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2276263
view 1904
2023.05.11 20:45
백호 장학재단에서 추천받고 미국가는데 재단에서 제공하는게 어디까지나 학비랑 기숙사 정도라 사실 생활비나 용돈은 자기가 알아서 마련해야하는거지. 물론 그것도 엄청 큰 돈이지만 영어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백호가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알바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백호 이것저것 생각해 보니까 엄청나게 좋은 기회긴 해도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다 싶진 않을거야. 농구만 해도 시간이 없는데 언제 일함. 백호 이런 데서는 지극히 현실적이라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하는데 어쩌다 기적적으로 후원이 들어오게 되는거지. 생활비는 물론 용돈과 거취 문제까지 한방에 해결할 만큼 큰 금액이라 백호 얼떨떨해 하면서도 기쁠거임.

그래도 가기 전에 후원자에게 인사라도 드리는 게 맞다 싶어서 재단 통해서 후원자 찾아가려고 하는데 재단에선 후원자가 신상을 밝히길 원하지 않는다며 절대 안 말해줌. 결국 그렇게 후원자 이름도 못 들은 채로 미국가겠지.

그리고 생각보다 미국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았음. 일단 언어가 잘 안 통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 있다보니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데도 제약이 있고 적응하는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음. 근데 그런걸 후원자한테 말할 수는 없잖아? 이분은 이런걸 기대한 게 아닐텐데. 아무 대가도 없이 자길 후원해주는 분인데 잘하는것만 보여주고 싶잖아.

그래서 편지에는 늘 잘 지내고 있다, 오늘은 뭘했고 동료들이랑도 부쩍 친해졌다 이런 식으로 쓰고 늘 마지막엔 이 모든 게 후원자님 덕분이라고 감사한다고, 나중에 꼭 은혜 갚겠다한 멘트도 꼭꼭 쓰겠지. 그래서 후원자한테 보내는 백호 편지는 늘 밝고 자신만만하고 걱정 하나 없어보이는거야. 후원자는 원래 이런걸 부끄러워하는지 답장 한번 없었지만 백호 딴엔 이렇게라도 보답하려는거.

물론 정말 그렇게 밝고 즐거운 날도 많지만 힘들고 지치는 날들도 많겠지. 그럴때면 호열이한테 전화해서 이것저것 말하면 좋겠다. 둘은 아주 예전부터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기 힘든 부분까지 몽땅 말했으니까. 특히 나와보니까 더 백호는 호열이가 그립겠지. 원래도 저한테 잘해주긴 했지만 호열이가 없는 데 있다보니까 얘가 큰 데부터 아주 사소한 데까지 자신을 챙겨주고 있었단 사실이 더 와닿을거임.

그렇게 새벽이 가도록 전화기 붙잡고 얘기하다가 통화요금에 아차 싶어 끊은 적도 있을거임. 어쨌든 모든 생활비는 후원자가 주는건데 처음엔 국제전화비가 이렇게 비쌀 줄 몰랐던지라 국내 있을 때처럼 전화하던 백호도 요금 폭탄 맞곤 자제할거야. 그러다 하도 전화가 안 오니까 호열이가 먼저 전화할 때도 있을거고.

왜이리 전화가 안되냐는 걱정에 백호도 호열가 알바하면서 산다는거 아니까 대충 통화료가 걱정돼서 그랬다 할거임.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건 호열이가 알바 늘렸으니까 너 하고 싶은 만큼 실컷 얘기하라고 할거고. 공교롭게도 그날 진짜 백호가 엄청 힘들었던 날이라 거의 눈물 쏟기 직전까지 가선 호열이한테 힘든거 다 털어놓을거 같다. 그리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겠지. 호열이도 힘들텐데 나만 너무 칭얼거리는거 아닌가. 그럼 또 귀신같이 호열이가 백호 생각 알아채곤 먼저 자기 적당히 꺼낼거고.


- 그냥, 적당히 회사에 앉아서 돈 세는 일부터 하고있어. 가끔 고객 만나서 접대도 하고.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말에 호열이가 여상하게 말하겠지. 그거 듣고 백호 호열이가 회계나 영업쪽 다니나보다 생각할거임. 학교다닐때 넌 뭐하고 싶냐고 물은 적 있는데 그때 호열이 아직 잘 모르겠다는듯 글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회사 다니려나. 하고 얼버무린 적 있어서 어디 회사에서 일하나 생각할거야. 호열이는 대담했지만 의외로 안정을 추구하는 구석이 있으니까.


- 오오. 그러면 호열이 너도 정장입고 일하는 거냐?
- 그렇지, 뭐. 그보다 백호야 요즘은 어떠냐? 이번에 바뀐 팀닥터는 괜찮아?
- 응? 아주 좋아. 꼼꼼하시고...


여기까지 말하는데 백호 문득 기시감 들면 좋겠다. 내가 호열이한테 팀닥터 얘기를 했던가? 오랜만에 통화하는거라 팀닥터가 바뀌었다는건 모를텐데.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묻겠지.


- 호열아. 근데 너 우리 팀 팀닥터 바뀐지는 어떻게 알았냐?


하니까 잠깐 대답이 없던 호열이가 하하 웃더니 그럴거야.


- 하하. 저번에 너가 말했잖아 백호야. 팀닥터 바뀔지도 모른다고. 이때쯤이면 바뀌었겠다 싶어서 물어본건데 정말 바뀌었나 보네.
- 그르냐? 내가 착각했나부다.


백호 머리 긁적이다가 납득할거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호열이한테 말했던 적 있나부다. 자긴 모든걸 호열이한테 다 얘기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안부 주고받고 힘들면 주저없이 연락하라는 호열이 말에 백호도 회사 생활 잘하라 하고는 이번에 대학교 여름방학 되면 찾아가겠다 하겠지. 그러고 전화를 끊을거임.

그리고 평소처럼 상냥하게 웃으며 통화를 끝낸 호열이가 금방 싸늘해진 얼굴로 꿇어앉은 남자를 내려다볼거임. 전직 백호네 팀닥터 중 하나였던 남자가 살려달라는 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호열이 어둡고 컴컴한 버려진 창고 안에서 장부 보고 있겠지.


- 인생 다시 살 기회까지 줬는데 그걸 차버리네. 포커칠 손은 있고 선수 등은 제대로 고칠 손이 없나봐. 그런 손이면 그냥 없는 편이 낫지 않겠어?


그러고는 뒷일은 맡긴다는 듯이 부하가 챙겨주는 수트 상의 입고 창고 밖으로 나오는데 팔꿈치까지 걷은 셔츠 아래엔 이레즈미가 그려져있겠지. 그리고는 담배연기 뿜으면서 아 큰일날뻔 했네. 편지 더 조심해서 읽어야겠네. 생각하는 양호열...

그러면서도 자신이라고 생각조차 못하는 후원자한테 자기 속내 다 감추면서 자기한텐 다 드러내는 거에 짜릿해하는 양호열... 이 사실을 알게 할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든 은혜는 갚게 만들 생각인 양호열 어떤데...





아 백호 없으면 그나마 있던 모럴도 안 챙기는 양호열 왜이렇게 좋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