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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 01:44
호열은 작은 흥신소 운영 중. 작지만 알차기로 입소문이 난 곳이야. 5월 어느 날 중년의 남성이 흥신소에 찾아오면 좋겠다.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왔는데 막상 맨얼굴을 보니 낯이 익긴 한데 어디서 봤는지는 잘 모르겠어. 이런 데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개 그렇듯이 안절부절하는 모습에 호열은 차부터 내밀어.

"농구 좋아하십니까?" 

아저씨는 찻잔을 보지도 않고 대뜸 질문부터 하지.

"...학창시절에는 꽤나 좋아했죠. 경기도 몇 번 보러 갔었고요."

그 말에 아저씨는 안심을 하는데, 농구에 대한 애정이 사람을 판단하는 척도라는 게 옛생각을 나게 해서 호열이는 티나지 않게 조금 웃었겠다.
아, 기억났다.

"B구단 농구 감독님이시지요? 스포츠뉴스에서 몇 번 뵌 기억이 나네요."
"맞습니다."

감독이 가방에서 종이봉투를 꺼내는 동안 호열이는 의뢰 내용이 어떤 것일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어. 얼마 전 야쿠자가 연관된 거대 스포츠 도박단이 적발되면서 전국이 발칵 뒤집혔는데, 그걸 고발하는 데 앞장선 구단 중 하나였거든. 그리고 이 구단에는...

"우리 정대만 선수도 아시겠군요."

그래, 그 사람이 있었지. 

호열은 "유명인이니까요." 라고 답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셔.

이어 감독은 봉투를 열어 사진 몇 장과 편지를 꺼내. 빠르게 훑어보면서 호열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가. 편지는 반 이상이 혈서였고 사진 속에는 죽은 동물, 회칼... 피가 엉겨붙은 손가락 같은 것들이 있었거든.

"정대만 선수 앞으로 온 우편과 소포들입니다."

그리고 감독은 경위를 설명해주었어. 정리하자면 고발에 앞장선 구단들에서 여론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간판급 선수들을 모아 기자회견을 열었었는데 B구단에서는 팀의 큰형인 대만이 그 자리에 섰었고, 야쿠자 잔당들이 이에 앙심을 품고 대만을 협박하는 중이라는 거였지. 문제는 구단 차원에서 이것이 외부에 알려질까봐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상태라는 거야. 감독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고 대만이 자신들을 대표했을 뿐인데 표적이 된 것이 너무 죄스러워 사비로라도 보디가드를 붙이고 싶어 찾아온 거라고 했어.

끝내 감독은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지. 그 정수리를 보면서 호열은, 이런 사람이 감독이라 팬들이 그렇게 떠나라고 하는데도 B 같은 구단에 있는 거구나 뜬금없이 그 생각을 해.

"정대만 선수도 이 우편물들을 봤나요?"
"아뇨, 킁, 선수에게 가기 전에 다행히 직원들이 걸러냈습니다. 대만이에게는 자세히 설명할 순 없었고 요 며칠 출퇴근 때 다른 선수들이 같이 다녀주고 있습니다."

사람 몰고 다니는 것도 여전하네, 그런 생각도 하고.





아이고 정력딸려 그래서 호열이는 의뢰를 수락하겠다.
감독은 적당한 경호 인력을 소개 받으려고 한 건데 호열이 직접 하겠다고 하니 조금 미심쩍어하면서도 오케이하겠지. 그럼 내일 훈련 마치고 저녁에 인사 나누게 자리 마련하겠다고 하고 자리를 떠나.

[당분간 흥신소 업무는 쉽니다.] 팻말을 붙인 사무실 안에서 호열은 줄담배를 피워. 이쪽 생태란 게 불륜 증거를 잡아주는 일이 수입의 팔할이야. 다들 지친 상태로 들어와선 부서진 상태로 나가. 마음은 변하고 부패하는 것을 호열은 잘 알아.

대만이라고 다를까. 졸업하고 10년, 사회 속에서 낡고 마모된 부분이 있겠지 당연히...




다음 날 저녁이 오고 호열은 구단 사무실에 방문했어. 기분이 좋다고는 못 하겠어. 가슴께가 착 가라앉는 느낌을 떨치려 소파 팔걸이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려.

"안녕하세- 어? 양호열?"

빼꼼 들어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에 그만

호열은 웃어버린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것도 있구나, 하면서. 10년 전 졸업식에서 두번째 단추를 건네던 그 사람이 그대로 눈앞에 있는 게 반가워서.








그렇게 뭐... 학창시절엔 호열이가 마음은 받았지만 다가가지 않았던 관계인데 이렇게 만나게 되고... 아무리 그래도 야쿠자인데 조심해야 해요. 하는 호열에게 "네가 나 농구하게 도와줬잖아. 두번째도 해주겠지!"이러고 씩 웃는 대만에게 속수무책으로 젖어드는 호열대만 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