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5142427
view 2007
2023.05.28 02:03
하나는 그때 그때 최신 기종으로 맞춰서 바꾸는데 다른 하나는 진짜...개오래된, 남들이 보면 그거 전원은 켜져요? 할 정도로 유물이 된 핸드폰 하나인 거.

그거를 어딜 가나 애지중지 가지고 다니고 먼젓번엔 평소 사용하는 핸드폰 꺼내려다 주머니에서 그 오래된 폰이 걸려서 함께 바닥에 떨어졌는데 후자를 잡고 전자를 버려서 사용한지 이제 2개월 된 최신 핸드폰의 액정을 개박살 낸 적도 있는 거임..

백호군단 만날 때마다 그거 대체 왜 아직도 가지고 다니냐고 이젠 좀 버려라, 너 몇살인지 티낼 일 있냐, 그런 건 노구식이나 어울린다, 잔소리하는데도 됐다며 니들 폰 기스난 거나 신경쓰라고 일축하겠지. 백호는 그냥 호열이가 가지고 다니는 이유가 있겠거니- 어림짐작하는데 궁금하긴 해서 술 마실 때도 슬쩍 떠보지만 양호열 죽어도 얘기 안 해주고 실실 웃기만 해.

그날도 오랜만에 백호군단 모여서 거하게 한잔씩들 걸치고 호열이 어김없이 오래된 폰 습관적으로 잘 있나 확인함.

"눗, 호열아! 너 그걸 아직도 들고 다니냐?"
"그러게.. 그렇게 돼버렸네."
"그 핸드폰 나온지 10년이 넘었다. 대체 거기 뭐가 있어서 그르냐."

또, 또, 양호열 사기 치는 면상으로 넘어가려 한다고 대남이가 궁시렁 거리지만 호열이 이번에도 그냥 웃고 말지 안 가르쳐줘! 그걸 가만히 두고 볼 강백호가 아님. 알딸딸 취기도 올랐고 간만에 너무너무 반가운 친구들 만났고 저 꼬라지 본 지 자그만치 10년인데 이제는 이유 알 때도 안 됐나. 유심~히 양호열이 핸드폰 가방 안에 다시 넣는 거 보다가 코트 위에서 공 채갈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쑉 핸드폰 뺏어감. 호열이 너무 빨라서 반응도 못 하고 어어!?!?!?! 강백호!!!!!!! 함서 뒤늦게 손 뻗는데 아 2m 넘는 농구 선수가 벌떡 일어서서 까치발까지 들고, 팔 천장에 닿을 정도로 뻗어서 핸드폰 전원 키고 있음.

옆에서 호열이가 욕을 하든, 백호군단이 양호열 애쓴다며 백호 응원하든 무시 까고 전원 켜진 핸드폰 들여다 보는데 일단 겉 보기엔 평범해. 배경화면은 그냥 흰색에 현재 시간만 박혀있음. 제일 먼저 사진첩 들어가 보는데 사진첩에 사진이 딱 한장인 거야. 그것도 제대로 찍은 거 아니고 달리면서 찍기라도 한 건지 흔들려 가지고 보이는 건 어두운 까만색 배경에 흰색인지, 분홍색인지 모를 게 빛번짐처럼 스쳐있는 거. 가로등 아래에 있는 뭔가 같은데 백호는 당연히 감도 안 잡힘. 사진은 됐고 다른 건 없나 또 쓱쓱 찾아봐. 호열이는 이미 포기해서 백호 등짝이나 때리고 있음.

"아 돌려달라고 강백호~~ 아~~~~"
"술집에 모기가 있나. 간지럽다, 호열아."
"아~~~~~ 강백호~~~~!!!!!!!"

얼레? 이건 뭐지. 사진첩에 사진 한 장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음성 녹음 파일이 하나 있음. '14106' 이란 파일 이름으로.. 이거다. 야생의 감이 이거야 말로 양호열이 이 오래된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라고 말해주고 있었지. 장꾸 웃음 지은 백호는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파일을 틀었음.


[니들 어떻1₩&10@]
[하하하! 양호열 얼 빠진 얼굴 봐라. 얌마, 우리가 암만 그래도 친구놈 생일에 파칭코나 하러 가겠냐!]
[야, 용팔아. 녹음 하고 있지?]
[엉. 불러, 불러.]
[야, 잘 들어라. 강백호가 가위바위보에 져서 대표로 불러주는 거니까. 하하하하!]
[시꺼! 이 천재님은 노래도 잘 부르거덩?]


그리고 술집에 울러퍼지는 강백호가 앳된 목소리로 부르는 생일축하합니다 노래.. 호열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선 어휴 미친..이러고 주저 앉아버렸고, 백호군단은 오래된 기억 속을 헤매다가 백호의 생일축하합니다~ 한마디에 저들끼리 우하하하하 빵 터져서 웃어버렸지. 백호도 덩달아 쪽팔려가지고 괜히 죄 없는 호열이 멱살 잡고 탈탈 터는 거야. 너 나 놀리려고 이걸 10년 넘게 가지고 있었냐고ㅠㅠ

한바탕 추억 얘기로 소란스러워지고 백호는 토마토가 된 얼굴로 맥주 500을 원샷 때려버림...꿀밤 한대 맞은 호열이는 백호한테 그거 얼렁 지우고 그 폰 박살내버리라고 협박 받았지만 단호하게 하겠냐, 한마디로 거절하고 애들이 백호 500 원샷쇼에 박수 치고 있을 때 눈치 보면서 핸드폰 가방 저 깊숙한 곳에 넣어버리는 거야. 양호열은 죽어도 그 녹음 파일을 지울 수 없었어. 백호가 암만 협박을 하고, 부탁을 하고 해도.. 그것만큼은..

백호의 생일 노래 때문에 다들 정신이 나가서 못 들었겠지만 그 녹음 파일은 사실 뒷부분이 더 남아있었고, 그건 양호열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늘 듣곤 하는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이었거든.



[호열아, 널 만난 건 진짜 내 인생 최고의..뭐라더라, 야 용팔아, 그걸 뭐라 그러지? 운이 열라게 좋은 거!]
[뭐? 대박?]
[아니, 그거보다 더 멋진 느낌 나는 단어 있잖냐!]
[더 멋진 거? 그런 게 있나?]
[아- 용팔돌팔, 도움 안 되네!]

그러고 용팔이랑 백호가 좀 투닥거리다가, 호열이가 넌지시 그 단어를 알려줘. 그러면 백호는 마치 어린애가 처음 듣는 단어를 몇번이고 반복하는 것처럼 그 말을 똑같이 따라하다가 히히, 작게 웃는 소리를 내더니,



[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양호열! 싸랑한다!]



강백호 징그럽게 무슨 소리냐며, 저거 어제 차이더니 이젠 호열이한테까지 저런다면서 대남이랑 구식이가 웃는 소리를 끝으로 파일은 뚝 끊기지만 호열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걸 또 듣지. 잠이 오지 않고 문득 가로등 아래에 핀 벚꽃이 눈에 들어왔던 날이면 늘 그걸 듣다가 웃으면서 잠에 들어, 양호열은. 그 구식 핸드폰에는 그 날의 모든 감정이 버튼 하나, 렌즈 하나에 마저도 스며 들어가 있는 거 같아서 버리질 못했던 거지.

누군가에겐 사소하고 사내 자식들끼리 징그러운 말 주고 받는 그런 흔한 생일 축하 멘트겠지만 진짜 그거 하나를 못 버려서 여즉까지 핸드폰 2개 들고 다니는...양호열이 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