 처음엔 그냥 카타오카가 삼남정도로 기억했을거야. 멍이 든 얼굴을 어설프게 화장품으로 감추고 나오는걸 눈치채고서부터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삼남이 혼외자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어. 하지만 요즘 세상에 저렇게 표시나게 손을 댄다고? 우습지도 않겠지.

그러면서 말그대로 시들어 가는 나오토에게 눈이 가는거. 저러다 일 치르겠네, 걱정이 커질 무렵. 나오토가 웃는 거 보고 마음먹은 나오키였으면 좋겠다. 나오토가 좋아하고 하고싶어하는 일 하는걸 우연히 보게 됐어. 내내 죽은 눈을 하고 돌아다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만큼 예쁘게 웃는데 가슴이 덜컹. 시들어 있는 꽃보다야 예쁘게 웃는 쪽이 좋잖아? 나오토가 웃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오키 부러 자기네보다 못한 카타오카가에 선자리 넣어달라고 한거.

헌데 이걸 설명하려니 늘 가시를 세우고 의심하며 살아온 나오토를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자리부터 만든거였겠지. 그 바람에 한결 더 겁을 먹고 벽을 세운 나오토라 나오키 진 깨나 빠졌으면. 결국엔 처음부터 자기 방법잘못된거 깨닫고 살살 녹여 품어주고 그 품에서 나오키 바람대로 예쁘게 웃는 나오토였으면 좋겠네.




나오키나오토
아니 갤러리보는데 오토 짤이 너무 너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