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가 미친듯이 불안해 하는게 보고싶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자주 마주쳐서 만나다 서로 마음 확인하고 사귀게 된 호열이랑 대만이는 꽤나 유명한 커플이겠지. 대만이야 말할 것도 없이 농구 스타 선수고, 호열이는 독보적인 분위기를 살려 배우에 도전했다가, 몇년 간의 무명 생활 끝에 좋은 감독 만나서 함께 한 작품이 대박나고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덕분에 하루아침에 독립영화계의 혜성으로 등극한 핫한 신인 배우임.

호열이가 신성으로 주목받고 나서 대만이와의 관계도 덩달아 사람들의 관심사에 오르겠지. 호열이에 관한 언론 보도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NBA 에서 활약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 강백호고 두번째는 당연히 호열이의 오랜 연인인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MVP 선수 정대만이었음. 특히 호열이가 무명 배우 생활을 할때 옆에서 든든하게 지원해준 대만이와의 연애사가 매스컴을 타고 난 후로는 둘은 어딜 가나 주목받는 셀럽 커플이 되었어.

그 후로 호열이가 몇 작품 더 찍고나서 이름값이 훌쩍 오르고 개런티도 치솟는 상황에서 호열이 앞으로 시나리오가 하나 들어오는데..거장 감독의 신작에 호열이가 물망에 오른거야. 처음 그 소식을 듣고는 호열이도 대만이도 너무 기뻐했는데, 문제가 있었지. 그것도 셋이나. 하나, 장르는 퀴어물. 둘, 수위는 타협 불가. 셋, 상대 배우.

2까지는 퀴어 영화에서 흔히 제시되는 조건인 만큼 각오해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문제는 세번째였어. 이도혁.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고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대배우였지. 매력적인 페이스에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고..그 사람과 영화를 찍은 상대 배우는 100% 염문설에 휩싸였음. 실제로 정분이 나는지 바람을 피우게 되는지 일일히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남자였지.

호열이의 상대 배우가 누군지 알게 된 대만이는 불안에 빠졌어. 아직 캐스팅 확정이 난 상태는 아니지만, 만약에 작품을 하게 된다면 거장의 작품인 만큼 이건 호열이에게 엄청난 기회였고, 대만이도 자신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호열이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았음. 하지만..호열이의 상대 배우인 그 남자는 자신하고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았지. 생긴 것부터 시작해서 호열이와의 나이차, 서글서글하고 다정한 성격까지. 특히 외모가 엄청나게 닮아서 인터넷에 정대만-이도혁 닮은꼴.jpg 하는 식의 글들이 곧잘 올라올 정도였음.

그리고 시나리오를 확인한 대만이는 경악했지. 기절할 정도의 수위에, 격렬한 정사 씬. 물론 영화이니만큼 아래 공사를 하고 들어가지만, 기본적으로 나체로 붙어야 하고 진짜로 리얼하게 찍어야 되는 테이크들이 몇 있겠지. 대만이는 이런 외설적인 예술 작품에 면역이 없는 순수한 농구선수인 만큼 그 충격은 엄청났어. 내 호열이가..이런걸 찍는다고? 아무리 작품이긴 해도 그 사람이랑..

제일 문제가 되는건 그 대본의 줄거리였음. 폭력적으로 얽혀서 주먹으로 치고 받던 둘이, 서로를 향한 애증과 폭발적인 성적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사를 치르게 된다는 내용이었지. 그리고 호열이가 상대 배우를 격정적으로 안는 쪽이었음. 이건..우리잖아. 호열이랑 나의 첫 시작이잖아. 대만이의 불안은 극도로 치솟기 시작하고..호열이는 자기 연인이 그렇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정하게 달래주겠지.

괜찮아요, 대만군. 이건 영화잖아요.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다 가짜라구요. 하는데 대만이는 호열이 품에 안겨서 눈을 내리깔고 묵묵히 있다가 그 영화..안하면 안돼? 하고 참지 못하고 마음 속에 꼭꼭 숨겨두고 있던 본심을 말하겠지. 호열이가 미안하면서도 난감한 기색으로 대만군. 이 작품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요. 너무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하고 어르는데 대만이의 불안감은 가시질 않고..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날 각종 영화 매체에 큼지막하게 상대 배우의 인터뷰가 실리겠지. 그 제목은..

“신인 양호열과의 진한 케미 기대중…. 격렬한 정사씬, 문제 없어”


그리고 대만이는 자기 불안이 어디서 비롯된건지
그 묘한 균열의 감각을 이내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