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버스 빵발너붕붕 빵발너붕남
오타주의 퇴고안함 캐붕주의 이것저것 다 주의
혐생때문에 완결을 언제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 )
23.
클리프는 허니를 안아들고 트레일러에 들어갔어. 마침 근처에 있었거든. 트레일러에 들어가자마자 브랜디가 클리프를 반겨줬어. 클리프는 한손으로 허니를 안아들고 다른 손으로 브랜디에게 손바닥을 보여줬지. 아빠의 말을 잘 듣는 브랜디는 얌전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어. 그 와중에도 허니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 클리프는 고민하다 허니를 안고있는 상태 그대로 쇼파에 앉았어.
“아가씨.”
“흡, 흑, 미안, 미안해, 미안해…”
“허니.”
클리프가 허니를 이름으로 부른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낮고 고요한 울림에 허니가 그제서야 천천히 클리프의 가슴에 파묻고있던 얼굴을 들어올렸어. 물기에 젖은 눈동자에 오로지 클리프만이 한가득 담겨있었지. 촉촉하게 젖은 눈은 속에있던 욕망을 자꾸 부추겼지만 클리프는 애써 쓴물을 삼켰어.
“허니가 겁쟁이가 아니라는건, 센터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당연하지. 폭주 직전인 S급센티넬에게 맨몸으로 달려들어서 뚜들겨 팼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허니의 행동에 기함을 했는걸. 뭐 그런건 지금은 중요치 않았어. 선글라스까지 벗은 클리프가 시리도록 푸른 눈으로 허니를 응시했어. 허니가 눈을 피하자 클리프는 허니의 고개를 돌려서 다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지. 큰 힘을 쓴 것은 아니었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은 명백했어.
클리프는 답지않게 신중에 신중을 가했어. 허니를 위로하는 말과는 달리 클리프는 자신의 가이드가 꽤나 겁이 많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거든. 겁쟁이인데 용기도 그만큼 많은 모순적이고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지. 클리프는 자꾸만 움츠러드는 허니의 품에 파고들었어. 그리고 잡고있던 손을 조심히 들어올려 손등에 짧게 입을 맞췄지.
“말해줘, 허니.”
고작 기계의 얄팍한 수치로는 이 기묘한 감각을 설명할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고요한 트레일러 안에서 둘은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봤어. 영혼의 반쪽을 몰라 볼 수가 없었지.
‘온전한 자신의 편’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를 정의하는 무수히 많은 단어들 중 하나야. 허니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어. 허니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클리프는 반드시 허니의 곁에 있을거야. 허니가 숨고자 한다면 안전한 은신처가 되어줄거고, 허니가 두려워 한다면 무엇보다도 튼튼한 방패가 되어주겠지. 온전히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만을 위하는 타인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더없이 유혹적이었어. 허니 또한 마찬가지였지.
“난, 나는….”
허니는 자신의 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서 동굴속으로 들어가버렸지. 허니가 고해성사하듯이 죄를 토해내도, 누구도 허니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어. 모두가 하는 말은 똑같았지.
‘… 내가 이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 적이 있었나?’
“허니.”
클리프의 재촉에 사념으로 뻗어나가던 허니의 머리가 다시 돌아왔어. 하지만 허니는 여전히 눈 앞의 클리프를 보지 못하고 과거를 헤매고 있었지.
24
평범한 어느날이었어. 고아원에서 살던 둘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항상 같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지. 둥그렇고 보드라운 뺨에 오늘 간식으로 받은 푸딩을 한가득 집어넣은 허니가 재잘재잘 말하며 신나게 손까지 흔들고 있었어.
“오빠, 나 오빠꺼 푸딩 머거두 돼?”
“그랭, 자.”
“꺄! 고마웡!”
푸딩같은 볼 안에 푸딩이 호로롭 빨려들어갔어. 범블비는 그런 제 동생을 묘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지. 푸딩을 우물거리던 허니는 그런 범블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어. 생각해보면 이상했거든. 친구들은 오빠나 동생이랑 매일 간식때문에 싸운다고 했거든. 허니는 매일 오빠인 범블비가 너무 다정하고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어. 물론 허니도 범블비가 화내는 모습을 본적은 없지만, 딱히 특별하게 친절하다고는 생각해본적이 없거든.
“너가 날 살려줘서 그랭.”
“응? 머가?”
“내가 왜 푸딩 주는지 궁금하다며. 너가 날 살려줘서 그렇다구.”
허니가 범블비를 살려준 적이 있었나? 작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허니는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였어.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허니는 범블비에게 도움을 받은 적은 많아도 도움이 된 적은 없었지. 문득 허니는 범블비에게 질문조차 한 적이 없었다는 것도 기억해냈지만 마지막 남은 푸딩을 한 입 먹고나니 이젠 아무래도 좋아졌어. 범블비는 항상 허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 어른들은 쌍둥이니까 텔레파시가 통하는 거라고 했지. 허니도 그 말을 믿었어.
“허니, 내일은 옷 바꿔입자.”
“왜애?”
“…. 그러고 학교 가면 다들 속을걸?”
그런 둘이 작년 만우절에 한번 한 적이 있던 장난이었어. 그리고 왜인지 1교시가 끝나기도 전에 들통나버렸지. 겉모습이 똑같아도 태도가 전혀 다르니까 티가났거든. 게다가 만우절 이었으니까.
“아무도 안속을걸? 이미 해봤잖아!”
“이번에는 다를거야. 만우절이 아니잖아?”
푸딩을 먹으며 허니는 고민했어. 범블비의 말대로 만우절이 아니니까 아무도 장난을 쳤다고는 생각하지 못할거야. 다먹은 푸딩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허니는 고개를 끄덕였어. 다음날 범블비와 허니비는 서로의 옷을 바꿔입었어. 쌍둥이여도 성별이 다르니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옷을 바꿔입으니 정말 똑 닮아있었지. 치마를 입은 범블비는 어색한지 훤한 무릎께를 더듬어봤어. 그리고 둘은 평소처럼 손을 잡고 같이 학교에 갔지. 평소와 똑같은 등굣길이었어. 허니는 장난을 칠 생각에 들떠 신나게 손까지 흔들며 가고 있었지. 맞잡은 손이 앞뒤로 붕붕 흔들렸어. 그런데 갑자기 범블비가 걸음을 멈췄어.
“웅? 왜 그래?”
“…. 우리 지름길 찾기 할까?”
“시러, 결국 거기도 지름길 아니었자나!”
지름길 찾기는 최근 범블비가 빠진 놀이였어. 말이 지름길찾기지 사실상 큰 길들을 뺑글뺑글 돌다 돌아가기 일수였지. 본디 지름길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으슥한 골목길은 절대 가지 않고 시장이나 대로변만 다리가 아프도록 걷다가 오기만 몇번째인지 몰라. 처음에는 모험을 하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이제 허니는 지름길찾기라면 아주 질색을 할 정도였어.
“그럼 달리기 시합하자! 지금부터 저기 경찰서까지 뛰는거야!”
“그랭! 그럼 준-”
“뛰어! 빨리 가!!!”
“어, 어?”
달리기 시합이라고 했으면서 범블비는 허니의 손을 붙잡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어. 어떨결에 허니는 허겁지겁 범블비의 발에 맞춰 뛰기 시작했지.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니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어. 허니는 체력이 그렇게 좋지 않거든. 허니가 헥헥 거리다 결국 넘어졌어. 평소라면 범블비가 허니를 달래줄텐데, 범블비는 바닥에 철푸덕 넘어진 허니를 계속 닥달할 뿐이었지.
“흐어어엉ㅡ 아파아아ㅡ”
“빨리 일어나! 빨리이!!”
허니는 범블비에게 잡아당겨져 억지로 일어났어. 뽀얀 두 무릎에는 생채기가 가득했지. 피가 송골송골 나오는 모습을 보니 더 눈물이 나왔어. 게다가 항상 달래주던 범블비가 무서운 얼굴로 닥달하자 너무 서러웠지. 항상 자신의 아픔에 공감해주던 오빠가 그러자 너무 속상했어. 어린 허니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지.
“…….맞네, 가이드.”
폭싹-
“끄읍, 히끕, 으응…?”
갑자기 범블비가 허니를 폭싹 껴안았어. 허니는 어떨결에 범블비의 품에 안겨 커다란 눈알만 도륵도륵 굴렸어. 허니와 범블비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지. 허니는 무서운 나머지 아픈 무릎도 잊고 범블비의 손을 꼭 잡았어. 그런데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자 남자는 어느틈엔가 허니와 범블비를 붙잡고 있었지. 허니는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크에 벌렸지만, 커다란 손에 막히고 말았어. 그렇게 허니와 범블비는 무서운 사람들에게 잡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지.
허니와 범블비는 낡고 어두운 창고 안에 던져넣어졌어. 남자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방 안은 너무 캄캄해서 한치 앞도 알 수 없어졌지. 허니는 내보내달라며 엉엉 울었어. 그러나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쾅쾅 치며 조용히 하라고 협박하자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지. 허니가 겁에 질려 파들파들 떠는 와중에도 범블비는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무언가를 찾아다녔어.
"두명 전부 가이드야?"
"아니, 여자애만 가이드야. 남자애는 꽝."
"그럼 왜 귀찮게 여기까지 데려와. 알아서 처리하지."
문 밖에서 알 수 없는 대화내용이 들려왔어. 아직 어린 허니라도 남자들이 자신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그 이상은 이해하질 못했지만. 그때 범블비가 허니를 조용히 구석으로 데려갔어. 낡은 창고 끝에 어린아이가 통과할 수 있을만한 작은 개구멍이 있었지. 이곳으로 나가면 탈출할 수 있을거야. 범블비가 허니의 등을 밀었어. 허니는 조심조심 개구멍으로 몸을 빼냈지.
"쥐새끼들이 어딜!"
“오, 오빠…!”
“….허니, 아직 달리기 시합 중인거 알지? 경찰서까지 가야해.”
허니는 범블비를 지키기 위해 있는 힘껏 범블비의 손을 붙잡았어. 그러나 범블비가 허니의 손을 쳐냈지. 허니는 다시 범블비의 손을 덥썩 잡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어. 그러나 범블비가 허니를 밀치자 허니는 뒤로 몇걸음 물러나버렸어. 제아무리 10살의 어린 허니라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이대로 간다면 범블비가 저 남자에게 끔찍한 짓을 당할 것도 알았지. 하지만 온 몸이 굳은 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런 허니를 보며 범블비가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외쳤어. 주춤주춤 거리던 허니는 결국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범블비에게 등을 돌렸어. 그리고 범블비를 두고 혼자서 도망쳤지.
겁쟁이
25
고개를 숙인 허니가 흘끔흘끔 클리프를 올려다봤어. 마치 잘못을 하고 벌을 기다리는 아이 같았지. 허니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끔찍했어. 가족을 두고 도망가다니. 유일한 피붙이를 버리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짐승도 그러지는 않을텐데. 허니는 클리프도 자신과 똑같은 반응을 하리라고 생각했어. 매칭인 센티넬이니 조금 다정하게 말해줄지는 몰라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리라고 여겼지. 왜냐면, 정말로 허니가 잘못했으니까. 허니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래서 허니는 클리프가 조심스레 자신을 꼭 껴안아 줄 때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어.
“허니, 가장 중요한 걸 까먹었잖아.”
“내가요…? 뭘요…?”
“너도 그때 고작 10살밖에 안 됐어.”
10살, 아직 옷장 속에 사는 괴물을 믿을 나이. 가이드를 전문적으로 노리는데다 가이드인걸 알아볼 수도 있었다면 불법센티넬 집단일 가능성이 컸지. 일반인이여도 가능성이 없는 마당에 그런 집단에 붙잡힌 어린아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 당시에 허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짧은 두 다리로 열심히 도망치는 것 뿐이야.
"허니, 그럼 네 동생이 어떻게 살았을까?"
"네?"
"잘 생각해봐. 범블비는 어떻게 거기서 탈출할 수 있었지?"
클리프의 질문에 허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어. 범블비는 탈출하지 못했어. 그래서 허니대신 피투성이가 되어 구급차에 실려갔지. 허니의 대답에 클리프는 그러면 구급차가 어떻게 그 창고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 물었어. 그리고 그제서야 허니는 잠가뒀던 기억의 문을 풀었지. 곰팡이 냄새가 나는 낡고 허름한 창고를 둘러싼 수십대의 경찰차와 구급차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싸이렌 소리와 눈이 부신 붉은 빛. 그 사이에 새하얀 침대를 붉게 물들이던 범블비.
"허니, 누가 경찰차를 불렀어?"
"내, 내가요. 내가, 달려가서..."
클리프는 치마에 가려지지 않은, 이제는 육안으로도 알아보기 힘들어진 옅은 흉터들을 손끝으로 더듬었어. 맨 다리에 닿는 낯선 온기에 허니는 움찔 다리를 떨었지만 클리프의 손을 제지하지는 않았지. 센티넬인 만큼, 누구보다도 전장을 많이 뛰어다녔던 S급의 센티넬은 만큼 클리프는 상처를 구별할 줄 알았어. 그리고 귀찮을 정도로 좋은 눈은 이미 세월에 쓸려가 희미해진 가이드의 과거까지 더듬어 볼 수 있었지. 지금도 이렇게나 작고 여린데, 까마득하게 어린 그 시절에는 얼마나 조그맣고 연약했을까?
작은 발로, 짧은 다리로, 조그만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도, 토할듯이 숨이 차도, 비탈길을 수십번 넘어지고 굴러서 다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도, 달렸겠지. 그래서 이렇게 흉터가 남았을거야. 클리프는 제리에게서 받았던 허니의 앨범들을 차근차근 머릿속에서 되짚어봤어. 당장 초등학교 때의 사진을 보더라도 허니는 짧은 옷을 입질 않았어. 허니가 맨 다리를 드러낸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였지. 그제서야 겨우 흉터들이 아물었으니까. 그정도로 다리가 엉망진창이었으니까. 그렇게되도록 그 때 달렸으니까. 범블비를 구하기 위해서. 피로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달려서, 경찰서에 도움을 구했지. 그게 어린 허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그래, 맞아. 우리 아가씨는 한번도 도망친 적이 없어."
결국 허니는 클리프의 품 안에서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지.
26
그리스 신화를 따르자면, 태초에 사람은 두개의 머리, 네개의 팔과 다리를 가졌다고 해. 그러나 제우스는 그들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을 둘로 갈라버렸어. 그리고 평생동안 자신의 반려를 찾아 헤매도록 만들었다지.
두개였던 머리가 하나로, 4개였던 팔과 다리가 2개씩, 당연히 4개였던 눈도 2개로, 20개였던 손가락과 발가락도 10개씩으로 나눠졌겠지. 그렇다면 하나뿐인 심장은 어떻게 됐을까?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나, 후대의 사람들은 심장을 가진 쪽을 ‘가이드’ 라고 부르기로 했어.
27.
제시는 한동안 범블비를 어디에 써야할지 고민했어. A급 센티넬이 발 밑에 차고넘치는 제시에게 C급 센티넬인 범블비는 정말 쓸모없었거든. 그런데 또 데리고 있긴 해야하니까, 귀찮은 짐덩이나 마찬가지였지. 꽤 오랜시간동안 고민하던 제시는 결국 범블비를 그냥 옆에 붙이고 다니기로 했어. 일단 명목상 경호원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닥 많을걸 바라지도 않았지. 오히려 죽으면 곤란하니까 앞에 나서지도 말고 심지어 근처의 다른 센티넬들에게 범블비를 지키라고 까지 했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제시의 명령에 센티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진 못했지만 제시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복종할 수 밖에 없었지.
한국 지부 센터에 그 제시 제임스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은 전부 숨을 죽였어. 제시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센터장과 그의 아들을 바라봤지. 솔직히 제시는 제리가 용캐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창백하게 질린 저 표정을 보고는 관심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지. 바로 옆에 본부 소속의 회복계 센티넬이 황홀하다는 얼굴로 제시를 바라보고 있었어. 예상했던 일이지만 썩 기분이 좋지도 않아서 제시는 다시 무의미하게 시선을 굴리고 앞으로 걸어갔지. 가끔은 죽음이 자비일 때도 있고, 제리는 그걸 아주 좋아하거든.
제시는 굳이 뒤를 돌아보지도, 입 밖으로 무언가를 말하지도 않고 그저 손을 조금 올려 손가락을 까딱였어. 그러자 뒤에 있던 센티넬들이 알아서 센터장과 그의 아들을 끌고 따라갔지. 형식상으로 만들어진 협상테이블에 앉은 둘은 시가를 물고 있는 제시와 그 뒤에 서있는 범블비를 흘끔거렸어.
센터장은 그저 주위를 살피느라 그런 것 뿐이었지만, 그의 아들은 어째서인지 꽤나 한참동안 범블비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제시는 살짝 옆으로 고개짓을 했어. 그러자 곁에 있던 A급 센티넬이 아들의 목을 억지로 꺾어서 다시 제시를 보게 만들었지. 뚜둑 거리는 살벌한 소리와 비명소리가 회의장에 울려퍼졌지만, 그런걸 신경쓰는 이들은 적어도 이 공간 안에는 없었어.
"그래서, 뭐가 필요하다고 했지?"
센터장은 제시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멍청했어. 센터장은 이대로 한국이 무너진다면 북한과의 관계가 위험해진다며 자신의 필요성을 주절주절 늘여놓았어. 제시는 아까와 변함없는 얼굴로 재떨이에 시가를 톡톡 두들겼지. 제리에게는 그러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사람처럼 의자에 앉혀주고 굳이 질문까지 해줬더니 제시가 만만하게 보였나봐. 제시는 잠시 제 뒤에 있는 범블비에게 시선을 줬다가 이내 다시 앞을 바라봤어. 아직 교복도 안 벗었으니까, 고문실에 데려가기엔 다소 이르지. 괜히 망가뜨려서 클리프에게 한소리 들을지로 모르거든.
"끌고 가."
숨만 붙여놨다가 깔끔하게 만들어서 데려오라는 제시의 명령에 센티넬들이 일사분란하게 센터장과 쓰뤡이를 끌고갔어. 여전히 황홀하다는 얼굴로 제시를 바라보는 화복계의 센티넬에게 잠시 시선을 줬던 제시는 제 파장을 손에서 굴리며 조금 고민했어. 그러나 찰랑거리는 물소리에 곧바로 옆을 바라봤지. 범블비가 제시의 시가를 물이 반쯤 들어있던 페트병에 집어넣고 있었어. 그리고 페트병을 살짝 흔들어서, 시가의 필터까지 넘보고 있던 불씨를 껐지.
그 공간에 있던 모두가 숨을 죽였어. 제시가 가만히 범블비를 바라보는 와중에도 범블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재가 섞인 물이 든 페트병을 농구라도 하듯이 멀리 던져서 쓰레기통에 쏙 집어넣었지. 사격이 능력이라더니, 조준이 되기만 하면 손에 든 건 아무거나 상관없나봐. 범블비는 다시 뒤를 돌았다가 제시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당황한 눈치였어. 그리고 제시가 뭐라고 말 하기도 전에 알아서 무릎을 꿇고 제시를 올려다봤지. 딱히 생각없이 그자리에서 곧바로 앉은 탓에 벌어진 제시의 다리 사이에 자리잡았어. 제시는 물에 젖은 시가를 재떨이에 버리며 묘한 눈으로 범블비를 바라봤어.
"왜 그러지?"
"내려다 보는걸 싫어하잖아."
새카만 눈동자에 제시가 온전히 비쳐보였어. 마치 거울같은 눈동자에 제시는 범블비의 눈을 하염없이 바라봤어. 희한하지. 하는 짓은 하나같이 거슬리고, 묘하게 어리숙한데, 이상한 곳에서만 눈치가 빠르고, 그런데 행동의 당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모순적인데, 왜, 이렇게,
"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상념을 깨는 잡소리에 제시가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봤어. 방금전과 똑같이 몸에 이상은 없지만 어째서인지 거품을 물기 직전인 센터장과 쓰뤡이가 센티넬들의 손에 끌려나오고 있었지. 둘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썼어. 그러면서 제시에게 용서해달라며 빌고 있었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는 무엇에 대해 반성해야 하는지조차 담겨있지 않았어.
물론 제시도 딱히 그들이 반성을 할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어. 더욱이 제시는 정신과의사도 아니거든.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제시는 다시 턱짓을 했어. 그러자 센티넬들은 고개를 한번 숙인 후 그들을 끌고갔지. 회복계의 센티넬이 또 제시를 뚫어져라 바라봤어. 센티넬의 시선이 제시에게 고정되는거야 당연한 일이지. 물론 한평생 저런 시선을 받아오던 제시지만, 저 욕망어린 시선은 언제나 제시를 좀먹어. 제시는 다시 손끝에서 가이딩을 흩뿌리며 망설였어. 회복계열의 센티넬은 드물어. 게다가 본래는 제리가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었지. 곁에 둬서 나쁘진 않을거야.
센티넬의 시선이 잠시 아래로 내려갔어. 금방 돌아오긴 했지만, 그 짧은 순간을 제시는 놓치지 않았지. 그리고 위치상, 누구를 봤는지도 명백했고. 제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제 아래에 있는 범블비를 바라봤어. 그런데 범블비는 여전히 저기서 제시를 바라보는 센티넬을 응시하고 있었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제시는 다리를 꼬면서 구두의 끝을 범블비의 턱끝에 대고 저를 바라보도록 돌렸지. 테이블에 팔을 받치고 턱을 괸 제시는 아까와 다를바 없이 여전히 평온한 범블비의 얼굴을 보며 물었어.
"네 주인이 누구지?"
"당신."
"난 두 번 말하는걸 상당히 싫어한단다."
"... 제시 제임스 피트."
범블비의 대답에 제시는 웃었어. 제시의 웃음을 본 센티넬들은 더욱 더 숨을 죽이고 자세를 바로했지. 제시 제임스가 화를 낼 때도 웃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자리에서는 범블비밖에 없어보였지. 심지어 제시는, 센티넬이 허락도 받지 않고 일정 이상 제게 가까이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거든. 제시의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센티넬들은 곧 범블비가 방금 끌려간 센터장과 그의 아들 곁으로 가겠거니 생각했어.
"말로 해도 됐을텐데..."
"... 허락받지 못했으니까."
순간, 움직임을 멈춘 제시가 묘한 눈으로 범블비를 바라봤어. 그리고 범블비는 언제나처럼 제시의 질문에 답했지. 이름을 허락받지도, 말을 거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으니 범블비는 제시에게 말을 걸 수 없었어. 담배도 피지 않는 범블비가 시가커터를 들고 다닐리도 없고, 가위나 칼같은 낱붙이를 들고 제시의 곁으로 가는건 더 말도 안됐지. 그렇다고 물을 그대로 끼얹으면 짧아져버린 시가때문에 제시의 옷 소매까지 젖을거야. 그리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제시를 방해하게 되겠지.
그래서 범블비는 나름대로 생각해서 최선의 방법을 실행했어. 물론, 예민한 제시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리도 없었지. 그리고 범블비가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던 다른 센티넬들의 의도 또한, 모르지 않았어. 그래서 제시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어보이는 범블비의 눈을 보고는 웃을 수밖에 없었어.
시가가 타들어갈수록, 불씨가 제시의 손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기대했을거야. 화상을 입고 고통을 호소하는 제시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제 능력을 멋지게 선보이며 제시에게 환심을 살 미래를. 그래서 황홀한 가이딩과 함께 제시와 백년가약을 맺을 상상까지 했을까? 제시는 누구보다 센티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제시의 가이딩을 탐내는 센티넬들에게 제시는 그닥 중요하지 않아. 그들은 언제나 제시가 다치고 아파서 자신들의 품에 무너져내리길 원하지. 저기서 제시를 바라보고 있는 회복계의 센티넬처럼.
"Good boy."
제시는 마치 귀여운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범블비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었어. 범블비는 눈을 감고 투박하게 제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제시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지. 주위의 질투에 가득 차 살기어린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어. 꽤나 태평한 모습에 제시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지. 약간 장난기가 생긴 제시는 범블비의 턱을 살살 긁어주다 손 끝으로 가이딩을 흘려보냈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살벌하게 이가 갈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지.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었고, 그걸 노리고 한 행동이었지만, 제시는 웃지 못했어. 그리고 제시의 손이 멈추자마자 범블비는 곧바로 제시의 손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려 바닥에 피를 뱉어냈지.
"아, 옷 더럽혀서 미안해."
피가 흐르는 입가를 무의식적으로 옷소매로 닦던 범블비는 붉게 물든 셔츠의 끝자락을 보고는 제가 다 화들짝 놀라면서 어쩔줄 몰라하더니 제시에게 사과를 했어. 그럴수록 오히려 제시의 눈은 낮게 가라앉고, 입꼬리는 귀에 걸릴듯이 올라갔지. 센터에서 왜 굳이 범블비를 제시에게 넘겼는지 이제서야 눈치챘거든. 허니와 제시의 파장은 상극이니까. 심장이 만들어지던 순간부터, 한 배에서 나고자란 허니의 가이딩을 받아오던 범블비가 제시의 가이딩을 받을 수 있을리가.
센터는 아마 아무것도 몰랐던 제시가 호의로 베풀어준 가이딩에 범블비의 심장이 터져서 죽길 바랬을거야. 그래야 제시와 허니를 이간질해서 센터본부에 허니를 붙을어 맬 수 있으니까. 그러면 허니의 매칭인 클리프는 자동적으로 따라오고, 제리까지 매칭이 정해진 마당에 더이상 제시를 지켜줄 존재는 없었지. 그렇게 제시가 무너지길 바랬을거야. 물론 제시는 센터의 가벼운 수작질에 놀아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어. 다만, 꽤나 기분이 더러웠지. 과연 범블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까?
제시는 범블비의 목에 묶여있는 목줄을 끌어당겼어. 숨이 막혔는지 조금 쿨럭거리던 범블비는 제시의 힘에 이끌려 제시의 허벅지 위에 앉았지. 제시가 센티넬에게 저정도로 곁을 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 주위의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제시는 본격적으로 가이딩을 풀었어. 주위의 센티넬들이 황홀해하며 좋아하는 것도 잠시였지. 지나치게 과도한 가이딩에 센티넬들은 5분조차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기 시작했어. 심지어 일반인조차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지.
그런 가이딩을 정면에서 받고있는 범블비는 피를 토하지 않도록 입을 자신의 두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어. 제시는 그런 범블비를 한참 바라보더니 다시 목줄을 당겼어. 쇠사슬이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중심을 잃은 범블비가 제시의 품에 쓰러져 안겼지. 그 순간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불빛이 번쩍이기 시작했어. 제시는 안주머니에 넣어뒀던 긴급수신기를 꺼냈어. 제리가 폭주직전이니 빨리 돌아오라고 떠있었지. 매칭까지 찾은 센티넬이 왜 갑자기 폭주하려는걸까? 심지어 그 제리 레인이?
혀를 한 번 찬 제시는 가이딩을 갈무리했어. 심장이 터저 바닥을 뒹구는 놈들이 몇몇 있었지만, 제시는 그런 놈들을 신경쓰지 않았어. 전장에서 죽는 것보단 가이딩에 취해서 죽는게 배는 호사스러운 죽음이니까. 하지만 그 시체들 중에 순간이동 능력을 가졌던 센티넬이 섞여있을 줄은 몰랐지. 센티넬의 폭주는 시간싸움이야. 특히 정신계면 더욱이.
제시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나마 멀쩡한 편인 일반인들이 겨우겨우 센터에 연락을 취했어. 주위가 수습되고, 센터에서 센티넬들을 닥달해 포탈을 연결할동안에도 제시는 여전히 제 다리 위에 범블비를 올려놓고 상냥한 손길로 토닥이고 있었지. 포탈이 연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제시는 제 품에서 색색거리며 겨우 숨을 내뱉고 있는 범블비의 귓가에 속삭였어.
"아가, 내게 익숙해져야 할거란다."
범블비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손끝으로 훑은 제시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어.
28.
“설명을 들어야 겠는데?”
제리의 방 문 앞에 선 호넷이 팔짱을 끼고 제리를 노려봤어. 제리는 그런 호넷을 보며 수줍게 웃고 있었지. 덩치에 맞지 않는 작은 옷을 예쁘게 게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조신하게 보이기까지 했어. 지금 제리의 손에 들린 것이 호텔방에 있어야 할 자신의 속옷이 아니었다면 호넷도 분명 제리의 미소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겠지.
"우린 운명이잖아요."
제리가 수줍은 새색시처럼 웃으며 말했어. 남녀노소 백이면 백 전부 다 홀릴 미소였지. 허니랑 범블비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입을 헤- 벌리고 쳐다봤을지도 몰라. 하지만 호넷의 얼굴을 싸늘하기 그지없었지. 호넷의 차가운 눈초리에 제리는 긴장됐는지 손안에 있는 천조각을 조금 만지작거렸어. 그리고 다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우리는 매칭이니 동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지. 제리는 일처리가 꼬여서 설명을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슬픈 얼굴로 호넷을 바라봤어. 제리가 변명할수록 호넷의 눈은 더 가라앉기만 했지. 멋대로 짐을 건드리고 훔쳐간 것도, 체크아웃까지 끝내고 자신의 거처를 마음대로 정한 것도 전혀 반성할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어.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그럼 알 거 아냐."
태어나는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센티넬과 가이드는 보통 같은 나이에 발현해. 가령 센티넬이 10살에 발현했다면 가이드도 10살에 발현하지. 물론 오차가 꽤나 심하기 때문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매칭검사를 돌릴때 충분히 요긴하게 쓰이는 자료이긴 하지. 제리는 클리프와 마찬가지로 10살에 발현했어. 보통 발현은 2차성장시기인 15살쯤에 하는데 굉장히 이른 편이었지. 그에반헤 호넷은 15살에 발현했어. 그래서 그 영상에서 교복을 입고 있었지. 없는 경우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드문 사례야. 게다가 호넷은 가이드로 발현하고부터 지금까지 약 10년간 한국센터는 호넷의 등급과 매칭을 속였지.
"내가 널 믿지 못-"
쾅
호넷은 눈만 굴려서 제 옆에 있는 팔을 흘긋 봤어. 열려있던 문이 닫혀있었지. 센티넬 전용으로 만들어진 집이 아니었다면 분명 문뿐만 아니라 벽 전체가 무너졌을거야. 물론 저 두꺼운 문도 손모양으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버렸지만. 호넷은 평소와 같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어. 전등을 등지고 고개를 숙여서 긴 머리가 커튼처럼 내려오니 캄캄한 얼굴에 푸른 눈밖에 보이지 않았지.
"거짓말하지마."
사실 매칭검사지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해. 매칭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한번 인지하는 순간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데. 찢어진 영혼이 하나가 되기 위해 몸이 울부짖는데. 이 감각을 어떻게 눈치를 못채. 제리는 억지로 호넷의 눈을 바라보며 떨리는 숨을 애써 가다듬었어. 그럴리가 없잖아. 가뜩이나 한낱한시에 같이 살아 숨쉬지 못한 것도 짜증나고 서러워 죽겠는데, 이럴리가 없잖아.
"내가 거기서 얼마나 착취당했는지 전부 다 봤을거아냐."
결국 호넷을 가둬두던 팔을 풀어낸 제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방을 한바퀴 돌았어. 심호흡을 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려 애썼지. 호넷은 무감정한 눈으로 제리를 살폈어. 화를 참으려 애쓰는 모습과는 달리 파장은 미친듯이 날뛰고 있었지. 센터에서도 눈치챘는지 호넷의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리기 시작했어. 그러나 벨소리가 귀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곧장 제리의 손에 산산조각 났지. 핸드폰이였던 고철조각을 방 한켠으로 던져버리면서 제리는 애써 호넷을 이해해보려고 했어. 그럴수도 있지. 10년동안이나 속여왔는데. 괜찮아. 자기방어기제일거야. 무서워서 그래. 내가 잘 달래주면 돼.
"나야, 내가 당신 센티넬이야. 내가 매칭이야. 내가, 내가, 내건데..."
한번씩 숨이 끊길때마다 제리가 호넷에게 한걸음씩 다가갔어. 귀가 째지는 소리가 거슬려서 제리는 손목에 채워져있던 파장진단기계도 부숴서 핸드폰 옆으로 던져버렸지. 사실 지금까지 제리가 제정신을 유지한게 신기한 편이야. 자그마치 10년이나, 미등록 가이드도 아니었는데, 심지어 딴새끼한데 매칭이라고 붙여줬다니. 제리는 점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어. 호넷은 그런 제리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열려있던 캐리어를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지.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얼굴로 제리를 보며 말했어.
"나를 지 소유물인줄 알고 멋대로 다루는 것도, 마음에 안 들면 힘부터 쓰려는 것도."
"아, 아냐, 난, 난, 아니에요."
"그새끼랑 전부 똑같은데, 내가 어떻게 널 믿어."
그 말을 끝으로 호넷은 캐리어를 질질 끌고 방 밖으로 나갔어. 제리는 호넷을 붙잡고 싶었지만 심장이 난도질 당한 느낌에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자리에 주저앉아버렸지.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제리도 알고 있었어. 머리로는 분명 알고 있는데 몸이 멋대로 움직였지. 그 안에는 안일한 마음도 살짝 섞여있었지. 매칭이니까, 내가 구해줬으니까, 이정도는 허락해줄거라며. 바보같게도 그런 방만함에 호넷에게 분노를 사버렸지. 매칭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거렸어. 이윽고 제리는 엉엉 울기 시작했지. 아이처럼 잘못했다고 빌고 애원해봐도 이미 떠난 호넷은 보이지 않았어.
29
"상황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설마 폭주 직전이라고 도망쳐나온건 아니겠지."
맞다고 그러면 멱살잡고 다시 던져넣을 낌새였어. 제리는 그동안 매칭은 커녕 파장이 10%이상 맞는 가이드가 없었어. 가이딩을 하려면 적어도 파장이 50%까지는 맞아야 하는데. 제시와 파장이 30%언저리라도 맞은게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 탓에 제리는 보통의 센티넬이라면 차라리 자살을 택할 정도로 끔찍한 나날을 보내왔어. 하지만 제리는 단 한번도 폭주의 전조증상을 보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매칭까지 생긴 지금에서야 갑자기 폭주를 하다니. 원인이 너무 명백해보였지.
나름 동생을 아끼는 클리프와 제시가 살기어린 눈으로 호넷을 바라봤어. 범블비는 제시의 곁에서 호넷을 바라보다 눈을 느리게 한번 깜빡였어. 범블비가 자신을 뚫어져하 쳐다보자 시선을 느낀 호넷도 범블비를 바라봤지. 무언가 말을 하리라 생각했던 호넷이 그저 아무말 없이 범블비를 바라보자 둘의 시선교환에 제시는 미간을 좁혔어. 어째서인지 친하다고는 알고 있지만, 이제 남의 것을 탐내면 안될텐데. 제시가 못마땅하게 호넷을 바라봐도 호넷은 그대로 눈하나 깜빡 안하고 둘을 보며 입을 열었어.
"내가 납치범에게까지 상냥해야 해?"
물론 제시와 클리프가 화난만큼 호넷도 엄청 많이 화가 난 상태였어. 장유유서의 나라에서 나고자라 당연하게 붙이던 존대도 빼먹을 정도였지. 사실 누구라도 그렇게 사전동의도 없이 멋대로 체크아웃 당해서 호텔에서 쫓겨난 후에 억지로 차에 태워져 집 앞까지 옮겨지고나서 문을 열어봤더니 자기 속옷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남자를 보고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을거야. 하지만 호넷은 제리의 형인 둘이면 모를까 진압부대인 수많은 센티넬들 앞에서 떠벌릴 생각은 없었어. 그래도 체면이란게 있잖아? 심호흡을 하며 머리를 식힌 호넷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며 클리프에게 물었어.
"원래 저렇게 울보에요?"
"뭐, 그렇긴하지?"
클리프가 눈을 한번 굴리며 생각해보더니 제시에게 동의를 구하며 답했어. 제시도 시가를 태우며 몇십년전의 어린시절을 회상해봤지. 제리는 어릴때부터 소유욕이 무지막지하게 강했어. 분명 건드리지도 않는 인형인 것을 확인하고 클리프가 쿠션으로 쓰겠다며 집어올리는 순간, 집이 떠나가라 빼액 소리를 질렀으니까. 그게 처음으로 제리가 능력을 발현한 순간이었지. 심상치않은 파장에 기겁을 하고 달려나온 센터직원들은 자기 인형을 뺏어가려 했다며 엉엉 우는 10살짜리 애기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을 정도였어.
거기까지 떠올린 제시는 이내 알만하다는 듯이 호넷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지금은 멀쩡한척 가죽 하나를 둘러쓰고 있지만 속의 내용물은 변함없었지. 그런 놈이 한평생을 기다려온 매칭을 거의 10년동안이나 빼았겼었다니. 제정신이 아닐만도 했지. 사실 같은 입장인 클리프도 딱히 제정신은 아니거든. 호넷이 한숨을 푹 쉬자 클리프와 제시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저는 이제 들어가볼게요."
"미안해, 애를 오냐오냐 키웠더니 좀 버릇이 없어."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선 넘으면 가차없이 찍어누를 사람이 하는 입발린 소리에 범블비가 어이없다는 듯이 클리프를 쳐다봤어. 호넷 또한 마찬가지였지. 신체계열 센티넬중에서 동물과 관련된 센티넬이, 심지어 사자가 서열관리를 소올히했다? 지나가는 개가 웃고 가겠어.
물론 본인 나름으로 정말 제리를 봐주면서 키운 클리프는 조금 억울했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진 않았어. 제리가 아직 어릴때, 클리프는 전장을 뛰어다니느라 좀 바빴거든. 정신계 센티넬이라 요긴하게 부려먹으려는 센터를 막기위해 뛴 전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느라 바빠서 정작 동생에게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가르칠 시간은 없었지.
"우리가 아니라 센터가 어화둥둥 키웠지."
제시가 설명을 덧붙이자 둘 다 그럼 그렇지하며 고개를 돌렸어. 파장이 많이 불안정하긴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폭주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어. 센터특수부대는 망설였지만 클리프와 제시가 명령하자 따를 수 밖에 없었지. 어차피 제리가 정말로 폭주하더라도 그들은 사실상 민간인 보호 외에는 짐일 뿐이었으니까. 집 앞이 횡해지자 호넷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는 캐리어를 잡고 몸을 돌렸어. 그리고 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지.
덜컹
"...응?"
덜컹덜컹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문을 잡아당긴 것치고는 문은 너무 두껍고 단단한 잠금장치로 잠겨있었지. 밖에있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몇번 더 문을 당겨보고 심지어 문을 두들겨봐도 문은 열릴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어. 생각해보면 이 육중한 문 너머로도 울음소리가 들려올때부터 알았어야 하는건지도 몰랐지. 머쓱한 나머지 호넷은 괜히 심술을 부리며 발로 땅바닥을 쾅 내려찍었어.
"아, 진짜 눈치도 더럽게 없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제리의 평가에 제시와 클리프는 껄껄 웃기만 했지.
30.
결국 클리프가 문을 부수고 나서야 호넷은 다시 집에 들어갈 수 있었어.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쏙 들어간 울음소리에 호넷은 마치 들으라는 듯이 거하게 한숨을 푹 쉬었어. 그런데도 여전히 방 안쪽에 있는 제리는 머리카락 한올조차 보이지 않았지. 본래 폭주 직전의 센티넬이라면 매칭 가이드의 향만 맡아도 제정신일 수가 없는데말야. 호넷은 간간히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집 안을 조금 훑어보고는 내가 애를 키운다느니 뭐라느니 꿍얼거리면서 제리의 방 문 앞에 섰어. 원래는 그냥 문을 열어보려고 했는데, 그러면 제리에게 노크도 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 줄 것 같았지. 잠시 고민한 호넷은 똑똑 문을 두들겼어.
"다 울었어?"
"..."
"아무말 안하면 나 들어간다."
"..."
제리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허니는 그대로 문 손잡이를 돌렸어. 부드럽게 돌아간 손잡이는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방 안의 모습을 보여줬지. 화풀이라도 했는지 약간 어질러져 있긴 했지만, 폭주직전의 센티넬이 있는 공간이라고는 믿기 힘들정도로 방은 깔끔한 편이었어. 그리고 그런 방 구석에 제리는 그 큰 몸을 둥글게 말고 호넷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지. 누가봐도 영락없이 삐진 5살짜리 애기같았어.
하지만 파장이 불안정한건 또 사실이라, 호넷은 잔잔하게 가이딩을 풀었어. 본래 가이딩의 메뉴얼에도 적혀있기도 했지. 가끔, 폭주중인 센티넬은 이성을 잃고 가이드조차 못알아보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 방사가이딩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줘야 하거든. 보통 그러면 날뛰던 짐승들은 가이드를 향해 뛰쳐오는데, 제리는 아직도 호넷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지. 하지만 가이딩은 다른 센티넬들처럼 탐욕스럽게 집어 삼키고 있었어. 어느날엔가, 삐진 허니가 문 앞에 뒀던 사과를 아작아작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호넷은 웃음이 나오려던 것을 참느라 조금 애썼어. 그래도 운명이긴 운명인가봐. 저런 덩치 큰 남자가 귀여워보인다니.
호넷은 능숙하게 가이딩을 조절했어. 그리고 제 가이딩으로 마치 제리를 껴안듯이 폭 제리를 둘러싸맸지. 호넷의 가이딩이 자신에게만 집중되자 그제서야 제리가 훌쩍거리면서 뒤를 돌아봤어. 얼마나 울었는지 벌써 눈가도 붉고 코 끝도 조금 빨갰어. 촉촉하게 젖은 파란 눈동자를 보자 호넷은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단단히 각오를 다져야 했지. 원래 센티넬은 초반부터 선을 명확하게 정해두지 않으면 위험했어. 특히 제리같은 정신게 센티넬은 까딱 잘못하면 가이드가 센티넬에게 휘말려서 자아가 없어지거든.
"계속 그렇게 말 안 할거야?"
"...잘못했어요."
축 쳐진 모습은 마치 엄마에게 혼난 10살짜리 아이같았어. 그때쯤에 발현을 했다니까, 심지어 정신계. 어지간한 어른들도 제 맘대로 주물럭거렸을거고, 심지어 형제 셋이서 힘을 합치면 위험하니 어떻게든지 찢어놓느라 뭘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도 없을거고. 그러니 몸은 커져도 여전히 속 알맹이는 10살짜리 아이 그대로인거겠지. 원래라면 뭘 잘못했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반성문이라도 쓰기 전까진 눈도 마주치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어렴풋이 제리에 대해 짐작한이상 호넷도 강하게 나갈 수 없었어. 결국 호넷은 한숨을 쉬며 두 팔을 벌려 제리를 꼭 안아줬지.
"다음부터 그러면 정말 화낼거야."
"웅..."
그리고 이 광경을 열린 문 너머로 지켜보던 클리프, 제시, 범블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서슬퍼런 눈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제리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어. 그 짧은 시간에 계산을 전부 마쳐서 호넷의 약점을 파고든게 뻔히 보였거든. 애초에 제리도 숨길 생각을 안했고.
제리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아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범블비는 가만히 눈을 느리게 깜빡였어. 혼자 결론을 내린 범블비는 옆에 있는 클리프와 제시가 수상하게 바라보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어. 알려줄까 했지만 아무래도 모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 그래서 범블비는 언제나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기로 했지.
인물정보
이름: 허니 비
가이드
등급: S
소속: 센터 본부
가족관계: 범블 비
매칭: 범블 비, 클리프 부스 피트
담당센티넬: 클리프 부스 피트
특이사항: 폭주 가능성이 있음. 쌍둥이와 떨어뜨려 놓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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