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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9 02:20
아드을♡ 저거 봐라. 저거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캐릭터잖아.
하는 소리 듣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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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 보던 엄마가 괜히 불러서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자기한테 호들갑 떠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라 뚱하게 시선 돌리는 대만이. 뉴스에서 무슨 레트로 열풍이니 뭐니 하면서....

예전에 유행했던 캐릭터들 다시 유행한다는 기사 나오는데 하필 그게 자기가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태섭이한테 크레인 게임으로 뽑아준 별 병신 같이 생긴 캐릭터인 거 보고 싶다.

롱디지만 잘 해보려고 노력해도 어긋나고 결국에는 차이기까지한 대만이. 그 뉴스에서 그 캐릭터 보자마자 태섭이부터 생각났겠지. 엄마한테 어지간하면 잘 맞춰주는 대만인데 그 순간 만큼은 표정 관리도 안 되고 입술 댓발 나와서는

좋아하긴. 저런 걸 누가 좋아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버림. 엄마는 다 큰 아들의 갑자기 사춘기로 돌아간 것 같은 행동에 눈만 깜빡임. 대만이 엄마한테 미안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쉽게 진정되지는 않을 듯.

대만이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음. 그냥 맨날 그랬던 것처럼 같이 집에 가는 길에. 매일 지나치던(지금은 없어진) 게임 센터에 들러서. 어쩌다 크레인 게임을 하게 됐는데. 평소에는 이런 거 지지리도 못하는 대만이가. 한번에 자기가 노리던 캐릭터 키링을 뽑게 됨. 뭐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이름도 병신 같은 이름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나름 좋아하던 거라 너무 기분이 좋았음. 그거 옆에서 지켜 보던 태섭이가 의외라는 듯이 이런 거 잘 하네요? 하고 물어봐서 원래 존나 못하는데 오늘만 잘 한거라고 솔직하게 말 안하고 내가 쫌;;하고 자랑함.


지금은 꼴도 보기 싫지만 그 때는 귀여워 보였던 그 캐릭터가 문득 태섭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됨.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공해본 크레인 게임에서 뽑은 걸 태섭이에게 선뜻 줌. 얔ㅋㅋ 이거 너 닮았으니까 너 줄겤ㅋㅋ하니까 태섭이 표정은 이게... 나랑... 닮았다고...? 하는 표정이었지만 아무튼 받아들긴 했음. 그 뒤로도 라커룸 문에 걸려있고 한 그 키링 보면서 짜식ㅋㅋㅋ 내가 준 거 잘 달고 다니네...하면서 뿌듯했거든. 그리고 그 키링이 살면서 대만이가 크레인 게임에서 뽑아본 유일한 물건임.

대체 몇년전인데 이렇게 생생할 일이냐. 하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긴 하지만 아무튼 대만이는 그랬음. 조금(아니, 사실 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설마 진짜로 헤어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막상 태섭이 입에서 나온 헤어지자는 말에 매달려 보지도 못했던 거 아직도 후회하고 있을 듯. 자기는 헤어진 뒤에도 너무 생각나서 전화도 몇 번 더 해보고 편지도 썼는데 전화 번호는 어느 새 바뀌어 있었고, 편지는 자꾸 되돌아 오고...

그렇게 얘는 내가 싫어진 거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대만이. 그래도 대만이도 어떻게 하루 아침에 마음을 정리하겠냐고. 헤어진 건 머리로는 알아도 뭐 하나 떠나 보낼 수가 없는 대만이. 이불 뒤집어 쓰고 잠자코 있다가 용수철 처럼 뛰어 올라서 침대 밑에서 상자 하나 꺼내는데 거기에 태섭이랑 사귈 때 주고 받았던 편지, 같이 찍었던 사진, 그리고 헤어진 뒤에도 태섭이 이름 석자 한 번이라도 언급되면 죄다 사 모았던 농구 잡지 같은 거 하나도 빠짐 없이 들어 있는 상자인 거.


헤어진(대만이 입장에서는 차인) 직후에는 진짜 세상이 무너진 거 같고 누가 봐도 힘든 사람처럼 살았는데 이제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대만이. 상자 뒤적거리다가 잡지도, 사진도 괜찮았는데 태섭이가 직접 손으로 눌러썼을 편지 집어들고는 얼굴 파묻고 혹시라도 태섭이 체향 같은 거 남아있을까..하고 숨 들이쉬는 거. 뭐. 당연히 몇년이나 지났으니 그런 게 남아 있을 리 만무하지만. 결국 고개 푹 떨구고 눈물 뚝뚝 흘리는 대만인데 우는 이유가...

이제 자기 기억 속의 태섭이 체향도 옅어져서 기억이 잘 안 나서인 거.

그런 중요한 걸 잊어버린 자기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자기 차버린 태섭이가 제일 밉고.

그러는 와중에도 자기가 들고 있는 편지랑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에 자기 눈물 방울 튈까봐 조심해서 편지는 치켜 들고 자기 팔꿈치 위로 얼굴 쓱쓱 닦는 대만이...

태섭대만 료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