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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 15:17
호열이 거의 혼자 살다시피 했는데 가끔 집에 들어오면 오히려 그게 더 큰일인 아버지 있었겠지

술 처먹고 몇 달 만에 들어왔으면 조용히 잠이나 자빠져 자다가 나가지... 깽판을 깽판을
집 나간 지 몇 년이 됐는데 이제 와서 니 엄마 어디 갔냐고 소리 지르다가 호열이한테도 손 올리고

솔직히... 호열이 지금 저 인간 죽이라면 죽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싫어서 반항도 안 하고 때리면 때리는 데로 차면 차는 대로 맞고 있었음

그러다 제풀에 꺾여 그 인간 자빠져 자면 집에서 필요한 거랑 조금 모아둔 돈만 챙기고 무작정 그냥 밖으로 나와 버렸는데
백호한테 갈까... 하다가 자기 꼬라지 너무 처량해서 일단 그냥 정처 없이 걷는데

걷다가 걷다가 사람들 노는 해변가도 아니고 바다 저 뒤편 쓰레기나 몇 개 굴러다니는 방파제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길 위까지 걸어온 호열이

텅 빈 거리 새까만 바다 가만 쳐다보다가 여기 그냥 빠져버릴까... 한참을 생각하는데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자길 비추더니 엔진도 참 요란하게 손댔는지
굉음 내며 달려오는 바이크 한대

박철이겠지

박철 하루도 별 볼일 없었음
그냥 새벽까지 형님들 관리하는 룸싸롱 앞에서 술 박스 세다가 카운터 앉아서 손님 좀 받고 아가씨들 사설 택시기사 노릇 좀 하고 일당 얼마 챙겨 받고 집에서 눈 좀 붙이고
정비 일 배우고 있는 카센터 가서 일 좀 하다 또 대충 끼니 때우고 밤에 바람이나 좀 쐬자 하고 바이크 타고 달리고 있었겠지

책이랑은 거리 멀었겠다
탁 트인 도로 달리다 보니 쓸데없이 시력은 또 좋으니 딱히 구경할 것도 없는 바닷가에 사람 하나 서 있는 게 눈에 띈 거지

가끔 여기 와서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러려고 왔나 여기서 빠지면 시체도 못 찾는데...
신경 쓰지 말자며 핸들 돌리고 가려 했지만
뭔가 멀리서 봐도 좀 작아 보여
옆엔 가방인가... 쓸데없는 호기심에 가까이 가 봤겠지
대충 소리치면 들릴 정도 거리에서 헤드 라이터 그 사람 쪽으로 비추니
... 저거 교복인데

바이크가 못 들어가는 길이라 앞에 세워두고 그쪽으로 걸어가 보는데

...

"양호열?"

"어디랑 거하게 붙었냐"
"져서 쪽팔려가지고 뛰어내릴라고?"
"그게 더 쪽팔린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다"

"그럼"
"뭐 가출 청소년?"
"저거 짐 싸서 나온 거냐"

"정확히 말하면 나온 게 아니라 뺏긴 거지"

하는 대답에 호열이 턱 쥐여잡고
"집에서 맞은 거라고?"

"어"

"아빠?"

"아빠라고 부르기도 싫어"
"콱 죽여버렸어야 하는데... 왜... 왜 참았지 죽일 수 있었는데"
부들거리더니 주저앉아서 울어버리는 애 보고 신경이 안 쓰였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따뜻한 위로해 줄 위인은 못 되어서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 보고만 있었음
들썩이던 어깨가 가만 진정되면 얼마 담겨있지도 않은 짐가방 덜렁 들고 뚜벅뚜벅 바이크 쪽으로 걸어가는데 그럼 호열이도 말없이 뒤따라가겠지
호열이 어깨에 가방 메주고

"야 헬멧 없으니까 알아서 꽉 잡아라"
하고 뒷자리 타라고 턱짓하는 박철
말없이 뒷자리에 타 철이 등에 기대어 빠르게 달리는 바이크 따라오는 찬 바람에 남은 눈물 털어내는 호열이

그렇게 철이 집에 따라 들어오고 쇼파에 앉아서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방에서 뒤적거리더니 연고랑 밴드 찾아서 나온 박철

"하 밝은 데서 보니까 못 봐주겠다야"
"이러고 학교는 어떻게 가냐

생각보다 심하게 상한 얼굴에 싸움이 일상인 철이도 혀를 차겠지

"내가 좀 다쳐서 간대도 아무도 신경 안 써"

...

"어차피 모범생도 아닌데 너 한 이틀은 제껴라 학교... 병원 가서 대충 진단서 떼가"

다 쥐어터진 얼굴에 약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주고
꾹 눌러버리니 야! 소리 지르는 호열이

"새끼 목청 좋은 거 봐라 멀쩡하네"

"옷 벗어봐"
...
"뭐?"

"얼굴만 줘 터지진 않았을 거 아냐"
"자고 일어나면 더 아파"

입고 있던 교복 마이 하나 벗었는데 목이며 팔이며 죄다 멍투성이겠지
옷 벗기고 피 나는 데는 약 바르고 멍든 데는 파스 발라주고
"문지르는 건 니가 해라 난 파스 냄새는 딱 질색이라"

"야 우동 라면 비빔면 중에 골라"
...
"우동"
"오냐"

호열이 멍든 다리에 파스 문질 문질 하고 있으면 물 끓이고 우동봉지 뜯어 넣는 박철

저 사람은 취미가... 불쌍한 사람 데려다 키우긴가... 싶지만 지금은 별생각 안 하고 싶은 호열이

그렇게 주는 밥 먹고 졸려서 꾸벅 거리다 화들짝 깨면 철이가 안방 가리키면서
들어가서 자빠져 자라고 하겠지

"네 방 아냐?"
"침대가 하나니까"

호열이 끌고 들어가 침대에 던져 놓고 장롱에서 이불 하나 꺼내고 옆방에 들어가는 박철

"내일 아침에 밥 먹고 병원 가라
나 일하러 가니까 없을 수도 있다
갔다가 이리로 와 집에 가지 말고"

...
"어"

"자라"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에 만원짜리 몇 장에 [병원비 하고 점심 사 먹어.]라고 적혀있는 메모지 하나 있겠지

나 돈 있는데...

그래도 용돈 받는 기분은 첨이라 돈 챙겨들고 병원 갔다가 양심에 좀 찔리지만 먹고 싶었던 돈까스도 사 먹고
집에 와서 햇살 맞으며 쇼파에서 잠드는 호열이

문 열리고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 뜨면
매트리스 하나 짊어지고 온 철이 있음

"뭐야...?"
"아 침대는 지금 사기 비싸서 매트리스 샀어"

"나 자라고?"
"아니 내가 잘 건데"
"야 저래 봬도 저 방에 침대 저거 비싼 거야"
"ㅋㅋㅋㅋ 와 방도 내어주냐"
"니 몸에 멍 빠질 때까지만"
"그래~ 안 나아야겠다"
"까분다"

그러다 식탁에 약봉지 보더니

"병원 갔다왔나보네"
"밥은"
"돈까스 먹었어"
"오 꼴에 그 병원 앞에 비싼데 갔나 보지"
"어"
"잘했다 그래"

생각지도 못한 사람 옆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호열이랑
생각보다 혼자인 게 싫은 철이가 만나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같이 살아가게 된 이유

철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