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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3 00:06

한꺼번에 올리기엔 좀 긴거 같아서 나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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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다용도 보조 의자에 앉아있는 백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꽃들이 내는 향이 어지럽게 흩날린다. 틱-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 신문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가위가 벌어지고 닫히는 소리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소음. 백호는 손을 내리고 눈을 끔뻑여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았다. 손을 움직이던 사람은 백호를 마주 봤다.

 

"놀러 온 거야? 여기 재밌는 거 하나도 없는데."

 

날카로운 눈빛과 달리 상냥한 말투. 호열이 줄기를 다듬은 꽃을 내려놓는다. 아르바이트한다더니, 지금은 어떻게 구했는지 꽃집에서 일한다. 

 

"그냥 네 얼굴 보러 온 거야."

 

호열이 웃는다. 일종의 변명이자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이란걸 안다.

 

"......"

 

틱- 줄기에서 가시가 하나 떨어진다. 내 얼굴 보면 떡이라도 떨어지나 보네.

손님이 왔다는 종소리가 울린다. 어서 오세요. 호열과 백호가 동시에 인사한다. 손님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빨간 머리와 덩치, 인상에 눈치를 보는 듯하다.

 

"찾으시는 거 있나요?"

 

호열이 카운터에서 나와 몸으로 백호를 가리며 손님의 시선을 제게로 끈다. 선물용인가요? 그럼, 이 꽃 어떠세요? 꽃말이 영원한... 호열이 친절한 목소리로 능숙하게 손님을 이끈다. 백호는 손질이 덜된 꽃을 유심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그만 가게 안을 서성이며 꽃을 구경한다.

 

감사합니다. 용건을 마친 손님은 꽃다발을 들고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백호는 강렬한 주황색의 컵같이 생긴 꽃을 유심히 본다. 

 

"양호열."

"왜?"

"꽃 선물 해본 적 있냐?

 

호열은 잠시 생각하느라 눈동자가 위를 향한다. 아니. 

 

"선물하게?"

"엇, 아니..."

"이번에는 누구야?"

"......"

 

백호는 입을 다물었다. 손을 꿈질거리더니 조그맣게 하는 얘기가,

 

"3학년..."

 

웬일로 연상을? 그래도 한결같은 모습 보기 좋다. 호열은 키득거린다.

 

"주장이... 송태섭이던가? 뭐라 안 하니?"

"윽, 사실 이미 혼났어. 하하하..!"

 

송태섭이란 이름에 움찔한다. 얼굴이 빨개졌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감추려 과장해 크게 웃는다. 호열이 같이 웃는다. 한참 떠들던 소리는 전화벨 소리에 멎는다.

 

"아, 백호야 나 잠시 전화 좀."

 

호열이 카운터로 돌아가 수화기를 든다.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호열이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는다. 용건이 끝났는지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백호를 돌아보며,

 

"주문이 들어왔어. 이제 일해야겠다. 뭐, 더 있으려면 그래도 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백호는 수고하라며 꽃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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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타-앙. 탕. 공이 묵직하게 바닥과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 거칠고 둥그런 물체의 감각을 손 끝으로 느끼며 공을 튀긴다. 공과 손에 자석이 달린 것 처럼 절묘하게 달라붙는다. 

 

내리쬐는 햇빛이 눈이 부시다. 눈을 감고 공을 튀겨보다 그대로 점프 슛. 털컹- 림을 스치지도 않은 공은 백보드를 맞고 밖으로 떨어진다. 공을 쫓아가 잡는다. 태섭은 머쓱하게 웃으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선배."

 

목소리의 출처를 향해 돌아본다. 서태웅. 뜻밖의 만남으로 놀란 얼굴을 숨기지 않는다. 

 

"태웅아." 

"안녕하세요."

"너 훈련 간 줄 알았는데..?"

 

어깨를 으쓱한 태웅. 가끔 와요. 그래..

 

"선배는 여기 자주 오시나요?"

 

묘하게 높낮이가 없는 어투. 고개를 좌우로 젓고, 오늘은 와 보고 싶어서. 대답한다. 태웅은 매고 있던 가방을 멀리 치워놓은 뒤 태섭에게,

 

"주세요."

 

하고 골대를 등지고 자세를 잡는다. 태섭은 눈동자를 굴려 태웅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은 다음, 공을 던진다. 동시에 달리는 태섭. 공은 태웅의 발 근처에서 튕기더니 다리 사이로 쏙 빠져나간다. 태웅이 고개를 틀어 공을 쫓는 사이에 태섭이 공을 잡는다. 그대로 레이업. 깔끔하게 들어간다. 태웅은 공을 들고 있는 태섭을 표정 없이 바라본다. 태섭이 보는 태웅은 얼굴에 치사한 인간이라 쓰여있어, 파핫- 웃음을 터뜨린다.

 

"이번엔 진짜로 줄게."

 

그 말에 태웅이 다시 자세를 잡는다. 의심하긴. 태섭이 던진 공이 태웅의 손에 안착한다. 탕. 공이 튕기고 태웅이 골대를 향해 달린다. 진심이든 아니든, 큰 키에서 오는 위압감이 태섭을 누른다. 태섭은 공을 빼앗기 위해 손을 내민다. 태웅은 태섭을 등으로 계속 밀며 공을 제 몸과 가까이 붙인다.

 

"아잇, 야아!"

 

태섭은 림 가운데로 들어가는 공을 바라보았다.

 

"비겁하다. 서태웅."

"선배가 먼저 했어요."

 

당당한 얼굴에 할 말이 없다. 그러네. 태섭은 숨을 고르고 공을 튀긴다. 계속해요. 태웅은 차가워 보이는 얼굴로 손을 까딱거린다. 신났구먼. 이러니까 서태웅인가. 밝은 얼굴의 태섭은 태웅과 합을 주고받는다.

 

 

해가 서쪽으로 미세하게 움직인 시간.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는 태섭과 태웅. 바람이 적당하게 불어 체온을 식혀준다. 

 

"후우- 재밌었다."

 

태섭은 웃다가 기침이 나와 목을 가다듬는다. 태웅이 숨을 크게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을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태웅이 자연스럽게 태섭에게 물통을 건네준다. 받아 들고 입구와 적당히 거릴 유지해 목을 축인다.

 

"나중에 만나면 또 해요."

"...!"

 

태섭의 목이 뻣뻣해진다.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네.. 

 

"그리고 멍청이. 혼 좀 많이 내요."

 

태웅이 입술을 삐죽인다. 선배는 너무 물러요.

 

"고릴, 치수 선배는 막 화냈는데..."

 

태섭이 그의 얼굴에서 장난스러움을 보았다. 태섭은 시원하게 웃어버린다.

 

"얼굴에 공 던지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

 

태웅이 정곡을 찔렸는지 시선을 피한다. 하하, 이 녀석. 태섭은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쓸어 올린다. 갑자기 계단 위에서 잡혔던 손목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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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체육관을 마지막으로 나온 태섭이 문단속 한다. 뒤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거구의 그림자가 태섭을 삼킬 듯하다. 그러나 태섭은 그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강백호다. 태섭은 고개도 들지 않고 이리저리 피해 빠져나가려 했지만, 뒷짐진 몸으로 하는 이상한 블로킹에 번번이 막힌다. 왜 이래? 태섭이 백호의 얼굴을 쏘아본다.  

 

백호는 아무 말 없이 뒷짐을 쥐고 있던 손 중 오른손으로 태섭의 왼손을 끌었다. 태섭이 의아해하는 와중에 뒷짐을 지고 있던 나머지 손을 앞으로 내민다. 백호는 제 왼손을 태섭의 왼손에 포개고 주먹을 쥐여준다. 쥐었던 손을 펴니 노란 겹꽃이 뽀송한 얼굴을 내민다. 태섭은 의아한 얼굴로 백호를 쳐다본다. 

 

"민들레?"

"저어기 화단에 제일 큰 놈으로 골라왔지."

 

이뿌지~ 백호가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태섭의 반응을 떠본다. 태섭이 반응하기도 전에, 후다닥 달려가더니 꽃 하나를 뽑아왔다. 태섭의 귀에 하나 꽂아놓고선 이리저리 살펴본다. 흠... 도자기 보는 장인처럼 뜯어보더니 다시 화단으로 달려간다. 얼마나 많이 뽑아온 건지 손안에 수북이 쌓여있다. 줄기를 태섭의 머리에 들이밀더니 꽂아넣는다.

 

"짠~ 태섭이 꾸미기."

 

복슬복슬한 검은 머리카락에 밝게 노란 점이 피어났다. 내 동생도 안 할 짓을... 태섭은 삐져나오려는 성질을 꾹꾹 누른다. 푸하하학!!! 이거 절경이다! 백호가 진심으로 즐겁게 웃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한숨을 푹 쉬고 태섭은 백호가 다녀온 화단으로 척척 걸어가 민들레를 들고 왔다. 태섭이 백호의 가슴팍을 잡아당긴다. 허리를 숙이는 백호의 귀에 꽂는다. 참 안 어울리는 조합에 웃음이 터진다. 둘은 집에 가다 말고 한참을 웃었다. 

 

갈림길에서 둘은 헤어진다. 백호는 머리에 그거 빼지 말라고 강력하게 어필한다. 태섭은 코웃음을 치고 백호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핀 민들레를 하나씩 빼 던진다. 덕분에 머리가 점점 엉망으로 흐트러져 가닥가닥 내려앉는다. 백호는 웃어넘기고는 잘 가라 손을 흔든다.

 

집에 도착한 태섭. 다녀왔습니다. 태섭이 왔니? 씻고 밥 먹어. 네와 에 소리의 중간으로 대답한 태섭은 엄마의 목소리에 이끌려 털레털레 부엌으로 들어간다. 반찬 몇 가지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식탁. 엄마와 아라는 태섭의 몰골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라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웃는다.

 

"머리에 뭘 붙이고 오는 거야?"

"머리? 어? 뭐 묻었어?"

 

태섭은 곧바로 방으로 가 거울을 확인한다. 손에 미처 닿지 않은 곳에 민들레 한 송이가 남아있다. 이런 꼴로 집에 왔다고... 태섭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비웃고는 마지막 하나를 떼버린다. 다시 부엌으로 가니 아라가 외친다.

 

"어! 아직 안 떼졌어."

"뭐? 아직도?"

"어. 못생김이 안 떼어지네."

 

이걸 콱! 가만 안 둬. 태섭이 성내는 시늉을 한다. 아라가 엄마 뒤로 숨어 웃는다. 강백호나 송아라나 똑같아. 태섭의 눈썹이 삐뚤어진다.

 

 

 

===

 

 

09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쓴 태섭은 라커룸에 앉아 숨을 골랐다. 거칠어지는 숨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타 학교와 연습 경기가 잡힌 날. 태섭은 화장실에서 통제되지 않는 몸을 어쩌지 못하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연습일 뿐인데, 젠장. 거센 파도 같은 울렁거림이 잦아들고, 가까스로 화장실에서 탈출한다. 3학년, 주장으로써, 치르는 연습 경기. 졸업으로 비워진 자리는 같이 농구해 왔던 부원들과 신입이 채웠다. 팀원이 태섭을 바라본다. 우리들은! 강하다! 구호를 힘껏 외치고 경기장으로 들어간다.

 

조명이 경기장을 환하게 비춘다. 코트로 들어가 정렬.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 조각난 거울처럼 드문드문 떠오를 뿐이다. 팀의 상태를 확인하고, 자리를 고르고, 흥분한 팀을 진정시키고, 계획을 수없이 돌려본다. 안 선생님의 코칭을 믿고 따르며, 실수를 만회하고, 자신과 팀을 정비하고, 기회를 잡으려 달리고 또 달린다. 그렇게 정신 없이 휘몰아쳤던 경기가 끝난다. [83:76] 북산의 승리. 기쁨에 취해 서로 껴안고, 밀치고, 때리고 난리가 났다. 

 

라커룸. 숨을 고르는 태섭의 옆에 백호가 바짝 앉는다. 

 

"태섭. 나 잘했지."

 

태섭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목뒤로 내린다. 그래. 등에 손을 얹는다. 잘했다. 백호는 금방 헤벌쭉해진다. 크크 천재님이 한 건 했다. 백호가 검지와 중지를 펴 브이 자를 만든다. 태섭이 웃는다. 태웅이 슬쩍 다가와 백호 반대쪽에 앉는다. 태섭은 손바닥이 보이게 태웅에게 내민다. 태웅이 철썩 소리가 나게 손을 부딪친다. 태섭은 의도치 않게 백호와 태웅의 묘한 신경전 한 가운데에 앉아있는 꼴이 된다. 소란이 커지기 전에 달재가 다가와 수고했다며 주먹을 쥐어 태섭 앞에 들었다. 태섭이 주먹을 맞부딪혀 답을 한다. 후에 병욱, 오일을 비롯한 재훈, 호식, 중식과 신입 부원들이 그들을 둘러싸 인사를 한다. 졸업했던 선배들이 이걸 보면 기절했겠지. 태섭은 눈을 X자로 뜬 선배들을 상상하고 혼자 웃는다.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소연이 어떤 플레이가 좋았는지 눈을 빛내며 주전들 감상을 쭉 늘어놓는다. 열정적인 성격의 신입 부원은 그 말을 받아적기도 했다. 백호는 뿌듯함과 흐뭇함을 섞어 웃는다. 쟤 점점 콧대가 높아지는 거 같은데 착각인가. 호식이 안경을 고쳐 쓴다. 소연이 태웅을 언급할 때는 팔만대장경을 혼자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앞에서 중식이 거들어 주기까지 하니 이야기에 끝이 없다. 정작 태웅은 별생각 없어 보이지만.

한편 다른 칸에 탄 한나, 태섭, 달재, 병욱, 오일은 오늘 저녁 메뉴 거리를 궁리하고 있었다.

 

정차한 역이 집 방향인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려 인원이 점점 줄어든다. 한나가 내릴 역에 다다르자, 태섭은 한나에게 바래다주겠다고 일어선다. 한나는 기어코 거절한다. 피곤할 텐데 얼른 집에 들어가 쉬라는 이유였다. 걱정하는 태섭에게 집이 무척 가깝다고도 덧붙였다. 주말 잘 쉬고 다음에 보자, 주장. 시원스레 웃은 한나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문밖으로 쏙 사라진다. 

 

"오, 같이 안 가도 되는 거야?"

 

언제 왔는지 백호가 가깝게 붙어있다. 아잇 깜짝...! 태섭이 조용하게 놀란다. 

 

"진짜...?"

"......"

 

백호의 눈이 커졌다. 태섭의 도톰한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열차가 달리는 소리가 크다. 집으로 가는 길이 지나치게 멀게 느껴졌다. 이번 역은... 기계음이 섞인 안내방송이 나온다. 태섭, 우리 내려야 해. 응. 

 

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백호는 태섭의 오른쪽에 서서 어깨에 팔을 두른다. 이전부터 팔걸이로 쓰면서 당연해진 거리감이다. 백호는 태섭의 옆얼굴을 내려다본다. 저렇게 멍한 얼굴을 보면, 바로 옆에 있어도 아주 먼 곳으로 떠난 느낌이다. 어깨에 두른 팔을 풀어 왼손으로 태섭의 어깨를 감싼다. 팔을 다 뻗지도 않았는데, 태섭이 제 안으로 쏙 들어온다. 어, 태섭이가 이.. 이렇게 작았나. 큰 손이 어깨를 쥐었다.

 

"태섭. 무슨 생각해."

 

백호가 걱정에 진지하게 묻는다. 태섭은 잠시 뜸을 들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한나 선배 생각했지?"

 

백호가 정곡을 찔렀다. 태섭이는 한나 선배에 관한 거면 참 알기 쉬워. 고백할 거 하고 빨리 차여서 털어버리라고. 나처럼. 백호가 속없는 소리를 한다. 

 

"고백 안 할거야. 진짜로. 다 정리했어."

 

백호의 단단한 눈썹 아래, 태섭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흔들린다. 

 

"태섭 나 봐봐. 똑바로."

 

백호가 태섭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자신과 눈이 마주치게 한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눈동자에 그렁그렁하다. 백호의 큰 손이 얼굴을 단단히 붙잡았다. 온기가 느껴진다. 태섭이 깜빡, 눈을 감았다 뜨는 동시에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미끄러져 내린다. 백호는 눈물을 엄지로 쓸어 닦아준다. 제멋대로 내려온 앞머리, 저를 올려다보느라 커진 눈, 두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얼굴이 새삼 이쁘다고 생각한다.

 

"도망가기만 하고, 참... 비겁한 겁쟁이 같지..."

 

태섭이 입술을 달싹인다. 백호는 주저하지 않고 태섭을 끌어안았다. 결코 작지 않은 몸집이지만 제 앞의 녀석이 너무 큰 탓에 한 품에 들어간다.

 

"송태섭. 너는 비겁하지도, 겁쟁이도 아냐. 내가 잘 알아."

 

단호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 태섭의 어깨가 떨린다. 태섭의 두 팔은 백호의 등을 감싼다.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백호는 태섭을 안아주었다. 

 

충분했는지 태섭이 백호 품 안에서 떨어진다. 키스해도 돼? 백호가 떨리는 마음으로 물어본다. 태섭은 대답 대신 눈을 감는다. 짧지만 분명한 입맞춤. 백호는 볼에도 입을 맞춘다. 태섭이 젖은 눈을 뜬다. 새빨간 강백호와 새빨간 송태섭.

 

 

 

===

 

 

10

태섭이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많진 않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제게 인사하러 와줬다. 엄마와 아라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섭섭..이 형. 너희 가족은 내가 지킬게. 백호가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얼마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와준 치수와 소연, 준호, 대만, 태웅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달재, 한나와는 안고 등을 두들기며 인사를 나누었다. 태웅은 언젠가 미국에서 만나면 꼭 인사 해달라고 말한다. 백호가 끼어들어 자기 미국 가면 같이 살자고 한술 더 뜬다. 태섭은 태웅의 얼굴을 보며 웃는다. 나도 네가 그리울 거다. 치수 또한 의외인 면이 귀엽단 듯 태웅을 바라본다.

 

갈 시간이 됐다. 태섭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긴다. 태섭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백호는 결국 아라에게 위로받는다. 허엉 태섭이..형 동생... 정말 씩씩하구나. 감동이야. 훌쩍이며 코맹맹이 소릴 낸다. 언젠간 다시 만날 거잖아요. 아라의 말에 태섭 엄마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태섭의 친구들을 죽 둘러본다. 백호가 척척 다가가 태섭 엄마의 손을 잡는다. 어머님, 저 미국 가면 꼭 태섭이..형 책임지고 지켜주겠습니다. 비장하다 못해 바보 같은 모습. 왐마야... 소연과 달재는 화끈거리는 제 얼굴을 잡는다. 

 

 

그리고 백호가 했던 말이 지켜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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