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42164698
view 2525
2023.05.11 00:49


https://hygall.com/540424683

혐관'이었던'..... 주의









정우성은 그 뒤로 태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음. 본인이 뱉어놓은 말이 있었기 때문임. 아직도 시청자들은 송태섭을 돈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욕을 했고 태섭이 실수한 것들은 전부 유별나게 편집되어 방송되었기에 이미지가 좋아질래야 좋아질 수가 없었음. 죄책감에 파묻힌 우성이 태섭을 의식하며 그와 대립이 아닌 동행을 하려들자 제작진 측에선 정우성에게 더 세게 대립해달라는 요청을 자꾸만 넣었음. 대체 사람을 얼마나 지옥까지 끌어들일 셈인지, 그날도 제작진 요청으로 랩 연습에 매진하던 태섭에게 모진 말을 하고만 우성은 어깨에 엄청난 자책과 혐오를 쌓아둔 채 숙소로 돌아왔음. 이런 행동으로 결국 이득을 보는 건 그들 뿐인데. 과한 스트레스로 얼음만 씹어대는 정우성의 옆에 송태섭이 앉았음. ...! 얼음 하나를 꿀꺽 삼켜버린 우성이 심하게 기침을 하자 한숨 쉰 태섭이 대충 그의 등을 주먹으로 두들겼음.

-너 요새 왜 그러냐.
-내가 뭐...
-하던 대로 해라. pd님이랑 다 그러시잖아.

난 너한테 이제 더 모진 말 하기 싫단 말이야. 그 말이 목끝에서 턱 걸렸음. 이제와서, 그렇게 물고 뜯고 싸워댔는데 이제와서 모진 말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도 웃기고 어이가 없었음. 거기다 땅만 파는 정우성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준 게 다른 사람도 아닌 송태섭이라는 사실도. 얼음물이 든 컵만 꽉 쥐고 있는 우성을 바라보던 태섭이 고개를 돌렸음. 정우성이 무엇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지 송태섭은 알고 있었음. 송태섭도 지금의 정우성이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음. 평소처럼 하면 되는데 자꾸만 자신을 도우려하는 행동이 되려 불편감을 야기했음. 한나와 달재가 만들어준 노래를 좋아하는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게 이런식으로 돌아오는 건 태섭의 속을 되려 복잡하게만 만들었으니까. 그냥 태섭은 예전처럼 정우성이랑 대척점에 선 채 할 일만 하고 계약금 받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싶었음.

-나 돈 때문에 나온 거 맞고.
-......!!
-네가 말한 거 하나 틀린 거 없고.
-송태섭.
-그런데 네 돈 받고 나가긴 싫으니 끝까지 할 거니까 이제 신경 그만..
-미안해.
-......
-미안해. 진짜 미안. 진짜 미안해, 태섭아.

그러니까 이렇게 정우성이 사과할 줄 알았다면, 아예 마음을 쓰지 않았을 거란 말이었음. 태섭이 바람빠지듯 웃었음. 어릴 적엔 정우성의 사과가 그렇게 듣고 싶었는데, 커서 보니 정작 사과할 사람은 정우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 송태섭은 차마 자신을 보지도 못 한 채 앞만 보며 고장난 장난감처럼 미안하단 말을 되풀이하는 우성을 말릴 수가 없었음. 울진 않네. 그건 좀 의외다.

다시금 송태섭의 앨범 참여율이 높아지기 시작함. 사과 하나 받았다고 마음이 풀린 건 아님. 단지 이제까지 아무도 송태섭에게 사과하지 않았는데 정우성이 그 처음을 가져갔을 뿐이고, 태섭은 그 용기에 답을 해준 것 뿐이었음. 예전 일로 바닥까지 처박힌 게 오로지 정우성의 잘못도 아니었고, 이미 지난 일을 다시 되돌릴 수도 없었으니까. 과거는 여전히 태섭의 발목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게 송태섭이 앞으로 걸어 나가지 못할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사실, 카메라 안팎으로 자기 편이 없이 겉돌기만 하던 송태섭에게 정우성이 마음먹고 다가가려 하니 주변 분위기가 살짝 달라진 것도 아이러니하게 도움이 됐단 말임. 정우성이 송태섭을 신경쓴다는 게 느껴지자마자 같이 무대를 서야하는 세명의 태도부터가 달라졌음. 송태섭도 정우성도 그 모습이 황당할 정도로 웃기기만 했지.




카메라가 돌아가는 세트장에서 송태섭에게 과하게 쏟아지는 피드백을 듣던 정우성이 입을 열었음. 뒷짐진 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그러나 심장에는 콱콱 박혀들던 피드백 중간에 난입한 우성의 목소리에 태섭의 귀가 트였음. 말이 너무 심하신 것 같은데, 로 운을 뗀 우성은 평소 생글생글 웃던 낯까지 싹 바꾼 채 납득하지 못하는 피드백에 대해서 비판했음. 촬영 뒤에 정우성이 호출된 건 당연한 순서였고. 갑자기 왜 그러냐, 편집하기 어려우니 앞으로 그럴 필요 없다. 정우성 군의 이미지는 이미 충분히 좋기 때문에 과하게 송태섭 군을 챙길 필요 없다는 말에 우성은 자신이 아무리 애를 써서 태섭을 감싸도 결국 방송으로 나가는 건 자극적인 장면 뿐이겠구나, 하고 이해함. 그러나 우성은 계속해서 태섭을 챙기는 걸 빼먹지 않았음. 편집하는 건 정우성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알 게 뭔데?

정우성이 자꾸 튀는 행동을 하니 불똥이 엄한 송태섭에게 튐. 마치 송태섭이 정우성을 협박이라도 해서 조종한 것마냥 말하는 모습에 태섭은 기가 찼음. 아마 십 대 시절의 송태섭이었다면 그들이 아닌 정우성에게 악의를 품었을 거임. 정우성이 똑바로 했다면 내가 혼날 일 없었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아니란 말임. 정우성의 지적은 합당했음. 그들의 피드백은 확실히 과했고 때론 앨범에 해가 되는 피드백도 서슴치 않았음. 자극에 미쳐버린 사람들처럼 공사구분을 못하는 모습들이 점점 더 방송계에 회의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이간질을 하기 위해 가졌던 면담 타임은 안타깝게도 시간낭비한 셈이 되었음.

하지만 자꾸 이렇게 카메라 앞에서 제작진과 트러블이 나면 촬영기간이 점점 길어질 뿐이니, 태섭은 선택해야했음. 잠깐 고민한 태섭이 정우성의 방문을 두드렸음. 짧은 침묵 뒤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고서야 문을 연 태섭은 방안에 작게 울리는 제 목소리에 순간 멈칫했음. ...그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지. 한나의 작곡과 달재의 작사가 만들어낸 음악은 송태섭의 목소리를 타고 정우성에게 전해지는 중이었음. 어색하게 들어와 문을 닫은 태섭에게 아무데나 앉으라 말한 우성이 너튜브를 잠깐 껐음.

-카메라 앞에서...
-...너도 그 이야기야?
-아니,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어라.
-말해...
-연기하자고.
-...!

카메라 소리가 나오자마자 인상을 쓰며 고갤 돌리던 우성이 눈을 크게 뜨더니 태섭을 바라보았음.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말이었음. 어차피 방송은 중반을 훌쩍 넘었고 시청자들은 이미 송태섭을 까는 재미로 방송을 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컨셉을 바꾸기는 너무 어려웠거든. 매번 면담이 잡혀 혼나는 것도 진절머리가 났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성이 작게 중얼거리듯 말을 붙였음. 그럼 나 부탁하나만 들어주라. 태섭이 말하라며 턱짓하자 짧게 눈치를 보던 우성이 답했음. 하루에 한 곡이라도 좋으니까 노래 불러주면 안 돼?




송태섭으로선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음. 랩이 거의 대부분인 본인 파트에선 노래다운 노래를 부르기 어려웠기에 도리어 조금 좋았음. 본인은 방송인이 아니니 언젠가 그들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노래하던 감을 잃고 싶지 않았단 말임. 협상이 성공한 다음 날부터 그들은 카메라가 돌기만 하면 초반의 그때처럼 으르렁거리며 싸웠음. 연기를 하려고 보니 어색할 줄 알았더니 무슨, 원래 하나부터 열까지 안맞던 놈들이라 싸울 거리는 차고 넘쳤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둘 다 마음에 멍이 들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지.

그렇게 연기를 시작하고 난 후 밤에 단둘이 있게 되면 곧바로 말이 너무 심해 미안하다 사과를 붙여오던 정우성이 너 오늘 좀 쳤다면서 사과가 아닌 장난을 걸 수 있게 될 정도로 사이는 발전하게 됨. 태섭은 밤마다 정우성의 방을 찾았음. 가끔 우성이 태섭의 방문을 열 때도 있었으나 방도 우성의 방보다 한참 작고 침대도 작아서 둘 다 불편했거든. 처음 며칠은 어색하게 노래만 불러주고 돌아갔으나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넓은 우성의 침대에 같이 드러누워 악플을 나란히 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 온갖 심한 말이 쏟아지는 포털 사이트가 정우성과 같이 본다는 이유만으로 스트레스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송태섭은 신기하다고 생각함.

한꺼풀 벗겨놓고 본 정우성은 생각보다 세심했고 상처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됨. 노골적인 편애로 팀에서 겉돌아 주로 같이 있는 게 로드매니저라는 것도, 지금 비활동기인데 억지로 예능 활동중이었다는 것도, 매번 웃으며 모두에게 힘을 주던 우성이 사실은 속 깊은 곳까지 곯아가고 있다는 것도, 아이돌의 세계가 송태섭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잔인하고 끔찍한 세계라는 것도 전부 다.

정우성이 보는 송태섭 역시 마찬가지였음. 태섭은 자신보다는 속 깊은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았으나 때때로 살짝 흘리는 말 몇 마디에서 그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었고, 확실하겐 모르나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님에도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간을 찾고야 만다는 것도 알게 됐음. 왜 이렇게 멋있는 사람을 어릴 때는 몰라봤을까. 우성은 제 옆에 누워 기사 댓글을 쭉쭉 내려보는 태섭을 눈동자에 한가득 담았음.

-우리가 어릴 때 싸우지 않고 친구가 되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그럴 일이 일어났을 리가 없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민도 안 하고 답하는 거 아니야?
-너랑 나랑 너무 달라. 싸우면 싸웠지 친구가 될 일 같은 거 없었을 걸.

그럼 지금은? 지금은 우리 친구야? 그 말을 꼭 삼킨 우성이 괜히 태섭에게 들러붙었음. 등 뒤로 감싸오는 태섭의 팔이 주는 안정감이 정우성의 마음을 뒤흔들었음. 태섭아, 나 노래 해준다며. 귀찮게 치대는 정우성에 한숨을 쉰 태섭이 핸드폰을 내려놓았음. 위에서 들리는, 작지만 안정적인 송태섭의 낮은 목소리에 우성이 아주 조금 더 태섭에게 밀착했음. 목 언저리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살냄새가 지독하게 좋다고 생각함. 정우성은 이 시간이 가급적이면 영원하길 바랐음. 밤마다 송태섭과 함께 좁은 침대에 겹쳐 누워있을 때면 온갖 상념이 죄다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에.

-피곤하다. 이제 그만 가야겠어.
-...내일 촬영 없는데. 같이 자면 안 돼?
-미쳤냐.

일어나려는 태섭의 손목을 우성이 슬그머니 잡았음. 내일은 쉬는 날이라 촬영 일정이 없기 때문에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었음. 정우성이나 송태섭의 방을 열어볼 사람들도 없었고. 남자랑 어떻게 한 이불 덮고 자냐는 말에 우성이 눈을 흘겼음. 너 합숙 경험 많잖아. 기가 찬 태섭이 쏘아붙였음. 열 몇 명이서 한 방에 자는 거랑 단 둘이 자는 거랑 같냐? 자꾸만 거절하는 태섭에 정우성은 더 말로 설득하는 대신 냅다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침대에 드러누워버림. 아등바등 벗어나려하다 체구에 짓눌린 태섭이 후, 하고 숨을 내뱉고선 몸에 힘을 뺐음. 묵직하게 눌러오는 정우성의 체중과 살갗이 맞닿으며 느껴지는 온기가 예상보다도 더 나쁘지 않았음. 촬영이 없는 전날이면 꼭 붙어서 잠들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지.




정우성의 그늘이 익숙해지는 것만큼 우성도 태섭의 주변이 편안해지기 시작함. 정우성을 아이돌 정우성이 아닌 있는 그대로로 봐주는 사람은 송태섭이 유일했기 때문임. 언제나 회의 또는 식사를 할 때마다 끝과 끝에 앉았던 두 사람이 점점 나란히 앉게 됨.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찢어졌지만 그게 아니라면 거의 껌딱지마냥 붙어다니는 모습에 제작진과 스태프들도 의아함.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태섭이 보이지 않으면 찾으러 다니는 정우성이나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우성의 근처로 자리를 옮기는 태섭이 너무나 이질적이었음.

-우성이 형, 요새 송태섭이랑 자주 같이 다니시네요.
-어, 그래.
-화해라도 하신 거예요?
-응. 근데 너 왜 나는 형이고 태섭인 송태섭이야?

두 살 어린 서브보컬이 우성의 날카로운 말투에 당황했음. 호칭을 지적한 적 없던 정우성인지라 곧바로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으나 우성은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음. 한 걸음 뒤로 물러보니 이 상황이 송태섭에게 얼마나 해가 됐을 지 낱낱이 다 보였음. 누가보면 정우성은 안 그랬는 줄 알 정도로. 내로남불이었지만 어떻게 해. 송태섭을 알게 된 우성에게 1순위는 다른 것도 아닌 이미 송태섭이 되어버린 상황이었음. 물을 뜨러 나온 태섭은 자기때문에 애를 잡고 있는 우성을 슬쩍 툭 건들었음. 그만하라는 뜻에 우성이 입을 다물자, 태섭이 어린 보컬을 올려다보며 말했음.

-네 마음대로 불러.
-태섭아.
-아니에요, 형. 제가 죄송...
-어차피 신경 안 써, 남이 뭐라 부르든.

이미 그렇게 된 지 좀 된 태섭이 부엌으로 들어가는 걸 우성이 따랐음. 넌 왜 멀쩡한 애를 잡고 그러냐. 얼음이 가득 든 컵에 찬물을 담는 모습에 표정이 풀어진 우성이 웃었음. 얼음물은 정우성의 취향이었고, 우성은 태섭이 물을 마실 때즈음 알짱거리면 자연스럽게 첫 입은 자신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음. 오차없이 제게 먼저 내밀어지는 얼음물이 정우성의 가슴을 홧홧하게 만든다는 것도 모른 채, 벽에 기대 선 태섭은 애 잡지 말라는 잔소리를 대놓고 무시하는 우성에게 혀를 차보였음. 오늘도 노래 불러줄 거지, 태섭아. 이젠 마치 그 시간이 자기 것인냥 말하는 정우성에 태섭은 언제 얘가 이렇게 편해졌지, 싶은 마음이 들었음. 그렇게 싸웠던 게 마치 거짓말처럼. 바닥까지 떨어져서 고통받았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이상하게 우성이 환하게 웃는 것만 보면 그 모든 게 견딜만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예능의 마지막화는 생방송 최초공개 음방을 준비하는 다섯으로 꾸려졌음. 해당 예능을 방송한 방송사의 음악 방송에서 최초공개하는 건 당연한 거였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편집하여 내보내기 위해 예능팀 카메라도 셋팅되었겠지. 어쨌든 정우성이 메인인 곡이었기에 파란 하늘같은 우성의 이미지 컬러를 따서 만들어짐. 그 컬러에 복병은 송태섭이었음. 어떻게 매치를 해도 겉도는 느낌에 메이크업팀도 의상팀도 골머리를 썩는 중 뒤에서 지켜보던 우성이 말함. 태섭이 머리 내려주세요. 그 말에 열심히 왁스칠해서 올려둔 머리를 다시 감고 말리고 하는 대대적 작업이 벌어졌는데 웬걸, 곱슬진 머리카락을 내려놓고 보니 훨씬 앳되면서도 청량감 넘치는 곡에 잘 어울리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거. 예능 내내 칼같이 올린 헤어스타일을 고수중이어서 아무도 내릴 생각을 못했는데 우성은 머리 내린 태섭을 자주 봐왔기 때문에 금방 요구할 수 있었음.

-그동안 준비했던 걸 보여준다는 생각으로만, 그럼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야.

좋든 싫든 어떻게 해서든 여기까지 끌고 왔기 때문에, 우성은 절대 이 순간에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음. 무대에 완전히 처음 서보는 네명과 함께 하려니 떨리는 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달달 떠는 셋에 비해 송태섭은 초연하기 그지없었음. 태섭 형은 안 떨리세요? 우성에게 혼났던 서브보컬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음.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 끝을 만져본 태섭이 어깨를 으쓱였음. 그냥, 별로. 몇년 차 아이돌인 정우성도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데 태섭은 적당히 떨라는 말을 남기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음. 그 뒤를 우성의 시선이 따랐다는 건 눈치채지 못한 채.


변기통 앞에서 몇 분이나 앉아있었는지. 먹은 게 없어 헛구역질만 겨우 하다 나온 태섭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꾹 누르다 그 앞에 선 우성과 마주쳤음 ...! 치부를 들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태섭이 모른 척 고개를 숙이며 세면대로 다가가 입을 헹궜음. 물과 손수건이 닿아 살짝 지워진 입술색에 한숨을 쉰 태섭이 돌아가려는데 우성이 그 앞을 막았음. 왜, 나가야 하잖아. ...아까 본 건 모른 척해. 나 원래 긴장하면... 문장이 되어 완벽히 나오지 않은 말 대신 헛숨이 태섭의 입을 채웠음. 상체를 숙인 우성이 태섭의 등을 꽉 끌어안았기 때문이었음. 태섭은 이게 정우성이 주는 위로라는 걸 눈치챘음. 왜 토하냐, 긴장했냐 따위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게 아닌,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완벽한 위로에 가슴이 쥐어짜인 듯 아팠고. 바짝 밀착된 두 심장이 쿵쿵 뛰는 감각에 태섭도 우성도 아무 말 하지 않았음. 더듬더듬, 어색하게 팔을 올려 제 등을 감싸는 손길에 정우성이 참았던 숨을 토해냄. 옷위로 닿는 송태섭의 손길이 지난 곳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웠음.

-태섭아, 우리 이거 다 끝나면.
-응.
-네 친구들이 있는 작업실에 나 초대해주라.
-우리 구독자 초청같은 거 안 해.
-그럼 네 친구로는?
-너 나랑 친구하고 싶어?

닿았던 몸을 살짝 떼자 아이러니하게도 입술이 스칠 듯 가까이 다가왔음.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 살짝 각도를 틀어 다가올 것 같이 구는 우성에 태섭이 살짝 머리를 뒤로 젖혔음. 안 돼, 나 방금... 입맞춤이 안 된다는 게 아닌, 헛구역질 했으니 안 된다는 말에 우성의 숨결에 한층 더 욕구가 스몄음. 말캉한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떨어지며 섞이는 숨에 닿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묘한 열기가 두 사람을 감쌌음. 떨어져... 그렇게 말하면서도 태섭은 우성이 가까이 올 때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술이 원망스럽기 그지 없었음. 몇 번이고 간을 보는 것처럼 입술 사이 공기만 헛씹던 우성이 기어이 태섭의 입술을 부드럽게 겹쳐 물었음. 진득한 키스가 아닌 어딘가 풋내나는, 입술과 혀끝만 살짝 눌렸다 떨어지는 장난에 태섭이 허하게 웃었음. 야, 너 왜 대답 안 해. 너 나랑 친구하고 싶어? 내가 물어봤잖아. 재차 묻는 태섭에게 우성이 슬그머니 다시 입을 맞췄음.

-친구랑은 이런 거 안 해.
-.....
-끝나고 번호 알려줘, 꼭.




예능은 대박을 쳤고 원하는 것 이상으로 돈을 쓸어담은 방송사에선 그들의 무대에 아낌없는 지원을 쏟았음. 일단 정우성이라는 단연 남돌 넘버 원과 이슈몰이에 최적화된 송태섭이 있었기에 뭘 해도 대박날 상이긴 했음. 문자 그대로 돈을 처바른 무대에 신경 써서 돌아가는 무빙 카메라, 뛰어난 퍼포먼스를 위한 곡과 아이돌을 포기한 사람들임에도 갈고 닦았더니 숨길 수 없던 라이브와 춤선, 적당한 끼까지 모든 게 완벽한 무대가 만들어졌음. 그 중 가장 대박을 친 건 다름아닌 송태섭이었겠지.

무대의 시작은 정우성이 열었으나 끝은 송태섭이 닫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긴장으로 변기통까지 부여잡았던 송태섭이 되려 하드캐리를 해버린 무대에 그를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제작진과 스태프들, 생방을 보러온 팬들과 스트리밍으로 확인하던 시청자들까지 놀랄 수밖에 없었음. 중반까지는 백업 보컬과 백업 댄서의 역할만 수행하던 태섭이 본격적인 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앞으로 치고 나왔기 때문에. 어딘가 삐그덕거리는 셋과 달리 여유를 몸에 두른 태섭은 무대를 넓게 쓰는 방법을 알고 있었음. 팽팽 돌아가는 카메라를 귀신같이 찾아 아이컨텍을 하는 센스와 느긋한 모습까지 전부 카메라에 가감없이 담겼음.







+

[뭐야? 예능에서 송태섭이 제일 못하던데 무대 찢은 거 송태섭 밖에 없잖아?]
[예능 시발 설마 또 악편한거임?]
[열여섯 때 그 프로 이후로 음악 안 했다는데 엔터가 인재 하나 놓친거임 ㄹㅇ]
[첫 프로 때도 정우성이랑 트러블 존나 많았는데 그것도 악편인거 아니냐....]
[그럼 진짜 제작진들 대가리 박아야함.]
[그때 애들 해봐야 열다섯 열여섯 때 아님??]
[ㅇㅇ맞음 어릴때엿음]
[머리 바짝 올릴 때는 존나 깡패같았는데 머리 내리고 웃으니까 완전 아이돌 그 자체네 ㅅㅂ]
[내리니까 훨씬 애같더라]
[예능에선 무슨 송태섭을 구멍 중 구멍으로 만들어놨던데]
[실상은 송태섭이 다한 무대ㅋ]
[얘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더이상 송태섭 무대 못 보는 거지?]
[ㅇㅇ.... 데뷔하고 뭐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사실 상 아이돌 체험판 예능 뭐 그런거임.]
[나 최초공개 무대 보고 개충격받아서 예능 정주행중인데 송태섭 진짜 뭐지? 방송에선 추가 연습도 안 하고 그러던데...]
[만약 그거 다 편집이었으면 송태섭 진짜 어쩌냐 욕 존1나 처먹었는데]
[그때도 정우성이랑 붙어서 욕 개많이 먹었음 송태섭 음악 관둔거 솔까 당시 팬들이 욕해서 그런 것도 있을걸.]
[음악 포기하고 몇 년 흘렀는데 이정도 끼면 시발... 아이돌로 승승장구해서 빌딩을 세웠을듯]
[피지컬이 너무 아까움....ㅠㅠ]
[랩만 해서 그렇지 송태섭 열여섯 때 일반 음악 불렀던 거 보면 음색도 좋음]
[송태섭 욕하던 애들 다 디졌냐 보이질 않네 ㅋㅋㅋ]
[최초공개 무대 봤으면 욕 못함 솔직히....]






분량 줄일려고 압할 거 다 압하고 막 썼는데도.... 애들이 연애시작도 못 하다니ㅠㅠㅠ



우성태섭 우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