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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 01:44
분명 아침 연습을 지휘해야 하는 건 2학년 대표인 이명헌인데 어째서인지 신현철이 하고 있었음 '명헌이 형은 어디 간 거지?' 고개를 갸웃갸웃하던 우성이가 훈련 끝나자마자 현철이에게 조르르 달려가겠지

"명헌이 형은요? 어디 아프대요?"

그리고 이렇게 걱정스레 물어보는데 신현철이 갑자기 뭔 개소리냐는 어투로 "명헌이가 누군데?" 되물을 거임

잠시 당황하던 우성이었지만 이내 이 못된 선배들이 자길 놀리나 보다 싶겠지

"저 이제 잘 안 속거든요. 명헌이 형이 오늘 아침훈련 끝나고 1 on 1 해 주기로 해서 기대했는데! 너무해요."

이번에는 꼭 이기려 했는데 어쩌구저쩌구 입술이 삐죽 나와서는 우성이가 궁시렁거리는데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겠지 그제야 너무 투덜거렸나 싶어서 슬쩍 눈치를 봤는데 신현철의 얼굴에 어린 건 짜증이 아니라 걱정이었음

"무슨 소리야. 너 뭐 잘못 먹었냐, 우성아."

그때부터는 조금 목에 소름이 돋았음

결국 오전 수업종이 쳤을 때 정우성은 2학년 교실을 처들어갔음 아무리 그래도 수업을 땡땡이 치지는 않겠지 그런 맘이었지 하지만 명헌이 형의 자리여야 할 왼쪽 맨뒤 창문 옆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어

수업 짼 걸 들켜 담임 선생님한테 목덜미가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도 우성이는 포기하지 않았음

"선생님. 명헌이 형 아시죠?"

차기 농구부 주장, 2학년 전교 1등, 반장

1학년 담당 교사여도 모를 리가 없는데 선생님한테 들려오는 대답은 "그게 누군데. 그건 그렇고 내 수업을 째다니 간도 커졌지. 한 시간동안 기마 자세다, 이놈아."

학교가 단체로 짠 건가? 산왕 에이스를 울려보아요 잡지특집이라도 하는 건가? 오늘 사실 4월 1일인가?

방과후 농구부 활동, 정우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2학년들을 계속 쪼아댔어

하지만 낙수 형한테도, 성구 형한테도, 동오 형한테도, 다른 2학년한테도 전부 현철이 형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지 '이명헌이 누군데?'

결국 우성이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빼액 "뿅쟁이요!!!!! 진짜 누군지 몰라요????? 이명헌!!!!! 우리 농구부 하나뿐인 주전 포가잖아요!!!!!"라고 체육관이 떠나가라 소리질렀을 때는 신현철이 굳은 표정으로 어떤 3학년 눈치를 보겠지

우성이는 현철의 시선을 따라 그 3학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머리가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음

그 3학년은 어제까지만 해도 벤치 멤버였던 000 선배였거든

현철이 형이 자신의 말로 그 선배를 보며 눈치 볼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어

그 선배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였고...

"너 장난이 심하다. 아침부터 이밍힝인지, 이묭헌인지 무슨 개꿈을 꾼 건지 모르겠는데 적당히 해야지."

...현재 산왕의 주전 포인트 가드가 이명헌이 아니라 저 선배라는 거겠지

"아주 예뻐해주니까 뵈는 게 없냐? 엎드려, 정우성."

신현철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음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제일 아끼는 후배인 정우성이 3학년 선배한테 쥐 잡히듯 잡힐까봐 본인이 먼저 선수 치는 거였지

그런데 가끔 선을 넘기는 해도 절대 선배한테 무례한 부류는 아니었던 우성이가 엎드리지 않고 주먹만 꽉 쥐고 서 있겠지 신현철이 슬슬 자신도 열받는 걸 느끼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음

"엎드리라니까 선배 말이 말같지 않아? 시선 깔지 말고 여기 봐."

현철이의 불호령에 정우성이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올렸음 그리고 우성이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신현철은 깜짝 놀라서 화내는 척도 잊고 '야, 우성아?!' 하고 우성의 어깨를 붙들 수밖에 없었음

애가 평소 눈물 찔끔 나오는 거랑은 비교도 안되게 어디 고장이라도 난 것마냥 울고 있었거든

잔뜩 희게 질려서는, 신현철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두려움같은 걸 담고












너 오늘 이상하다며 양호실 들렸다가 기숙사 가서 쉬라는 선배들의 말에도 꾸역꾸역 찾아본 결승전 우승 기념 사진에는 정말 이명헌이 없었음

정우성은 그제야 인정해야 했음 이명헌이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마냥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산왕도, 농구부도 모든 게 다 그대로인데 오직 이명헌이란 사람만 지워져 있었음

자신이 진짜 길고 긴 꿈이라도 꾼 건지, 아니면 정신병이라도 걸린 건지 무엇 하나 모르겠지만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음

정말 모든 것이 착각이고 환각이라는 선고라도 받을까봐 무서워서 병원에 갈 생각도 안 들었음

한 달 두 달 명헌이 형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거짓말처럼 흘러가겠지

여전히 농구는 재밌었지만 아주 가끔 지금 이 타이밍이라면 패스가 와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 그럴 때면 속이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올라왔음

선배들은 우성이 이상했던 그날 이후로 몇 번이나 괜찮냐고 물어보았음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지 않은 이유를 말할 수도 없으니 어쩌겠어 그냥 괜찮다고 웃고 혼자 기숙사 와서 이불 뒤집어 쓴 채 찔끔찔끔 즙을 짜는 수밖에

정우성은 그렇게 이명헌이 없이 2학년이 되었음

오늘은 연습 대신 이번에 새롭게 입학한 농구부 1학년들의 입부식이 있었음

무슨 입부식을 한 시간씩이나 한다는 건지... 우성이가 지루하다는 듯 발로 툭툭 바닥을 찼음

물론 얼마나 괜찮은 후배가 들어올까 기대가 아예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누가 들어오든 명헌이 형만큼은 아닐 테니

오른쪽부터 한 명씩 1학년들이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음 그때까지도 우성이는 선배들이랑 감독님 몰래 하품이나 하며 농구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겠지

그런데 몇 분 후 스쳐가듯 들리는 목소리

"-입니다 베시."

아 명헌이 형 1학기 때 쓰던 말투다 저런 어미 붙이는 또라이가 형 말고도 또 있었구...

어?

우성이가 그제야 확 고개를 들어올려 처음으로 1학년들을 눈에 담겠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키가 크고 몸이 다부진 한 녀석을 발견한 우성이의 얼굴은...















우성명헌우성
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