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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4 21:21
태웅이는 어느날부터인가 그 선배가 눈에 자꾸만 걸렸겠지.

체력도 저질이면서 자신감은 넘치고 근데 또 불안해 하는 게 보이고, 3점 슛을 슉슉 쏴대며 팀 내의 핵심 득점원이면서도 늘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을 하며 나머지 연습을 자처하는 그 선배.

처음엔 그런 선배의 성격들이 시선을 끌었고 그 다음엔 표정이 눈에 들어왔겠지.
험악한 인상이라고만 생각 했었는데 다시 보니 쳐진 눈매에 웃을 때는 눈이 가늘게 변하며 휘어지는 모습이 그 날의 그 양아치가 맞나 싶은거지. 짧게 친 스포츠머리인데도 자신과 달라보이는 보슬보슬한 결...

태웅이 무의식중에 자꾸만 이런 생각하면서 본인이 판단하기 전에 손부터 나갔을 듯ㅋㅋ



처음은 팔이었음. 훈련 끝나고 다 지쳐서 헥헥대면서 포카리 마시고 있던 대만이 갑자기 자기 팔에 촉감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태웅이가 언제 다가온건지 대만이 팔뚝을 손으로 살짝 쥐어보고 있음.

대만이는 뭐지? 싶다가 그냥 크하하 웃으면서 '왜 서태웅, 이 형님의 팔근육이 멋지냐?' 하면서 장난스럽게 받아치는데 태웅이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신기해서요.' 한 마디 던지고 훽 가버림. 대만이가 뒤통수에다 대고 '뭐가 신기한건데! 야!' 불러도 대답도 안 함.

태웅이 슛 넣을 때는 근육이 뙇 서는데 경기 끝났다고 다시 매끈해진 정대만 팔이 신기해서 만진거임ㅋㅋ 슛 자세에 근육 서는거야 당연하긴 한데...이렇게 아무것도 없어뵈는 팔 안에 그 근육이 어떻게 숨어있다 나오는거지...하는 생각ㅋㅋㅋ

그리고 이 뒤로 서태웅의 기습 만지작이 종종 행해졌음.



부실에서 다 같이 비디오 본다고 옹기종기 앉아 있었는데 대만이 갑자기 뒷목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져서 돌아보면 서태웅임.
이번엔 머리카락 만지작 거리고 있었겠지.
이 선배는 머리카락이 어떻게 이렇게 복슬복슬하지...
태웅이 한 손으로는 자기 머리카락 만지고 다른 손으로는 대만이 머리카락 만지작대고 있어서 대만이 대충 얘가 왜 만지는지 알긴 할듯ㅋㅋ이녀석이 귀여운 구석이 있네 싶어서 한소리 하려다 그냥 픽 웃고 머리 대주겠지.

그리고 대만이가 다른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눈꼬리 휘어지게 웃고 있으면 빠안히 바라보다가 어느샌가 스윽 다가와서 대만이 눈가 손으로 만져보는 서태웅...
주위 애들 전부 이건 뭐...? 싶은 상황에 머리위에 물음표만 띄우고 서태웅 쳐다보고 있는데 이땐 태웅이도 마음 속의 생각(선배 눈꼬리가 쳐져있는데 끝은 올라간 게 예뻐서요)을 그대로 말하면 안될 것 같다고 왠진 몰라도 느꼈음.
그래서 그냥 '선배 눈꼽 붙어서요.' 하고 휙 가버림. 누구 하나가 '아 뭐야! 대만선배 드러!'하면서 분위기 풀렸을듯.



또 한 번은 공식 훈련 뒤에 둘이서 따로 원온원을 끝내고 집에 가려고 옷을 갈아입는데 대만이가 갈아입으려고 락커룸 의자에 꺼내둔 티셔츠를 빤히 바라보는 태웅이었겠지. 바로 옆에 펼쳐둔 자기 티셔츠보다 한 치수 작은 품.
아, 선배가 나보다 몸집이 작았구나...

그리고 둘이 집에 가려는데 비가 투둑투둑 오는거야. 부실을 뒤져보니 우산이 딱 하나 남아있음. 하는 수 없이 자전거는 그대로 두고 버스정류장까지 우산 같이 나눠쓰고 가기로 했지.
대만이가 우산을 들고 둘이 함께 빗속을 걸어가는데 문짝만한 농구부 남자애 둘이 우산 하나가 가당키나 해? 당연히 둘 다 머리만 가리는 수준임.

대만이가 태웅이 불편하지 말라고 우산 든 팔을 살짝 들고 있었는데 바람이 부니까 우산이 조금 휘청 한거야. 태웅이 아무생각 없이 우산이 흔들리니 우산 손잡이 위쪽을 잡았고 시선이 닿아서 손잡이를 봤는데 자기 손 아래쪽에 손잡이를 잡고 있는 선배 손...
...작네. 선배가 몸만 작은 게 아니고 손도 작구나...

대만이 덩치도, 손도 객관적으로 절대 작은 크기가 아닌데 태웅이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태웅이 눈에 선배가 작아보인 적 없었고 얘도 정대만이 일반인 기준에서 큰 덩치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작은 게 신기한거.

그래서 그냥 손을 스윽 잡아본거지.
자기 손으로 다 감싸지는 선배 손...차가운 빗속 공기에도 여전히 따뜻한 손의 온기가 손바닥에 느껴져서 태웅인 따뜻하다고 생각하며 그냥 가만히 잡고 있었는데 손이 잡힌 대만이는 입장이 달랐지. 너무 놀랐고 또 조금 떨려서 얼떨떨함...


"...야 왜, 왜 그래."


서태웅이 갑자기 자기 손을 잡더니 걸음도 멈추고 가만히 있으니 대만이는 머리속이 난리가 났음. 그래서 더듬더듬 간신히 물어봤는데 태웅이가 계속 손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대만이를 스윽 보더니 대만이 손에서 우산을 뺏어들고 '제가 들게요.' 한 마디 하더니 다시 걸어가는거야.
대만이 심장이 속절없이 떨려와서 속으로 '얘 뭐야, 얘 뭐지?' 반복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어깨에 둘러오는 서태웅 팔...


"다 젖어요. 안쪽으로 와요 선배."
"...어, 어."


분명 평소와 똑같이 수업을 듣고, 훈련을 하고, 이녀석과 원온원도 했고, 비가 와서 그냥 우산을 같이 쓴 것 뿐인데..그런데...
대만이는 자기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서 빗소리가 귀를 때리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음.

둘이 버스정류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버스 하나가 출발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타야하는 버스였던 것 같아.
우산을 접고 정류장 의자에 둘이 앉아있는데 왜 이렇게 버스는 안 오는지...고작 1-2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도 대만이는 너무 초조한거야.

그래서 입술을 괜히 꼭꼭 이로 물고 있었는데 태웅이는 그런 선배의 모습에 더 시선이 뺏겼겠지.
아까 빗 속을 걸어오며 품 안에서 느껴졌던 따뜻한 선배의 몸, 장대비가 귀를 때리고 있는데도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약간 떨리는 숨소리. 비냄새 사이로 흩어지는 선배의 바디워시 향.
그리고 지금 제 옆에 앉아있는 그 선배.

자기 입술을 씹어대고 있는 정대만을 서태웅이 가만히 바라보는데 새삼 또 느끼는거지.
선배는 입술이 꼭 병아리같네...

그리고 자기 입술을 만져보는 태웅이야. 손 끝에 느껴지는 익숙한 작고 얇은 입술. 선배 입술은 다른 느낌일까..?



태웅이 손이 대만이 입술에 닿았을 때 대만인 너무 놀라서 입술을 꽉 깨물어버렸고 금새 피가 살짝 베어나왔어.
방금 전까지 놀랐던 맘을 뒤로하고 순간 '아으..쓰라려...'라고 말하며 혀로 살짝 피를 핥아낸 대만이.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던 서태웅.



그 때 깨달았어.

아, 나 선배가 좋구나



입을 맞췄고, 아무도 없는 어두운 버스정류장, 하늘이 뚤린 듯 쏟아지는 빗소리...그렇게 서태웅의 첫키스는 비릿했지.
비릿한 비냄새가 났고 비릿한 피맛이 났으니까.







슬램덩크 태웅대만 탱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