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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3 17:35
아수라장이었다. 연기가 자욱하고 공기가 매캐했다. 숲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에 호흡을 할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까맣게 그을린 땅에는 널부러진 시체가 한가득이었다. 목숨을 부지한 자들 중에도 멀쩡한 자는 없었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죽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끝없이 울부짖었다. 나무와 풀이 전멸하고 비명이 난무했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어리석은 자들의 무덤이자,
우리의 집이었다.
위영은 덜덜 떨리는 팔을 뻗었다. 누구 것인지 모를 피가 잔뜩 묻은 손이 누워있는 이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평소같으면 까불지 말라며 피했을 그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눈을 감은 채로 존재하기만 했다. 위영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집중했지만 호흡의 불씨조차 들리지 않았다. 위영이 그의 상체를 일으켜 껴안았다. 자신을 안아줄 때마다 온기가 가득했던 몸은 더이상 따뜻하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싸늘해져 갔다. 위영이 입을 열었다. 충격으로 막힌 성대가 겨우 소리를 내었다.
"이런 결말을 바란 건 아니었어요."
사도를 수행했던 것은 반쯤 장난이었다. 똑같은 일상 속 자그마한 일탈. 지루함을 깨줄 유리조각, 그뿐이었단 말이다. 그리고 반쯤은... 그래, 자만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꼈고, 고양감에 휩싸였다. 정도와 사도를 모두 걷는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내려다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 자신과 그를 괴롭혔던 모든 인간이 벌벌 떨기를 바랐다. 마침 재능도 있었다. 덕분에 날개를 단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것이 화가 될 줄도 모르고.
...... 몰랐나?
... 아니. 사실은, 알았다. 사부는 사도라면 질색을 했다. 시장까지도 최소 반나절은 어검해야 하는 인적이 없는 산에 기거하면서 사도의 시옷만 들리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달려갔다. 한 번은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싫어하냐고. 그는 잠깐의 침묵 뒤에 대답했다.
"사도를 걷는 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가족도, 연인도, 친우도 모조리 휩쓴 후에 자멸해버리지."
그때 호기심을 죽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부가 없을 때마다 사도를 수련하는 짓도 안 했을 거고, 시내에 갔다가 시비를 터는 놈에게 사도로 겁을 주지도 않았을 거고, 그 놈이 복수하겠답시고 마을의 모든 사람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고, 싸울 필요도 없었을 거다. 사람들을 막다가 검이 날라오지도, 사부가 날아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지도 않았을 테지. 사부의 급소를 벤 검에는 맹독이 묻어있었고, 자각하자마자 사부가 쓰러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피를 토했다. 사부가 죽는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사부이자 단 하나뿐인 가족을 잃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웠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오로지 자신 때문에.
그후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수라장이 된 후였고, 사부의 목숨은 끊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는 몸이 마비가 되었음에도 못난 제자에게 손을 뻗었다. 제자의 눈물로 젖은 뺨을 기어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는 힘겹게 중얼거렸다.
"미안, 하다. 내가 이번에도, 널, 말리지 못했어. 미안."
그게 끝이었다. 기력이 다한 몸은 성냥불이 꺼지듯 널부러졌다. 넋이 나간 위영은 가만히 앉아있다가 겨우 그의 숨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한참을 입술만 짓씹다가 굳은 사부의 몸을 안아 들었다. 이렇게 홀로 보낼 수는 없다.
위영은 걸었다. 걷고, 걷고, 걸어서 폭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두 사람의 집까지 다다랐을 때 멈춰섰다. 양지바른 장소를 찾아야 했다. 덥거나 추워서도, 건조하거나 습해서도 안 됐다. 숲의 이곳저곳을 뒤짚고 다니다 겨우 찾아낸 곳을 팠다.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자각할 틈도 없었다. 적당한 깊이가 마련되자 위영은 그제서야 멈췄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위영이 나무에 고이 기대어 있는 사부에게 다가갔다. 그는 위영만큼이나 엉망인 모양새였다. 손을 하복에 싹싹 닦은 후 사부를 다듬기 시작했다. 몇 개 없는 장신구를 정리하고, 엉킨 머리카락을 빗었다. 흙과 피가 잔뜩 묻은 의복을 될 수 있는대로 정리했다. 마지막은 얼굴이었다. 뺨에 묻은 피를 최대한 닦아낸 위영은 그를 잠시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사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나요?"
위영은 사부의 창백한 뺨을 감쌌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개에 쫓기고 있었어요. 시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아무도 어린 아이를 구하지 않았죠. 나는 며칠째 먹지 못해서 금세 지쳤고 개는 점점 가까워졌어요. 차라리 물려죽자 싶어 제자리에 선 그때,"
'다친 데는 없느냐.'
"당신이 나타났어요."
애써 참던 울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당신은 나의 영웅이었어요. 당신은 나의 부모가 되었고, 형제가 되었고, 친우가 되었죠. 나는 어떤 애보다도 행복했어요. 오로지 당신 덕분에요. 그래서 나는 당신의 자랑이 되고 싶었어요. 가당치도 않게... 미안해요. 내가 다 망쳤어."
얼굴이 온통 축축했다. 위영이 물기를 닦아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어요. 원래는 성년이 되는 날 하려고 했는데... 더이상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내쉬었다.
"연모해요.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연모해요, 만음."
위영의 입술이 만음의 입술 위로 살포시 닿았다. 차디차지만 그 무엇보다 따뜻했다. 위영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만음의 뺨에 내려앉았다. 죽은 자에게서 생기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니 당신을 혼자 보내지 않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내가 갈게요."
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부를 안아 올려 천천히 구덩이를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눕혔다. 두 손을 모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애써 입꼬리를 당겨 웃은 위영이 자신의 장포를 벗어 사부를 덮었다.
만음이 몇 해 전 선물했던 검붉은 장포는 그렇게 흙에 묻혔다.
위영이 심호흡을 했다.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정도에서도, 사도에서도 이것은 암암리에 금기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방도는 없다. 모 아니면 도라 하지 않는가. 과거로 가든가 아님 만음을 따라 명을 달리하든가 둘 중 하나다. 위영은 만음의 물건을 챙긴 보따리를 단단히 매었다. 부적은 이미 완성되었다. 숨을 크게 내쉰 위영이 만음의 묘에 손을 대었다.
"당신을 외롭게 두지 않을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후. 부적을 가슴에 붙이고 옆에 두었던 돌을 들어 한 쌍을 맞부딪혔다. 틱- 소리를 내며 짧은 불씨가 생겼다. 다시 한 번 불씨가 생기는 찰나에 위영이 돌을 부적에 갖다 대었다. 순식간에 부적이 타올랐다. 위영은 의복에 불이 붙었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마른 하늘이 콰르릉,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이 들렸다. 운명은 던져졌다.
톡. 토독. 물방울이 떨어진다.
한두 방울이 금세 빗줄기로 변하자 공중에 흩날리던 재가 얌전히 가라앉았다. 탄내가 사라지고 공기는 맑아졌다. 먹구름은 없는데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누군가의 눈물을 대신 흘리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시련을 대신 씻어내는 걸까. 묘가 점점 젖는다. 만든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단단하지 못한 흙이 조금씩 깎인다.
깎이고,
깎이고,
깎여서
흙은 거의 흘러 내려가버렸다. 만음이 몇 해 전 선물했던 검붉은 장포는 그렇게 다시 드러났다. 형태를 잃어버린 묘 안에 위영의 장포가 있다.
형태를 잃어버린 묘 안에 위영의 장포만 덩그라니 있었다.
무선강징 만수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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