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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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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 냄새가 잠을 깨웠다. 코가 아니라 온 몸이 빨아들이는 듯한 냄새였다. 공명관을 통과하는 소리처럼 내 안에서 되울리고 증폭되는 냄새였다. 시야에선 기이한 삽화들이 표류하고 있었다. 안개 속에 늘어선 가로등의 뿌옇고 노란 빛, 발 아래로 소용돌이 치며 흐르는 강물, 비에 젖은 차도 위를 구르는 분홍빛 우산, 바람에 펄럭거리는 공사장 가림막 비닐,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뿌연 시선, 머리 위 어디쯤에선 발음이 어눌한 남자의 노랫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무슨 일인지 이해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데 천재적인 상상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꿈의 잔상도 물론 아니었다. 뇌 어딘가에 깊게 새겨진 기억이자, 머리가 몸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움직이지 말고 누워있어. 지금부터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발작 억제제를 멋대로 끊어버린 대가.

"약 끊기" 는 사막같은 내 삶에 스스로 내리는 단비였다. 매번 그런건 아니지만, 단비의 비용으로 발작이라는 후폭풍을 치러야 한다. 지금 내가 자각하는 현상들은 폭풍의 임박을 알리는 일종의 전령사였다. "발작전구증세" 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다.

폭풍을 피할 안전한 장소 따위는 없다. 도착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폭풍의 시간은 암흑의 시간이고, 나는 무방비 상태로 그 곳에 던져진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나는 그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의식이 스스로 깨어날 때 까지 길고도 깊은 잠을 잔다. 일련의 과정은 육체노동과 비슷하다. 단순하고 격렬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힘의 소모가 크고 피곤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결과를 예상하고 저지른 짓이라는 점에선 자업자득일 것이다. 안좋을 걸 알면서도 반복한다는 점에서 이미 중독이다. 마약이 그렇고, 담배가 그렇듯이.

약물중독자들은 대부분 환상을 쫓아내기 위해 약을 먹는다. 하지만 내 경우는 반대이다. 환상을 얻으려면 약을 끊어야한다. 끊은지 얼마 후면 마법의 시간이 열린다. 약물 부작용인 두통과 이명이 사라지고 오감이 털 한가닥 스치는 걸 잡아낼 만큼 예리해진다. 후각이 개같이 예민해진다.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민하게 돌아가고, 생각 대신 직관으로 세상을 읽어들인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윤리와 규칙따위가 다 우스워진다. 인간이 만만해진다.

물론 사소한 불만이야 있다. 양아버지가 여전히 "만만"의 권역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내 인생은 그 남자가 깔고앉은 방석이나 다를 바 없었다. 숨막히는 궁둥이를 치워달라는 부탁 같은게 통할리가 없었다. 통할리가 없으니 시도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발작하는 꼴을 아버지가 보게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깨어나는 즉시 주치의에게 끌고간다. 저명한 정신의학자이자 미래아동청소년병원 원장님이었지만, 빚에 묶여 한낯 깡패집단의 주치의로 전락해버린 그는 나와 눈을 맞추고, 상냥한 어조로 납득이 가는 말을 들을 때까지 조곤조곤 묻는다. 약을 왜 끊으셨어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솔직"은 나의 장점이 아니다. 추구하는 가치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건 실용성이며, 당연히 그에 입각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어쩌다 약 먹는걸 까먹었는데, 까먹은 걸 그 다음날 또 까먹었으며, 기왕 까먹은 김에 지금까지 쭉 까먹었노라고.

'저명한' 정신의학자께서는 "중독성 투약 중단"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집행관인 아버지는 매분 매초, 약을 먹으라고 명령한다. 아버지가 없을 때에는 수족들이 약이 내 목구멍 뒤로 넘어가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겠지.
기분 째지는 며칠의 대가가 어떤 것이었는지, 역사를 거듭 복습시킨다. 이런 짓을 벌이는 한, 너는 영원히 내 궁둥이를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각인시킨다.


[쿄스케]


낮게 울리는 진동소리에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잡았다. 휴대폰 너머로 불쑥,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결에 부는 바람처럼 나직했으나, 손목을 잡아채는 것처럼 분명한 부름이었다. 환상에서 깨어난 지금은 그 어떤 기척도 감지되지 않는다. 주변은 무척 고요한데, 이상하게 귀가 먹먹했다. 방 안이 아직도 어두운걸로 보아 날이 밝기도 전인 듯도 했다.


"예, 아버지."


나는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발작이 올 것 같았는데. 저 쪽은 그런걸 기다려줄 여유가 있을리 만무했다.


[아침부터 미안하구나. 작업을 좀 나가줘야겠다.]

전혀 안미안하면서.

"....갑작스럽네요"
[도쿄 북쪽지구에 생긴 신흥조직에서 우리 물건에 자꾸 손을 대네. 넌 가서 중간책들 처리하고 와.
자세한건 나중에 보내주마.]
"내 단독이에요?"
[그래]
"..."
[약은 잘 챙겨먹고 있는거냐?]
"네"

건성으로 대꾸하면서 약통을 손에 쥐었다. 처방을 받은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묵직했다. 기분째지는 시간을 여럿 보냈다는 뜻이었다.

[약 잘 챙겨먹어라.]
"말 안해도 알고 있어요"
[5년 전 일.. 잊은건 아니겠지?]
"...네"


잊었을 리가 없잖아. 잊을 수 있을리도 없었다.


[내가 널 데려온 가치를 증명해. 믿는다, 쿄스케.]


그렇게 끊어진 전화에 휴대폰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대를 향했다. 한겨울임에도 차가운 냉수를 얼굴에 뿌리자 피부가 쫀득하게 조여드는게 느껴졌다.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환상이 끝나고 나면 으레 펼쳐지는 그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5년 전.
귀울음이 울릴 정도로 비가 오던 날.

내가 사람을 처음 죽인 날.

내가 내 형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날.

내 발작이 시작 되었던 날.



거기.. 누가 있나요..?



피칠갑을 한 내 모습도, 지옥을 연상케하는 무시무시한 풍경도 전혀 보이지 않는 듯한 검은 눈동자는,
그저 똑바로 나를 붙잡고 있었다.







+비도오고 추운데 이젠 나만 먹는것 같은 쿄스케히데아키가 보고싶어따..

쿄스케히데아키 마치아카
 
2023.01.23 00: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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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센세 억나더
[Code: 6637]
2023.01.23 00:18
ㅇㅇ
모바일
대작의 스멜이 난다....
[Code: 5b12]
2023.01.23 00:28
ㅇㅇ
모바일
ㄴㄴ 센세 혼자가 아니야 ㅜㅜ 기다렸어
[Code: a7d5]
2023.01.23 00:33
ㅇㅇ
모바일
대작의 시작에서 찰칵📸 센세 필력실화냐...? 히데아키 아직 등장도 안한건지 쿄스케 그 환상속에서 알게 모르게 등장한건지는 몰라도 벌써부터 짜릿하고요 분위기 극락이고요 어나더ㅠㅠㅠㅠ
[Code: d9a6]
2023.01.23 01:30
ㅇㅇ
모바일
쿄스케 어디가 아픈거야.. 센세 너무 재밌어 어나더줄거지? ㅠㅠㅠㅠ
[Code: ab6a]
2023.01.23 01:54
ㅇㅇ
모바일
하ㅜㅠㅜㅜㅜㅠㅠ휴일너무조타ㅠㅠㅜㅜㅜㅜㅜ센세 혼자가 ㅏ아님니다.....안그래도 얼마전부터 쿄스케히데아키 다시 퍼먹고있었다구요ㅜㅜㅜㅜㅜㅜㅜ본 거 또 보고...또 보고 ........
[Code: f345]
2023.01.23 01:55
ㅇㅇ
모바일
너무귀해요ㅠㅠㅜㅜㅠㅠㅜㅜㅜㅜㅜㅜㅜ❤❤❤❤❤❤
[Code: f345]
2023.01.23 02:40
ㅇㅇ
모바일
오늘부터 쿄스케히데아키 해본다...여기에서 띵작의 향기가 진동을 하는데 억떡케 안할수있음...? 쿄스케 사연있는 나쁜놈 기대해봐도 되는거냐며 센세 억나더 조나더 ㅠㅠㅠㅠㅠㅠ
[Code: cab6]
2023.01.23 03: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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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여기 지박령이야 흘려놓은 떡밥이 얼핏봐도 길고 복잡해보이는게 어나더 맡겨놨다 그것도 존나 길게ㅜㅜㅜ
[Code: afcf]
2023.01.23 04: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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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 센세 이게 무슨일이야 쿄스케히데아키 없어서 못먹는 존맛인데 이렇게까지 천재적인 진수성찬을 차려오시다니요 명절에 아무것도 안 먹고 센세가 차려준 것만 먹어도 배터지게써요 와 너무 존맛ㅠㅠㅠㅠㅠㅠ
[Code: e221]
2023.01.23 11:18
ㅇㅇ
센 : 센세는
세 : 미쳤다
[Code: 29a2]
2023.01.25 22:53
ㅇㅇ
모바일
아니 대체 뭘 먹으면 이런 필력이 가능한거지? 센세 진짜 나 존나 감탄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어나더 억나더 기다릴게 ㅠㅠㅠㅠ
[Code: 0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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