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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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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알못ㅈㅇ



오늘 내 앞으로 날아온 우편물을 보고 난 후, 오랜 시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드디어 풀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카드에 적힌 글은 짧았지만 여러 번 읽을수록 희열에 넘쳐 심박수가 빨라지는 걸 느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 내가 옳았다.


 
*



나는 모험을 좋아한다. 새로운 곳을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을 느낀다. 그 과정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지만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느끼는 신선함과 짜릿함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가족이 이사하면서 나도 전학을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미소 지었다.


나의 담임은 다정한 말투에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이었다. 새 모험의 안내자가 멋진 사람이라 내심 기분이 좋았는데 그는 나를 교실로 데리고 가 소개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학생을 교무실로 불렀다. 난 그 학생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누군가 학생이 교복을 어떻게 입어야 단정하게 잘 입은 거냐고 물어본다면 고개 들어 이 학생을 바라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임은 단정한 교복만큼 단정한 외모의 학생을 가리키면서 "우리 반 반장이야, 얘를 따라가."라고 말한 뒤 어딘가로 사라져버렸고, 나는 새 모험이 시작하기도 전에 안내자를 잃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굳어있는 나를 보며 반장이 인사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난 나다니엘 픽이야."


그는 네이트라고 부르라며 환하게 웃었고 나도 자기소개를 했다. 네이트는 담임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그래도 사람은 좋아, 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는데 '그래도'와 사람'은'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었던 건지 그땐 미처 몰랐다. 네이트는 나를 교실로 데리고 가면서 같은 반 친구들이 착해서 새 학교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줄 거라고 열성적으로 말했다. 왜 이런 얘기를 선생이 아닌 학생이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같은 학생 입장에서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가고 안심이 됐다. 그리고 교실 문을 열어 다들 주목하라고 말한 뒤 내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을 때, 네이트가 말한 '착하다'가 내가 알고 있는 뜻과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동물 같았다. 하나같이 육식동물 같았고, 나는 이 교실의 유일한 스테이크가 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바르게 앉아서 건강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은 덕분에 내가 말을 하면서 떨 수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이 반에서 유일한 정상인으로 보이는 네이트가 반장이 된 과정이 몹시 궁금했다. 네이트는 복도 쪽 제일 뒤 빈자리를 가리키며 저기에 앉으면 된다고 말했고, 자리로 걸어가면서 계속 따라붙는 시선들에 몸이 굳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 앞에 앉은 학생이 뒤돌아 자신을 레이라고 부르라며 요란하게 소개했다. 그 옆에 앉은 학생은 인사도 없이 알록달록한 사탕 하나를 건넸다. 여행지에 가면 익숙한 음식보다 현지인들이 먹는 낯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사탕을 입에 넣었다.


"씨발, 트럼블리. 너 그 냄새 좆같은 사탕 좀 안 먹으면 안 되냐?"


거친 욕설과 함께 내 옆자리에 털썩 앉은 학생은 잘생긴 얼굴에 키가 매우 컸다. 웃음기 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브랫 콜버트라고 소개했는데 난 그가 이 야생동물들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브랫은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보단 잔소리를 쏟아붓는 타입의 우두머리였다. 주로 하는 말이 앉아, 닥쳐, 책 꺼내, 앞을 봐, 반장 말 좀 들어, 트럼블리에게 특정 사탕을 먹지 말라는 말이었고 나에게도 닥치고 앞이나 보라는 말을 하게 됐을 때 그와 친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네이트의 말대로 같은 반 친구들이 착한지는 모르겠지만 새 학교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준 건 확실했다. 그들은 다정하게 나의 이름을 부르며 살갑게 말하진 않았어도 날 외면하진 않았다. "야, 따라와." 험한 표정으로 말하길래 덜덜 떨면서 따라가 보면 "여기가 화장실이야."라고 했다. 자세히 봐야 친절했다. 


그들의 거친 친절에 조금은 익숙해진 어느 날, 난 혼자서 학교를 돌아다녀 보고 싶었다. 교실 문을 나서는 나에게 누군가가 이 학교 잭스 좆만 하니까 잘 갔다 오라며 소리 질렀다. 잭스의 좆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 학교는 정말 컸다. 운동장 주변을 거닐다가 아직 가 보지 못한 학교 뒤편 강당으로 향하니 어느새 학생들이 덜 보이기 시작했다. 소음 소리도 멀어질 무렵 네이트를 발견했다. 네이트는 강당의 모퉁이에 책을 들고 서 있었다. 함께 교실로 돌아가면 되겠다면서 그를 부르려던 순간, 벽에서 손이 튀어나와 네이트의 뒤통수를 끌어당겼다. 네이트가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리며 누군가에게 매달렸다. 나는 그게 학교 폭력이라고 생각할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소리쳐 부르려고 벌린 입을 주먹으로 틀어막으며 교실로 뛰어갔다. "이 새끼 어디 가서 딸치다가 왔냐, 왜 이렇게 숨을 헐떡여?"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내가 자리를 뜬 다음 설마? 아참, 내가 말을 했던가. 여긴 남학교다.


나는 내 자리의 반대쪽, 창가 뒷자리에 앉은 네이트를 바라봤다. 흐트러지지 않은 단정한 교복, 단정한 외모 그리고 입술. 입술이 유달리 붉고 확실히 부어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빨리기라도 한 것처럼. 브랫이 내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게 하며, 왜 자기 주변엔 정신 산만한 새끼만 모여있냐고 투덜거렸다. 미안하지만 도저히 집중이 안 됐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는 만큼 호기심도 많다. 점심시간, 네이트가 자리에 없으면 자연스레 그 모퉁이가 떠올랐다. 상대는 누구였을까? 같은 학년일까? 혹시 선생은 아니겠지? 선생이면 여자, 남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내 발걸음이 몇 번이고 강당으로 향했지만 네이트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이제 포기할까, 생각했을 때쯤에야 네이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자주는 아니어도 다시 나타난 걸 보면 저곳은 네이트와 누군가의 아지트가 맞나 보다. 처음엔 놀라서 제대로 본 것이 없었지만 이번엔 관찰하기로 마음을 먹고 온 만큼 네이트의 입술을 훔친 상대가 누구인지 추측할 단서를 더 얻을 수 있었다. 벽에서 반 조금 못 되게 튀어나온 오른쪽 어깨높이가 네이트의 어깨보다 높았고, 교복을 입고 있었으며, 셔츠를 바지에서 뺀 채로 소매를 말아 올렸고, 검은색 시계를 차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각도는 찾지 못해서 아쉽지만 이게 다였다. 그때 누군가에게 매달렸다가 살짝 떨어지며 나타난 네이트의 얼굴이 늘 단정하던 것과 달리 달뜬 표정으로 물든 것을 보고 부모님의 잠자리를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 후로 나는 네이트와 누군가의 아지트를 찾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내 자리로 온 네이트가 전달 사항이 있다며 웃으면서 포스트잇 하나를 줬다. 그동안 네이트는 내 학교생활이 힘들진 않은지, 궁금한 건 없는지 담임보다 더 관심을 가져줬다.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맙지만... 이건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네이트는 모든 것이 단정했지만 필체만큼은 아니었다. 그 악필의 메모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게 하단에 그려진 스마일 그림뿐이었을 때, 브랫이 손을 뻗어 포스트잇을 가져가더니 책을 펼쳐 아무 페이지에 붙이고 덮어버렸다. 


"어차피 못 읽잖아. 내가 알려줄게, 받아 적어."


브랫은 의외로 다정한 면이 있었다. 고맙다고 말한 뒤 펜을 꺼내다가 멈칫했다. 브랫이 네이트랑 친했나? 





그날부터 나는 '브랫'과 '네이트'가 아닌 '브랫과 네이트'를 살폈다. 둘은 자리가 떨어진 만큼 교실 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면 말없이 교실 밖으로 사라질 때가 많았다. 왜 안에서 얘기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걸까. 며칠의 관찰 결과, 둘 사이에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브랫은 담임이 말을 할 땐 아이들이 떠들어도 무관심했으면서, 네이트가 전달할 것이 있으면 "반장 말 하는 거 안 들려?"라고 주의를 줬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은 하루에도 수십번 포착했는데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친구를 저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친구치고는 시선이 지나치게 끈끈했다. 어어 저거 봐라,


"손! 손!"
"그래, 오늘 미치기 좋은 날씨야." 


레예즈가 싱긋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왜 아무도 못 본 거지? 브랫과 네이트가 손을 잡았다! 처음엔 손가락 끝만 스치는 줄 알았는데 저 손가락들이 은밀하게 얽히고설키다가 떨어지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내가 이 반의 누구에게 저런 식으로 손을 잡으면 그날이 이 학교생활의 마지막 날일 거다. 나는 뒷모습 일부분밖에 보지 못해서 얼굴은 비워두었던 네이트 앞의 상대에게 브랫의 얼굴을 아주 선명하게 그려 넣었다. 네이트가 브랫의 목에 매달리고 브랫의 손가락은 네이트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가 그 속을 탐험했다. 브랫의 입술이 네이트의 감은 눈에 닿았고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저 손가락처럼, 그들의 혀가 얽혔다. 그러다가 서로의 손이 셔츠 단추를 거칠게 풀어 헤치고... '안 돼. 더는 안 돼!' 의지와 달리 내 안의 브랫은 멈출 줄 몰랐다. 흥분한 그는 비어있는 교실로 네이트를 데리고 가 책상에 앉혔고 목덜미에 고개를 묻다가 바지 버클에 손... '씨발 이건 아니지! 제발, 멈춰!' 그런데 생각을 멈출 방법이 있나? 나는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네이트를 책상에 눕힌 브랫이 몸을 겹쳐 헐떡이다가 네이트가 흘린 눈물을 핥는 모습까지 떠올렸고, 흔들리면서 바닥에 마찰하는 책상다리 소리와 그들이 내는 습한 소리까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며 괴로워했다. 그때, 내 안의 브랫이 아닌 진짜 브랫이 바람에 흩날린 네이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잡아 정리해주는 걸 봤다. 네이트의 고개가 들렸고 그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시선을 마주했다. 네이트가 뭐라고 말했고, 브랫이 웃었다. 저게 내 눈에만 보여?


"친구끼리 눈을 마주 보고 얘기한다는 거, 조금 이상하지 않아?"


패트릭이 젤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눈을 피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너희들은 모른다.





이 교실에선 누군가를 부를 때 손보다는 발을 사용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다가가서 의자 다리를 걷어차면 된다. 브랫은 내게 앞이나 보라고 호통친 주제에 수업 시간 내내 잠들었다. 그런 브랫을 네이트가 쉬는 시간에 찾아왔을 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너무 살랑살랑한데...' 네이트가 브랫의 팔을 움켜잡고 흔들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브랫, 우리 매점 가자."
"응, 네이트. 빵 먹고 싶어?"


나는 미어캣처럼 척추를 세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친, 봤어? 봤어? 들었어? 아무도 못 봤나 보다. 다들 귀가 먹은 거야? 그 누구도 저 수상하게 다정한 손짓과 대화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의 외로운 상상력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리 반장, bread가 아니라 brad를 먹고 싶은 거지?' 교실 밖으로 사라지는 둘을 보며 저들이 매점에 가긴 하는지 궁금했다. 다시 교실로 돌아온 둘의 손에 빵은 없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에 앉은 브랫에게 빵은 어디 가고 왜 빈손으로 오냐고 묻자 눈을 끔뻑하더니, 맛있어서 한입에 다 먹었다고 말했다.


"무슨 맛이었는데?"


내 질문에 브랫은 의자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젖혀 교실 천장을 바라보다가 나른하게 웃으면서 "황홀한 맛."이라고 했다. 매점 빵이 맛있어 봤자 거기서 거기인데 무슨. 난 황홀경에 빠진 브랫이 정신 차린 다음 또다시 내 고개를 정면으로 고정시키기 전에 스트레칭하는 척하며 네이트를 바라봤다. 빵을 더 열심히 먹은 쪽은 네이트가 아니라 브랫이었나보다. 네이트의 입술이 오늘도 유달리 붉고 확실히 부어있었다. 아주 씹어 먹었네.


가끔은 진짜 빵을 먹었겠지만 대체로 그들이 먹는 빵은 다른 종류였을 거라고 믿었다. 탄수화물 중독자들치고는 둘의 몸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어쩔 땐 매점 가자는 말도 없이 네이트가 브랫을, 브랫이 네이트를 번갈아 가며 고갯짓으로 불러 쉬는 시간마다 같이 사라졌는데 그런 날이면 쉬는 시간 10분 전부터 브랫이 다리를 떨어댔다. 나는 강당까지 가지 않고 그들만의 빵을 먹을 수 있는 아지트가 이 근처에도 여러 곳 있을 거라 확신했다. 잠시 후, 네이트와 매점을 다녀온 브랫에게 이번엔 무슨 빵을 먹고 왔냐고 물어보니 '향긋한 오렌지 파운드케이크'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런 고급스러운 느낌의 빵이 매점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았다. 네이트가 교복 재킷에서 오렌지 사탕을 꺼내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뜬 뒤 웃었다. 귀여운 녀석들. 


그 후로도 브랫과 네이트가 주기적으로 매점에 가는 걸 봤다. 매점을 다녀온 브랫은 배불리 먹은 맹수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무언가를 먹긴 먹었겠지.' 나는 매점에서 나온 설문조사 담당자처럼 둘에게 무슨 빵 먹었어? 맛있었어? 여러 번 물었었는데 이 질문을 그만둔 계기가 있다. 담임이 또 자기 할 일을 떠넘긴 건지 네이트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슨 말을 전달 중이었다. 교실을 어슬렁거리던 나에게도 네이트가 다가왔다. 그동안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네이트는 크림빵을 좋아한다고 했다. 


"오늘도 크림빵 먹었어?"
"아니, 소세지 빵 먹었어."


옆에 있던 에스페라가 그 얘기를 듣고, 돈맛을 좀 봤는지 점점 소세지가 부실해져서 기분 나쁘다며 초심 잃은 판매자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그때 네이트가 수줍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운이 좋았나 보다. 오늘 먹은 소세지가 엄청 컸거든."


이다음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냥,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이미 촉촉한 상상까지 한 주제에 죄책감을 가진다는 게 우습지만 정말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네이트의 입술이 유달리 붉고 확실히 부어있는 것뿐만 아니라 입가에 작은 상처까지 생겨있었던 걸 탓하고 싶다. '얼마나 몰아붙였으면...' 잠들기 직전 상태인 브랫을 노려보며 나도 모르게 근거 없는 비난을 하다가 네이트의 입가에 상처가 생긴 과정을 떠올리게 됐다. 이번 역은 매점, 매점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아! 미친 또!' 브랫이 네이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학생, 오늘은 무슨 빵 먹고 싶어? 네이트가 브랫을 벽으로 밀쳐 짧게 입 맞춘 뒤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로운 게 먹고 싶어요. '네이트, 미안해...!' 네이트는 소세지 빵의 진열대를 쓸어내리다가 결심한 듯 포장지를 조금씩 벗겼다.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소세지가 뜨겁고 딱딱해진 채 포장지를 튀어나왔다. 네이트의 턱을 브랫이 잡아 올리자 두 눈이 마주쳤고, 네이트는 그대로 천천히 소세지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어 그래, 해라! 해버려!' 소세지는 금세 더 커졌다. 씹을 수 없는 소세지를 힘겹게 입에 담은 네이트의 눈가가 붉게 달아오르자 브랫의 호흡도 거칠어졌다. 브랫이 거칠게 진열대를 움직이고 싶은 욕구와 싸우면서 네이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습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네이트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본 브랫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그러고는 한계치까지 단단해진 소세지를 빼앗아 네이트를 감싸 안아 누우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이트, 소세지 빵만 먹으면 아쉽지 않아? 크림빵도 같이 먹을래?


"씨발!"


에스페라는 화들짝 놀라 저 미친놈이 더 미쳤다고 화를 내면서 왜 이 반엔 새로 온 놈조차 미친놈이냐고 음모설을 제기했고, 네이트는 나의 붉어진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크고 순한 녹안을 보고 죄스러움이 극대화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날 잠들기 전 기도했다. 





브랫과 네이트의 사이가 단순한 친구 이상이라고 생각하자, 그들의 모든 말과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다. 이 거칠고 메마른 동물의 왕국을 배경으로 둘이 눈만 마주치면 꽃잎이 흩날렸다. 입만 열면 욕인 브랫이 네이트에게 욕을 하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전학생을 살뜰히 살피던 네이트가 나에게 빵을 주거나 빵 먹으러 매점에 가지 않겠냐고 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게다가 두 사람은 주로 같이 다니는 무리가 달랐어도 하루에 최소 한 번 이상은 함께 교실 밖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강당 모퉁이뿐만 아니라 빈 교실, 화장실 빈칸 등을 향하는 두 사람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보이지 않는 순간을 억지로 상상할 필요도 없다. 지금처럼. 네이트가 교실 앞에서 선생님 말씀을 전달하는데 자꾸 내 옆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네이트의 시선을 따라갔다. 내 짝 브랫 콜버트, 나는 그를 떠보기로 결심했다. 


"네이트는... 여자 친구 있겠지?"
"응, 있어."


당연히 없다고 대답할 거라 확신에 차서 물었는데 바로 튀어나온 대답을 듣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 헛다리를 짚었다는 건가. 나는 재촉하듯이 본 적 있냐고 물었고, 브랫은 뭐가 우스운지 한참 웃다가 정색하고 말했다. 어, 씨발 존나 핫해. 


브랫과 네이트의 손가락엔 반지가 없었다. 하긴 있었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 않았지. 내가 본 사람은 분명히 남자인데 존나 핫한 여자 친구는 또 뭐란 말인가?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호기심이라는 이유로 친구의 사생활을 더 침범하고 싶진 않다. 처음 그 장면을 본 건 우연이었지만 그 후엔 작정하고 훔쳐본 것을 인정해야 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호기심을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브랫의 허전한 손가락을 바라보며 참회하다가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놀란 브랫이 미친 새끼라고 소리쳐도 나는 상관없었다. 내 환희에 찬 몸부림을 보고 갑자기 춤이라도 추는 줄 알았던 건지 애들이 옆에 모여서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무리의 머저리처럼 보였을 거다. 상관없었다. 유레카라고 소리 지르면서 책걸상을 창밖으로 던지고 싶었다. 아니, 유레카보다 다른 말이 더 적합했다. 


'이 학교에서 네이트보다 키가 크고, 네이트를 씹어 먹을 것처럼 쳐다보고, 네이트랑 쉬는 시간마다 사라지면서, 교복을 저따위로 입은 데다가 검은색 시계를 오른쪽 손목에 차는 놈 또 있으면 나와봐!'


  
*



청첩장에 적힌 날짜는 금방 다가왔다. 그동안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잘생겼고, 좀 더 성숙해졌고, 재수 없을 정도로 잘나고 빛난 모습들이어서 괜히 자랑스럽고 코끝이 찡해졌다. 감동에 젖어있는 나에게 브랫이 같이 보낸 포스트잇은 잘 받았냐고 물었는데, 의아한 표정으로 청첩장의 봉투를 열어 안을 확인했을 때 그가 말한 포스트잇이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 접착력이 떨어졌는지 손가락에 붙지 않았다. 손톱으로 조심스레 꺼내 본 다음 잠시 앓듯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어... 무슨 과제... 독후감 쓰라는 거 아니었나?"


브랫이 나의 기억력을 칭찬하면서 자기가 알려준 건 그게 맞을 거라며 웃었다. 그러더니 여기에 적힌 건 다른 내용이라는 거다. "네이트, 너 아직도 글씨체가 이래?" 포스트잇 밑에 그려진 스마일이 아니었으면 어디가 위아래인지도 몰라 계속 돌려 봤을 게 분명했다. 눈의 초점을 흐릿하게 해보다가 부릅떠보기도 하면서 노력하는 나를 보고 작게 한숨 쉰 네이트가 여전히 단정한 목소리와 특유의 똑 부러지는 발음으로 귀에 꽂듯이 읽어줬다.


"사실 나는 네가 지켜보고 있는 걸 알고 있어."


네이트가 우리 반의 반장을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 반에 정상인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공식 발표하듯이 들려온 둘의 연애 소식을 듣고 전혀 몰랐던 것처럼 반응해줬다. 연애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결혼 정도는 해야지. 그리고 대망의 결혼식, '너희들이 성인이 되기 전부터 신성한 학교에서 신성한 교복을 입은 채 격정멜로 찍은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 뒤 당황으로 물들 신혼부부의 표정을 기대하면서 날아왔는데,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이들도 알고 있었다고? 그러면 내가 지켜보는 걸 알면서도 입 맞춘 거란 말이야? 너희들 변태야?


"자기 소개하냐? 네가 자꾸 네이트를 음흉하게 쳐다보니까 열받아서 꺼지라고 조금 보여준 거지."


누구는 보여주고 싶어서 보여준 건 줄 아냐면서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는지 브랫이 인상을 찌푸렸다. 네이트가 그런 브랫의 미간을 어루만지자 바로 풀어져서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웃었다. 난 이 둘이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억울한 오해를 받았지만, 이 생각은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브랫네잇 슼탘
2023.02.22 01:28
ㅇㅇ
대작의 시작을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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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1:44
ㅇㅇ
학교에서 비밀연애하는 브랫네잇 더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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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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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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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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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4존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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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공개연애 목격 ㅌㅌㅌㅌㅌㅌㅌㅌ 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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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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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혼까지 ㅋㅋㅋㅋㅋㅋㅋ 개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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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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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지크림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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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4: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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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엔시노맨이냐고 ㅋㅋㅋㅋㅋㅋ 나는 기자양반? 깨알같은 포인트 존많이에요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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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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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님 악필인것도 ㄱㅇㅇ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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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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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ㅌㅌㅌ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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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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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파운드케잌이랑 소세지빵ㅋㅋㅋㅋㅋ 스쿨섹스 제대로 즐겼네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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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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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친구 시선으로 보는 브랫네잇 너무 귀엽고 따뜻하잖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비밀공개연애에서 결혼까지 갔네ㅋㅋㅋㅋㅋ그와중에 소주질한 부랫ㄱㅇㅇ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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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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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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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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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 해라! 해버려!!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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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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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존나 대작이다 센세 필력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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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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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봤어 나야 내가봐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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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2 12: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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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디지겠네ㅠㅠㅠㅠㅠㅠㅠㅠㅠ신성한 학교에서 신성한 교복입고 격정멜로 찍는 브랫네잇 존나 좋잖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1d8]
2023.02.22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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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필력 무슨 일이야;;
자세히 봐야 친절했다. >>>이 표현 완전 브라보게이들 ㅋㅋㅋㅋㅋㅋㅋ 소세지빵에서도 터지고 ㅋㅋㅋㅋ ㅅ
[Code: 5444]
2023.02.22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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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더 줘요
[Code: 5444]
2023.02.23 00: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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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지금 제가 뭘 본거죠 센세는 미쳤다.... 젠킬 내용 깨알같이 포인트로 다 들어가 있는거봐 읽으면서 너무 좋아서 몸부림친 적은 처음이에요 센세 ㅠㅠㅠㅠㅠㅠㅠㅠ 수상하게 하루에 한번씩은 매점으로 사라지는 둘에 소세지 크림빵 와씨 ㅋㅋㅋㅋㅋㅋ 지켜보는거 모르는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었던거면 대답도 다 의도한 거였잖아 ㅋㅋㅋㅋㅋ 진짜 염병천병이라고 ㅋㅋㅋㅋㅋㅋ
[Code: 7e60]
2023.02.23 00: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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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봐야 친절한 ㅋㅋㅋㅋ 그리고 브랫이라는거 깨닫고 몸부림 치는데 갑자기 같이 춤추는 브라보 애들 ㅋㅋㅋㅋㅋㅋ 진짜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잇 악필 적힌 포스트잇 굳이 자기가 가져가는거랑 여자친구 있냐는 물음에 존나 핫하다는 브랫 소주하는거 미쳤다고 ㅋㅋㅋㅋㅋ 저 정도면 전학생만 눈치챈게 아닐 것 같은데... 둘 비밀연애이야기 더 보고 싶어요 센세 제발 어나더 ㅠㅠㅠㅠㅠ
[Code: 7e60]
2023.02.23 02: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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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시점에서 본 브랫네잇 진짜 너무 좋아 죽겠다... '그들은 동물 같았다. 하나같이 육식동물 같았고, 나는 이 교실의 유일한 스테이크가 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이 부분 너무 브라보 막사에 떨어진 기자양반 기분같은데 묘사 찰떡이야 ㅋㅋㅋㅋㅋ 알차게도 소주하고 결국 결혼이라니... 브랫 미간 펴주는 네잇 가이딩씬 생각나고 꿀떨어지네 ㅠㅠㅠㅠ 존잼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372]
2023.03.04 11: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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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반장과껄렁한브랫네잇 너무 좋아
[Code: 3f6d]
2023.03.21 09: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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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우리 셋이 행복한 느낌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브랫네잇 관음 너무 좋다 센세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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