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au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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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해서,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8주간 여러분과 전통 일식 요리 코스를 함께할 셰프 양호열입니다."

 

 

방금 막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의 얼굴을 확인한 정대만은 한 3초 정도 토끼눈이 되었다가, 그가 자기 소개를 하는 동안엔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 거 아니야? 그 양호열이?? 왜 여기에???

 

 

양호열. 몇 년 전 공중파에서 방영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순식간에 전 국민이 다 아는 스타 셰프가 된 청년. 준수하지만 약간 날티나는 외모와는 달리 그의 손이 만들어 내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정갈하고 섬세한 전통 일식이라서, 그 갭이 인기에 한 몫 했다나 뭐라나.

그러나 정대만의 머릿속 양호열은 여전히 그 시절 그 소년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NBA를 씹어먹고 있는 농구 선수 강백호의 절친한 친우이자 가족. 빙글빙글 웃으며 꽤나 자주 농구부 훈련을 구경하던 관람자. 그리고... 열등감에 난동 부리던 자신의 흑역사를 수습할 수 있게 도와줬던 조력자. 또... 그리고 또... '그 날'의 구원자.

 

 

 

하 시발... 쪽팔리게 만나도 하필 이런 곳에서.

 

 

 

대만은 머릿속으로 제가 수강 중인 신부수업의 커리큘럼을 되짚어보았다. 지금껏 진행된 다도, 자수, 담금주 만들기 등등의 과정은 전부 나이 지긋한 오메가 선생님들이 가르쳤었지.

이런 프라이빗한 오메가 전용 수업에 알파 강사는 잘 기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 애당초 팜플렛에 기재된 강사 정보랑 다르잖아! 원래 요리 파트는 권... 뭐시기 선생님이 가르친다 하지 않았나?

 

 

 

"권희진 셰프님께서는 예정보다 일찍 출산 휴가에 들어가셔서, 이번 기수 수강생 여러분들은 제가 대신 맡게 되었습니다."

 

 

 

마치 대만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어지는 호열의 설명으로 인해 이제 대만은 왜 제 눈 앞에 양호열이 서 있게 된 것인지 납득할 수 있었다. 아 물론 납득이 된다 해서 그게 달갑다는 뜻은 아니고.

젊고 잘생긴 알파 강사의 등장으로 인해 정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수강생들은 오히려 좋아 상태인 것 같았으나 대만은 아니었다. 그치. 절대 아니지... 세상 천지 어느 누가 전 애인을 신부 수업 선생님과 학생 사이로 재회하고 싶겠어. 음? 아닌가. '그런 사이'면 전 애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으려나. 그럼 뭐, 구 썸남?

 

 

 

"주차별로 진행되는 모든 클래스는 시연과 시식 순으로 진행됩니다. 오늘은 우선 첫 수업이니까 모든 일본식 가정 요리의 기반이 되는 베이스인 사시스세소(설탕, 소금, 식초, 간장, 된장) 먼저 다뤄볼 건데요ㅡ"

 

 

 

-

 

 

 

와 좆됐다. 귀에 하나도 안들어온다.

 

대만은 진지하게 이 클래스를 드랍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예비 시가에서 직접 등록해준ㅡ그것도 경쟁이 치열한ㅡ수업임을 상기하면 멋대로 중간에 탈주하는 건 그거 대로 상대 집안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마음에 갈팡질팡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만이 좋지 않게 헤어진 전 애인한테 가르침 받기 vs 예비 시가에 미움 받기 사이에서 저울질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어느 새 수업은 끝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ㅡ

네. 다들 수고하셨어요. 다음 주에 뵐게요.

 

 

제 양 옆의 수강생들이 부산스레 뒷정리며 인사를 나누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대만은 허둥지둥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래. 역시 지금 빨리 리셉션에 가서 수강 철회를 하는 게 낫겠다. 혹시 이 전까지 완강한 강의들에 한해서만이라도 수료증 같은 거 발급 안해주나?

 

 

 

"밋치, 오랜만이에요."

 

 

붙잡는 이 목소리만 아니었으면. 대만은 자신을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양호열의 목소리엔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있었으니까. 커다랗거나 걸걸한 목소리도 아닌데. 따지자면 오히려 나긋나긋한 편에 가까운데 대체 쟤는 어디서 저런 기백이 올라오는거야.

 

 

"시간 괜찮으면 잠깐 저 좀 볼까요?"

 

 

"어..? 어, 어어. 시간, 괜찮아. 나 원래 시간 많아."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게 된 대만은 지금 딱 혀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구 애인과 처음 나누는 대화를 이렇게 얼빵하게 시작하고 싶진 않았어.... 아 그냥 바쁘다고 할 걸 쓸 데 없이 이럴 때만 솔직해서는.

 

 

"그... 호열아 엄청 오랜만이다 우리. 그치? 거의 10년 만 아니냐?"

 

"대만군 졸업한 지 9년 7개월 되었으니까, 약 10년이 맞긴 하네요."

 

 

 

와 넌 또 뭐 그런 걸 그렇게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그러냐 무섭게.

 

 

"크흠. 큼. 양호열이 기억력 좋네...! 하. 하하."

 

"대만군 시간이 많다고 하니 그러면 우리 자리 옮겨서 대화할래요? 제 가게로 가요."

 

 

 

양호열의 가게라면, 하나미치(花道)...

 

 

 

"밋치. 우리 가게 한번도 와본 적 없죠? 나 없을 때도. 북산고 농구부 동창회 한다 하면 저희 가게에서도 꽤 자주 모였었는데, 그 때마다 밋치는 안오더라고요."

 

 

 

응..그렇겠지. 일부러 피했으니까.

 

 

 

"어쩌다 보니 매번 놓쳤네. 이야 이번 기회에 가게 되는구만..! 그나저나 너도 정말 여전하다. 백호 팬들 사이에서 가게 성지순례 오고 막 그러지 않냐?"

 

"아하하. 맞아요. 백호 팬분들이 오면 서비스 더 챙겨주죠." 

 

 

또 하나 더 있다. 양호열의 '여전한' 부분. 서글서글 웃으며 상대방을 빤히 바라보는 그 습관도 정말이지 한 치의 변화 없이 그대로구나.

 

 

"그럼, 갈까요? 제 차로 같이 가요."

 

"어...나도 차 가져왔는데."

 

"어차피 술 한 잔 할 거 아니에요? 괜히 대리 부르면 번거로워지기만 하니까 그냥 제 걸로 같이 이동해요. 이따 택시 태워줄 테니까."

 

 

음. 그건 그래. 아니 근데 우리 술 마시는 거 기정사실이야?

 

 

대만은 다소 떨떠름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없이 휘둘려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었다. 수업을 그만 두고 도망가기는 커녕, 이렇게 나란히 밀폐된 공간에 앉아서 아마도 또 밀폐된 공간일 곳으로 이동하게 될 줄이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양호열의 가게로 가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별 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온 이름 모를 어느 가수의 울먹이는 듯한 앳된 목소리만 차 안에 맴돌았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 그리고 네가 많이 줬던 행복들까지 ♬

잊지 않아. 잊지 못해. 잊지 않을 거야 ♪

 

 

 

 

-

 

 

 

 

"양-호-열 너... 내가 이 수업 듣는 거 알고 있었지? 명단에서 내 이름 봤지 너?"

딸꾹ㅡ

 

분명 자제하려 했는데. 새로 입고된 준마이 다이긴죠 중에 제법 괜찮은 게 있다며, 호열이 권하는 대로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어느새 대만의 눈은 풀리고 입은 칠칠맞게 벌어졌다.

 

 

"당연하죠. 수강생 정보 쯤은 다 알고 들어와요. 워낙 쟁쟁한 집안 고명 오메가들이 주로 듣는 수업이니까. 저는 원래 이런 클래스 진행은 안 하는데, 희진이는 제가 특별히 아끼는 사매라서요."

급하게 펑크낸 건이라 하도 당황해 하길래 제가 수습해주기로 한 거예요.

 

 

 

아 그러냐. 하긴 넌 원래 그런 애였지. 서늘하게 생겨서는 의외로 엄-청 다정해서... 제 영역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상냥했었지. 웬수 같은 시절의 문제아 선배가 저지른 사고까지 수습해 주었던 너인데 아끼는 후배가 치는 SOS 신호 정도야 외면할 리가 없겠네.

 

 

 

"그나저나 대만군은 어쩌다 신부수업까지 듣게 됐어요. 이거 대만군이 직접 신청한 거 아니죠?"

 

"당연하지! 시댁에서 공석 하나 생긴 거 어렵게 잡은 거라며 꼭 들으라고 잔소리를~ 잔소리를 그렇게ㅡ!"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무슨 시댁이에요. 아무튼 그럼 결혼한다는 그 집안이 호소카와?"

 

"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 아니다. 수강 결제 정보에 떴겠지 뭐."

야 그래도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는 마라. 아직 엠바고 걸려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대만은 고개를 푹 숙였다. 호열은 그런 그의 잔에 이번에는 술이 아니라 엽차를 따라놓았다. 이제 알코올은 충분히 들어갈 만큼 들어갔으니까.

 

 

"미츠이가랑 호소카와 가문이 왜 결혼해요? 뭐 정계에 연줄 필요한 일 있어요?

 

"글쎄. 우리 회사 경영 쪽으로는 나도 워낙 아는 게 없어서. 너도 알다시피 나야 내놓은 자식이잖냐. ㅋㅋ 계속 공놀이만 하면서 살았는데 가문 내부 사정에 대해 뭘 알 수 있겠어. 그래도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정계 연이야 뭐... 있으면 도움 되겠지. 없는 것 보다야 나을 거 아니냐."

 

"그렇구나. 호소카와 집안에서 대만군이랑 결혼할 법한 나잇대의 알파면... 천도형. 걔밖에 없는데."

 

"어어 도형이 응... 걔 내가 잘 알지."

 

"그래요? 그럼 걔 존나 망나니인것도 알아?"

 

술김에 아무렇게나 끄덕거리고 아무 것에나 이것저것 동의하던 대만의 고개가 돌아갔다. 대만은 풀린 눈에 애써 힘을 줘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뭐야.... 그걸 너가 어떻게 아냐?"

 

 

"밋치. 제가 운영하는 이 가게엔 사회 각계각층의 고위 인사들이 많이들 와요. 그러니까 이 식당은 여러 업계의 은밀한 소문이 가장 빠르게 흐르는 곳 중 하나죠."

 미츠이 가문 막내 아들 정대만군이 호소카와네 망나니에게 팔려간다는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엠바고 건 의미가 없네요. 이젠 삼류 증권사 찌라시에서도 언급되기 시작했다구요.

 

 

"뭐? 아이씨... 울 회사 전략기획실 뭐하냐 진짜... 이런 거 하나 새어나가는 걸 못 막고..."

내가 이래서 경영을 안배운거야ㅡ 똑똑한 놈들 모아 놔 봤자 뭐 제대로 굴러 가지를 않아요.

 

 

"억울하지 않아요? 천도형은 알파라는 이유로 결혼 직전이 되기까지도 이곳 저곳에서 몸 더럽게 굴리고 잘만 놀던데. 우리 대만군은 오메가라 수절중인가? 근데 의미 없잖아요 그 수절. 이미 나한테 진작 앞이고 뒤고 다 따였으니까."

 

 

"야 양호열... 너 미쳤냐?"

술은 내가 다 마셨는데 왜 고삐는 니가 풀리지?

 

 

 

"그러니까 밋치도 총각파티 하고 싶지 않냐 뭐 그런 소리죠. 우리 다른 건 몰라도 속궁합은 꽤 좋았었잖아."

내 모든 조건이 다 자격 미달이었어도, 몸만큼은 합격이었잖아.

 

 

 

 

슬램덩크
호열대만
호댐
 

 

배경이 일단 기본적으로는 일본인데 나 편한 곳에서만 멋대로 한국 이름 쓰니 개판이넼ㅋㅋㅋㅋ,,,,

호열이랑 대만이가 이동하는 차 안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은 아타라요의 10월 과묵한 너를 잊는다인데 내가 맨날 호댐 음방을 놓쳐서 신청도 못하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