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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22:13
대만은 농구로 꽤 인기가 있는 대학에 합격했어. 대학 생활을 막 시작하는 사람이 그렇듯 대만도 본격적인 술자리를 갖게 되었지. 물론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술을 과하게 마시지는 않았지만 원체 찾는 사람이 많아 꽤 많은 술자리에 참여하는 편이었어.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아 날씨가 좋았던 그 토요일도 그랬어. 남들이 들으면 기함하겠지만, 의외로 귀여운 후배인 태웅과 동네에서 농구를 하고 저녁에는 술약속이 있어서 돌아가야했어. 그렇기에 한 판 더를 말하는 태웅에게 오늘 저녁 약속 때문에 가야해서 무리라고 했지.

".. 술 마셔요?"
"응. 농구부원들이랑."
"술 약속 자주 있는거 같네요."
"왜, 나랑 더 있고 싶은데 못해서 아쉽냐. 나 인기 많아."

웃으며 거들먹 거린건 진담이 아니라 이제 친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후배에게 농담을 던진 거였어. 그럼 태웅이 평소 말투로 바보라고 한마디 하면서 농구 선수가 술 마시면서 몸 망친다고 한소리를 하고 그럼 자기는 많이 안마신다고, 내 몸 잘 챙긴다고 받으려고 했어.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다른거였지.

"네, 선배가 내가 못가는 곳에 안갔으면 좋겠어요."
"어, 뭐야 질투하냐"
그때까지도 대만은 농담조였어.
"네. 선배를 좋아해서 질투나요."
"어, 어..?"
"오늘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자기 할 말을 다 했는지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 후 떠나는 태웅이었어. 그 뒷모습을 보며 원래 하려던 대답인 '나 주로 앉아서 떠들지 많이 안마셔'라는 말은 밖으로 못나오고 속에서 흩어져버렸어.

그 이후 어떻게 3주란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어.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틈만나면 서태웅 생각을 하면서 보냈어. 원래도 수업을 잘 듣는 편은 아니었으나 한 동기는 대만의 상태를 보고 영혼이 빠져나갔냐고 묻기도 했지. 연락도 못하고 만나지도 않다보니 자신의 인생에서 태웅이 차지하던 부분이 크다는걸 뒤늦게 깨달았지.
아침에 운동으로 뛰고 있자니 고등학교 때 어느날 부터인가 같이 뛰던 태웅이 생각나고, 무릎 보호대가 슬슬 낡아져서 새거를 꺼냈는데 그건 태웅과 시내 나갔다가 산 거 였지. 수업 듣기 전 강의실에서 어떤 사람이 워크맨으로 노래를 듣는 모습을 보자니 자주 워크맨으로 노래를 듣던 태웅의 모습과 어느날은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다니까 말없이 이어폰 한쪽을 자기에게 내밀던 모습도. 그리고 농구 하다 잠시 쉴 때면 같이 노래를 나눠 듣던 것도. 그리고 가끔 태웅이 저녁에 전화로 북산 농구부 소식도 전해주던 것도 없어지니 허전했지. 주로 태웅이 농구부 소식을 전해주면 대만이 그것 외에 더 궁금한 거나 자기 일상도 말하곤 했었어. 그리고 농구 연습을 할 때도 태웅과의 원온원에서 연습한 기술 등, 일상 부분부분에서 자꾸 떠올랐지. 대만은 중간에 한 번 일단 전화라도 해볼까 싶었는데 항상 받아만 왔기에 자기는 태웅의 집 번호를 몰랐어.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았지.
그런 상태이다보니 3주간 술자리에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어. 누가 물어보면 바로 태웅이 생각이 났고 핑계를 대며 거절했지. 하지만 동기사랑 나랑사랑을 외치며 더이상의 거절은 거절한다고 자기를 끌고가는 농구부 동기들은 이길 수 없어 3주만에 술집에 들어서게 되었어. 정대만 오랜만이라고 주는 술을 몇 잔 받아 마시다보니 그 날의 서태웅이 생각났어.
태웅이가 싫어할텐데. 그러고보니 그때 어떤 말투였지, 어떤 표정이었지. 목소리가 어땠지.
앞에 놓인 술잔을 바라보다 문득 한가지 생각만 들게 되었어. 서태웅이 보고싶다고. 대만은 애들한테 정말 미안하다며 술값 일부를 지불하고 바로 일어나서 나갔지. 뒤에서 친구들이 어디가냐며 소리쳤지만 대만은 그 한가지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해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채 역을 향해 뛰어갔어.

다행히 태웅의 집은 알고 있었어. 어느날 같이 옷이나 신발 사러 갔다가 돌아온 날 대만은 쇼핑백 때문에 자전거 힘들지 않냐며 자기가 들어주겠다고,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었지. 태웅도 군말없이 그 먼 거리를 자전거를 끌고 집까지 같이 걸어갔어. 그깟 쇼핑백 깨지는 물건들도 아니고 대충 들고 가도 되는데 말야.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도 깨닫지 못한게 바보일 정도였어.
도착한 후 꽤 늦은 시각에 약속도 없이 온 것이 민폐인거 같아 차마 문을 두드리진 못하고 잠시 집 근처에서 서성이다 일단 근처 벽에 기대 앉았어. 몇 분을 그러고 있자 안그래도 조금 있던 술기운이 사라지면서 내가 뭐하는 짓이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오늘은 가고 다음에 다시 올 마음으로 일어나는 순간 계속 생각하던 목소리가 들렸어.

"선배?"

문을 열고 태웅이가 나온거야. 딱 일어나려던 찰나여서 어정쩡한 자세로 그대로 굳어버렸어. 충동적으로 찾아왔기에 어떤 말을 해야할지 당황해서 눈을 굴렸지. 그러다 둘이 눈이 마주쳤는데 태웅의 표정이 놀라고 당황한게 보였어. 대만은 그 표정을 보며 그냥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지.

"선배 어쩐일로.."
"그, 오랜만에 술 약속이 있어 갔는데 그런데 거기서도 자꾸 너만 생각나더라. 보고싶어서. 그래서 왔어."
"...취했어요?"
"어, 아? 아냐! 안취했어 진짜야."

아니라고 팔을 크게 저으면서 대만은 속으로는 머리를 쥐어 뜯고싶었어.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없었지. 고백한 사람이 연락도 없다 3주만에 술 먹고 나타났다니. 그래도 이렇게 시작한거 끝은 봐야했어.

"술을 마시긴 했는데 정말 안취했어. 나 그리고 술자리도 정말 오랜만에 간거야. 거의 3주만에.."
"..."
"너 생각나서 못가겠더라. 나 진짜 3주 동안 미친듯이 네 생각만 했어. 그동안 왜 네 마음 그리고 내 마음도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목소리라도 들어볼까 싶은데 바보같이 나 너 전화번호도 모르더라. 오늘은 빠지기 너무 힘든 자리라 갔는데 가서도 너가 떠오르고 너무 보고싶어서, 그래서 왔어."
"..."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널 보고 말하고 싶었어. 나도 너 좋아해. 내 대답이 이미 늦어버린거여도 이해할..."
"아니, 안 늦었어요. 평생 걸렸어도 안늦었을거예요."

대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웅은 대만을 끌어안았어.

"그 날, 선배한테 그렇게 어이없게 고백해놓고 후회 많이 했어요. 바보같이 말한것도 후회하고, 욕심 부리지 말고 그저 친한 선후배로라도 남을걸 후회하고. 연락하고 싶었는데 선배가 거절의 말 하는거 들으면 너무 힘들거 같아서.. 무서워서 못했어요."

대만은 자기를 끌어 안고 있는 태웅을 살며시 밀며 표정을 살펴보았어. 그 서태웅이 자기 때문에 후회하고 무서워했다니. 그리고 이렇게 그간의 슬픔과 벅참을 드러내는 표정을 짓다니. 조심스레 한쪽 손을 올려 태웅의 볼을 쓰다듬었지. 그 손길을 얌전히 받던 태웅이 대만에게 천천히 다가왔어. 대만도 눈을 감으려다 퍼뜩 자기가 그래도 술을 먹고 왔다는게 떠올라 손으로 태웅의 얼굴을 막았지.

"야, 나 취하진 않았어도 술은 먹어서. 첫뽀뽀의 맛을 알콜향으로 남기고 싶진 않다."
"상관없는데."

상당히 삐친 표정의 태웅에 대만은 웃으며 태웅의 머리칼을 헤집었어.

"우리 앞으로 만날 날 많잖아 이제. 당장 내일 만나서 놀자."
"데이트에요?"

빤히 바라보며 묻는데 정말 좋은지 웃음이 자꾸 새어나왔어. 주책이란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지.

"그래, 데이트. 뭐 하고 싶어?"
"전 선배랑 하는거면 다 좋아요."

그 말을 듣는데 대만은 순간 알콜향이고 뭐고, 먼저 안된다고 한게 누군지도 잊은채 태웅의 입에 살짝 입맞추었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은 태웅은 이내 웃어. 그리고 대만의 양 볼을 자연스레 감쌌어. 대만은 태웅의 얼굴을 보며 아, 이 얼굴은 반칙인데. 생각하면서 결국 눈을 감았지.

'우당탕!!'
그와 동시에 집 안쪽에서 큰 소리가 났어. 대만은 놀라서 소리가 나는 쪽을 보자 어떤 그림자가 움직이는게 보였지.

"뭐, 뭐야? 너네 집에 무슨 일 난거 아냐?"
"아마 우리 누나 일걸요."
"응?"
"누나가 밖에 어떤 남자가 계속 있다고 저보고 나가보라 한거여서.. 아마 저 나간 후로 보고 있었나봐요."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야, 가족이 보고 있으면 말을 했어야지!"

아까 고백을 했을 때 보다 더 빨개진 얼굴로 외치는 대만에게 태웅은 작게 괜찮다 항변하며 다시 다가갔지만 이번에는 정말 대만이 제대로 막았어. 결국 가볍게 포옹 후 다음날을 기약하며 헤어졌지. 가는 길에 몇 번 이고 뒤돌아 보는데 끝까지 안들어가고 자기를 보고 있는 태웅이 보였어. 길을 꺾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대만이 팔을 크게 흔들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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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ㅇㅁㅇ 취1중진1담 듣다 생각남. 이야기는 노래랑 연관은 없는데 대사 일부 가사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