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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 22:33
왜이리 보고싶은 밤일까ㅜㅜ



호열이 평판은 대외적으로 정말 괜찮겠지. 해동중 일짱을 넘어 지역구 일짱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먼저 시비만 안 걸면 대체로 무심한 데다가 여자애들이나 약자들한테는 상냥한 구석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호열이 성격이었지만 사실 호열이 이미지 관리 차원보다도 자라온 환경 때문에 그렇게 큰것도 있겠지.

호열이 아버지는 야쿠자 오야였으니 이미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으른들의 폭력을 보고 자랐음. 그러니 애들 싸움 정도야 너무 시시했겠지. 야쿠자 세계에선 싸움도 싸움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살아남는 방식이었음. 불필요한 싸움은 줄여 조에 손실이 나지 않게 하고, 서로 웃음도 안 나오지만 웃으면서 거래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겉과 속이 다른 세계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성격이 그리 됨.

그렇다고 시비터는 애들한테까지 자비로운건 아니라 기술로 다져진 주먹맛 좀 보여주었지만 사실 호열이는 이 모든 게 너무 시시하고 염세적으로 느껴지면 좋겠다. 그러던 차에 만난게 백호인거야. 처음엔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애를 보고 오랜만에 호승심이 생겼는데 싸우다보니까 호기심이 생겨. 어떻게 저 어린애가 사람 하나 죽일것 같이 살벌하게 싸울까? 아무리 이기는 게 좋다지만 저런 살기는 어른들도 내보이기 힘들거든.

어쨌든 흥미가 생긴 호열이는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백호 옆을 차지하게 됨. 처음엔 적이라고 경계했던 백호도 자기가 오해한거 알기도 했고 호열이한테 사과도 들어서 같이 다니게 되겠지. 그때는 둘 다 약간 빨강이 좋아 같지 않았을까. 아무튼 같이 다니게 되면서 알게 된건데 생각보다 백호는 귀엽고 순진하단 사실이겠지.

그렇게 귀신처럼 싸워댈 때는 언제고 빵 하나만 사달라면서 감히 제 돈을 삥 뜯고 샐샐거리는데 너무 어이없으면서도 그 모습이 점점 귀여워보여. 바보짓 할때마다 진짜 황당한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음ㅋㅋㅋ 다른 애들이 그랬으면 내가 니 지갑이냐? 하고 인상 팍 쓰거나 그냥 무표정하게 바라봤을텐데 이 덩치는 산만한 애가 호여라~ 하면서 살살 제 눈치 보고 애교부리면서 빵 하나만 사달라는게 그리 웃기고 귀여울 수가 없는거야.

그렇게 몇달을 지내다보니 애가 눈에서 안 보이면 심심하고 지루해지는거. 그리고 그런 보석은 다들 알아보는지 학기초만 해도 빨간머리 무서워 하던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애들 사이에서 주눅들어있던 백호도 점점 활기를 되찾아선 방긋방긋 웃고 다니는 모습이 꽤나 귀여울거임.

그러다 문득 호열이 백호가 안 보이면 보고싶고 지금도 같이 있고싶고 이유없이 퍼주고 싶은 마음이 뭔지 깨닫고는 사랑이라는거 바로 알아차릴거 같음. 그렇다고 딱히 놀랍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진 않았을거 같음. 그보다는 그냥 원래 이렇게 되려고 만났다는 느낌이 더 크겠지.

그리고 호열이는 딱히 급할 게 없었음. 어쨌든 백호는 지금도 제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잠들어선 흠냐흠냐 잠꼬대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건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제 몫이어야 했음. 그리고 그걸 깨달은 날, 호열이 백호한테 입만 살짝 맞췄는데 백호 잠자느라 기억도 못할듯ㅋㅋ

아무튼 그뒤로 백호가 누구한테 고백했다하면 은근히 방해들어가는 호열이 보고싶다. 깨닫기 전까진 개꿀잼 고백 컨텐츠였을듯. 그리고 지금도 물론 꿀잼 컨텐츠임. 어차피 그나이대 여자애들은 백호 같은 애들은 좀 무서워해서 알아서 차여왔으니까. 그때마다 위로 겸해서 자기한테 모든 걸 다 말하도록 훈련시키기도 했고.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정말 백호한테 마음 있는 여자애도 있겠지. 물론 사랑이 아닌 사겨봐도 괜찮을지도? 하는 마음이라 옆에서 호열이가 웃으면서


- 근데 정말 ㅇㅇ아. 백호랑 만날거야? 그녀석 은근히 마음 여려서 장난이었다간 상처받을지도 몰라.


이래서 진심이 아닌 여자애들이나 호열이가 품은 맘 눈치챈 여자애들은 알아서 멀어졌겠지. 차라리 아주 양키스타일이었으면 호열이도 좀 골치 아팠겠지만 백호 취향은 착하고 청순해 보이는 여자애들이었으니까. 가끔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내는 자신을 백호가 배아파했지만 딱히 오해는 풀어주지 않았음. 그런 모습도 귀여웠으니까.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백호따라 북산에 오게 되겠지. 그때도 호열이는 여전히 느긋했음. 졸업하면 딱히 생각해둔 건 없지만 아버지가 은근히 압박하는 대로 웃기는 가업을 물려받을테고 백호는 언제나 제 옆에 있을 테니까. 지금 봐선 백호도 저만큼이나 뭔가를 하고 싶은지 몰라보였지. 기껏해봤자 여자친구를 만나 등하교 같이 하는 정도? 현실을 사는 백호한테 미래는 너무 멀어보였음.

그리고 호열이는 그때가 되면 대충 백호가 만족해 할만한 직업을 주고 옆에 끼고 살 생각이었겠지. 덩치가 크니까 힘쓰는 일이 어울릴까? 아니야. 그래도 섬세한 일을 할때가 더 귀엽지 않을까? 요리를 잘하니 식당 하나 사줘도 좋을지도. 음, 오늘 보니까 애기 웃기려고 별 표정을 다 짓던데 유치원 교사도 귀엽겠다ㅎㅎ 앞치마 두른 백호라니 벌써 귀엽네ㅎㅎ 하겠지.

그리고 그 옆에서 자기는 적당한 데 위장 취업해서 백호한텐 성실한 남편처럼 보이면 그만일거고. 아무튼 어떤 경우든 백호가 제 옆을 떠난다는 수는 없을거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호열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바란 게 있다면 그건 백호였으니까.



근데 그 계획도 백호가 농구부에 들면서 조금씩 틀어지겠지. 처음 농구부에 들때만 해도 이건 계획에 없던건데 했지만 백호가 좋아하니까 그냥 두었음. 늘 밝긴 해도 방황하는 배처럼 불안해하던 백호가 저리 집중하는 것도 보기 좋았고 저러다 말겠지 싶은 것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백호가 훨씬 더 농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음. 그래도 호열이는 괜찮을거야. 백호가 아주 잘해서 프로농구 선수가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었으니까.

어쨌든 백호는 그 좋아하는 농구를 계속하면 되고, 자기는 그 옆에서 서포트해주면서 적당히 연봉 괜찮은 직장인으로 남으면 되는 거니까. 그러다가 백호가 나이들어 은퇴할 때쯤 프로포즈 하고 아이도 가지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거야.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을때쯤 문제가 터지겠지.

지금껏 호열이 단 한번도 누구한테 자기 정체를 들킨 적이 없겠지. 정체라 봤자 야쿠자 후계자 이런 거지만 어쨌든 호열이 본인 입으로든 행동으로든 한번도 이 사실을 누구한테 들킨 적이 없었음. 어차피 집도 나와살고 행색도 검소하게 다니고 싸움 걸리지만 않으면 싸우지도 않았으니까 남들이 볼땐 오히려 시간까지 쪼개서 아르바이트하며 사는 학생이었지 누구도 야쿠자 후계자인거 모르겠지.

그래도 백호군단은 백호 빼곤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을거 같다. 시내 나갔다가 딱 한번 양복 빼입은 형님이 호열이보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고개 푹 숙일 때가 있었는데 호열이 그때마다 하하 웃으면서


- 아버지 일 때문이 나온거죠? 삼촌이 고생하시네요. 일 보시고 얼른 들어가세요. 다음에 봐요. 삼촌.


이러는데 눈은 안웃음ㅋㅋㅋ 백호군단 그거 보고 다 눈치챘지만 백호만 유일하게 오, 삼촌이야? 안녕하세요! 전 호열이 친구 강백호입니다. 움하하! 근데 이 날씨에 안 더우세요? 이래서 다행히 조직원 목숨은 부지함ㅋㅋㅋ

아무튼 그런 일 이후로 더 조심하는 호열이라 들킨 적 없는데 어느날 구역 정리 견학 갔다가 나오는 길에 운 나쁘게 서태웅한테 그 모습을 들킨 적이 있겠지. 주변엔 조직원들이 널려있고 양호열 손엔 쇠파이프 들려있는 데다가 찢겨진 어깨쪽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레즈미까지 새겨져 있어서 빼도박도 못하게 야쿠자인거 들키는거.

평소 어두운 골목길에 폭력배들 다닌다는 소문 있어서 아무도 안 지나다니는데 세상만사에 관심없는 태웅이라 자전거 타고 숏컷처럼 쓰다가 딱 만난 게 호열이겠지. 둘 다 가만히 서로 쳐다보고 있다가 호열이가 먼저 팟 하고 웃고 태웅인 뚱하게 쳐다봄. 호열이 잠깐 주변 둘러보다가 멋쩍게 웃고는 꼴이 좀 그렇다. 그치?


- 백호한테는 말하지마.


이러는데 저게 협박인건 양호열도 서태웅도 알지만 태웅이 그냥 눈썹 한번 까딱하고는 유유히 현장 지나가겠지.


그 이후로 딱히 태웅이도 별 말 없고 호열이도 평소처럼 지낼거야. 둘이 만나면 딱히 말을 하는 사이도 아니라 호열이 태웅이 보고는 입이 무겁네. 하고 말음. 가끔 자길 빤히 쳐다보는 태웅이 시선이 느껴지지만 별로 신경쓰지는 않겠지. 그렇게 둘 다 그날 일은 누구도 꺼내지 않았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졸업을 앞두고 호열이는 이제 슬슬 백호랑 살 생각을 하겠지. 아무래도 대학가면 백호 혼자 살아야할테니까 그 근방에 집을 얻어야겠다, 같이 살면서 내가 잘 챙겨야지. 같은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미리 떼놓은 두번째 단추를 챙길 때였지. 문득 앞에 그림자가 져서 바라보니까 서태웅이 서있음. 뭔가 싶어 보는데 지금껏 호열이한테 딱히 말한마디 붙인 적 없던 태웅이가 그럴거야.


- 난 졸업하면 미국 간다.


좀 뜬금없는 말에 호열이는 아, 그래? 잘됐네. 하고 생각함. 어차피 백호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근데 그걸 굳이 나한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일단은 축하한다 하겠지.


- 그래. 축하한다. 거기서도 잘 하고.


딱 그 정도 감상이었음. 왠지 모를 불쾌감이 어리지만 친한 것도 아니고 뭐 달리 해줄 말이 있나 싶을 때였지. 마지막으로 인사 한번 하고 백호한테 가려했음. 등 뒤에서 그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 멍청이도 같이 갈거다.


그리고 호열이 그 말 듣자마자 걸음이 멈추겠지. 그리곤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두번째 단추를 만지면서 생각함.


아, 그건 계획에 없었는데.






-



이러고 호열이도 야쿠자 후계자 때려치우고 대신 산하에 있던 미토 병원 물려받아 팔자에도 없던 미국 유학가서 경영학 공부하는...ㅋㅋㅋ 호열이 꿈은 그저 백호 옆에만 있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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