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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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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리그 시즌이 종료되고, 미국 리그도 시즌을 종료하자 송태섭에 이어 강백호와 서태웅도 귀국길에 올랐다. 여러가지 밀린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과 북산 멤버들은 각별해서 비시즌에는 꼭 만남을 가졌다.

얼마 전 송태섭과 정대만의 일로 크게 모임을 가진터라 이번 모임은 북산 멤버들만 함께 모이는 자리였다. 인원은 적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중요한 모임이었다. 권준호도 진즉에 스케줄을 빼놓은 상태였다.

농구선수와 스포츠 관련 일을 하는 이들, 그리고 스포츠와 관련 없는 직장을 다니는 이들과 유일한 변호사 권준호의 모임은 겉보기에는 기이하지만 북산이라는 유대 관계로 누구보다 끈끈한 관계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선배는 만나는 사람 없어요?"


신방과 졸업 후, 언론사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로 일하는 달재가 준호의 잔을 채워주며 부드럽게 물어왔다. 매번 같은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바빠서 그럴 시간 없다며 웃어 넘기는 선배가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달재가 여상한 듯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이달재는 늘 그랬다, 순둥한 듯 허허로운 듯 늘 핵심을 놓치지 않고 배짱도 있고 과감하게 승부수도 잘 던졌다. 그리고 오늘의 타겟은 권준호였다.

받아든 잔을 바로 기울이지도 못하고 고민하던 권준호는 잠깐 잔을 내려보다 이내 들이키고는 시원한 답을 내놓았다. 만나는 사람 있어.

늘 만나는 이가 없다며 하하 웃던 준호의 의외의 대답에 누군가는 놀라워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눈을 빛냈다. 그들은 이미 청첩장까지 다 돌린 염장 커플과 바다 건너에서 가족 계획까지 다 세운 커플보다 새롭게 연애를 시작한 이가 더 흥미로웠다.


북산 멤버들에게 권준호는 암묵적인 의지의 대상이자 대놓고 자랑할 수 있는 멋진 선배이기도 했다. 농구길을 걷는 쟁쟁한 선수들과 결은 다르지만 권준호의 반듯하고 잘 자란 성품과 행보는 또 다른 반짝거림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랐고 성품까지 올곧고, 현명하고 사려깊은 문무겸비의 선배가 정말 좋은 인연을 만나 잘 살기를 모두가 바랬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준호 선배는/준호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북산 멤버들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공유하는 감정이었다.

그런 권준호가 연애를 한단다, 고시 공부와 연수원 생활과 로펌 업무에 치여 다 죽어간다고 우스개로 둘러대던 권준호가! 모두의 눈이 쏠린 가운데 권준호는 속이 잘 읽히지 않는 미소를 띄우며 적당히 말을 골랐다.


"안경 선배, 누구야? 누가 우리 안경 선배를? 이 착하고 잘생기고 똑똑해서 변호사까지 하는 안경 선배를? 누구? 누구야? 섭섭쓰, 만만쓰는 알아? 미국서 혼인신고할 때 안경 선배 왔잖아! 말 없었어?"


치수와 준호를 부모처럼 따르는 강백호가 흥분과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와르르르 쏟아냈다. 쏟아지는 질문량과 정보량 속에서 필사적으로 취사선택을 하던 송태섭이 한 쪽 눈썹을 찡그리다 날카로운 눈으로 권준호를 쳐다 보았다.


"누구에요, 선배? 얼마전까지 없다면서요 분명. 우리 얼마전에 봤는데 그 사이에 사람이 생겼어요? 누구에요?"

"하하, 그렇게 됐어. 다음에 정식으로 소개할게."

"소개는 소개라 치더라도 이름이라도 알려줘요. 누구에요? 우리 아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

"하하, 보면 알거야. 오늘은 여기까지. 궁금하면 다음번에 대만이가 술 사면 가르쳐줄게."

"아, 뭐야! 너 지금 나한테도 숨기는거야?"


강백호와 함께 충격받은 얼굴로 열띤 추측 토론을 벌이던 정대만이 대놓고 섭섭함을 표했다. 정대만의 시무룩한 얼굴을 바라보는 권준호가 피식 웃음 소리를 냈다.

권준호는 정대만을 똑바로 마주할 때마다, 진심의 농도가 짙은 말을 할 때마다 정대만이 자신을 의식하지 않도록 늘 지어내는 표정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렇게 서운해하는 정대만을 보면서 권준호는 더 이상 같은 표정을 지어낼 필요가 없었다. 권준호는 풀이 죽은 정대만과 열을 올리는 강백호를 바라보며 소리내 마음껏 웃었다.




"늦네, 술 마시러 간다고 하더니만. 그래도 너무 늦는데."


초조한 얼굴로 시각을 확인하던 마성지가 앉아있질 못하고 차 키를 든 채 거실을 계속해서 왔다갔다 했다. 며칠 전, 강백호와 서태웅이 귀국하여 북산 멤버들만 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권준호에게 전해 들었다.

북산 멤버들만 본다는 자리에 눈치없이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술자리가 길어질 것이 뻔하여 마성지는 제가 데리러 가겠다 하였다. 권준호는 단칼에 거절하며 택시 타고 오든 대리를 부르면 된다 하였다. 마성지가 대놓고 서운해하자 권준호는 달래듯 말했다. 그럼 마칠 때 전화할게.


전화도 오지 않고 늦어진다 싶자 마성지가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한 취기가 느껴졌다. 권준호 단단히 취했네.

데리러 갈게, 기다려.

안와도 괜찮다며 웅얼거리는 권준호의 대답을 깔끔히 무시하고 마성지는 차에 올랐다. 벌써 발음도 뭉개져서 뭘 괜찮아, 괜찮길.


"야, 준호 설마 애인이야?"

"선배 남친?"

"응...아...괜찮다는데에...그냥 내가 가면 되는데에..."







"실례합니다. 여기서 또 보네."


익숙한데 여기서 들으니 너무나 낯선 목소리에 북산 멤버들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성지 선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약속 있어요?

음, 약속이 있는 건 아닌데 여기 약속 있는 사람이 내 애인이라서 말이야.


아무렇지 않게 북산 멤버들에게 방문 의도를 밝히자 순시간에 테이블이 경악에 뒤덮였다.


'미친, 성지 선배 애인이 여기 있어?'
'야, 누구야, 누가 마성지랑 만나냐?'
'너냐?'
'나 아닌데.'
'너냐?'
'누굴 양다리로 만들어?!'


좌중의 경악을 뒤로 한 채 마성지는 자신의 목표물만을 좇았다. 오래지 않아 마성지의 시야에 취해서 좌대만 우백호를 끼고 이야기중인 권준호가 들어왔다.


"어? 성지야아...마성지...진짜 왔네...하하...성지야..."


성지야? 미친 권준호 애인이 마성지였어?!!!!!!


술에 취해 헤실거리며 웃는 권준호를 보며 권준호를 제외한 모든 북산의 멤버가 굳어버렸다.


-말도 안돼, 준호 선배가 마성지랑 만나.
-미친 준호 선배가 마성지랑.
-준호야 너 진짜 마성지랑 만나는거야?!


좌중의 경악에 놀라기보단 즐기는 표정으로 마성지가 걸음을 옮겼다. 늘 단정하고 칼같다가 제 앞에서는 한번씩 풀어지고 제 앞에서만 못보여주게 야한 권준호가 제 앞에서 한 번도 하지 않는 얼굴과 말로 자리하고 있었다. 잔소리하며 물을 챙겨주는 정대만과 옆에서 왁왁 거리며 북산 전체를 대표하여 경계심을 발사하는 강백호를 두고.

헤실헤실 풀어져서 머리를 여기 기댔다가 저기 기댔다가 손을 잡았다가 하면서 말이지. 보지 못한 모습이 신선한 맛은 있었으나 마성지는 솔직히 빡쳤다.


나도 못 본 모습을 이 녀석들은 이렇게 다 봤다 이거지. 이럴까봐 나 그렇게 오지 말라 그런거야. 들어오길 잘 했네. 차에서 바로 픽업했으면 또 칼같이 다듬고 나왔겠지.


열은 받지만 그만큼 둘만 있을 때 되돌려 받아낼 구실이 생긴 것도 나쁘지 않다며 마성지가 권준호에게 다가갔다. 슬슬 열이 오르는 속을 다스리며 아무렇지 않게 한없이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누가봐도 완벽한 술 취한 애인을 데리러 온 남친의 모습. 생긴 것도 좀 잘생겨야지. 거기다 다정하게 데리러 온다? 그럼 당연히 데리러 온거야? 하며 기쁘게 안겨 와야 하는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


"안 돼, 나 무거워어...안지마 안지마. 나 무거워. 내가 걸어 갈 수 있어어..."

"준호야, 너 취했어. 지금 걸음 불안하잖아. 불편하면 업자, 응?"

"안돼에에, 너 관절 아껴야지. 이런데다 함부로 쓰면 안돼애애...나 무거워... 내가 걸어갈 수 있어-"


아니 준호야 이건 아니지
시즌도 아니고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술도 잔뜩 취했는데 여기서까지 이러는 건 아니지


다정스레 다가오는 손을 필사적으로 쳐내며 몸을 물리는 모습에 북산 멤버들 모두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뭐지 이 이해 안 가는 그림은?


"애인도 못 들어줘요? 얼마나 연약하면 저렇게까지 걱정을 해줄까, 프로도 아닌 사람이."


그리고 아까부터 못마땅한 표정의 송태섭이 눈썹 하나를 치켜 올리며 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명백한 의도가 느껴지는 말에 마성지가 권준호의 팔을 붙들며 돌아보았다.


"선수촌에서 무게 좀 친다 싶더니 그것도 옛말이네요. 아니 애인도 못 들어줘? 나도 드는 걸? 아이고 벌써부터 기운 없어서 어떡하나? 갑시다, 준호 선배. 오늘 제가 안아 모셔다 드립니다."

"섭섭쓰 이런 건 나한테 맡기라고! 내가 업고 간다 우리 안경 선배!! 업혀요 업혀!"

"멍청아, 등. 선배 이리와요."



헛웃음과 빡침과 이 와중에도 슬슬 올라오는 팔불출 자랑 심리가 뒤섞여 마성지의 얼굴에 묘한 낯빛이 내려 앉았다. 마성지는 자꾸 손 쳐내는 애인에게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음을 느끼자 가볍게 손으로 권준호 팔을 눌러 잡았다.

아프진 않겠지만 힘을 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버둥거리던 권준호가 얌전히 저항을 포기했다. 여기서 더 억지하면 마성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권준호가 자신을 다치지 못하게 할 거란 걸 마성지는 너무 잘 알았다.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되자 마성지는 홀릴듯한 웃음을 지으며 권준호를 끌어안았다.


"준호야, 내가 데드리프트 200도 드는데 너 왜 자꾸 못 안아 들게 해. 안 그래도 너 요새 살 빠져서 내가 속상한데."

"하지말라니까아아... 왜 자꾸 들려고 그래...코트 위에서 안 그래도 관절 갈아가며 뛰는데-"

"나 너 둘도 들어. 그러니까 내가 하자는대로 좀 하자, 응? 아이구 우리 권변호사님 많이 취했네. 취했으면 집에 가서 자야지? 가자, 가자. 차 가져왔어."

"차 왜 가져와... 나 택시 타고 가면 되는데에... 나 너 운전 안시킨다 그랬잖아아..."

"준호야, 나 지금 재활하는 것도 아니고 재활해도 네 무게보다 더 들거든? 나 걱정 시키는 거 싫으면 그냥 좀 가자 응?"


아 시발 이걸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서 다 듣고 있어야 하나 정말. 정말 궁금하긴 했지만 이렇게 듣고 싶진 않았어요. 북산 멤버들의 썩은 표정을 보는 마성지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걸렸다. 권준호를 한 팔로 단단히 붙든 채, 마성지가 결정타를 날렸다.


"준호가 선수는 몸이 재산이라고 자기 있을 땐 운전대도 못 잡게 하거든. 내가 데드리프트 200을 드는데 팔 아껴야 한다고 내가 안아 들려고 하면 맨날 이런다 정말. 코트에서 관절 갈아가며 뛰는데 아껴야 한다고. 북산 너네 부주장 정말 세심하더라?"


표정이 다 썩어가는 와중에도 준호를 챙기러 태섭과 대만이 나섰다. 배웅하려는 태섭과 대만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마성지는 권준호를 챙겨 나갔다.


"아, 나오지 마라. 그리고 여긴 내가 계산 다 했다."



시발 비싼 술 얻어먹고 뒷맛 이렇게 쓰기도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해내네







며칠 후 광고 계약 때문에 권준호는 송태섭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계약서 조항을 꼼꼼히 살피고 교차 체크하는 권준호에게 대강 대답하며 태섭은 권준호를 되려 취조해댔다. 왜 말을 안했어요?


권준호는 잠시 고민하다 마성지의 어머니 앞에서 한 말이 있어서 바로 말하기 좀 그랬다며 웃고 넘겼다. 바로 직전에 가진 만남에서 댁네 아드님하고 아무 사이 아닙니다 가능성 없습니다 박아놓고 지금 사겨요-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 바닥은 말이 빠르고 내가 모르는 내이야기도 퍼져 나가니까.

그런 속사정까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은 채 그냥 적당히 그 댁 어머니 앞에서 아무 사이 아니라 둘러댄지 얼마 되지 않아 말 번복하기 우스운 태라 그랬다며 권준호는 적당히 넘겼다. 하지만 송태섭은 눈썹을 짝 눈썹으로 만들며 광고 촬영장에서 만난 마성지를 상대로 존프레싱을 시전했다.


"선배, 그 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준호 선배도 집안 3대가 법조인이에요. 법원장 까지 지낸 할아버지 아버지에 본인도 재원이고, 뭐 하나 빠지는 사람이 아닌데. 왜 준호 선배를 그렇게 밑지고 눈치보는 만남 하게 만듭니까? 우리 준호 선배가 뭐가 모자라서?"


그 날 이후 계속 삐딱한 자세의 송태섭이 다다다다 내뱉는 말을 듣던 마성지가 얼척이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웃어제끼는 마성지를 보며 더욱 표정이 불량해진 송태섭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성지는 단호한 목소리로 송태섭의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송태섭 너 진짜 기발하다? 하다하다 준호가 우리집 눈치 본다는 말을 내가 다 들을 줄은 몰랐네. 우리 여사님이 준호 좀 데리고 와보라는 거 내가 지금 온몸으로 뜯어 말리고 있는데, 그 말 준호 들려주고 싶네. 안되겠다 오해 풀려면 아무래도 권준호 데려가야 겠다."


오해는 풀렸지만 오해가 풀리고 나니 걱정이 더 쌓인 송태섭이 심각한 얼굴로 권준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끝나고 나 좀 봐요, 선배.






"선배, 성지 선배랑 왜 만나요. 남자는 농구랑 얼굴이 다가 아냐."

"정대만한테서 농구랑 얼굴 빼면 뭐가 남는데?"

"아 그거야...! 어쨌든 성지 선배는 아냐. 선배가 곱게 자라 공부 계속하느라 몰라 그러는데-"

"성지도 곱게 자랐어. 물정 모르기는 나보다 더하던데?"

"마성지가? 마성지 이때까지 연애한 거 못 봤어요? 내가 이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마성지 심지어-"

"파혼한 거?"

"알아요?! 알고 만나요?"

"그거 내가 처리해줬어. 그 건 수임하다 만났는걸."



와, 진짜 와우다 준호 선배. 그걸 심지어 처리해주다가 만났어? 그 꼴을 다 보고?
마성지 도대체 무슨 마성이 있길래 저 참한 준호 선배를 한 입에 꿀꺽, 와 미치겠네.
내가 진짜 치수 선배였으면 박수 쳐주고 축의금도 제일 많이 넣고 사회도 내가 봤다. 근데 마성지? 도대체 왜? 뭐가 아쉬워서?


송태섭은 기가 차고 목도 타서 앞에 놓인 물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좋은 집안에서 참하고 단정하게 잘 자란 권준호는 고단한 환경에서 잡초처럼 커온 송태섭의 눈에는 단목 상자 안 구슬 같은 이였다. 아무리 그 본질이 단단하고 심지 굳은 이라도 근본적으로 자신과는 다른 좋은 환경에서 잘 다듬어져 곱게 커온 이였다.

송태섭은 아마 그 때 권준호가 욕심을 내었다면 정대만과 시작하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정대만과의 관계에서 확신을 갖지 못했을 때, 송태섭은 만약 자신이 설 수 없다면 정대만의 옆자리에 권준호가 있다면 그건 그래도 좀 견딜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속 썩일게 뻔한 만남을 왜 해요, 내가 다 아까워. 선배 뭐가 모자라서. 선자리 엄청 들어오잖아요. 선배 정도면 다 탐내는 사람인데."

"성지 나 속 썩인 적 없어. 나 만나기 전은 내가 관여할 바 아니고 솔직히 이 정도는 그냥 귀여운 수준이지 뭐."

"선배!"

"농구부 나가서 2년 안 돌아오고 다 엎으러 했다가 임플란트 박은 녀석, 기대 좀 했더니 쌈박질하고 바이크 타다 사고나서 입원한 녀석, 첫 날부터 주장 머리에 덩크 박고 시작한 녀석도 다 데리고 살았는데 이 정도는 귀엽지."

"아 정말! 우리가 하도 사고쳐서 이 정도는 그냥 귀여워요? 정대만이 참 큰 일 했네. 아니다 거기에 강백호도 있지."

"너는 왜 빼, 태섭아."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어딘지 확고한 모습에 송태섭은 안도감과 의문을 동시에 느꼈다. 권준호는 마냥 상냥해 보이지만 단단한 심지와 단호한 결단력이 있고 통찰력도 뛰어났다. 그것이 부드러운 성품에 묻혀 강하게 티나지 않았을 뿐이지 권준호의 강인함은 송태섭이 잘 알았다. 어떤면에선 주장 채치수보다 더 강단있는 남자다.
그런 권준호가 저렇게까지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웃음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편안하게 웃어보인 적이 있었나? 저걸 마성지가 해낸 거라면?


"그래서, 좋아요?"

"응?"

"지금 성지 선배랑 만나는 거, 좋냐구요."


권준호가 송태섭이 던진 질문에 잠시 말을 멈추고 시선을 마주하며 빙긋이 웃었다. 부드럽지만 단호함이 느껴지는 어조로 권준호가 질문에 답을 주었다.



"응, 좋아. 성지가 나를 많이 웃게 만들어줘."




슬램덩크 성지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