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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5 00:35
"흐흐흑...동오...날 버리고...기어이 일산으로 가는거야? 우리 안암에서 행복했잖아."

"명헌아 그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아침마다 동오 얼굴 보며 행복했는데...샤워하고 나오는 등 근육도, 머리 말리는 모습도...동오 스킨 냄새도 향수 냄새도 아직 생생한데...흐흐흑...그거 이제 딴 사람이 보겠지 내가 아닌 딴 사람이..."



안암 K대 앞 삼겹살 집에서 서빙 알바를 하는 김붕팔의 손은 지금 고기 굽는 테이블 하나를 10분 넘게 닦는 중이었다. 원래라면 당장 테이블마다 밀려드는 주문에 정신없이 이모 여기 소주 하나요, 이모 여기 불판 갈아줘요, 이모 여기 공깃밥! 하며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게 정상인 금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 그런데 지금 김붕팔은 남자 세 명이 둘러앉은 테이블을 좀처럼 떠나지 못한 채 철테이블이 티타늄이 될 정도로 닦고 있었다.

장정들 많고 특히 운동부와 공대와 법대가 유명한 k대 식당가에는 남자 손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 중에서도 유독 튀는 덩치와 튀는 비주얼의 남자 세 명이 입장하는 순간, 식당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정석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어떻게 보면 예쁘고 어떻게 보면 시원하고 댄디하게 생긴 미남, 근육이 알차게 자리 잡은 단단한 몸과 대비되게 뽀얀 피부와 촉촉하고 부드러운 얼굴선의 단아한 미남, 마지막으로 고전명화 찍다가 온듯한 금욕적이고 진한 이목구비의 정석적인 미남까지.

입맛별 미남 3이 들어오자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몰렸다. 재빠르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주문을 받는 김붕팔의 심박수가 뛰었다. 사장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전 지금이라구요- 진중하게 생긴 클래식 미남이 듣기만 해도 고막이 녹을 거 같은 저음으로 정중하게 주문을 넣었다. 미친 이번달 계는 이걸로 다탔나 보다 생각하며 주문을 받고 서빙을 했다. 혹여나 이 자리를 탐내는 이들을 절대 허용치 않겠다는 필살의 존프레싱을 펼치며 철벽 서빙을 하던 붕팔은 이들의 조합이 첫 인상과 다르게 펼쳐 나가는 이야기에 손님들과 함께 이야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고깃집의 모두가 이야기 하는 것도 잊은 채 미남 셋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찐한 미남은 묵묵히 답변 중이었고, 촉촉한 미남은 눈물 가득 이야기를 했고, 시원한 미남은 그러든가 말든가 고기를 굽는 이 기이한 광경.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으흐흑...잘 가요...동오...이제 나는 잊고 새 사람이랑 행복하게 지내요...동오의 새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밤마다 동오와 같이 잠들고 아침마다 같이 일어날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을 빌어요...사시 합격 축하해요...아침마다 내가 타준 프로틴 먹고 내가 갈아준 스무디 먹고...으흐흑...그래도 동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미친 헤어지는 중이었어!!!!

-어쩐지 남자 너무 잘생겼더라!!!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사시 합격 후 환승이별?!

-미친 에타 올려라 법대 존잘중에 이번 기수 사시 누가 붙었냐?!


"누군지 나도 모르는데 뭔 행복을 비냐 명헌아."

"야, 야 알겠으니까 그만하고 빨리 먹어라 탄다 탄다."

미친 그런데 누군지 몰라?! 아니 근데 누군지 모른다고? 미친 생긴 건 단정하게 생겨서 저런 문란한? 아니 잠깐 근데 이게 앞뒤가 맞나???


알바생 김붕팔과 고깃집 모두를 혼란으로 밀어넣으며 이명헌은 눈물짓고, 최동오는 소주를 따르고, 정대만은 고기를 구웠다.




고3 윈터컵이 끝나고 각자의 거취가 정해지는 시점, 이명헌은 당연하게 약속된 k대 농구부로 스카우트 되었다. 그리고 정대만은 인터하이와 윈터컵의 활약으로 역시 k대로 진학했다. 그리고 최동오도 진학했다. 다만 최동오는 스카우트가 아니었다.

최동오는 인터하이 이후 정해진 수순처럼 농구를 접고 수능을 준비했다. 그리고 산왕공고 농구부 창설 이래 아마도 두번째 미남(이명헌은 늘 최고 미남이라 주장하며 신현철과 100분 토론을 한다)은 얼굴과 농구 실력과 몸을 가진 것도 모자라 머리까지 가져서 수능으로 k대 법학과에 진학하는 미친 결과를 낳았다.

최동오가 k대에 입학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명헌은 혼자 서울 생활 힘들다며 룸메의 미끼를 던졌다. 함께 k대 앞 부동산을 배회하다 우연히 마주한 정대만과 의기투합하여 체대생 둘과 법대생 하나가 동거를 시작했다.



이명헌에게 있어 최동오는 언제나 최우선이 될 수 없었다. 이명헌 농구 인생 최고의 에이스는 자타공인 정우성이었다. 어디에가도 에이스를 할 수 있는 최동오였지만 이명헌의 에이스는 정우성이었다. 이명헌의 부주장은 정성구였다. 다정하고 묵묵하고 실력있는 최동오지만 이명헌의 부주장은 정성구였다. 이명헌이 최후의 순간까지 뒤를 맡기고 함께 의논하는 동료는 신현철이었다. 최동오의 농구센스와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플레이가 있었지만 산왕 농구부 최고의 기둥은 신현철이었다.

하지만 최동오가 이명헌의 지고불변한 넘버원이 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얼굴이었다. 이명헌 인생 최고의 미남은 최동오다. 아무리 신현철이 산왕공고 농구부 창설 이래 미남은 정우성이라 우겨도 이명헌은 우성이는 곱고 예쁘장한 미소년 스타일이고 동오가 정석 미남이라 우겼다. 최동오는 자기 얼굴에 큰 감흥이 없다. 물론 평균 이상이라 생각은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아버지가 워낙 미남으로 이름 높았고 형도 미남이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서 동오에 대한 평가는 동오는 여리하게 생겼어 라는 말이었다.

이명헌은 최동오의 얼굴을 사랑한다. 대만과 동오와 자취해서 가장 좋은 점이 대만과 동오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어 좋다고 이명헌은 말했다. 그럴 때마다 대만은 크하핫 내 얼굴이 좀 먹히지, 오빠 멋지냐 명헌아 이랬고, 최동오는 내 얼굴이 왜? 이런 반응이었다.


이명헌은 최동오의 얼굴을 찬양한다. 하지만 최동오와 사귀지는 않는다. 고등학교때 까지 아키타 산골에서 수도승 같이 살던 이명헌은 대학 오자마자 쉬지 않고 연애를 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차이거나 상대의 바람으로 끝을 봤다.


이명헌은 최동오의 얼굴을 사랑하지만 최동오를 사랑하진 않는다. 그건 이명헌도 알고 최동오도 알고 신현철도 알고 이젠 정대만도 안다.



이명헌은 매일같이 최동오의 얼굴을 찬양한다.

'동오 오늘도 잘생겼어용'

'동오 오늘 흰 셔츠 예뻐용'

'동오 등근육 최고에용 만져보고 싶어용'

'동오 얼굴보면 힘이 나용'


이 난리를 쳐도 동오만큼은 사귀지 않았다.

그런 기이한 관계를 보며 신현철은 이명헌을 맨날 욕했다. 그는 발라먹을 듯한 눈빛으로 최동오의 뒷태를 감상하는 이명헌의 뒤통수에 대고 사자후를 질렀다.


"너 이 새끼야 그럴거면 동오랑 사겨."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내가 어떻게 동오랑 사귀나용!
친구끼리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에용!"



이명헌은 자주 사귀고 높은 확률로 차였다. 이명헌은 이별하면 꼭 청승맞게 학교 앞 바에서 혼자 술을 들이부었다. 그리고 이명헌이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면 최동오가 취한 이명헌을 업고 늘 집까지 왔다. 정대만이 너 이자식 최동오 그만 힘들게 하고 그럴거면 집에서 퍼마시라며 해장국과 욕을 같이 내주었다.



그 난리통 속에서도 최동오는 당당히 사시에 합격했다. 최동오의 사시 합격을 축하하며 정대만 이명헌 최동오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이 즐거운 자리에서 지금 이명헌은 눈물 지으며 최동오의 앞에서 신파극을 찍고 있다.


"동오, 우리 6년동안 같이 살며 행복했는데...이런 날 버리고 이제 사시 붙었다고 연수원 가는거야?"

"사시 붙었으면 사법 연수원 들어가야지 연수원 안 들어가면 어떡하니 명헌아. 이게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니라 법이 그렇다고."

"동오 짐은 내가 다 정리해놨어용."

"이미 짐 다 싸서 보내서 한 박스만 남았는데."

"이제 우리 집에 동오 흔적도 없겠지용. 아침마다 풍기는 동오 향수 냄새. 아침마다 보이는 잘생긴 최동오 얼굴. 이제 나는 못 보겠네용. 그 얼굴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연수원 룸메가 보긴 보겠지. 근데 그게 누군지도 모른다고 명헌아."

"동오 이 팔근육 내가 아침마다 먹인 프로틴으로 무게 쳐가며 만들었는데 이제 나는 못 만져보겠죵."

"그야 너랑 대만이가 운동하니까 나도 하는거지. 밥은 내가 했잖아."

"행복해야 해용 동오..동오랑 6년을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했어용...잘가용... 동오..."

"야 이명헌 고기 빨리 빼라고! 연기 때문에 눈 맵다고! 넌 또 왜 연기에 얼굴 내밀고 있어!"

"닥치고 고기 구워용 정대만. 하여튼 뭘 몰라용. 내 천년의 이상형을 떠나보내는 이 슬픔을 정대만이 알긴 아나용."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군대 가는 것도 아니고 나 수업 없으면 나올 수 있어 명헌아."

"아오 진짜 누가보면 남친 군대 보내는 줄 알겠네!!"



주변의 웅성거림이 경악의 침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내 테이블을 닦던 김붕팔은 뜨뜻해진 행주를 정리하여 주방으로 들어갔다. 저 테이블 이상해. 또라이들이야 멀쩡하게 생겨서 셋이 말이 하나도 안통해 미친.

주위의 경악어린 시선을 자외선처럼 받으며 최동오가 맥주를 따르고 정대만이 고기를 자르고 이명헌이 구운 고기를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눈 아프다 뿅, 거기 물티슈 좀 넘겨라 정대만.
그러길래 불판에 얼굴을 왜 내밀고 그래, 눈물 나게.
말했잖아 최애를 연수원 기숙사에 떠나보내는 내 슬픔-
슬픔이고 지랄이고 빨리 고기나 날라라. 불판 갈자.



그리고 이명헌과 최동오는 사귀지 않는다.


슬램덩크 동오명헌


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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