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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4 10:13
태대 연반 보고 싶다. 북산고 3학년 ↔ 2학년 연령 바뀐 설정으로.

얘네 첫 만남은 정대만 북산고 입학식날. 아직 부활동 신청 열리지도 않았는데, 오로지 안선생님의 농구부 하나만 보고 북산고 입학한 정대만은 입학식 끝나자마자 농구부 연습장 찾아감. 빳빳한 교복입고 어디 북산고 농구부 실력 좀 볼까, 하고 입구에서 고개 쭉 빼고 있는데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연습하러 오던 송태섭, 자기네 연습장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훤칠한 등짝 발견함.

송태섭은 오늘이 입학식인데 설마 신입생이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누가 농구부에 친구 만나러 왔나 싶어서 물어봄.

"누구 찾아왔어?"

그말에 홱 돌아보는 말간 얼굴의 열일곱 정대만.

정대만 빤-히 송태섭 쳐다보는데 송태섭 눈썹 한번 휙 들어올리고는 마주 쳐다보기만 함. 잠깐동안 그러고 있는데. 반짝반짝한 눈으로 송태섭 쳐다보던 정대만 얼굴 점점 찌푸려지더니 대뜸

"나 몰라요?"

함. 

"모르는데."
"무석중 정대만. 중학 MVP. 진짜 몰라요?"

정대만 농구 유니폼 입은 송태섭 쳐다보면서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믿기지 않은 얼굴로 재차 물어보지만

"진짜 모르는데."

송태섭 심드렁하게 대꾸하면서 "좀 비켜줄래?" 함. 

중학 농구계의 슈퍼스타 정대만, 자기 몰라보는 송태섭 때문에 입 삐쭉거리면서 길 터주고는 한 마디 함.

"기다려요. 나 농구부 들어올 거니까."
"어. 그래라."

뒤도 안 돌아보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송태섭에 "칫" 하면서 돌아가는 정대만. 아버지 차 타고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외식하러 가는 내내 어떻게 나를 모르지, 농구하는 사람이???? 하고 억울해 함.

근데 진짜 모른다던 송태섭, 사실 정대만 알고 있음. 알다 뿐일까. 달재랑 무석중 경기도 몇 번 보러갔는데. 

처음엔 농구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놈 있어서, 어차피 중학 경기는 표 구하기 어렵지도 않으니까 달재랑 한 번 볼까 하고 가본 거였음. 근데 정말 코트 위에서 날아다니는 놈 하나 있어서 40분 동안 걔한테서 눈 한 번 못 뗐지. 그러다 마지막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승리가 확정되던 순간, 무석중 에이스가 주먹 높이 들어올리면서 환하게 웃는데. 경기 내내 팔꿈치 무릎에 기대고 손으로 턱 괴고 앉아서 지켜보던 송태섭,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벼락 맞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남. 

<태섭아??>

왜 그러냐고 묻는 이달재한테 <아니... 나 먼저 갈게.> 하고 자리 뜨는데 다음 번 무석중 경기에 달재 빼고 혼자 와서 앉아 있음. 그 뒤로 특별한 일 없는 한 무석중 경기 꼬박꼬박 보러다니던 송태섭. 마지막 결승전에서 안선생님 조언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어서 기어이 우승 트로피 거머쥐고 울면서 웃는 정대만 얼굴 보고 심장에 뭐가 쾅!!! 들이 받는 기분에 뭔가 찝찝했지만 그게 첫사랑에 빠지던 순간이라고는 상상도 못함.

그리고 몇 개월 뒤. 난 데 없이 농구부 연습장 앞에서 마주친 그때 그 MVP 정대만 보고 다시 한 번 쾅!!! 요동치는 가슴에 영문도 모르고 체한 사람처럼 가슴팍만 퍽퍽 치고 연습 시작함.

며칠 뒤 드디어 농구부 신입생 들어오는 날. 간만에 송태섭 기분 좋음. 인기 없는 북산고 농구부, 3학년은 포지션별 1명씩도 못 채우는 수준이라 2학년 된 송태섭이 주장 완장 차야 될 정도로 폐업 직전이었는데 올해는 신입생 꽤 북적거리니까. 그리고 그 신입생들 몰고 온 장본인 정대만. 일렬로 선 신입생들 중에 제일 가운데에 서서 부루퉁한 얼굴로 자기 못 알아 봤던 송태섭 쳐다보다가 눈 마주치니까 홱 고개 돌려버리는데. 그 꼴 보고 혼자 피식, 웃다가 이달재가 "왜?" 하고 묻는 소리에 "아냐. 아무 것도." 하는 송태섭.

그렇게 주장 송태섭과 신입 에이스 정대만의 우당탕탕 북산고 농구부 시작되는데. 정대만 처음엔 송태섭 선배 별로 안 좋아함. 자기 못알아 본 것도 있고. 누가봐도 신입생 중에 자기가 제일 잘하는데 송태섭 선배는 채치수나 권준호만 더 봐주고 있거든. 혹시 자기가 너무 유명인이라 기를 꺾어 놓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기도 했지. 근데 정대만 뼛속까지 농구인에 사람 좋아하는 인간이라 한, 두달 지날수록 송태섭 진가를 알아보겠지. 송태섭이 채치수나 권준호를 더 봐주던 건, 아직 기술이 부족한 채치수와 타고난 감은 없지만 노력파인 권준호한테 기본기 가르쳐주는 거였지. 게다가 드리블 실력도 출중하고, 신입생들 가르치는 걸 보면 기본기부터 탄탄히 다져 온 실력이라는 게 보임. 결국 몇달 지나면 송태섭한테 감겨서 선배! 좋아! 하고 졸졸 쫓아다님.

"선배. 태섭이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안돼."
"형이라고 할래요."
"안된다고 했다."
"치."

그렇게 삐져서 가놓고 며칠 뒤에 또 수작 부림.

"나 오늘 혼자 15점 내면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안돼."
"치."

"나 오늘 3점슛 3번 연속으로 넣으면 형이라고 부를 거에요."
"안돼."
"치."

"나 오늘-"
"안돼."
"치."

포기를 모르고 찔러대는 창 정대만과 뚫리지 않는 방패 송태섭. 거의 농구부 명물임. 자기보다 작은 주장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형이라고 부르면 안되냐고 하는 정대만이랑 그럴 때마다 눈썹 짝짝이 만들면서 손바닥으로 정대만 이마 꾹 미는 송태섭. 근데 송태섭 정대만 삐져서 돌아서면 혼자 웃고 있겠지.

그렇게 둘이 슬금슬금 친해져서는 가끔 하교도 같이 하고, 정대만이 눈치 좀 보다가 "형-" 했다가 슥 쳐다보는 송태섭 눈빛에 "배님..." 할 만큼은 가까워지는데 어느날 연습 시합하던 정대만이 무릎을 다치게 됨. 송태섭 그때 2학년 시험 있는 날이라 이미 사건 벌어지고 난 뒤에야 전해 듣겠지. 정대만 다쳐서 구급차 실려 갔단 얘기 듣고 실내화 차림으로 병원으로 달려오는데 깁스하고 누워서는 송태섭 보자마자 "어?? 태섭이형!!" 하면서 좋다고 웃는 얼굴보고 다리에 힘 풀려서 주저 앉음. 턱까지 찬 숨 몰아쉬면서 괜찮냐고 묻지도 못하고 눈으로 얼마나 다쳤나 정대만 구석구석 살펴보는데 정대만은 그저 송태섭이 자기 보러온 거 좋아서 

"나 다쳤다 그래서 온 거에요?? 에이 별 거 아니에요! 이 정도야 뭐 금방 일어나지!"

그리고 깁스 툭툭 두드리는 손에 송태섭 심장도 같이 툭툭 떨어지는 기분이라 그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됨. 자기가 정대만 좋아하는 거. 그리고 동시에에 좆됐네, 싶었지. 아무리봐도 세상 고생이라곤 모르게 밝고, 환하고, 사람 좋아하고, 여유있게 큰 태가 철철 나는 정대만은 자기랑 안 맞는 상대라서.

송태섭 한숨 한 번 푹 쉬고는 깁스 툭툭 치는 정대만 손, 제 손으로 떼어놓으면서 "조심 안 하냐." 하는데 속내도 모르는 정대만은 "왜요? 나 걱정돼요???" 하고 초롱초롱한 눈 빛내면서 쳐다보고 있음. 대답 대신 "빨리 나아서 와라." 하고 정대만 정수리 한 번 툭 치고 병실 나서는 송태섭. 자각과 동시에 마음 접기로 결심함.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다른 후배들 하고 똑같이 대해야지, 하는데 아직 깁스도 제대로 안 푼 다리로 연습장 나타난 정대만 보고 노발대발함. "너 제정신이야???" 불벼락같은 고함 지르는 송태섭에 정대만 놀라서 눈물이 다 그렁그렁해지는데 눈물이고 나발이고 애 잡을 기세로 혼내키는 거 이달재가 말려서 겨우 끝났겠지. 철 없는 정대만은 동기들이 태섭선배가 너 걱정해서 그런거라고 달래줘도 들은 체도 안 하고 삐져서 나가 버리고. 송태섭도 정대만 울린 거 때문에 그날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그정도로 했으니 다신 무리할 생각 안 하겠지, 하고 애써 마음 다잡는데. 정대만이 그럴 리가. 기어이 송태섭 없다는 날 골라서 아직 낫지도 않은 다리로 농구부 연습 참가했다가 악, 소리 내면서 구급차 실려 감.

그날 처음으로 송태섭 후배들 기합 줘 본 날이었음. 후배들한테 대체로 다정한 평소의 송태섭이라고는 상상도 못할만큼 머리 끝까지 화나서는 정대만하고 어울려서 같이 시합한 놈들 다 엎드려뻗쳐 시키고 너흰 생각이 있는 놈들이냐 없는 놈들이냐, 불같이 화내고. 정작 정대만한테는 바로 안 찾아갔겠지. 이대로 걔 얼굴보면 개한테도 쏟아부을 거 같아서. 그래서 한 이틀쯤 뒤에 정대만 병실로 찾아가는데 전처럼 신나서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쳐다보는 정대만 얼굴 대신, 미안한 얼굴로 "대만이가 지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하는 정대만네 어머니만 만나고 옴. 송태섭 아니라고 실례했다고 하고 돌아오는데 착찹하기가 이를 데 없지. 그래도 천성이 밝은 놈이니까, 금방 떨치고 나타나겠지, 하고 좋게 생각해보지만 그 다음 방문도, 또 그 다음 방문도 계속 거절하는 정대만 보면서 속이 탐.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찾아가겠지. 그리고 끝끝내 송태섭 방문 다 거절하는 정대만.

그렇게 정대만 없이 북산고는 인터하이 치르게 되고. 결과는 당연히 예선 탈락. 송태섭도 당연히 좋은 결과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병원에 누워있는 정대만에게 기쁜 소식 들려주고 싶었는데 잘 안돼서 더 속상했음. 그렇게 씁쓸함만 남긴 인터하이 마치고 학교로 복귀한 송태섭 귀에 정대만 며칠 전부터 등교했다는 소식 들려옴.

송태섭 그동안 얼굴 한 번 안 보여주고 사람 애태운 정대만이 괘씸하면서도 퇴원했단 소식이 제 일처럼 반가움. 그래 퇴원했다니 이제 곧 연습장에 나타나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농구부 연습장에 정대만 코빼기도 안 비침. 송태섭은 정대만 안 나타난 첫날부터 당장 찾아가서 얼굴 보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병원에 누워 있는 내내 사람 안 만나고 싶어하던 정대만이잖아. 그 마음이 아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라, 당분간은 그저 기다려보기로 함. 그러더니 어디 불량한 애들하고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오지.

처음엔 송태섭도 설마, 했음. 정대만이? '그' 정대만이? 하고 안 믿었는데. 정대만 동기인 농구부 1학년 하나가 학교 근처에서 정대만 보고 말 걸었다가 같이 다니는 불량한 패거리한테 쥐어 터지고 온 꼴 보고 땀 닦던 수건 집어던지고 1학년 교실로 정대만 찾아감. 교실에 없길래 뒷문 옆에 서서 잠깐 기다리고 있었더니. 얼씨구.

못 본 사이에 치렁치렁하게 기른 머리를 하고 날티나는 교복차림에 딱 봐도 껄렁껄렁하게 생긴 놈들하고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는 정대만이지. 송태섭 벽에 기대 서 있다가 눈썹 한 쪽 삐죽 들어올리는데 저 쪽에서 패거리랑 걸어오던 정대만, 교실 앞에 서 있는 송태섭 보고 뚝 멈춰 서더니. 곧 한쪽 볼이 불룩해지도록 이 악 물더니 뚜벅뚜벅 걸어옴.

어디 뭐라고 하려나, 송태섭 고개 비스듬히 기대면서 한 번 해보라는 듯이 쳐다보는데. 송태섭 본 체도 안 하고 지나치는 정대만 때문에 머리 꼭대기까지 열받음.

"정대만."

송태섭 지나쳐서 교실로 들어가던 정대만. 그 부름에 저도 모르게 발길이 뚝 멈춰섬. 그래놓고 돌아보지는 않지. 송태섭 돌처럼 굳어버린 그 등에 대고 물었지.

"농구 안 할 거야?"
"......안해요. 농구 같은 거."

억누른 목소리로 하는 대답에 송태섭 벽에 기대고 있던 몸 떼어내면서 다시 물었어.

"진심이야?"
"무슨 상관-"
"너 이대로 가면 나 영영 너 안 본다."
"......"
"나도, 농구도. 영영 끝이라고."

고개 푹 숙이고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 꽁꽁 감춘 정대만 아무 대답도 못 하는데. 조금 기다리면 부들부들 떨리는 등이며 흰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만 봐도 알지. 그대로 정대만이 숨겨둔 얼굴 들춰다가 꾹 한 번 안아주고 싶은 거 꾹 참고 주먹 말아쥐면서 

"머리 싹 밀고 와라. 긴 머리 안 어울린다."

하고 떠남.

그리고 다음날. 진짜로 치렁치렁한 머리 깔끔하게 자르고, 괜히 민망해서 더 뚱한 얼굴로 나타난 정대만. 그동안 죄송했다고 냅다 고개 박으면서 사과하는데 송태섭 그 순간 깨달았지. 아, 나 얘 진짜 좋아하는구나. 접겠다고, 시작도 하지 말자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얘가 울면 마음이 짜르르하고, 얘가 웃으면 심장이 소리지르는 것처럼 뛰는데 무슨 수로 접겠어. 

그렇지만 송태섭 자기 마음 인정한 거랑 별개로 정대만이랑 잘해 볼 생각 없음. 둘이 너무 다른 사람이고 안 맞을 게 뻔하다고 생각해서. 고백할 생각 조금도 없지. 근데 문제는 정대만이다.

정대만 고입 준비할 때 오라는 곳 그렇게 많았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여 준 안선생님 하나 보고 북산고 지망한 의리와 순정의 열일곱인데. 방황할 때 자기 멱살잡고 다시 농구 코트 앞으로 데려와 준 송태섭이 얼마나 고맙고 좋았겠어. 그동안의 정대만이 <선배! 좋아!> 하는 눈으로 송태섭을 쫓아다녔다면 이제는 <선배!!!!!! 좋아!!!!!!>임. 

"형!!!"
"선배님이라고 하랬다."
"강백호는 섭섭이라고 불러도 뭐라고 안 하면서."
"안 하면서?? 반말이냐??"
"요."

시간이 금방 흘러 이제는 2학년 된 정대만. 나름 선배라고 새로 들어온 1학년 후배들 가르칠 때는 "백호야. 그렇게 하면 안되지." 하고 의젓하게 말하면서 송태섭 앞에서는 꼬리 흔드는 개가 따로 없음. 송태섭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삐죽 튀어나온 입을 손가락 두개로 쑥 눌러 넣어주고는 "가서 연습해." 하고 돌려보냄. 

요즘의 정대만은 아주 의지가 만만이지. 작년에 부상 때문에 인터하이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 탓에 올해는 반드시 자기가 북산을 결선에 데려가겠다고 불타올라서는 연습도 제일 먼저 나오고 제일 늦게 돌아감. 게다가 아직 서툴지만 재능은 넘치는 강백호를 데리고 매일 훈련시키는 중인데 선배랍시고 강백호가 하나 배울 때마다 "좋아, 잘했어!"하고 퍽퍽 두드리면서 칭찬해주다가도 뭐에 또 틀어졌는지 "야잇! 임마!!" 하고 소리 지르고 있음.

이 시끌벅적한 코트에서도 송태섭 귀에는 오로지 정대만 혼자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와서 합숙훈련 일정을 정리하다 말고 혼자 피식 웃으면 옆에 있던 이달재가 빤히 쳐다보지.

"왜?"
"아니. 요새 잘 웃는다 싶어서. 보기 좋다, 태섭아."

그 말에 마음이라도 들킨 것처럼 괜히 뜨끔해서 한 손으로 얼굴 쓸어내리면서 괜히 입꼬리 딱딱하게 굳혀 보지만

"날 제치려면 한참 멀었다!!"

후배 데리고 의기양양해져서 소리치는 정대만 목소리에 다시금 비죽 웃음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음.

이렇게 남들이 보기엔 꽤 사이좋은 선후배고, 당사자인 송태섭이 느끼기엔 미적지근하고 곤란하기만 한 관계가 전환되는 건 인터하이 3회전 탈락 이후. 

기적같은 산왕전 승리 후, 이어진 지학전에서 참패하고 돌아오는 길. 처참한 결과에 모두가 울었지만 다 쏟아부어서 후회는 없는 경기였지. 송태섭은 주장답게 아직까지 울먹울먹하는 애들 다독여서 버스에 태우고. 가장 마지막으로 오늘 경기내내 따라주지 않는 몸 때문에 누구보다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해하던 정대만에게 다가감.

"이제 가자."

그 말에 그 때까지 락커룸에 수건 뒤집어 쓰고 앉아 있던 정대만, 느리게 고개를 드는데. 이거 또 줄줄 울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더니만. 

"내년엔 꼭 전국대회 우승할 거에요."

눈물자국이 얼룩덜룩한 뺨을 한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또 반짝반짝해서. 송태섭은 다시 한 번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지면서도 주머니 속에서 꾹 움켜쥔 주먹 안에 마음을 다 갈무리해 넣으면서 그저 정대만 머리통만 쓱쓱 아프게 문질러 주지.

"그래. 내년엔 너희가 북산을 이끄는 거야."

그렇게 등 툭툭 두들겨 주고 잘 달래서 데리고 왔는데.

그날 이후로 정대만이 영 이상함. 100미터 밖에서도 송태섭이 보이면 "형!!!" 하고 달려와서 "...배님." 하고 슬그머니 눈치보던 놈이 요새는 락커룸에서 마주쳐도 영 시무룩한 얼굴로 "오셨어요..." 하고 나감. 처음엔 송태섭도 내가 과민한 건가? 싶었지만 이달재까지 "대만이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어오는 통에는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지. 그동안은 3학년 수업 마치는 시간까지 기다려서는 같이 연습장 가자고 졸졸 쫓아다니던 놈이 집에 같이 가자는 소리에도 슬그머니 피해버리고. 결국 정대만 그러는 거 한 열흘쯤 지켜보던 송태섭이 더 못참고 불러내서 요새 왜 그러냐, 무슨일 있냐, 묻는데.

"내년엔 형이 없잖아요!!"

하고 쭈그려 앉으면서 냅다 울어버리는 통에 송태섭만 얼떨떨함. 

그치만 우느라 다 뭉개진 목소리로 "난 형이랑 같이 우승하고 싶었다구요!!" 하고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을 한 정대만을 보고 있자니 비죽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사람 속도 모르고 이러는 게 야속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에 피식 웃는데 그게 그렇게 억울했는지, 정대만 잘생긴 눈썹 삐죽 솟으면서 따지고 들지.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뭐가."
"내년엔 우리 같이 못 뛰잖아요."

송태섭도 아쉽지. 서운하지. 근데 이렇게 온몸으로 나 지금 서운하고, 형이랑 헤어지기 싫고, 내년에도 같이 있고 싶어요, 외치는 정대만을 보고 있자니. 얘는 참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고, 감정도, 표현도, 사람도, 다 많기도 하다 싶으면서. 확실히 자기랑 다른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는 거야. 심지어 똑같이 헤어지기 싫은 마음인데 자기는 들킬까봐 티 한 번 못내지만 애는 저렇게 냅다 주저 앉아서 외칠 수 있을만큼, 아무렇지 않다는 것도.

송태섭 조금 씁쓸하게 웃고는 정대만 앞에 같이 쪼그려 앉음.

"넌 내가 그렇게 좋냐."

자조적으로 묻는 말이었는데 정대만 울다 말고 그게 무슨 당연한 소리냐는 듯이 눈만 껌뻑껌뻑함.

"네. 좋은데요???"

그리고는 또 입술 삐죽 튀어나오면서 덧붙이지.

"형은 나 안 좋아해도 난 형 좋아해요."
"내가 너 안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
"......네?"
"나도 너 좋아해."
"어...... 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얼떨떨한 얼굴로 더 빠르게 눈만 깜빡이고 있는 정대만 쳐다보다가 조금 억센 손길로 하얀 턱을 꾹 잡아쥐면 맹수한테 잡힌 것처럼 푸드득 튀어오름. 

송태섭 제 손 안에서 파르르 떨리는 정대만 그대로 느끼면서 이 지지부진한 마음은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맞겠지, 하고 독하게 결심하지. 

"근데 어떡하냐. 난 너랑 좀 다른데."

그러고 늘 손가락으로 꾹 눌러봤던 정대만 입술 위에 제 입술을 포개는데. 운동하는 남자애 답게 말랑하기보단 까칠한 입술이 사로잡힌 새처럼 부르르 떨리는 걸 맞닿은 입술 위로 고스란히 느끼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설 만큼 흥분해서는 저도 모르게 혀부터 밀어넣음. 다물지도, 벌리지도 않는 입술을 채근하느라 손가락으로 힘줘서 턱을 누르면 저도 모르게 스르르 벌어지는 입안은 너무 뜨겁고, 축축하고, 연약한 짐승처럼 엉망으로 떨리고 있어서 자꾸만 깊게, 깊게, 혀를 밀어넣으면서 온 입안을 훔칠 기세로 더듬다가. 

"흣!"

정대만의 꺾인 호흡에 불현듯 정신이 들어서 그때까지 잡아 먹을 것처럼 달려들던 송태섭. 눈 번쩍 뜨면서 정대만 놓아줌.

저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술 가리면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정대만 얼굴이 온통 혼란스럽기 그지 없어서 송태섭 이제 다 망했구나 싶지. 그렇게 쓴 웃음만 짓는 송태섭 쳐다보다가 도망치듯 뛰어가는 정대만. 이렇게 정대만을 잃는 게 아쉬우면서도 좀 후련함. 어차피 반년 있으면 졸업이고 자기 마음도 여기서 정리하는 게 맞으니까. 이제는 정대만도 함부로 자기 마음에 비집고 들어와서 허락도 없이 애틋해지지 않겠지. 한발짝 떨어뜨려 놓으면 두발짝 훌쩍 다가와서 저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베기게 하지 않겠지. 그치만 좀 더 부드럽게 정리하는 게 더 나았을까. 그렇게 겁먹은 얼굴로 도망치게 하지 말고, 그냥 아무 것도 모른 채 서서히 멀어질걸. 놀랐을텐데.

혼자서 그런 후회하면서 연습장에 나타나지 않는 정대만을 안 기다리려고 애쓰면서도 기다리던 송태섭인데. 

그렇게 도망치고 연습도 안나오던 정대만. 일주일 뒤에 농구부 연습장에 나타나더니 비장한 얼굴로

"좋아요. 형이랑 사귈게요."

하는 바람에 기어이 뒷목 잡는 송태섭이 보고 싶다....

그리고 이어지는 철옹성 연상과 덤프트럭 연하의 클리셰 덩어리 같은 거...

대학 간 송태섭 소개팅 깽판 쳐놓고 지가 먼저 우는 정대만이나
자기랑 안 사귀어주는 송태섭 때문에 게이바 간 정대만 때문에 눈 뒤집히는 송태섭이나

송태섭이 안된다고 거절할 때마다 "나한테 뽀, 뽀, 뽀뽀했잖아요!!" 하고 동정 잃은 얼굴 하는 정대만
먼저 덤벼들어서 입술 박치기 해놓고 혀 밀어 넣으면 겁부터 집어 먹는 정대만

죽어도 안 사귀어주면서 정대만 어디 질나쁜놈이랑 만나기 시작하면 세상 무서운 얼굴로 그새끼 만나지 말라고 찾아오는 송태섭
무슨 상관이냐고 소리지르는 정대만 입술 이번에도 야하게 훔쳐가 놓고 다음날 또 안사귀어주는 송태섭

이런 연상연하 클리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