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만만하게 파트너쯤이라고 생각하고 행맨 만난 지 반 년쯤 됐을까... 덜컥 임신했다는 정기 검진 결과 듣고 어쩐지 덤덤한 밥이겠지
그도 그럴게 피임엔 제이크가 더 예민했고 콘돔 고집하는 제이크 굳이굳이 말려서 약 먹겠다고 하는 게 밥이었으니 할 말도 없는 게 당연한 거였음
밥은 그냥 이 앨 어쩔까... 말 없이 지울까, 말하고 지울까, 낳고 생각해볼까 하고 몇 가지 대강 생각해보다가 결국 말하기로는 마음을 먹었음

고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사천리로 임신 관련 휴직절차 알아보는 행맨 덕에 밥은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됐음
심지어 입덧 마저도 행맨이 해버려서... 덕분에 평소에 그렇게까진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들까지 제이크 취향이라 열심히 먹을 수 있어서 살이 보동보동 차오른 로버트였을 거다
입덧으로 내내 고생하고 근육도 살도 바짝 빠진 제이크 덕에 결국 출산 막 직전에는 제이크도 육휴 내고 쉬기 시작했을 듯
그리고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안정적이고 환상동화처럼 완벽한 남편이고 아빠고 가장인 역할을 다하는 행맨인데...

복직 준비하면서 덜컥 밥이 걱정이 되는 건 자긴 평생 행맨을 사랑해본 적 없다는 사실이었음 그게 갑자기 왜 걱정이 되는지도 몰랐지, 그냥 복직을 포기하고 제대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이면서도
편한 티셔츠를 입고 안경을 끼고 머리를 기른 제이크 세러신이 내 애를 보고, 자기는 부대로 복귀를 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서라기엔 불안이 속에서 넘실대겠지
가끔은 업무 일과시간 내내 둘이서 뭘할까 걱정이 되어 답지 않다는 지적도 가끔 받을 것 같음

그래서 급하게 귀가하면 아침에 나갈 때와 똑같은 공기가, 똑같은 사람이 맞이해주는 거야 다정한 제이크가 겉옷을 받아주고, 젖병 물고 잠든 아이를 한동안 쳐다보고, 이유식 만들고 남은 자투리 야채랑 기본 식자재로 대강 저녁을 차려먹는 삶...
식사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 두런두런할 때면 로버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제이크가 있고, 대화하다 웃기도 하는 서로가 있고, 디저트로 먹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양치하고 같은 침대에 누워서 등뒤로 제이크가 항상 밥을 안아주는 일상 말이지
그래서 번뜩! 나 제이크에게 잘해줘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밥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툴게 입맛을 예상해보며 디저트를 골라오고, 좋아하는 메뉴를 위한 식자재를 사오기도 하고, 가끔은 같이 가던 식당에서 포장도 해오는데...
대뜸 제이크가 그러는 거야
- 그... 베이비, 요즘 바람 피워?
무, 뭣, 뭐라는 거야 하고 당황해서 밥이 정리하던 식탁을 뒤로하고 제이크를 돌아보면 똑같이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밥을 쳐다보는 행맨이 있겠지
- 아니 요즘... 좀 변한 것 같길래
- 어떤 점이?
- 글쎄... 말로 하긴 어렵네
밥은 뭔갈 잘못한 어린 애처럼 뒷짐을 지고 식은땀이 솟는 손을 숨기는데 희미하게 웃는 얼굴인 제이크는 그러는 거야
- 우리 프리넙도, 혼인신고도 안 한 거 알지?
어... 그랬나...? 생각해보면 임신이랑 출산 준비는 해도 혼인신고를 준비한 적은 없었던 행맨인 것 같긴 한 밥... 이제까지 그럼 우린 사실혼 관계였나? 아니면 그냥 애를 낳은 파트너 사이...? 혼자 생각으로 맴맴 당황하고 있으니 갑자기 저 안쪽 애기방에서 칭얼거림 메들리를 시작하려는 울음 소리가 들리겠지 당연히 그쪽으로 신경이 쏠린 제이크는 그 방향으로 막 가면서,
-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 베이비 암튼 나 비비 좀 달래러!
뭐가 부담인 건데 제이크...
이젠 진짜 어떻게 잘해줘야 할지 모르겠는 로버트일 것이다...




파트너-임신-출산-육아까지 꽤 긴 기간 차곡차곡 업보 쌓아온 주제에 이제서야 주제파악 중인 밥 보고 싶다...
후회수 맛있잖아요 네네 나붕은 아주 좋아합니다


행맨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