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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02:04
확실히 신경 많이 쓰고 있는 건 맞음
하지만 동시에 한심하고 짜증스럽다고 생각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는 거 같음 ㅋㅋㅋㅋ 근데 그게 백호의 퍼포먼스 문제라기보다는 백호 성향이 마음에 안들기 때문인거 같음 ㅋㅋㅋㅋ

백호는 좋게 말해 타인의 기대(소연이)와 소망(치수와 준호)에 부응하겠다고 마음 먹을때 제일 출력이 잘나오고 거칠게 말해 소연이한테 잘보이고 남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하는데 태웅이처럼 기복없이 전심전력으로 농구만 보며 살아온 애한테는 이 매커니즘이 정말 이해가 안갔던 거 같음 그 소질과 재능을 가지고 왜 저렇게 쓸데없는데 신경을 쓰지? 같은 의문이 항상 머리 한구석에 있는거 그냥 혼자 알아서 잘 하면 안되냐? 왜 꼭 그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여야만 하냐 이런 의문들 마음에 안드는 점들...

제대로 집중해서 하기만 하면 정말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는데 경기를 하다가도 애가 자꾸 중간에 딴 생각을 해. 딴 생각만으로도 정말 짜증나는데 태웅이 입장에선 그 내용도 유쾌하지 않음 ㅋㅋㅋ 그럴 순간이 아닌데 슛을 하고 싶어서 비효율적으로 덤빈다던가 같은 팀인데 자기를 꺾고 싶은 마음에 난데없이 상대편을 응원한다던가 ㅋㅋㅋ 그렇게 헛짓하다가 공격기회 날린다던가 ㅋㅋㅋ

근데 또 진짜 성의나 집중력과는 상관없는, 사람인 이상 누구나 한번은 할 법한 실수 이런 거엔 또 관대함 사실 관대하다기보다는 냉철하게 판단하는 거 같음 얘가 패스 한번 잘못했다고 질 싸움이었으면 어차피 져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였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 태웅이는 백호라는 선수의 재능과 잠재력과는 별개로 백호라는 인간은 항상 마음에 안들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이런 식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도 있고 이 자식이 어디까지 해낼지 진짜 궁금하기는 하거든 그리고 백호도 백호지만 태웅이 본인도 북산에 있으면서 자기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기는 함

난 이걸 능남전 이후에 느꼈는데 태웅이가 미국가고 싶다고 안센세 찾아갔을때. 얘가 뭔가 자기 내부의 균열을 인식하기는 했음 그리고 그 균열의 원인을 태웅이는 자기의 개인기량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음 이때 확실히 태웅이는 농구는 팀플레이라는 거, 팀의 에이스는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다 알고 있고 그걸 대단히 훌륭한 방식으로 실천도 하지만 정말로 완전히 100% 체화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 능남전 후반부에 자기가 윤대협을 막지 못했는데도 북산이 이겼는데 이게 태웅이한테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던 거 같음 말하자면 팀의 승리와 자신의 승리가 태웅이 내면에선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는 거지 솔직히 그렇게 분리시켜두지 않았으면 얘가 중학생때 약소부 버스기사의 예정된 패배의 나날들을 어떻게 버텼겠음

소년만화의 특성상 안센세는 속시원한 진단은 안내려주고 '너는 아직 윤대협을 이기지 못한다'라고 떡밥만 줌 윤대협은 윤대협대로 낚시꾼 아니랄까봐 '너는 원온원할때랑 경기할때랑 플레이가 똑같아'라고 또 떡밥만 줌 태웅이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름 안센세도 안알랴줌 그냥 애가 일본 최고의 고교선수가 되기 위해 매진하면서 미국가겠다는 생각을 일단 접은 거 같으니 이 단계에서는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고 내버려둠

그리고 태웅이는 풍전전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왔던 기량을 폭발시키고 명실상부 북산의 에이스로 자리잡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성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남 그리고 그 벽을 있는대로 들이박으면서 혼자 안센세와 윤대협이 진정으로 자기한테 알려주고 싶었던 게 어떤 건지 깨달음 여기까지가 1단계, 태웅이가 독자적인 동력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성장서사가 끝나는 시점임

그 다음에 태웅이는 백호를 보며 비로소 자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은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했지만 백호가 무의식적으로 고수해온 방식의 성장, 요란하고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며 불안정한 방식이 어느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확인함 타인의 기대와 소망을 위해 뛰는 자는 물러서거나 꺾일 수 없음 동력이 외부에 있거든 마음에 품고 있는게 자신의 소망만이 아니니까 나 한 사람은 몇번이고 좌절하고 꺾여도 안선생님과 소연이, 호열이랑 백호군단, 영걸이네 아무튼 북산 농구부원 전원의 마음이 다 꺾이지 않는 한은 그들의 기원을 등에 업은 백호는 절대로 꺾이지 않는 거지

그리고 그것을 보며 지금까지 너무나 견고하고 온전한 내면을 가졌기에 단 한번도 외부에서 동력을 구해본 적이 없는 서태웅이란 인간이 처음으로 자신의 호승심과 승부욕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소망을 위해 경기를 뛰겠다고 결심하고 코트 위로 돌아오겠다는 백호의 소원을 들어줌

그리고 팀은 필요했고 동료들에게 충실하기는 했지만 함께 성장할 동반자나 친구를 구한 적은 없었던 서태웅이 청국대라는, 너는 이제 네 벽을 뛰어넘어 한단계 성장했다는 객관적인 증표를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코트 위에서 추방된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백호를 찾아옴 그리고 아주 그 아이다운 방식으로 너는 나를 계속 따라와야 하고 나는 그걸 '기대'하고 있다고 말함. 그러니까 서태웅은 자기와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되는 인간유형, 시끄럽고 요란하고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고 타인의 언행 하나에 일회일비하는, 팔랑팔랑하지만 결코 연약하지는 않은 강백호라는 인간과 자연재해처럼 마주쳐서는 그 애의 소망을 받아주고, 이제는 자신의 소망도 그 애한테 얹어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임

서태웅이라는 보기 드물게 단단한 껍질을 가진 거목의 씨앗은 어쩌면 강백호라는 제법 극단적인 힘을 만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깨지지 않았을 지도 모름 이런 씨앗 중에는 2천년을 버틸 수 있는 씨앗도 있다고 하니 ㅎㅎㅎ 하지만 결국 싹을 틔우려면 껍질을 뚫고 나와야하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