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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23:34
보긴 앤 버크의 낡은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자 바닥에서 탁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검은 두건을 쓴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 앞에서 옷에 묻은 먼지를 간단히 털어냈다.기괴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수정 해골과 뼈로 만든 조각상을 지나친 사내가 곧장 가게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이어서 안쪽에서 누군가의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흐릿한 햇빛이 얇은 선을 가진 인영을 비추었다.

"오셨습니까? 간만에 들리셨군요."

비단뱀처럼 매끄러운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거의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창백한 얼굴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 뒤를 덮는 검은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흘렀고, 커다란 낡은 나무 상자를 안고 있는 손은 길고 얇았다. 소년의 하얀 셔츠는 검은 얼룩으로 더러워진 지 오래지만 소년의 얼굴만은 먼지 하나 없이 말끔했다.

"여행 중에 드래곤이라도 마주치셨나 했습니다. 너무 안 오셔서요."

소년은 피식 웃으며 상자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니면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이 낡은 가게가 질리셨거나요. 아니지, 질린 건 이쪽이신가?"

사내는 소년의 말에 심기가 거슬린 듯이 눈썹을 꿈틀하며 대꾸했다. "재미없다." 사내의 시선이 상자를 정리하는 소년의 움직임을 쫓았다. 작은 주머니칼로 상자의 포장을 가르는 소년의 얇은 손가락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사내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애써 가다듬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죽기를 바라기라도 했나 보군, 리들."

사내의 말에 소년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맑고 청아한 웃음이 조용한 가게 안을 메웠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T.M.R. 그의 이니셜이 새겨진 손수건으로 그의 손을 닦아낸 후 리들은 사내에게 미끄러지듯이 다가갔다. 리들은 마치 바닥에서 몇 인치 떨어진 허공을 걷는 것 같았다. 그가 움직일 때는 성인 남자의 발자국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리들의 눈동자는 아까 사내가 미처 모두 털어내지 못한 먼지로 향했다. 리들은 사내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손수건으로 닦아내었다. 리들의 손은 필요 이상으로 사내의 어깨에 머물렀고, 사내는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코트 위로 닿는 부드럽고 얇은 손가락의 감촉에 사내의 손은 주먹을 틀어쥐었다. 사내가 속으로 조용히 욕을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지, 이 소년은 우위를 점하는 데 익숙했다.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호킨스 씨. 지루한 가게에서 유일한 즐거움이라고는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당신의 모험담 뿐인데."

리들은 손수건을 쥔 손으로 사내의 팔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천 너머로 차가운 감촉이 코트를 뚫고 사내의 근육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 작은 손길에 사내의 육중한 몸이 움찔 떨렸다. 리들은 보란 듯이 붉은 입술을 핥으며 사내에게 몸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어떤 여행을 하셨나요? 듣자 하니 어둠의 마법의 근원지를 찾아다니셨다던데..."

사내의 눈이 제 입술을 응시하자 리들은 살풋 미소지었다. 그가 몸을 기울이자 사내의 손가락이 소년의 가는 턱선을 쓸어올렸다. "정보에는-" 사내의 말을 리들이 순식간에 잘랐다. "-대가가 따르는 법이죠, 호킨스 씨." 리들이 발꿈치를 살짝 들어 사내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예민한 귀끝에 닿는 소년의 숨결에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리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내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들어오시죠."





*니가 쓰라 해서 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