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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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3 00:24
바야흐로 눈부신 5월이 다가왔다.
신록의 계절. 계절의 여왕.
그리고 또 하나.
꽃가루의 계절.
온 사방이 샛노란 꽃가루로 덮인 이 병아리색 세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알러지의 계절'이기도 하다.
"영수야!!"
대협의 목소리가 귀에 귀마개를 끼고 있는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을 따라 몸을 돌려 패스를 받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공이 손 안에 촥 감기는 감각이 아니라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 무거운 통증이 느껴진다.
"어윽..!"
"영수야, 괜찮아? 손, 손 줘 봐!!"
대협이 자신이 보낸 패스볼을 놓치며 그 충격에 꺾여 버린 영수의 오른손 두번째와 세번째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만지자, 영수가 아으으.. 하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너 오늘 하루 종일 이상해. 수업 중에도 멍하니 눈만 뜨고 있거나 졸더니, 연습 때까지 왜 이러는데?"
"...약."
"약?"
영수가 빨개진 눈을 깜박이며 코를 훌쩍였다.
"꽃가루 알러지 있다고, 나."
약기운에 내내 정신이 없다며 웅얼대는 영수의 손가락은 슬슬 붓기가 오르고 있었고, 정신이 혼미한 환자를 혼자 병원에 보낼 수는 없기에 덕규는 하는 수 없이 대협에게 영수의 보호자 노릇을 맡겼다.
혼자 힘으로는 걷는 것마저도 힘든지 휘청대는 영수를 거의 안다시피 부축해 온 병원에서 의사는 영수의 손가락을 살펴보더니 차트를 타닥타닥 작성하며 말했다.
"큰 부상은 아니에요. 손가락이 꺾이며 인대가 조금 늘어나고 근육이 놀란 정도니까 찜질 잘 해 주면 사흘 안에 붓기는 가라앉을 겁니다. 대신 꺾인 관절 부근 실핏줄 몇 개가 터져서 피멍이 들기 시작했네요. 며칠 간은 아플 테니 진통제 처방하고, 나가서 테이핑 받고 가세요."
의사의 말대로 피멍이 오르기 시작하고 부어오른 손가락은 보기만 해도 아파 보였지만, 영수는 테이핑을 하는 동안에도 잠깐씩 눈쌀만 찌푸릴 뿐 어딘지 감각이 영 둔해 보였다.
"안되겠다 영수야. 너 그 알러지도 어떻게 좀 하고 가자."
분명 이 건너편에 이비인후과가 있었을 텐데.
입 안으로 중얼거리며 영수의 어깨를 끌어안은 대협이 병원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제 막 바뀐 신호를 건너는 또다른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
해남의 교복이다.
게다가 저 정도 신장에 저 체격이라면 뒷모습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다.
"신준..."
준섭을 부르려던 대협은 먼저 길을 건너 방향을 꺾은 준섭의 옆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디에 들이받히기라도 했는지 턱 밑에 큼지막하게 거즈를 붙인 준섭의 왼팔은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왼쪽 교복 바지 무릎 부분의 작게 찢겨져 있는 틈새 아래도 역시 거즈가 대어져 있었고, 정강이 언저리까지 걷어올려진 바짓자락 아래로 붙은 반창고 주변엔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흡사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만 같은 모습의 준섭이 걸어들어간 곳이 외과나 정형외과가 아닌 자신들과 같은 이비인후과란 사실에 대협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영수를 이끌고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준섭의 뒤에 서자, 거울을 통해 대협과 영수를 알아본 준섭이 먼저 뒤를 돌아보며 아는 척을 했다.
"윤대협 아니야. 안영수도."
"어, 신준섭."
"너희도 병원이야?"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준섭은 따로 묻지도 않고 이비인후과가 있는 층을 눌렀다.
"다들 난리구나."
"응?"
"봄이잖아."
준섭의 한숨과 함께 열린 문 밖의 대기실은 아비규환이었다.
시장통만큼이나 복잡한 사람들 사이를 거쳐 겨우겨우 접수처까지 간 영수가 진료접수를 하는 동안, 대협은 아까 전 들어오자마자 발견한 무리들을 향해 다가갔다.
"정환 형, 울어요?"
대협이 공중화장실에서나 쓰는 타이어만한 두루마리 휴지를 옆에 끼고 눈물을 찍어내는 정환에게 묻자, 반대쪽 옆에서 휴지를 감아뜯은 수겸이 패앵 하고 코를 풀며 정환을 흘겼다.
"저 멍청한 게 꽃가루 알러지로 비염에 결막염까지 와서 약은 드셔 놓고선 준섭이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 졸음운전을 하다 넘어져서 애를 저꼴을 만들어 놨단다."
"응? 수겸이 형 목소린 왜 또..."
"알러지성 비염이 기관지염으로 옮겨왔겠지. 비염에 결막염에 기관지염 후두염 폐렴에 중이염까지 순번대로 골고루 해서 4월부터 6월까진 종합병원으로 유명한 김수겸이니. 너 지금 코 안쪽 다 헐어서 코피 터졌지?"
"지는 눈 짓물러서 피눈물 흘리고 있으면서."
툴툴대면서도 다리가 불편한 준섭을 위해 간격을 좁혀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던 수겸은 주머니에서 윙윙대는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것들이 매해 진짜..."
원래대로라면 꽥 소리를 지르려 했을 테지만 목이 다 쉰 탓에 바람새는 작은 쇳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수겸의 짜증에 휴지로 눈을 누르고 있던 정환이 킁 하고 코를 먹으며 웃었다.
"농구부에서 또 베팅했냐? 올해는 얼마야?"
"내가 12만원, 성현준이 15만원."
"누가 이겼는데."
"나. 현준이 나흘 동안 기침하다 어제 피토하고 조퇴했어. 오늘 결석. 덕분에 내가 이 모양으로 약심부름 하러 왔잖아.."
무슨 얘긴가 싶어 슬쩍 들여다 본 수겸의 전화기 액정엔 '농구부'란 단체 대화방 안에서,
[온갖 알러지 증상을 순차별로 3개월 내내 겪는 주장 vs 그 모든 증상을 동시다발적으로 3주동안 전부 다 겪는 부주장. 누가 먼저 다운돼서 병원 신세를 질까요?]
란 주제로 열띤 투표 및 베팅이 줄을 서 있었다.
접수를 마친 영수가 대협의 옆으로 돌아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두 눈이 퉁퉁 부어 개구리눈이 된 채 태섭의 손에 끌려온 대만 하며 아예 휴지를 뭉쳐 두 콧구멍을 다 틀어막곤 입으로 숨을 쉬느라 헥헥대는 백호의 등을 떠밀고 온 태웅 등 대협이 잘 아는 사람들이 속속 병원을 방문했다.
"꽃이란 게 무서운 거구나..."
예쁜 줄만 알았더니 속엔 무서운 걸 감추고 있었네.
꽃가루 알러지를 겪어 본 적 없는 대협은 새삼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며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제게 기대어 코를 훌쩍이는 영수를 꼭 끌어당겨 안았다.
대협영수 센코시
정환준섭 마키진
현준수겸 하나후지
태섭대만 료미츠
태웅백호 루하나
#슬램덩크
그리고 산왕공고.
바람이 불 때마다 허공에 샛노란 회오리가 보이는 가운데 운동장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실습용 안전고글과 필터 달린 방진마스크로 무장한 100빡빡이들이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이깟 꽃가루 따위에게 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최강 산왕의 힘.
신록의 계절. 계절의 여왕.
그리고 또 하나.
꽃가루의 계절.
온 사방이 샛노란 꽃가루로 덮인 이 병아리색 세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알러지의 계절'이기도 하다.
"영수야!!"
대협의 목소리가 귀에 귀마개를 끼고 있는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을 따라 몸을 돌려 패스를 받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공이 손 안에 촥 감기는 감각이 아니라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 무거운 통증이 느껴진다.
"어윽..!"
"영수야, 괜찮아? 손, 손 줘 봐!!"
대협이 자신이 보낸 패스볼을 놓치며 그 충격에 꺾여 버린 영수의 오른손 두번째와 세번째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만지자, 영수가 아으으.. 하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너 오늘 하루 종일 이상해. 수업 중에도 멍하니 눈만 뜨고 있거나 졸더니, 연습 때까지 왜 이러는데?"
"...약."
"약?"
영수가 빨개진 눈을 깜박이며 코를 훌쩍였다.
"꽃가루 알러지 있다고, 나."
약기운에 내내 정신이 없다며 웅얼대는 영수의 손가락은 슬슬 붓기가 오르고 있었고, 정신이 혼미한 환자를 혼자 병원에 보낼 수는 없기에 덕규는 하는 수 없이 대협에게 영수의 보호자 노릇을 맡겼다.
혼자 힘으로는 걷는 것마저도 힘든지 휘청대는 영수를 거의 안다시피 부축해 온 병원에서 의사는 영수의 손가락을 살펴보더니 차트를 타닥타닥 작성하며 말했다.
"큰 부상은 아니에요. 손가락이 꺾이며 인대가 조금 늘어나고 근육이 놀란 정도니까 찜질 잘 해 주면 사흘 안에 붓기는 가라앉을 겁니다. 대신 꺾인 관절 부근 실핏줄 몇 개가 터져서 피멍이 들기 시작했네요. 며칠 간은 아플 테니 진통제 처방하고, 나가서 테이핑 받고 가세요."
의사의 말대로 피멍이 오르기 시작하고 부어오른 손가락은 보기만 해도 아파 보였지만, 영수는 테이핑을 하는 동안에도 잠깐씩 눈쌀만 찌푸릴 뿐 어딘지 감각이 영 둔해 보였다.
"안되겠다 영수야. 너 그 알러지도 어떻게 좀 하고 가자."
분명 이 건너편에 이비인후과가 있었을 텐데.
입 안으로 중얼거리며 영수의 어깨를 끌어안은 대협이 병원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제 막 바뀐 신호를 건너는 또다른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
해남의 교복이다.
게다가 저 정도 신장에 저 체격이라면 뒷모습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다.
"신준..."
준섭을 부르려던 대협은 먼저 길을 건너 방향을 꺾은 준섭의 옆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디에 들이받히기라도 했는지 턱 밑에 큼지막하게 거즈를 붙인 준섭의 왼팔은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왼쪽 교복 바지 무릎 부분의 작게 찢겨져 있는 틈새 아래도 역시 거즈가 대어져 있었고, 정강이 언저리까지 걷어올려진 바짓자락 아래로 붙은 반창고 주변엔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흡사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만 같은 모습의 준섭이 걸어들어간 곳이 외과나 정형외과가 아닌 자신들과 같은 이비인후과란 사실에 대협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영수를 이끌고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준섭의 뒤에 서자, 거울을 통해 대협과 영수를 알아본 준섭이 먼저 뒤를 돌아보며 아는 척을 했다.
"윤대협 아니야. 안영수도."
"어, 신준섭."
"너희도 병원이야?"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준섭은 따로 묻지도 않고 이비인후과가 있는 층을 눌렀다.
"다들 난리구나."
"응?"
"봄이잖아."
준섭의 한숨과 함께 열린 문 밖의 대기실은 아비규환이었다.
시장통만큼이나 복잡한 사람들 사이를 거쳐 겨우겨우 접수처까지 간 영수가 진료접수를 하는 동안, 대협은 아까 전 들어오자마자 발견한 무리들을 향해 다가갔다.
"정환 형, 울어요?"
대협이 공중화장실에서나 쓰는 타이어만한 두루마리 휴지를 옆에 끼고 눈물을 찍어내는 정환에게 묻자, 반대쪽 옆에서 휴지를 감아뜯은 수겸이 패앵 하고 코를 풀며 정환을 흘겼다.
"저 멍청한 게 꽃가루 알러지로 비염에 결막염까지 와서 약은 드셔 놓고선 준섭이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 졸음운전을 하다 넘어져서 애를 저꼴을 만들어 놨단다."
"응? 수겸이 형 목소린 왜 또..."
"알러지성 비염이 기관지염으로 옮겨왔겠지. 비염에 결막염에 기관지염 후두염 폐렴에 중이염까지 순번대로 골고루 해서 4월부터 6월까진 종합병원으로 유명한 김수겸이니. 너 지금 코 안쪽 다 헐어서 코피 터졌지?"
"지는 눈 짓물러서 피눈물 흘리고 있으면서."
툴툴대면서도 다리가 불편한 준섭을 위해 간격을 좁혀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던 수겸은 주머니에서 윙윙대는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것들이 매해 진짜..."
원래대로라면 꽥 소리를 지르려 했을 테지만 목이 다 쉰 탓에 바람새는 작은 쇳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수겸의 짜증에 휴지로 눈을 누르고 있던 정환이 킁 하고 코를 먹으며 웃었다.
"농구부에서 또 베팅했냐? 올해는 얼마야?"
"내가 12만원, 성현준이 15만원."
"누가 이겼는데."
"나. 현준이 나흘 동안 기침하다 어제 피토하고 조퇴했어. 오늘 결석. 덕분에 내가 이 모양으로 약심부름 하러 왔잖아.."
무슨 얘긴가 싶어 슬쩍 들여다 본 수겸의 전화기 액정엔 '농구부'란 단체 대화방 안에서,
[온갖 알러지 증상을 순차별로 3개월 내내 겪는 주장 vs 그 모든 증상을 동시다발적으로 3주동안 전부 다 겪는 부주장. 누가 먼저 다운돼서 병원 신세를 질까요?]
란 주제로 열띤 투표 및 베팅이 줄을 서 있었다.
접수를 마친 영수가 대협의 옆으로 돌아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두 눈이 퉁퉁 부어 개구리눈이 된 채 태섭의 손에 끌려온 대만 하며 아예 휴지를 뭉쳐 두 콧구멍을 다 틀어막곤 입으로 숨을 쉬느라 헥헥대는 백호의 등을 떠밀고 온 태웅 등 대협이 잘 아는 사람들이 속속 병원을 방문했다.
"꽃이란 게 무서운 거구나..."
예쁜 줄만 알았더니 속엔 무서운 걸 감추고 있었네.
꽃가루 알러지를 겪어 본 적 없는 대협은 새삼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며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제게 기대어 코를 훌쩍이는 영수를 꼭 끌어당겨 안았다.
대협영수 센코시
정환준섭 마키진
현준수겸 하나후지
태섭대만 료미츠
태웅백호 루하나
#슬램덩크
그리고 산왕공고.
바람이 불 때마다 허공에 샛노란 회오리가 보이는 가운데 운동장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실습용 안전고글과 필터 달린 방진마스크로 무장한 100빡빡이들이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이깟 꽃가루 따위에게 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최강 산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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