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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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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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강백호의 집은 자신의 기숙사와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를 걸어간다고 했는데 그러면 사실 1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 먼 거리를 진짜 걸어서 집에 간다고? 하는 생각과 그러면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재활하러 왔다고?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운동삼아 그랬나? 설마 돈이 그 정도로 없으려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버스 타고 가자고 대협이 먼저 말을 꺼냈더랬다. 그러자 멈칫하는 강백호 앞에서 코를 살짝 만지며 작게 아야, 소리를 내주니 궁시렁거리긴 했지만 얌전히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왔다. 이런 쪽으로는 다루기 쉬운 녀석이라 다행이었다. 그리곤 마침 온 버스에 올라타는데 강백호가 호주머니에서 십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더니 태연하게 그것 하나만 달랑 요금으로 내는 게 아닌가. 황당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에 버스 기사가 뭐냐고 묻는데 정작 당사자는 민망해하는 기색조차 없고 지켜보던 대협만 아이고야, 싶었다. 자연스레 뒤따라 타면서 2명 치의 차비를 내고 기사를 향해 싱겁게 웃으며 강백호의 어깨에 팔을 둘러 데리고 들어가는 건 대협의 몫이 되었다. 놀랍게도, 그리고 뭔가 예상대로 강백호는 이런 것에는 털끝만큼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저 피식대며 새는 웃음을 멈출 수 없을 뿐이었다. 대협은 알 수 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없는 거지만 근본적으로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얘는 정말 대책이 없었다. 농구만 그런 게 아니라 일상 생활도 이런 거다. 세상에 이런 애가 있는 거다. 정말이지, 이렇게도 살아지는 거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평생 영광으로 여길 요리를 해주겠다며 갑자기 시장 쪽으로 들어설 때는 헛웃음이 다 났다. 근데 채소 같은 걸 고를 때는 또 미묘하게 능숙해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격이며 신선함이며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지는 모습이 정말 의외였다. 하지만 당연히 계산은 또 대협이 다했다. 그래도 혹시나, 진짜 혹시나 강백호가 어색해할까봐 나한테 해주는 거니까 필요한 재료는 내가 살게, 라고 덧붙이니 뭘 그런 걸 다 말하느냐는 투로 당연하지! 하고 대답하길래 역시나 싶었다. 어쩜 이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가 있는지 약간 안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해주는 요리 이름이 뭐야?”
대협은 정말 궁금했다. 생각보다 다채롭게 산 야채를 보니 호기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그러자 강백호가 한쪽 입꼬리를 싹 올리면서 신나보이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할머니표 생선구이다.”
“오?”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좀 괜찮을 것 같았다. 솔직히 요리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이 강백호의 사과에 끌려온 거였는데 혹시 또 모른다. 나름 야무지게 장을 보는 모습도 그렇고 전혀 요리를 못 하면 저녁 해주겠다며 자기를 초대하지도 않았겠지. 그리 생각하니 왠지 배도 고파오는 것 같았다. 물론 상대가 강백호라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했지만 아니면 뭐 아닌 대로 또 어떻게 되기 마련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얼렁뚱땅 대협의 코피와 지갑으로 굴러가지 않았나. 이제 코도 더 이상 욱씬거리지 않아서 대협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백호의 집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은 조금 좁고 복잡했지만 금방이었다. 허나 여기구나, 하고 도착한 장소에서 대협은 표정 관리를 좀 해야 했다. 이런 걸 아파트라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도 못 하게 낡은 건물이었다. 언제나 또렷하고 쨍한 느낌의 강백호가 그 칙칙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잘도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약간 기괴해 보일 정도로. 3층까지 있는 건물은 부실해 보이는 복도에 현관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강백호의 집은 그나마 윗층도 아닌 1층이었다. 강백호는 그 많은 현관문 중 하나에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벌컥 문을 열었다. 열쇠로 연 것도 아니고 벨을 누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열고 들어갔다. 그래서 대협은 다른 어떤 다른 식구가 집에 있는 줄 알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서 따라 들어갔다. 허나 집 안은 휑하고 어두웠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굉장히 어두워서 안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다. 강백호가 벽 어딘가를 건드려 달칵 소리가 나고 나서야 불이 켜져 안을 볼 수 있었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자그마한 단칸방이었다. 화장실로 보이는 듯한 문 하나가 신발 두세개면 꽉 찰 현관 옆에 있었고 대협의 기숙사 방에 있는 것보다 작고 낡은 싱크대가 그 맞은 편에 보였다. 그 옆에는 또 작고 오래 되어 보이는 냉장고 하나, 그리고 정면에 사진 2개가 올려져 있는 재단 하나. 은은한 향 냄새로 잠겨있는 방을 바라보며 대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앞서 들어가 생선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강백호의 등을 바라보며 조용히 현관문을 잠그려고 했다. 그런데 문고리가 휙 하고 돌아가면서 잠금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질 않았다. 한번 더 시도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윤대협, 저기 앉아서 딱 기다려라-”
허나 대협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을 강백호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손을 씻더니 점퍼를 대강 벗고는 대협에게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정리가 안 된 어수선한 이부자리 옆에 코타츠가 있는 곳이었다. 대협은 알았다고 답하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재단 쪽으로는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지만 방이 작아서 그냥 다 보였다. 사진에 누가 있는지 이미 현관에서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저 분일 것이고 그 옆에 남자는 아버지쯤 될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엄마는? 아무리 봐도 강백호 혼자 사는 집이다. 흩어진 만화책과 농구잡지에서 친구들의 흔적은 보여도 어른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야채를 씻는 강백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작은 싱크대는 덩치에 다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며 대협은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은 초대받았으니 다른 좋은 것들이나 구경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구경할 것들은 꽤 있었다. 정리가 아예 안 되어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히 농구 잡지들은 양도 상당했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요것 봐라, 싶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텔레비전과 일체형인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엄청 최신형은 아닐지라도 깔끔하니 그 옆에 비디오 테이프들도 몇 개 있었는데 네임텍에는 NBA라는 글자와 함께 날짜와 순서가 아주 정갈한 글씨체로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강백호의 글씨체일리가 없었다. 누가 준 것이다. 정성과 애정을 가득히 담아서. 이 여자애일려나? 텔레비전 위에 올려져 있는 액자를 내려다보며 대협은 생각했다. 맑고 깨끗한 느낌의 단발머리 여자아이였다. 정면을 보고 있지 않는 사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잔뜩 구겨진 채로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야! 윤대협! 소연이 보지 마!”
한창 요리하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놀라 돌아보니 인상을 쓴 얼굴이 진심이었다. 정말 너무 진심이라서, 대협은 사실 좀 웃겼다. 뭐 좋아하는 여자애니까 당연히 이래놨겠다만 고작 사진 한번 봤다고 저렇게 반응하다니. 그리고 보지 마가 뭐야, 보지 마가, 바보 같은 게 귀엽기는.
“소연이?”
그래서 대협은 일부러 더 크게 답하며 액자를 집어 들었다. 얼굴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고 상당히 예쁘긴 했지만 딱히 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백호가 못 생겨보일 정도로 인상을 쓰며 대협에게 소리를 지르게 할 수 있는 여자애였다. 그건 꽤 마음에 들었다.
“야! 뭐하는 거야! 내려놔!”
“흐음-”
보란 듯 요리조리 살펴본다. 그러니 발을 쿵 구른 강백호가 이익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그렇게 강백호가 옆에 딱 도착하자 대협은 액자를 내려놓고 빙글 웃으며 말했다. 동공이 커진 밤갈색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여자친구?”
기세좋게 다가와놓고 그 말에 당황해서 멈추더니 얼굴이 머리색만큼 빨개진다. 무,무,무,무슨, 하고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제대로 전달은 안 된다. 어떡하면 좋냐, 이렇게 반응이 좋으니까 자꾸 장난치고 싶잖아, 내 탓이 아니라고- 대협은 진심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찌르면 찌르는 대로. 강백호는 예상과 다를 때는 있어도 기대를 저버릴 때는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러니 대협이 그런 강백호의 귓가에 대고 씩 웃으며 예쁘네, 하고 속삭인 것도 그냥 불가항력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목까지 벌게져선 건물 전체를 울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외치며 반응해주는데 내가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냐고. 다 강백호 너 때문인 거라고.
난리치는 강백호를 보고 정신없이 웃던 대협은 결국 발가락을 어딘가에 부딪히고 나서야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곤 살금 뒤로 빠져서 농구 잡지 보는 시늉 좀 하다가 삐진 얼굴로 다시 요리에 집중하는 강백호의 뒤에 얼쩡거렸다. 강백호는 흥, 소리를 내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요리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그 빨갛고 동그란 뒤통수를 보기만 해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랜만에 너무 많이 웃어서 턱이 다 아플 지경이었는데도 그랬다. 강백호가 생선 다듬는 꼬라지를 보니 더 그랬다. 물론 요리에 대해서는 대협도 잘 몰랐다. 하지만 강백호가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백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요리하는 것도 아니라서 대협은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말든 즐겁게 구경이나 하다가 도와줄까? 하고 한번 물어봤다. 물론 빈말이었다.
“이건 이 천재님이 한다, 넌 기다려.”
수습되는 게 없어 보이는 난잡한 싱크대 앞에 서서는 잘도 그리 말한다. 대협은 그 말도 안 되는 허세에 짜증이 나지 않는 게 참 신기했다. 되든 안 되든 어떻게든 열심히 뭘 하고는 있어서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좀 쓰여서 대협은 조용히 지켜보다가 흩어져 있는 야채 껍데기를 손으로 모아 담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비닐 봉지 하나에 넣었다. 그렇게 강백호가 손질하고 남은 생선 찌꺼기도 모아 담았다. 부엌이 워낙 작아서 강백호의 동선을 신경 쓰면서 움직여도 서로의 몸이 계속 스칠 수 밖에 없었다. 190짜리 장정 둘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강백호에겐 충분히 거슬릴 만도 했을 텐데 한번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지 더 말은 없었다. 거기서 대협은 강백호가 자신에게 진짜 뭘 해주고 싶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협은 알 수 없을 기억을 더듬는 듯 뭔가를 중얼거리며 야채를 손질하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생선을 굽는 모습이 더없이 진지해, 집중한다고 톡 튀어나온 입술과 찌푸려진 미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그게 참 좋았다. 그렇게 요리에 열중하는 강백호를 바로 옆에서 보는 게 마냥 좋았다. 이제 창밖은 캄캄하니 어두웠고 배도 정말로 고팠는데, 요리가 완성되지 않고 그냥 이 순간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기름이 튀는 소리와 생선이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둘 사이를 채우고 한번 서로를 마주 본 순간이 있었다. 대협은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강백호를 보고 있는지 모른 채 입꼬리를 올리며 선선히 웃었다.
“이게 할머니표 생선 구이야?”
마침내 다 구워진 후라이팬의 생선을 접시에 옮기는 것을 보고 대협은 조금 설렌 마음을 담아 물었다. 하지만 강백호는 대답이 없었다. 얼굴까지 찡그리더니 갑자기 우물쭈물 눈치를 봤다. 옮기다가 생선 모양이 약간 망가진 것 때문에 그러나 싶어서 대협이 얼른 말했다.
“맛있겠다. 되게 잘 하네.”
“뭐, 뭐, 그래 잘 하지. 내가.”
답지 않게 왜 저리 자신감이 떨어져서 말하는 건지 대협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완성된 요리는 그럴싸했다. 맛은 먹어봐야 알겠다만 생선 구이는 물론 야채 볶음같이 해놓은 것도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강백호가 주는 접시를 받아가서 코타츠 위에 올려놓으니 달그락거리며 밥그릇을 꺼내는 소리가 났다. 밥솥을 열고 밥을 한 가득 담는 뒷모습을 보며 대협도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좌식으로 앉아서 집밥을 먹는 것도 또 오랜만이었다. 기숙사에서는 늘 식당에 가서 식판에 담긴 밥을 먹었다. 대협은 그런 것에는 전혀 불만이 없는 타입이었지만 이건 또 이거대로 괜찮았다. 게다가 강백호가 이리 해주는 밥을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강백호가 말한 대로 어디 가서도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이 될 것이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 대협은 밥그릇과 수저를 들고 온 강백호가 앞에 앉는 걸 보고 말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하지만 여전히 죽상인 강백호는 입을 꼭 다물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저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협이 먼저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생선도 발라 집었다. 그런 자신을 보고 강백호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왜 저렇게까지 긴장을 하는 걸까, 생각하며 입에 넣었다.
“음…”
솔직히 맛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 익었다거나 먹고 탈날 정도는 아니었다. 야채 볶음도 비슷했다. 평소 때 요리를 하지는 않는구나, 생각하며 대협은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강백호를 향해 턱짓을 하곤 눈을 접고 웃으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대협은 원래 먹는 것에 크게 욕심이 없는 타입이었다. 이 정도는 그냥 배 채운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먹는 대협을 보자 긴장이 좀 풀린 건지 강백호도 젓가락을 들더니 발라진 생선 한 부분을 집어 들었다. 입에 쏙 넣는 걸 보고 대협도 따라서 생선을 들고 가 밥에 얹어 먹었다.
“윤대협.”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마주 본다. 그러니 심각한 얼굴의 강백호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자신을 보고 말했다.
“그… 억지로 안 먹어도 된다.”
대협은 우물우물 식사를 계속하며 답했다.
“억지로 먹는 거 아니야. 먹을 만해.”
“거짓말 하지마. 이 천재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거짓말 아냐.”
“...”
“괜찮아.”
“...진짜로?”
“응, 그리고 나 배고파.”
정말 거짓말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속일 생각 없었다. 강백호도 느꼈을 것이다. 허나 그 사실이 강백호를 납득시키지는 못한 것 같았다. 강백호는 잠시 인상을 쓰며 콧김을 내뿜더니 입술을 한번 깨물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낡고 조그만 냉장고를 열었다. 이상한 건 그 다음이었다. 강백호는 한참을 그러고 서서 냉장고 안을 노려보았다. 무슨 원수라도 되는 것 마냥 그랬다. 왜 저러나 싶어서 목을 쭉 빼서 보니 작은 냉장고 안에 내용물이 꽉꽉 찬 반찬통이 가득 했다. 대협으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먹을 게 저렇게 많은데 이 것만 차렸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간 나 주기가 아까웠나? 싶었지만 아까 요리를 할 때 강백호의 분위기를 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리고는 또 한동안 이씨, 아이씨-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쥐며 끙끙거리다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아주 큰 결심을 한 것마냥 반찬통을 몇 개 꺼내더니 들고 와 상 위에 펼쳐 놓는 것이었다.
“이거 먹어. 그런 거 먹지 말고.”
“…그런 거라니. 그렇게 말하지 마. 열심히 했잖아. 괜찮아. 먹을 만해.”
대협은 자기가 다 섭섭해져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반찬통의 뚜껑을 열던 강백호가 순간 멈칫 하더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하고 시뻘게진 얼굴로 입술을 또 삐죽 내민 채 반찬통들을 마저 땄다. 그러자 때깔이 다른 반찬들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냄새부터 시작해 딱 보기에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대협도 솔직히 혹했지만 순간일 뿐이었다. 여전히 강백호의 요리에 눈이 더 갔다. 그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대협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았다. 맛있는 건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었다. 허나 불퉁해진 강백호의 긴장을 좀 풀어줄 필요도 있었다.
“알았어. 그럼 니가 한 거랑 이거랑 같이 먹을게.”
그러면서 너도 좀 먹으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반찬통에 있는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서 강백호의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좀 망설이다가 계속 대협이 쳐다보니 쭈뼛거리면서 숟가락을 들던 강백호였다. 입까지 가져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대협도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밥 잘 먹게 생긴 강백호는 처음 시작만 좀 그랬지 먹다 보니 생긴 대로 잘 먹어서 나중에는 같이 먹는 대협마저 입맛이 돌 정도였다.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대협은 강백호의 요리를 틈틈이 집어 들어 남김없이 해치웠고 강백호는 꽤나 큼직한 반찬통들이 바닥이 보이게 만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놓여있는 농구 잡지들을 가지고 할 말이 많았다. 대화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즐거웠다. 단순히 예전처럼 천방지축이라서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강백호는 재활하는 기간 동안 농구 잡지도 녹화 영상도 엄청나게 많이 본 것 같았고 그런 티가 났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끝도 없이 이어져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대협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밤 하늘이 흐린 날이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운 대협은 창 밖으로 별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까만 밤하늘을 보며 입가가 간지러울 정도로 웃다가, 어떤 생각을 하나 하고 행복하게 잠들었다.
다음 날부터, 강백호의 현관문 고리에 갓 잡은 생선이 담긴 비닐봉지가 걸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강백호의 집은 자신의 기숙사와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를 걸어간다고 했는데 그러면 사실 1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 먼 거리를 진짜 걸어서 집에 간다고? 하는 생각과 그러면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재활하러 왔다고?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운동삼아 그랬나? 설마 돈이 그 정도로 없으려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버스 타고 가자고 대협이 먼저 말을 꺼냈더랬다. 그러자 멈칫하는 강백호 앞에서 코를 살짝 만지며 작게 아야, 소리를 내주니 궁시렁거리긴 했지만 얌전히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왔다. 이런 쪽으로는 다루기 쉬운 녀석이라 다행이었다. 그리곤 마침 온 버스에 올라타는데 강백호가 호주머니에서 십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더니 태연하게 그것 하나만 달랑 요금으로 내는 게 아닌가. 황당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에 버스 기사가 뭐냐고 묻는데 정작 당사자는 민망해하는 기색조차 없고 지켜보던 대협만 아이고야, 싶었다. 자연스레 뒤따라 타면서 2명 치의 차비를 내고 기사를 향해 싱겁게 웃으며 강백호의 어깨에 팔을 둘러 데리고 들어가는 건 대협의 몫이 되었다. 놀랍게도, 그리고 뭔가 예상대로 강백호는 이런 것에는 털끝만큼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저 피식대며 새는 웃음을 멈출 수 없을 뿐이었다. 대협은 알 수 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없는 거지만 근본적으로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얘는 정말 대책이 없었다. 농구만 그런 게 아니라 일상 생활도 이런 거다. 세상에 이런 애가 있는 거다. 정말이지, 이렇게도 살아지는 거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평생 영광으로 여길 요리를 해주겠다며 갑자기 시장 쪽으로 들어설 때는 헛웃음이 다 났다. 근데 채소 같은 걸 고를 때는 또 미묘하게 능숙해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격이며 신선함이며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지는 모습이 정말 의외였다. 하지만 당연히 계산은 또 대협이 다했다. 그래도 혹시나, 진짜 혹시나 강백호가 어색해할까봐 나한테 해주는 거니까 필요한 재료는 내가 살게, 라고 덧붙이니 뭘 그런 걸 다 말하느냐는 투로 당연하지! 하고 대답하길래 역시나 싶었다. 어쩜 이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가 있는지 약간 안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해주는 요리 이름이 뭐야?”
대협은 정말 궁금했다. 생각보다 다채롭게 산 야채를 보니 호기심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그러자 강백호가 한쪽 입꼬리를 싹 올리면서 신나보이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할머니표 생선구이다.”
“오?”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좀 괜찮을 것 같았다. 솔직히 요리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이 강백호의 사과에 끌려온 거였는데 혹시 또 모른다. 나름 야무지게 장을 보는 모습도 그렇고 전혀 요리를 못 하면 저녁 해주겠다며 자기를 초대하지도 않았겠지. 그리 생각하니 왠지 배도 고파오는 것 같았다. 물론 상대가 강백호라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했지만 아니면 뭐 아닌 대로 또 어떻게 되기 마련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얼렁뚱땅 대협의 코피와 지갑으로 굴러가지 않았나. 이제 코도 더 이상 욱씬거리지 않아서 대협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백호의 집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은 조금 좁고 복잡했지만 금방이었다. 허나 여기구나, 하고 도착한 장소에서 대협은 표정 관리를 좀 해야 했다. 이런 걸 아파트라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도 못 하게 낡은 건물이었다. 언제나 또렷하고 쨍한 느낌의 강백호가 그 칙칙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잘도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약간 기괴해 보일 정도로. 3층까지 있는 건물은 부실해 보이는 복도에 현관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강백호의 집은 그나마 윗층도 아닌 1층이었다. 강백호는 그 많은 현관문 중 하나에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벌컥 문을 열었다. 열쇠로 연 것도 아니고 벨을 누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열고 들어갔다. 그래서 대협은 다른 어떤 다른 식구가 집에 있는 줄 알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서 따라 들어갔다. 허나 집 안은 휑하고 어두웠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굉장히 어두워서 안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다. 강백호가 벽 어딘가를 건드려 달칵 소리가 나고 나서야 불이 켜져 안을 볼 수 있었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자그마한 단칸방이었다. 화장실로 보이는 듯한 문 하나가 신발 두세개면 꽉 찰 현관 옆에 있었고 대협의 기숙사 방에 있는 것보다 작고 낡은 싱크대가 그 맞은 편에 보였다. 그 옆에는 또 작고 오래 되어 보이는 냉장고 하나, 그리고 정면에 사진 2개가 올려져 있는 재단 하나. 은은한 향 냄새로 잠겨있는 방을 바라보며 대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앞서 들어가 생선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강백호의 등을 바라보며 조용히 현관문을 잠그려고 했다. 그런데 문고리가 휙 하고 돌아가면서 잠금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질 않았다. 한번 더 시도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윤대협, 저기 앉아서 딱 기다려라-”
허나 대협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을 강백호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손을 씻더니 점퍼를 대강 벗고는 대협에게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정리가 안 된 어수선한 이부자리 옆에 코타츠가 있는 곳이었다. 대협은 알았다고 답하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재단 쪽으로는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지만 방이 작아서 그냥 다 보였다. 사진에 누가 있는지 이미 현관에서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저 분일 것이고 그 옆에 남자는 아버지쯤 될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엄마는? 아무리 봐도 강백호 혼자 사는 집이다. 흩어진 만화책과 농구잡지에서 친구들의 흔적은 보여도 어른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야채를 씻는 강백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작은 싱크대는 덩치에 다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며 대협은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은 초대받았으니 다른 좋은 것들이나 구경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구경할 것들은 꽤 있었다. 정리가 아예 안 되어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히 농구 잡지들은 양도 상당했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요것 봐라, 싶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텔레비전과 일체형인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엄청 최신형은 아닐지라도 깔끔하니 그 옆에 비디오 테이프들도 몇 개 있었는데 네임텍에는 NBA라는 글자와 함께 날짜와 순서가 아주 정갈한 글씨체로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강백호의 글씨체일리가 없었다. 누가 준 것이다. 정성과 애정을 가득히 담아서. 이 여자애일려나? 텔레비전 위에 올려져 있는 액자를 내려다보며 대협은 생각했다. 맑고 깨끗한 느낌의 단발머리 여자아이였다. 정면을 보고 있지 않는 사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잔뜩 구겨진 채로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야! 윤대협! 소연이 보지 마!”
한창 요리하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놀라 돌아보니 인상을 쓴 얼굴이 진심이었다. 정말 너무 진심이라서, 대협은 사실 좀 웃겼다. 뭐 좋아하는 여자애니까 당연히 이래놨겠다만 고작 사진 한번 봤다고 저렇게 반응하다니. 그리고 보지 마가 뭐야, 보지 마가, 바보 같은 게 귀엽기는.
“소연이?”
그래서 대협은 일부러 더 크게 답하며 액자를 집어 들었다. 얼굴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고 상당히 예쁘긴 했지만 딱히 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백호가 못 생겨보일 정도로 인상을 쓰며 대협에게 소리를 지르게 할 수 있는 여자애였다. 그건 꽤 마음에 들었다.
“야! 뭐하는 거야! 내려놔!”
“흐음-”
보란 듯 요리조리 살펴본다. 그러니 발을 쿵 구른 강백호가 이익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그렇게 강백호가 옆에 딱 도착하자 대협은 액자를 내려놓고 빙글 웃으며 말했다. 동공이 커진 밤갈색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여자친구?”
기세좋게 다가와놓고 그 말에 당황해서 멈추더니 얼굴이 머리색만큼 빨개진다. 무,무,무,무슨, 하고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제대로 전달은 안 된다. 어떡하면 좋냐, 이렇게 반응이 좋으니까 자꾸 장난치고 싶잖아, 내 탓이 아니라고- 대협은 진심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찌르면 찌르는 대로. 강백호는 예상과 다를 때는 있어도 기대를 저버릴 때는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러니 대협이 그런 강백호의 귓가에 대고 씩 웃으며 예쁘네, 하고 속삭인 것도 그냥 불가항력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목까지 벌게져선 건물 전체를 울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외치며 반응해주는데 내가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냐고. 다 강백호 너 때문인 거라고.
난리치는 강백호를 보고 정신없이 웃던 대협은 결국 발가락을 어딘가에 부딪히고 나서야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곤 살금 뒤로 빠져서 농구 잡지 보는 시늉 좀 하다가 삐진 얼굴로 다시 요리에 집중하는 강백호의 뒤에 얼쩡거렸다. 강백호는 흥, 소리를 내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요리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그 빨갛고 동그란 뒤통수를 보기만 해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랜만에 너무 많이 웃어서 턱이 다 아플 지경이었는데도 그랬다. 강백호가 생선 다듬는 꼬라지를 보니 더 그랬다. 물론 요리에 대해서는 대협도 잘 몰랐다. 하지만 강백호가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백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요리하는 것도 아니라서 대협은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말든 즐겁게 구경이나 하다가 도와줄까? 하고 한번 물어봤다. 물론 빈말이었다.
“이건 이 천재님이 한다, 넌 기다려.”
수습되는 게 없어 보이는 난잡한 싱크대 앞에 서서는 잘도 그리 말한다. 대협은 그 말도 안 되는 허세에 짜증이 나지 않는 게 참 신기했다. 되든 안 되든 어떻게든 열심히 뭘 하고는 있어서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좀 쓰여서 대협은 조용히 지켜보다가 흩어져 있는 야채 껍데기를 손으로 모아 담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비닐 봉지 하나에 넣었다. 그렇게 강백호가 손질하고 남은 생선 찌꺼기도 모아 담았다. 부엌이 워낙 작아서 강백호의 동선을 신경 쓰면서 움직여도 서로의 몸이 계속 스칠 수 밖에 없었다. 190짜리 장정 둘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강백호에겐 충분히 거슬릴 만도 했을 텐데 한번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지 더 말은 없었다. 거기서 대협은 강백호가 자신에게 진짜 뭘 해주고 싶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협은 알 수 없을 기억을 더듬는 듯 뭔가를 중얼거리며 야채를 손질하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생선을 굽는 모습이 더없이 진지해, 집중한다고 톡 튀어나온 입술과 찌푸려진 미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그게 참 좋았다. 그렇게 요리에 열중하는 강백호를 바로 옆에서 보는 게 마냥 좋았다. 이제 창밖은 캄캄하니 어두웠고 배도 정말로 고팠는데, 요리가 완성되지 않고 그냥 이 순간이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기름이 튀는 소리와 생선이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둘 사이를 채우고 한번 서로를 마주 본 순간이 있었다. 대협은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강백호를 보고 있는지 모른 채 입꼬리를 올리며 선선히 웃었다.
“이게 할머니표 생선 구이야?”
마침내 다 구워진 후라이팬의 생선을 접시에 옮기는 것을 보고 대협은 조금 설렌 마음을 담아 물었다. 하지만 강백호는 대답이 없었다. 얼굴까지 찡그리더니 갑자기 우물쭈물 눈치를 봤다. 옮기다가 생선 모양이 약간 망가진 것 때문에 그러나 싶어서 대협이 얼른 말했다.
“맛있겠다. 되게 잘 하네.”
“뭐, 뭐, 그래 잘 하지. 내가.”
답지 않게 왜 저리 자신감이 떨어져서 말하는 건지 대협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완성된 요리는 그럴싸했다. 맛은 먹어봐야 알겠다만 생선 구이는 물론 야채 볶음같이 해놓은 것도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강백호가 주는 접시를 받아가서 코타츠 위에 올려놓으니 달그락거리며 밥그릇을 꺼내는 소리가 났다. 밥솥을 열고 밥을 한 가득 담는 뒷모습을 보며 대협도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좌식으로 앉아서 집밥을 먹는 것도 또 오랜만이었다. 기숙사에서는 늘 식당에 가서 식판에 담긴 밥을 먹었다. 대협은 그런 것에는 전혀 불만이 없는 타입이었지만 이건 또 이거대로 괜찮았다. 게다가 강백호가 이리 해주는 밥을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강백호가 말한 대로 어디 가서도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이 될 것이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 대협은 밥그릇과 수저를 들고 온 강백호가 앞에 앉는 걸 보고 말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하지만 여전히 죽상인 강백호는 입을 꼭 다물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저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협이 먼저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생선도 발라 집었다. 그런 자신을 보고 강백호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왜 저렇게까지 긴장을 하는 걸까, 생각하며 입에 넣었다.
“음…”
솔직히 맛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 익었다거나 먹고 탈날 정도는 아니었다. 야채 볶음도 비슷했다. 평소 때 요리를 하지는 않는구나, 생각하며 대협은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강백호를 향해 턱짓을 하곤 눈을 접고 웃으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대협은 원래 먹는 것에 크게 욕심이 없는 타입이었다. 이 정도는 그냥 배 채운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먹는 대협을 보자 긴장이 좀 풀린 건지 강백호도 젓가락을 들더니 발라진 생선 한 부분을 집어 들었다. 입에 쏙 넣는 걸 보고 대협도 따라서 생선을 들고 가 밥에 얹어 먹었다.
“윤대협.”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마주 본다. 그러니 심각한 얼굴의 강백호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자신을 보고 말했다.
“그… 억지로 안 먹어도 된다.”
대협은 우물우물 식사를 계속하며 답했다.
“억지로 먹는 거 아니야. 먹을 만해.”
“거짓말 하지마. 이 천재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거짓말 아냐.”
“...”
“괜찮아.”
“...진짜로?”
“응, 그리고 나 배고파.”
정말 거짓말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속일 생각 없었다. 강백호도 느꼈을 것이다. 허나 그 사실이 강백호를 납득시키지는 못한 것 같았다. 강백호는 잠시 인상을 쓰며 콧김을 내뿜더니 입술을 한번 깨물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낡고 조그만 냉장고를 열었다. 이상한 건 그 다음이었다. 강백호는 한참을 그러고 서서 냉장고 안을 노려보았다. 무슨 원수라도 되는 것 마냥 그랬다. 왜 저러나 싶어서 목을 쭉 빼서 보니 작은 냉장고 안에 내용물이 꽉꽉 찬 반찬통이 가득 했다. 대협으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먹을 게 저렇게 많은데 이 것만 차렸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간 나 주기가 아까웠나? 싶었지만 아까 요리를 할 때 강백호의 분위기를 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리고는 또 한동안 이씨, 아이씨-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쥐며 끙끙거리다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아주 큰 결심을 한 것마냥 반찬통을 몇 개 꺼내더니 들고 와 상 위에 펼쳐 놓는 것이었다.
“이거 먹어. 그런 거 먹지 말고.”
“…그런 거라니. 그렇게 말하지 마. 열심히 했잖아. 괜찮아. 먹을 만해.”
대협은 자기가 다 섭섭해져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반찬통의 뚜껑을 열던 강백호가 순간 멈칫 하더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하고 시뻘게진 얼굴로 입술을 또 삐죽 내민 채 반찬통들을 마저 땄다. 그러자 때깔이 다른 반찬들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냄새부터 시작해 딱 보기에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대협도 솔직히 혹했지만 순간일 뿐이었다. 여전히 강백호의 요리에 눈이 더 갔다. 그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대협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았다. 맛있는 건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었다. 허나 불퉁해진 강백호의 긴장을 좀 풀어줄 필요도 있었다.
“알았어. 그럼 니가 한 거랑 이거랑 같이 먹을게.”
그러면서 너도 좀 먹으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반찬통에 있는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서 강백호의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좀 망설이다가 계속 대협이 쳐다보니 쭈뼛거리면서 숟가락을 들던 강백호였다. 입까지 가져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대협도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밥 잘 먹게 생긴 강백호는 처음 시작만 좀 그랬지 먹다 보니 생긴 대로 잘 먹어서 나중에는 같이 먹는 대협마저 입맛이 돌 정도였다.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대협은 강백호의 요리를 틈틈이 집어 들어 남김없이 해치웠고 강백호는 꽤나 큼직한 반찬통들이 바닥이 보이게 만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놓여있는 농구 잡지들을 가지고 할 말이 많았다. 대화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즐거웠다. 단순히 예전처럼 천방지축이라서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강백호는 재활하는 기간 동안 농구 잡지도 녹화 영상도 엄청나게 많이 본 것 같았고 그런 티가 났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끝도 없이 이어져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대협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밤 하늘이 흐린 날이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운 대협은 창 밖으로 별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까만 밤하늘을 보며 입가가 간지러울 정도로 웃다가, 어떤 생각을 하나 하고 행복하게 잠들었다.
다음 날부터, 강백호의 현관문 고리에 갓 잡은 생선이 담긴 비닐봉지가 걸리기 시작했다.
소연이 사진은 백호가 몰래 뽀뽀하려다가 달재 잠꼬대에 꾸겨진 그 사진임!
요즘 대협백호 종종 보여서 너무 좋다ㅠㅠ
다같이 외쳐! 대협백호 대협백호 대협백호!!
슬덩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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