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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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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안고 산을 내려갔다. 주자서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으면서 손톱살을 짓이겼다. 아까와 다른 뻘쭘함에 어쩔 줄 몰랐다.
풍쟁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그는 분명 화가 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그의 침묵은 분명 다른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온객행은 편하게 있지 못하는 주자서를 고쳐 안아 어깨에 얼굴을 올리게 했다. 주자서는 그의 넓은 어깨에 고개를 얹고 뒤따라 오는 풍경들을 구경했다.

풍쟁은 저 붉은 하늘로 날아가서 타버렸을까.
그 새는 어찌 되었지? 내 개구리는...
세상은 한번 떠나면 되돌아오지 않는 것들 투성이구나.

주자서는 제 손을 쭉 펼치고는 앞뒤로 살폈다.

아무리 원해도 잡히지 않는 것들.

하늘을 잡기라도 할 듯 주자서가 허공을 휘저었다. 그가 품 안에서 파닥거리며 움직이자 온객행이 쳐다봤다. 주자서는 휘둘렀던 팔을 얼른 그의 목에 두르고 얼굴을 묻었다.

로온. 그도 떠나는 날이 올까. 새처럼. 풍쟁처럼.

....나를 두고.

그 때 다루에서 만난 사람은 온객행을 원했다. 가녀린 목소리로 달콤하게 그를 유혹했다. 그의 마음이 변해, 그 남자에게 간다면 어떡하지.

순간 가슴이 터질 듯이 괴로워져서 주자서는 숨을 헐떡였다.

"아슈? "

주자서는 그의 품에 고개를 묻고 저었다. 그러자 온객행은 달래듯 그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온객행이 무릎을 꿇고 발의 상처를 살폈다.
그가 상처를 쓸자 주자서가 움찔거렸다. 이 하얗고 작은 발에 상처가 마를 날이 없다.

온객행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상처를 씻었다. 마른 핏자국에 붙은 이파리들을 떼고는 벌어진 상처에 조심스럽게 물을 끼얹었다. 손길이 다정하고 정성스러웠다.

아플텐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 화를 내서 미안해."

주자서의 몸이 움찔거렸다. 불편한 마음을 손톱살을 긁는 걸로 나타내니 그걸보는 온객행의 마음이 아팠다.

"네가 그 남자에게 한 행동이 싫어서 질투를 했어."

"......"

"네가 다른 사람에게 닿는게 싫어. 너는 나만 만지고 싶거든."


그의 말투는 다 타버리고 심지 밖에 남지 않은 초처럼 비어있고 담담했다.

온객행은 속으로 요 며칠동안의 일을 반성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돌아온 이후 거리를 두고 주자서를 대한 것은 질투도 있었지만 발정때문이었기도 했다. 시시각각 몸이 날뛰니 온객행은 열을 내리는 건지황을 탕으로 내려 수시로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고, 속으로 엉망으로 외운 불경을 떠올리며 주자서를 피했다.

다루에서 연목치에게 교미란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른건 주자서였다. 자신이 교미의 상대를 찾게 된다면 그건 주자서일거라고,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품는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온객행은 지금까지 주자서에게 느끼는 감정들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를 향한 갈증은 온객행을 목마르게 했고 때로는 지치게 했다. 그럴 때마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췄다.
꼭꼭 쌓아놓은 감정은 한번 열어버리면 걷잡을 수 없이 뛰쳐나올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것을 열어야 했고, 그 때가 지금이었다.


"아슈."

온객행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를 원해. "


부드럽게 불어오는 산바람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날아온 배롱나무 꽃잎이 붉은 면사포처럼 주자서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온 눈동자에는 그를 향한 짙은 욕망이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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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정신 아래 그의 목소리는 한음절 한음절이 몸에 새겨지는 것처럼 강렬하다. 주자서는 긴 잠에서 깬 듯 웅크렸던 몸을 폈다. 온객행은 여전히 몸을 숙인채 그의 발을 만지고 있었다. 아팠던 발이 이젠 다른 느낌으로 저릿했다.

주자서는 그의 손 안에 있던 발바닥이 간지럽다고 느꼈다. 발을 빼려고 하자 온객행이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손으로 복사뼈를 붙잡은 힘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지만 주자서는 그의 손 아래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손길은 지금 주자서에게는 좋지 않았다.

온객행은 남은 손으로는 주자서의 종아리에 묻은 흙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너를 안고 싶고 갖고 싶어. 함께 있는 매순간이 그랬어."


언제나 너만을 원했어.


억눌린 소유욕이 담긴 목소리 위에 열기가 덧붙여졌다. 살에 닿는 손이 주는 감각이 피를 뜨겁게 하고 그 피는 온 몸을 빠르게 맴돌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욕망에 주자서는 작게 몸을 떨었다.


'다시 말해 봐.'


나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예상치못한 말이었다.

"아슈, 넌 내가 싫으면 말해도 돼. 내가-"

온객행은 마른 수건으로 그의 발을 닦고는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방금까지 뜨거웠던 피부는 순식간에 식었다.

"내가 널 만질 때 무섭다면 다시는 만지지 않을게."

'아니야.'

주자서의 눈이 커졌다. 그를 싫어하다니 그럴리가.

온객행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 요 며칠 주자서에게 모질게 대한 걸로 그가 자신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날 좋아하지 않아도."

'아니야!'

주자서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온객행의 뒷말은 삼켜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온객행은 주자서를 올려다봤다.


'다시 말해.'

백마디 말이 목구멍에서 간질거렸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이렇게나 원망해 본 적이 있었을까.

주자서는 그에게서 원하는 말이 더이상 나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이런 각도에서는 자신이 위에 있어서 주도하기가 쉽다. 온객행은 끌려가듯 몸을 일으켰고 엉겹결에 벌어진 입술 사이로 주자서가 침범했다.
드물게 강경한 모습에 놀란 온객행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뭔지 모를 만족감을 안겨줬다.
비집고 들어온 작은 혀는 그의 입 안을 핥으며 혀를 찾아 감겨왔다.
미끈한 혀가 부드럽게 섞이고, 질척이는 소리가 울렸다.
한동안 맛보지 못했던 꿀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서로를 맛보고 느꼈다.

오가는 말은 없어도 순도높은 욕망은 전해진다.
주자서는 온 몸을 다해 제 마음을 그에게 알리고 있었다.


나도 너를 원해.



눌러왔던 열기가 입맞춤으로 다시 올라왔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정욕에 휩쓸리고 만다. 온객행은 더이상 자제할 힘이 없었다.


삼켜진 뒷말은 이러했다.

날 좋아하지 않아도, 나를 떠나지 마. 아슈






객행자서
메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