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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6 00:06
본체가 영상으로 하나하나 기록하는 걸 좋아하니 아이스맨도 그런 걸로 ㅇㅇ



아이스맨의 서재에는 서재를 통해야만 갈 수 있는 공간이 딱 하나 있었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테이프들이 즐비해 있지. 고릿적에나 쓸 법에나 12mm 캠코더, 6mm짜리 테이프부터 DVD,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을 정리해둔 외장 하드까지도 말야. 그가 살아온 시대를 풍미하듯 많은 영상이 있었어. 아이스맨은 뭐든 지난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거든. 


매버릭이 처음으로 틀어본 영상은 아이스맨과 결혼 영상이야. 엉망이었지. 구스는 도합 300퍼센트의 솜씨를 발휘하여 엄청난 축가를 불러댔고, 사회를 보던 슬라이더는 구스의 노래를 듣곤 마시던 물을 뿜는 것이 고스란히 찍혔어. 이 영상을 찍어준 사람은 울프맨이었는데, 할리우드와 함께 낄낄대다 쓰러지는 걸 워록이 대신 캠코더를 잡아채서 이어 찍어줬지.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아이스맨은 웃음을 터트리는 매버릭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어. 


그 다음은 캐피를 임신하고 처음으로 아기 방을 꾸몄던 날이야. 매버릭이 작은 아기 신발을 들고 장난치며 말했지. 아이스맨은 캠코더로 매버릭을 찍다 말고 다가오는 아기 신발의 앞코에 쪽하고 입을 맞췄어. 무사히, 건강하게만 나와라. 엄마 너무 아프지 않게만. 응? 장면이 바뀌고,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매버릭을 가만히 찍어보던 아이스맨이 캠코더를 내려놓은 채로 매버릭에게 다가가 배에 얼굴을 기댔지. 아이스맨은 매일 같이 아기에게 바랐어. 너희 엄마 너무 아프지만 않게만 나와달라고. 


캐피는 아빠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어. 매버릭은 진통을 오래 겪지 않고도 깔끔하게 순산했고, 빨갛고 쪼글쪼글한 아기가 매버릭의 품에 안겼지. 배리가 다가와 아이스의 캠코더를 빼앗아 들며 아이스맨과 크리스를 찍었어. 장인과 사위가 둘 다 얼굴이 물만두가 되어선 조심스럽게 매버릭에게서 아기를 건네받아 안아보고 있었지. 행여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당최 무게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아기를 덜덜 떨리는 손길로 안아보던 아이스맨과, 사위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던 크리스가 아기의 하품 한 번에 녹아내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어. 아이스맨은 그때 답지 않게 한 번 울었어. 


캐피는 무럭무럭 자랐어. 처음으로 뒤집기를 성공한 캐피는 무척 사랑스러웠지. 아장아장 걸어 엄마의 품에 안겨 활짝 웃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말야. 아이스맨이 찍어둔 영상은 매버릭과 캐피를 무척 다정한 시선으로 담아냈지. 제 머리보다 더 큰 군모를 쓴 캐피, 아이에게 먹일 팬케이크를 굽다 태워버리는 매버릭...  아이스맨은 매버릭과 캐피가 사고를 칠때마다 캠코더를 내려놓고 달려가 살피곤 했어. 영상에는 그런 그의 뒷모습이 찍혔지. 사실 이런 영상들은 참 많았어. 아이스맨은 거의 찍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야.


매버릭은 이어지는 영상들을 보며 아이스맨의 목소리, 손길, 눈빛을 떠올렸어. 행복한 가족의 한 때를. 영상은 아이스맨이 매버릭과 캐피를 찍고 있었지만, 매버릭의 눈앞에 펼쳐지는 기억은 캠코더를 든 채로 매버릭과 캐피의 캐치볼을 담아내던 아이스맨의 행복한 미소야. 매버릭과 캐피는 서로 눈빛으로 짜고선 아이스맨에게 와락 달려 들어 캠코더를 뺏기도 했지. 그만 찍고 놀아줘! 그러면 아이스맨은 활짝 웃었어. 알았어. 알았다고. 카잔스키 중장님의 항복 선언에 매버릭과 캐피는 신나게 하이파이브를 했지. 예이!



화면의 불빛이 반짝거려.
오로지 매버릭과 영상이 남아있던 공간으로, 어둠을 헤집고 누군가 들어섰어. 캐피였어. 어느덧 어엿한 군 법무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리고 귀엽기만 한 아이가 조용히 매버릭을 불렀어. 엄마. 매버릭은 그제야 조용히 고개를 돌렸지. 캐피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어.


우리 지금 병원에 가야 돼.
….
아빠, 깨어났대.


아이스맨은 늘 말하곤 했지. 너만 혼자 남겨두지 않을 거라고 말야.
매버릭은 말없이 캐피를 보았어. 화면 속에서 살짝 옆모습이 비친 아이스맨이 미소 짓고 있었어. 




...



아이스맨이 없는 삶을 견딜 수 없는 매버릭과, 수술 후 사경을 헤매던 아이스맨이 비로소 약속을 지켜낸 이야기가 ㅂㄱㅅㄷ






#아이스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