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https://hygall.com/52013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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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가능할 것만 같던 미라클 미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가는 날. 
로버트는 대뜸 제이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멀뚱히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는 걸 보고 밥은 덧붙였다.


“어때. 여전히 내 손 잡고 싶어?”


행맨이 대답대신 로버트를 당겨 끌어안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둘이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피닉스는 말했다. 그거 다 ‘흔들다리 효과’라고 말이다. 밥은 늘 행맨에 대한 평가가 박한 피닉스가 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행맨은 제 순애보를 뭘로 보고 저런 소리를 하냐며 기분 나빠했지만 말이다. 





처음 행맨이 고백하던 날 피닉스에게 들켜 곤란해지면 어쩌나 했는데 제 파트너는 생각보다 쿨했다. 

「그게 뭐? 더 한 일도 많이 봤어. 난 내 파트너가 일만 잘하면 상관없어.」




피닉스답다고 해야 할까. 그는 부대로 돌아가고 나서도 종종 문자를 보내오곤 했다. 주로 내용은 내 뒤에 태울 놈이 마땅찮으니 우리 부대로 넘어오라는 것이었지만. 행맨은 그런 피닉스의 문자를 싫어했는데 딱히 피닉스와의 관계를 싫어한다기보다 문자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다. 실제로 밥의 폰을 앗아간 행맨이 답장을 한 적도 있었다.



[내 베이비한테 이런 추파 던지지 마.]
[행맨이냐? 뭐래. 미친놈.]
[하지 마.]
[밥 얘랑 헤어져.]
[차단한다.]
[ㅗ]




“제이크. 너 진짜 내 초등학생 사촌동생보다 유치한 거 알아?”

“사랑은 원래 유치한 거래. 베이비.”


문자 내용이 하도 기가 차서 말한 건데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밥은 가끔 제 연인이 내일 모레 소령으로 진급하는 ‘미해군 역사상 최강의 무기’라는 행맨이 맞나 의심했다. 


미라클 미션을 끝내고 온 지 벌써 반년이 조금 더 지났다. 행맨은 별 무리 없이 소령 진급 리스트에 올랐다. 당연히 오를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오르고 나니 자랑스러우면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소령 제이크 세러신. 자신의 집안처럼 정치인이 많은 행맨의 집안은 아마 그 역시도 정치인의 길을 걷길 내심 바라고 있을 것이었다. 그럼 제이크도 어느 정도까지 진급한 후에 전역해서 출마를 하는 걸까. 그렇게 된다면 지금 저와의 관계가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밥은 이런 생각이 든다 해서 놓아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행맨에게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왜. 베이비. 갑자기 너랑 나 사이에 벽이라도 생긴 것 같아? 완-벽?”

“......진짜 그런 것 좀 하지 마. 아저씨 같아.”

“그럼 아저씨하지 뭐. 우리 베이비. 아저씨랑 재밌는 거 할래?”

금세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에 로버트가 눈을 흘기며 매섭게 제이크의 손등을 내리쳤다.


“아휴. 진짜 그런 것도 하지 마.”


정말 싫었는지 자신을 피해 소파 옆쪽으로 살짝 비껴서 자세를 고쳐 앉는 밥이었다. 제이크는 그런 밥을 보다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장난도 안 받아주고 오늘따라 차갑네. 베이비가.”




보통 제이크가 삐친 척을 하면 그런 거 아니라면서 손을 잡아주곤 하는 밥이었는데 무슨 생각에 빠진 건지 미간을 살짝 구긴 체였다. 밥을 만나면서 제이크가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이 말간 얼굴로 똑 부러지게 일을 처리하던 군인이 예상보다 생각이 많고 그로 인해 걱정이 많다는 거였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나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전혀 없는 행맨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주변도 잊은 채 몰두한 밥을 가만히 바라보던 제이크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쉬워보이던 시작과 달리 로버트와의 연애는 어딘가 어려웠다. 여태 넘치는 애정을 쏟아 부을 줄만 알았던지라 이렇게 고려해야할 것이 많은 줄 처음 알았다. 특히 밥은 제게 몇 번 ‘남자와 연애해 본 적 있느냐’고 물었는데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질문이 꽤 중요한 이유였던 모양이었다. 그건 밥이 클로짓인 이유가 컸는데, 아직도 집이나 부대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집에는 왜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대대로 엄청나게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고 했다. 제가 커밍아웃하는 순간 아마 없는 사람 취급하며 의절당할 거라 했다. 제이크는 설마 플로이드 의원이 그러겠냐고 물었지만 밥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진보 진영에 있다는 게 아들의 성적 지향성까지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라면서 말이다. 


제이크 역시 집에 커밍아웃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전엔 여자만 만나 딱히 할 일도 없었긴 했지만, 만약 해야 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이니 쉬쉬하고 싶어는 하겠지만, 제 불같은 성정을 잘 알고 있으니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누구에게나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에 로버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 마.
-왜?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건데.
우리의 사랑은 결실이 없어. 게다가 넌 나랑 하는 연애가 남자랑 하는 첫 연애라며.
-그게 뭐.
.......네 선택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잖아.
-뭘. 널 선택한 걸?
제이크. 그런 말이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그리고 이 대화를 나눈 날. 행맨과 밥은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정말 이대로 헤어지는 건가 싶을 정도의 싸움이어서 조마조마할 정도였는데 다음날 아침 울면서 제 관사 앞에 서있는 로버트로 인해 마무리 됐다. 



「정말 그런 의미 아니었어. 제이크 난, 난 그냥 지금 너무 좋은데 네가 만약에 날 떠나겠다고 하면......
-왜 벌써부터 그런 걸 걱정하는 거야. 베이비. 난 여기 있잖아.
......미안해.」





두 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까지 받아낸 뒤였지만 제이크는 종종 로버트와 미래를 얘기하다가 생각에 깊어지는 걸 보면 불안해졌다. 제 미래에는 항상 밥이 함께하고 있는데 밥은 혹시 그 미래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있을까봐 말이다. 


‘어떤 말을 해야 네가 나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될까.’



과거의 저였다면 제 사랑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연인으로 자격 박탈이라며 이미 대차게 걷어차고도 남았을 텐데, 이번엔 어떻게든 확신을 쥐어주고 싶어 하는 모양새가 웃겼다. 로버트는 정말 여러 의미로 처음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제이크는 새삼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눈으로 옆에 앉은 로버트를 담았다.





처음 저에게도 그랬지만 남들한테는 흐릿하다는 네가, 내게는 어째서 낙인처럼 선명해진 건지.







갑자기 벅차오른 제이크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제 연인이 불안해한다면 제가 그만큼 더 노력하면 되었다. 하지만 너무 급하면 또 놀라 당황할 수 있으니 속도를 맞춰야 했다. 자신의 윙맨이 저를 믿고 제 뒤를 따라 비행할 수 있도록.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그 언젠가 밥이 말하지 않았던가. 신뢰가 중요하다고. 최대한 로버트의 속도에 맞춰 가고 싶었다. 그래야 오래오래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들뜬 감정을 다스린 제이크는 한결 차분해진 얼굴로 밥의 손등을 두드렸다. 초점을 잃었던 로버트의 시선이 행맨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안 잡고 뭐하냐는 의미로 손을 내밀자 굳었던 얼굴이 스르륵 풀리며 다시 미소를 띠었다. 이렇게 손을 잡는 건 첫 고백 이후로 둘 사이에 작은 암호가 되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의 연애처럼 간지러운 행동이었지만 둘 중 누구도 유치하다거나 툴툴거리지 않았다. 



“배고프다. 밥 먹을까?”

“그래. 뭐 먹을래.”

“베이비 먹고 싶은 거.”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네가 골라. 아님 제시카 스페셜 먹자 할 거야.”

“베이비. 너 거기 든 감자튀김이랑 치즈가 얼마큼인지 봤어? 채소라곤 한 톨도 없는 걸 먹겠다고?”

“그러니까 네가 고르라니까.”



상상만 해도 싫다는 표정을 짓는 행맨을 보자 밥은 활짝 웃었다. 지난 번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서 시킨 걸 보고 경악하던 얼굴이 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숨넘어가게 웃더니 여전히 웃긴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제이크는 따라 웃었다. 


혹시라도 로버트가 벌어지지 않은 그리고 벌어지지 않을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옆에서 현실에 꽉 붙들어 매고 놓아주지 않으면 되니 말이다. 제가 할 일이라곤 지금처럼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생각에서 밥을 건져 올려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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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짧은데 갈 길이 구만리라 빨리 달려야해서 ㅇㅇ
읽어줘서 코맙



행맨밥 파워풀먼
#기억잃고업보쌓는행맨
2023.01.19 13:49
ㅇㅇ
아니 진짜 얘네 어떡함....? ㅠㅠㅠㅠㅠㅠㅠ 행맨 기억 계속 안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109]
2023.01.19 13:58
ㅇㅇ
혹시라도 로버트가 벌어지지 않은 그리고 벌어지지 않을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옆에서 현실에 꽉 붙들어 매고 놓아주지 않으면 되니 말이다. 제가 할 일이라곤 지금처럼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생각에서 밥을 건져 올려주는 것뿐이었다.

이랬던 행맨인데.. 기억을 잃은 지금은 너무 다른사람이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109]
2023.01.19 14:19
ㅇㅇ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이 소리가 나올만 하네............
[Code: f773]
2023.01.19 19:42
ㅇㅇ
모바일
어흐흑...........이랬는데...밥 상실감이 얼만큼일지 감도 안잡힌다.....
[Code: e5eb]
2023.01.19 23:05
ㅇㅇ
아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과거 이야기 읽을수록 밥의 상처와 상실감이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야ㅠㅠ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b29]
2023.01.20 00:21
ㅇㅇ
모바일
처음 저에게도 그랬지만 남들한테는 흐릿하다는 네가, 내게는 어째서 낙인처럼 선명해진 건지.

사랑합니다 선생님
다음에 찾아뵐게요 또
[Code: b69c]
2023.01.20 11:17
ㅇㅇ
야 진짜.. 어케 니가 그럴수가 있어 소리 나오네.. 행맨 업보 어케 다 돌려받을거야~~!! (즐거운 미소
[Code: 7542]
2023.01.21 15:52
ㅇㅇ
모바일
아 최근꺼 보고 다시 복습하니까.... 손을 잡는 행위가.... 저렇게 큰 의미였는데.......아 어떡해 나 진짜 눈물나 흑흑 행맨 이자식아ㅜㅜㅜㅜㅠㅜㅜ
[Code: 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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