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3586150
view 1923
2023.05.19 10:21

그렇게 뱀수인 육아가 시작되었음. 명헌은 이전까지 맛없는 벌레들만 잔뜩 가져다준거에 미안해져서 맛있는 인간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했지. 근데 현실적으로 명헌은 돈없는 자취생이었던지라 편의점에서 음식으로 끼니를 떼우고는 했거든. 우성이라고 별 수 있나.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면서 먹는 우성을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음. 우성은 해사하게 웃으면서 빵을 자기 쪽으로 내밀었지. 그 모습을 보며 명헌은 알바를 뛰든 뭘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고개를 젓고는 샌드위치를 우성쪽으로 미니까 잠시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한입 조그맣게 깨물어먹는거야. 손톱만큼 깨문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왔어.

 

겁이 많고 소심하긴한데 착한 뱀이었어. 명헌은 편의점이나 서점알바를 할 생각을 했지. 마침 얼마전에 본 가로등에 붙은 구인란이 생각이 났어. 저 덩치로 기별도 안갔을거면서 배를 통통 두드린 우성이 명헌의 품으로 파고들었음.

 

무게가 있다보니 소파가 뒤로 푹 꺼졌지. 그래도 명헌에게는 작고 귀여운 아가뱀으로 보였어.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쓸면 기분이 좋은지 금새 잠에 빠져드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주말마다 이렇게 우성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지.

 

우성은 글을 빨리 뗐어. 이런걸 가르치는 건 처음이라 명헌이 버벅대기도 했는데 오히려 우성이 주인, 이거 아니야. 라면서 틀린 부분을 꼬집어주기도 했지. 똑똑하기도 하지.

 

다만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우성에게 또래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어. 성격으로만 보면 처음에 낯을 많이 가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심성이 고와서 친구가 분명 생길텐데 말이지. 저번에 명헌이 친구들을 데려왔을 때에도 선풍기 뒤의 갸날픈 기둥에 숨어서는 오들오들 떨던 걸 생각하면 좀 마음이 아파졌음.

 

혹시 인간이라 그런건가, 수인이면 좀 다를까 싶어서 수인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명헌은 현실에 대해서 알게되었음. 사회적으로 수인이 얼마나 배척받고 있는 상황이었는지도 말이야. 그날 명헌은 투견장 동영상을 보고 엉엉 울었는데 아기뱀이 문 틈새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자기 쪽으로 슈르륵 다가왔어.

 

그러고 다리를 타고 올라오더니 손가락에 온몸을 칭칭감고는 조심스럽게 할짝대기 시작했지. 딴에서 위로를 해주려고 그랬나보다 싶어 가슴이 뭉클해졌어.

 

- 이제야 발견해서 미안해.

 

사과를 하는 명헌에 우성은 고개를 갸웃거렸지. 명헌은 이 아이를 저 역겨운 소굴로부터 탈출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

 

- 지난 기억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좋은 기억만 남게 해줄게.

 

명헌이 약속을 하며 우성의 비늘에 입을 맞추었음. 그것이 간지러운지 우성이 몸을 움찔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지. 정말 사랑스러운 뱀이었어. 이런게 예쁜아가가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갔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성은 아직 인간화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집에서 이것저것 가르쳐주었지. 글과 공부는 기본이고 거기다 나아가서 인간들이 하는 공놀이라든가 게임도 알려줬어. 솔직히 게임은 명헌의 사심이었지만 말이야ㅋㅋ 그래도 이인용 게임을 샀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변명을 해봐.

 

우성은 농구를 하는 걸 유독 좋아했어. 점프도 높고 힘이 세서 덩크도 순식간에 넣었지. 명헌이 처음인데 대단해용. 칭찬해주면 우성이 쪼르르 달려와서는 명헌을 덥썩 안아. 이제는 달려드는 우성을 받아주기가 힘들어졌지.

 

뒤로 넘어지려는 명헌에 우성이 자세를 바꾸어 자기가 아래에 깔렸어. 명헌을 위에 눕힌채로 꽉 끌어안았지. 똑똑한 뱀이라 그런가 이대로 깔리면 터질거란걸 직감했나봐.. 배려심있는 뱀이기도 하지.

 

명헌은 알바를 해서 돈을 벌었고, 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학교가 끝나고 장을 한바구니 봐왔어.

 

- 주인, 맛있는 냄새가 나!

 

우성이 뽈뽈대며 명헌에게 다가왔어.

 

- 개코네용. 아니 뱀코인가 쨋든 우성 소파에 얌전히 앉아있어용!

 

명헌이 소파를 가리키니까 우성이 시무룩해져서는 소파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음. 그러면서 뒤쪽을 자꾸 힐끔힐끔 바라보는데 그 꼴이 꼭 물에 젖은 강아지 같아서 맘약해진 명헌이 고민하다가 말했음.

 

- 그럼 같이 만들어볼래용?

 

우성은 불을 무서워했어. 그래서 따로 하려던 건데 우성은 떨어지는게 더 무서운가봐. 그 말에 우성이 눈을 반짝 빛내면서 자기 쪽으로 겅중대며 뛰어와. 명헌은 자신의 목덜미에 볼을 부비는 우성을 밀어내며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라고 했지.

 

- 알겠어!

 

우성은 냉장고쪽으로 전력질주를 해.

 

- 아가, 넘어지니까 천천히 가.

 

그말을 끝으로 우성은 식탁에 옆구리를 찧게 되었지. 눈물을 또록또록 흘리는 우성을 보며 명헌은 아직 갈길이 멀다고 생각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