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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23:31
ㄴㅈㅈㅇ



지금 이게 권태기라는 자각은 있었다.

같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묻지않아도 모든걸 말해주는 대만에게 태섭은, 더이상 궁금한게 없었다. 

기나긴 롱디끝에 겨우 닿은 체온인데 정작 떨어져있을땐 안오던 권태기가 이제와서 온다는게 어이가 없기도하고, 우리도 권태기가 오는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오늘도 새로 들어온 선수 얘기를 하는 대만을 태섭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또 저러다 죄없는 애 꼬시겠구나. 애가 적응을 잘해야할텐데 라는 코치라면 응당 해야하는 걱정조차도 반복이 되다보니 점점 짜증이 났다. 왜, 사람이, 학습능력이 없지. 저번주였나... 단순히 팀코치가 전화를 안 받는다는 이유로 집까지 찾아오는 선수가 얼마나 될거라고. 그걸 또 남친 앞에서 애가 착해서 걱정이 많다며 선수 편을 들어. 떠올리다보니 또 짜증이 더해져 한숨을 쉬는 태섭에 대만이 목소리를 줄이며 눈치를 봤다. 

..다른 얘기 해야하나.

아무리 정대만이라도 살붙이고 사는 사람의 변화까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갈수록 짧아지는 답장, 금방 끊어지는 전화, 이젠 내 얘기가 다 재미없다는 표정까지. 태섭이가 나한테 질렸다는걸 깨달은 순간 대만은 쉴 새 없이 말을 시작했다. 다른 얘기를 해야돼, 태섭이가 재밌어 할 만한 다른 얘기.

그리고 기민한 송태섭은 그런 정대만의 노력조차 뻔히 보여서. 그 뻔한 노력마저 재미가 없었다. 어차피 곧 지나갈 권태기인데, 나는 어차피 정대만이 아니면 안되는데. 그걸 왜 모르지? 나한테 확신이 없나? 내가 그렇게까지했는데 아직도? 하지 않아도 될 생각까지 뻗쳐나가는 자신을 알아 태섭이 겉옷을 챙겼다.

"...어디..가?"
"잠깐 바람쐬고 올게요. 기다리지말고, 저녁 챙겨먹어요."

어차피 흘러갈 마음이었다. 괜히 건드렸다 이 마음이 엉뚱한데로 튀지않게 좀 내버려뒀음 좋겠는데 계속 옆에서 알짱거리는 대만에 저도 모르게 말이 날카롭게 나갈까 자리를 뜨는 태섭의 행동이 대만에겐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왔다. 같이 알아봐 계약하고 인테리어를 고른 우리 집인데, 대만에겐 태섭의 표정 하나가 달라졌다고 모든게 낯설어져버렸다. 태섭이 신발을 신는 소리가 들리자 오늘 저녁엔 태섭이 좋아하는 전골을 같이 먹기로 했던게 떠올라 서둘러 대만이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태섭아, 오늘 저녁 우리 같,"

탁.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못 들은척 나가는 태섭에 대만이 천천히, 현관에 주저앉았다. 예전이었으면 무릎 상하게 왜 찬데에 앉아있냐고 득달같이 달려와 챙겨줬을텐데. 지금은...

태섭은 문제가 있으면 속으로 삭히는 사람이라면 대만은 그걸 다 토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걸 서로 모르지도 않으면서. 태섭은 내버려두면 돌아올텐데 계속 안절부절 못하는 대만이 미련하게 느껴졌고 대만은 다른것도 아닌 우리 문제를 혼자 속으로 삭히려드는 태섭이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그 문제에 내가 포함이 되어있잖아... 태섭아...




그러고 기껏 나온게 또 농구장이냐...

딱히 갈 데가 없었다. 얼굴 다 팔린 주제에 이상한데 갔다가 구설수 오르기도 싫고 지금 술이라도 마셨다간 무슨 실수라도 할 줄 모르니. 공만 죽어라 튕겨대며 뛰어다니던 태섭이 그대로 체육관 바닥에 벌러덩, 드러 누웠다. 차라리 어디 원정경기라도 계속 잡혔으면 좋겠는데...

며칠 얼굴을 안보고살면 그래도 나한텐 정대만밖에 없다는걸 깨닫고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이러다 분명 후회할 자신을 알았다. 너 고생시키기싫다는 대만에게 매달리고 화내며 관계를 시작한 주제에 먼저 식어서 이러는게 대만에게 얼마나 상처일지도 잘 아는데...

10년만의 귀국이었다. 미국에서 꽤 이름을 날린 탓에 팀에서 태섭에게 거는 기대에, 솔직히, 숨이 막혔다. 농구가 혼자 잘하면 되는게 아니잖아. 농구는 팀인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딴 놈이 실수해서 팀이 지더라고 그건 송태섭의 잘못이었다. NBA에서도 이름을 알렸으면서 국내 리그에서 우승을 못하는게 말이 되냐는 농담 하나하나가 어깨에 돌덩이처럼 올라갔다. 오죽하면 아라조차도 이젠 자긴 송아라가 아니라 송태섭 동생으로 더 많이 불린다며 툴툴댔을 정도니.

아라는 동생이라 그렇다쳐도 정대만은 다르니까. 이미 스스로의 커리어를 훌륭하게 쌓고 지도자의 길을 걷고있는 대만에게까지 최다 득점왕, 최고의 슈터라는 이름을 빼앗을 순 없었다. 적어도, 우승은 하고 나서. 그리고 되도록 리그 MVP 정도는 따고나서 당당하게 밝히고 프러포즈도 하고싶었는데. 이런 생각에 갈수록 짓눌려 훈련량을 늘려가던 태섭에게 그러다 다치면 어떡하려고그러냐 보다못한 대만이 화내며 말린 날부터 두사람의 사이가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때문에 지금 토할때까지 공을 굴리는데. 누구한테 폐끼치기 싫어서 이러는건데. 속으로 삭히는게 버릇인 태섭은 이걸 다 말로 표현할 능력이 없었고, 눈치없는 대만은 행동만으로 태섭의 속내를 다 알아주지 못했다. 




어쩌다보니 생각이 많아져 12시가 훌쩍 넘었다.  자고있을텐데 지금 들어가면 깰텐데...들어가서 씻고 옷갈아입으면 소음에 대만이 잠에서 깨겠다싶어 태섭이 그냥 회사 기숙사로 향했다. 기다리지말라고 했으니까, 안기다리겠지. 안그럴거 알면서도 그렇게 믿는게 마음이 편해서 그냥 무시하면서.



"어디서 잤어?"
"..훈련했어요."
"..무리하지 말랬잖아. 그러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형. 내가 알아서 해요."
"송태섭."
"네."

신경쓰지 말라니, 내가 네 애인이잖아.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태섭에 잠 한숨 못자고 기다린 대만의 안에서 뭔가 끊어지는 기분이라 씩씩거리며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우리 얘기 좀 해."
"나중에요."
"나중에 언제? 너 또 듣기싫다고 나가버릴거잖아."
"형, 좀. 저 피곤하다고요."
"...내가 피곤해?"
"그런 의미 아닌거 알잖아요."

그냥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본인이 외로움을 많이 타서 그런가, 옆에 있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대만의 성격이 사랑스러울 떄가 있었다. 그런 성격마저도 귀찮아졌을때가 언제였더라... 저 성격에 꼬이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는걸 깨달았을때였나. 미간을 좁히는 태섭이 또 눈 앞에있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고있는걸 깨달은 대만이 일부러 문을 주먹으로 쾅 내려쳤다.

"얘기 좀 하자고."

"미쳤어요?"
 
귀찮다더니 이건 또 걱정이 되는지, 몸을 벌떡 일으켜 손이 상한데는 없는지 살펴보는 송태섭이 여전히 너무 좋아서, 대만이 잠깐 죽고싶어졌다. 그래서, 그랬다.

"태섭아."
"형,"
"우리,"
"하지마. 닥치라고!"

내 사랑이 귀찮고 버겁다는데 내가 어떻게 계속 네 옆에서 널 사랑해. 나때문에 네가 피곤하다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벌벌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고 말을 이어가려는 대만을 태섭이 멱살을 붙잡고 으르렁거렸다. 

그 말만은 하지 말아야지. 세상에 돌이킬 수 없는 말이 얼마나 많은데.

"너도 알잖아, 우리 끝난거."
"뭘 끝나, 우리가 언제 끝났어."
"그럼 이게 맞아? 너 요즘 나만 보면 짜증냈잖아. 내가 먼저 전화 안하면 전화도 안 했잖아. 부재중 들어와있어도 전화도 안 해주잖아, 네가!"
"나 요즘 힘든거 알잖아요. 어떻게 사람이 한결같이 좋아, 어떻게 맨날 설레. 그냥 이런 날도 있는거잖아. 조금 지나면 아무렇지않게 돌아올거 다 알면서 왜 그 새를 못참아, 왜!"

태섭도 이제는 점점 화가 났다. 어떻게 그 말을 꺼내려고 해. 어떻게 먼저 끝내자는 말을 하려고 해. 우리가 우린데. 어떻게.

"다시 돌아오면, 지금이 없던 일이 돼?"
"정대만."
"나는 그게 안돼, 너는 될지 몰라도, 나는 안돼. 그냥 그런 사람이야 내가."

눈시울이 붉어져 노려보는 대만이 마지막을 고하기 전에, 똑같이 노려보던 태섭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대만이 말하기 전에, 선수를 처야해서.

"그래...그럼 그만해요."
"..."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대만을 지나쳐 다시 집 밖으로 나가면서 태섭을 적어도 마지막을 먼저 말한게 자신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했는데 라는 후회를 정대만에게 쥐어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떠나가는 사람에게 모진말을 해버렸다는게 얼마나 큰 후회인지 아니까. 매일밤 이 순간을 떠올리고 아파하며 후회할 사람이 적어도 정대만은 아니라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하필이면 이 순간에 권태기가 끝나버린것도. 다행이라고.

송태섭은 속으로 삭히는걸 잘하는 만큼이나 기다리는것도 잘했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정대만을 기다리는건 세상 누구보다 자신이 있으니까. 집 근처 공원에 앉아 곱슬거리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태섭이 감정을 갈무리했다. 정대만은 한번 좋아한걸 싫어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니, 적어도 송태섭은 계속 좋아해줄거니까. 지금부터 후회하고 망가져 매달리면 약한것에 약한 정대만은 결국 자신을 봐줄거니까.







태섭대만
 
2023.03.19 23: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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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 권태기가 아니고 둘이 넘 아끼는 시기인데ㅠㅠ
[Code: 0aeb]
2023.03.19 23:48
ㅇㅇ
모바일
얘들아 이게 무슨 권태기니 너 여기 앉고 너 저기 앉아서 손 잡고 얘기나 해라 이놈들아 ㅠㅠㅠㅠ(o̴̶̷̥᷅⌓o̴̶̷᷄) 하 대만이 위해서 헤어지자는 말 하는 태섭이..
[Code: b14e]
2023.03.19 23:52
ㅇㅇ
모바일
미치겠다 얘들아ㅜㅜㅜㅜ사랑하는데 왜그래ㅠㅠㅠ
[Code: 954b]
2023.03.20 01:29
ㅇㅇ
모바일
권태기 끝났으면 다시 사궈 ༼;´༎ຶ ۝ ༎ຶ༽
[Code: db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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