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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04:43

연반ㅈㅇ 알오ㅈㅇ




"류세이가 많이 못미더운 모양이오, 나의 비는."

노부의 반려는 콧잔등에 귀여운 주름을 잡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사실 만나기 전에는 기대가 많았습니다."
"만나기 전? 류세이를 만나고 싶었소?"
"예, 좋은 사람일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노부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태자비와 류세이의 접점이 있나. 아, 류세이의 반려 때문인가?

"그대의 형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소?"

태자비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형님과 서신을 왕래할 때, 형님이 딱히 류세이 황자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신 건 아닌데, 형님이 많이 밝아지시고 자신감이 많이 생기신 것 같아서 형님이 좋은 반려를 만나 좋은 방향으로 변하신 게 아닐까 했었습니다."

노부는 류세이의 반려가 처음으로 태자비에게 보냈던 서신을 떠올렸다. 나이를 뒷구멍으로 처먹은 그 노망난 늙은이가 너에게 손을 댈 일은 절대로 없게 할 테니까 안심하라는 내용을 아주 우아한 문장으로 써서 보냈던 서신. 원래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성격이 불같은 편이 아니었던 건가?

"전하도 아시겠지만 형님은 연국의 적장자입니다."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국의 왕에게는 많은 왕자녀가 있는데 왕후의 첫아들, 즉 적장자는 소라였다.

"그런데 적장자를 제치고 서장자인 첫째 형님이 세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연국에는 적장자가 왕위를 잇는 전통이 있습니다. 명확히 법률로 규정된 것은 아니나 적장자의 왕위 계승이 불문율이었는데 아바마마께서 귀비를 총애하셔서 서자인 첫째 형님을 세자로 책봉하셨습니다."
"나도 그렇게 들었소."
"거기서 끝났다면 괜찮았겠지만."

태자비는 노부의 품 속에서 한숨을 폭 내쉬더니 우울한 얼굴을 했다. 

"첫째 형님이 아바마마의 총애를 등에 업고 둘째 형님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음..."
"아바마마가 왕후 마마와 둘째 형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다보니 괴롭혔다는 것을 아바마마에게 말할 수도 없고, 말해도 믿거나 말려주지도 않아서 하도 괴롭힘을 당하다 보니 둘째 형님이 많이 소심해지시고 우울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왕후 마마가 둘째 형님을 풍국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첫째 형님은 양인인데 둘째 형님한테 못된 짓을 하려 한 적도 있어서 왕후 마마가 둘째 형님을 지키고자 풍국으로 보내셨죠."
"몹쓸 자로군."
"그래서 풍국에서도 잘 지내실까 걱정되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서신을 주고받다보니 쾌활해지시고 자신감도 강해지신 듯해서 좋았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밝고 씩씩해 보이더군."

태자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태자의 맨가슴에 따뜻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숨결이 가슴에 닿아 가슴이 간질간질거렸다. 

"류세이 황자가 둘째 형님을 잘 대해주고 맘편히 지내게 해 준 덕분인가 해서 좋은 분일 거라 여겼습니다. 기대하고 있었는데, 첫만남에 다짜고짜 검을 들이대다니. 감히 나의..."

태자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태자비의 뺨을 감싸며 웃었다. 

"감히 그대의...? 왜 말을 끝까지 안 하시오, 나의 비?"

태자비는 태자를 슬쩍 노려보더니 뺨이 발그레해진 채로 말을 이었다. 

"감히 나의...반려를 해치려 하다니, 제가 어찌 좋게 보겠습니까?"

맞다. 감히 나의 반려를 화나게 한 류세이가 잘못한 것이다. 태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류세이가 왜 그랬는지는 설명을 해 주는 게 공평한 것 같았기 때문에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류세이나 나나 한낱 날붙이로 목숨을 해칠 수는 없소. 어쨌든 인간으로 현신하고 있으니 다치기야 하겠으나 회복도 빠르고 크게 다친다고 해도 죽지는 않소. 그래서 류세이는 예전부터 종종 나나 다른 신수들에게 그런 장난을 치곤 했었소."
"그렇다고 해도 무례하고 위험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전하도 방금 말씀하셨지만 죽지 않는다고 해도 똑같이 다치고 아프지 않습니까?"
"음."
"형님이 류세이 황자가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주셨지만, 다음에 또 그런다면 그때는 저도 그렇게 쉽게 제 검을 거두지 않을 것입니다."
"음..."
"전하가 날붙이에 목숭믈 잃지 않는다고 류세이 황자가 그런 무례한 짓을 한 거라면, 류세이 황자 역시 날붙이에 목숨을 잃지 않을 것 아닙니까. 게다가 남을 해치려 하면 자신도 다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걸 직접 몸으로 겪어보면 알겠죠."
"음, 알겠소. 그대가 나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하는 일이 없도록 나도 조심하겠소."

태자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자를 꼭 끌어안았다. 

"부디 조심해 주십시오. 만약 전하가 다치시면..."
"다치면...?"
"... 울 겁니다."
"... 운다고?"
"네, 밤새 울 겁니다. 전하는 제 울음소리 때문에 잠도 못 드실 것입니다."

언젠가 연국 귀비가 보낸 궁인의 수작질 때문에 상처받고 겁먹은 어린 태자비를 달래려고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태자는 그때보다 많이 커졌고 그때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워진 태자비를 안고 밤새 물고 빨아서 평소보다 더 빨갛고 더 통통해진 듯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긴 접문 끝에 웃으며 속삭였다. 

"나의 비를 울려선 안 되니, 다치지 않겠소."

태자비는 고개는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맞춰왔다. 그 접문이 너무나 달콤하고 황홀해서 벌써 해가 떴다는 것이 참기 힘들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태자비는 형님과 조카가 좀 더 오래 머물길 바라는 듯했지만 류세이와 소라, 이치로는 태자비가 형님을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노부가 다소 무리하게 초청한 것이고, 현재 풍국과 수윤제국의 사이는 그다지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머무는 건 곤란했다. 그래서 관례가 끝나서 열흘 남짓 겨우 머물다가 떠나는 형님과 조카를 배웅하는 태자비의 얼굴은 무척 우울했다. 그래도 류세이가 다소 철이 없기는 해도 명색이 신수인데 정말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서, 노부의 경고는 잘 알아들었다. 제 반려를 목숨처럼 아끼는 녀석이라 네 반려와 내 반려가 너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서 둘 다 슬퍼하는 걸 보고 싶냐고 하자, 바로 다음 날 태자비를 찾아와서 첫날의 무례를 사과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줬으니까. 태자비는 긴 세월을 살아온 주작보다 더 어른스럽게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태자비는 씩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형님이 떠나고 우울해하는 게 보였기 때문에 태자는 태자비를 데리고 잠행을 나가 한밤중의 꽃놀이를 몰래 즐기다 오기도 했고, 은방울꽃궁 숙수의 도움을 받아서 태자비가 좋아하는 양갱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양갱은 실패해서 식감이 생각만큼 쫀득하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에 또 만들어서 성공하면 그때 선물해 주려고 했지만 태자비는 궁인이 실수로 흘린 말에 태자가 양갱을 만든다는 걸 알고 소주방으로 달려왔다. 태자는 다음에 더 잘 만들어서 주겠다고 했지만 태자비는 냉큼 양갱을 집어들었다. 식감은 별로였지만 모양만은 예뻤기 때문에 맛있어 보였는지 태자비는 설레는 얼굴로 양갱을 입에 넣었다. 씹어보면 식감이 별로라는 걸 느낄 테니 그 설렘이 곧 사라질 것 같아 심란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태자비는 식감이 그리 좋지 않았을 양갱을 다 먹고도 여전히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얼굴로 태자를 폭 끌어안았다. 

"지금까지 먹어 본 양갱 중에 쿠로사와 공이 사다주신 양갱이 제일 맛있었는데, 오늘부로 바뀌었습니다."
"... 그렇소?"

태자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전하께서 만들어주신 양갱이 제일 맛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은데 아까워서 못 먹겠습니다."
"다음에 더 잘 만들어주겠소."
"감사합니다, 전하."

워낙 영리하고 현명한 사람이라 왜 태자가 없는 요리 실력에 무리해서 양갱을 만들고 있었는지는 알아차린 듯 눈물을 그렁거리며 태자를 바라봤다. 

"제가 무슨 복이 이리 많아 전하의 반려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태자는 눈물이 고인 반려를 품에 안고 토닥이며 예쁘장한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내가 복이 많아 그대의 반려가 됐지. 그대가 양갱을 놓아 준 덕분에 우리가 만난 것이니."





다행히 태자비는 그날 이후로 서운함과 외로움을 많이 털어냈는지 평소처럼 다시 활발하고 씩씩한 모습을 되찾았다. 여전히 소라와 서신도 주고받고 있었고 연국의 어머니와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2년 정도가 지나고 태자도 안심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태자비는 원래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밝은 얼굴로 기분 좋게 일어나곤 했지만 그날따라 유독 더 밝은 얼굴로 생글거리며 일어나더니 태자를 폭 끌어안았다. 

"잘 잤소, 나의 비?"

전날 밤에도 새벽까지 침상에서 태자비를 괴롭혔던 터라 자기 전에 지쳐서 예민해진 태자비에게 깨물리기도 했던 태자는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한껏 좋아진 태자비를 토닥이며 웃었다. 

"네, 좋은 꿈을 꿨습니다."
"누가 그대의 꿈 속에서 그대를 그렇게 행복하게 해 주었소?"

배시시 웃는 태자비가 귀엽고 예뻤지만 꿈 속에서 대체 누굴 만났기에 이렇게 생글거리나 싶어서 살짝 질투도 났을 때였다. 노부의 반려는 눈을 반짝거리며 노부의 뺨을 쓰다듬었다. 

"제가 전하를 본 것 같습니다."
"나를 말이오? 꿈에서 나를 봤소?"

태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고?"

태자비가 태자를 몰라볼 리는 없었다. 뒷모습만 보여주기라도 했나. 얼굴은 안 보여주고 계속 뒷모습만 보여줬다면 이렇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데, 꿈에서 내내 업고 다니기라도 했나. 그래서 얼굴을 못 본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태자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웃었다. 

"꿈에서 청룡을 봤습니다."
"청룡?"
"네. 아주 예쁘고 귀여웠습니다."
"귀여웠소? 멋있진 않았고?"

노부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반려가 꿈 속에서 청룡을 봤다는 것이 기껍기만 했다. 그래서 꿈 속의 청룡이 예쁘고 귀여웠다는 말에도 웃음이 나왔다. 청룡의 그림이야 아주 많이 남아 있지만 실제 청룡의 모습을 그렸다기보다 인간들의 상상이 만들어낸 그림이다보니 이제 겨우 18살이 된 태자비가 실제 청룡의 모습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귀엽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태자비가 귀여운 모습의 청룡을 상상했나 했는데.

생글생글 웃던 태자비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크면 멋있어질 것 같긴 했습니다."
"크면?"
"네."

청룡의 본체를 쉽게 보여줄 수 없다 보니 반려에게도 아직 청룡 본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청룡의 반려라고 해도 노부의 비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크고 위압적인 청룡을 상상할 텐데 작은 청룡을 봤다고?

"요만했습니다."

노부의 반려는 가슴 앞에 양 손을 올려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어 보이고 청룡이 요만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노부의 사랑스러운 반려가 꿈에서 본 청룡은 노부가 아니었다.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