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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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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본론부터 말하자면, 거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허니가 떠난 후 후작가에서는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했는지 며칠 뒤에 바로 서신을 보내왔다. 배질 웨더 본가 저택이 아닌 좀 떨어진 별채(말만 별채지 저택이나 다름없는 곳) 곳이 있는데 그곳을 신혼집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배질 웨더 본가 저택에서 마차로 20분 거리인 그곳은 배질 웨더의 땅 소유지에 속한 곳이었고 그냥 거리감만 좀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을 수도 있었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어차피 다 같은 배질 웨더잖아? 

 
하지만 늘 그렇듯 허니 비는 쉽게 수긍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비 가문 저택에는 들이기 싫다는 의사 표현도 확실히 들었고, 자신도 배질 웨더 본가 저택에 들어가 사느니 차라리 좀 떨어진 곳에서 살아야 숨이라도 쉬고 살 테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내심 도시 한복판에 신혼집을 차릴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 안 해도 되고. 허니 비는 조용하고 한적한 걸 좋아하는 사내였기에 시끄러운 도시는 딱 질색이었다. 조용하고 드넓은(너무 넓어서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게 문제지만) 배질 웨더 저택이 낫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흐려지게 흘러가는 허니 비.
 

 
"내가 뭐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서신을 꼼꼼히 읽은 허니는 곧장 아버지의 서재로 찾아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노쇠한 그의 아버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알겠다는 대답으로 모든 것을 일단락시켰다. 애초에 그는 막내아들에 대한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허니는 조금 가벼우면서도 복잡한 마음으로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럼 이제 뭐부터 해야 하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거처가 정해지자마자 곧바로 혼수품들이 저택 안을 새롭게 채워나갔다. 허니는 쓰던 것을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어 했으나 이미 새로운 물건들이 완벽하게 채워져 있는 저택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으나, 신혼인데 뭐 어때? 하는 심정으로 금세 알파드와 재잘거리며(덩치 큰 사내에게 참으로 안 어울리나) 여기 봐라~ 저기 봐라~ 이거 봐라~ 하면서 저택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기 바빴다. 제발 체통을 지키라며 잔소리를 하던 알파드도 어느새 동화되어 허니의 옆에 바짝 붙어 다녔다. 

 
 
"근데 좀 불안하네요."
"뭐가? 상쾌한 아침부터 왜 그런 소릴 해."
"넓어도 너무 넓잖아요. 안 그래도 남작가도 넓어서 사라진 도련님 찾기가 얼마나 바빠죽겠는데 여기서는..."

 
 
뒷말을 잇지 못한 알파드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발끈 한 허니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너 말은 그렇게 해도 금방 찾아내잖아!"
"여기서는 무리일 거 같은데요."
".. 사실 내 생각도 그래."
 

 
여기서 길 잃었다가는 며칠 뒤에 변사체로 발견될 거 같은 넓이였다. 별채 부지가 이 정도로 넓은 거면 대체 본가 부지는 얼마나 넓다는 거야? 이리저리 쏘다 디니 바쁜 허니 비를 자진으로 몸 사리게 할 크기겠지.

 
 
"돈이 최고네."
"도련님은 항상 결론이 문제에요."
 

 
그의 충직한 집사이자 비서는 오늘도 끊이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됐고, 정리나 마저 하자...
 

 
"나 잠깐 뒤에 정원만 보고 올게."
"거기 아까 보셨잖아요?"
"응. 근데 거기 마음에 들거든.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어."
"네, 그럼 전 여기서 마저 정리하고 있을게요. 다른 길로 세지 마시고 곧장 오세요. 도련님 찾다가 여기서 밤새우고 싶지 않아요."
"네~네~"
 

 
허니는 대충 대답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위상에 걸맞게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은 허니의 마음에 쏙 들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듯 흔한 잡초하나 없이 깔끔했다. 여러 종류의 꽃들이 섞여 피어있었고 울창한 몇몇의 나무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나무들. 풀냄새와 흙냄새. 
 

 
아, 정말 좋네. 허니는 진심으로 웃음이 났다. 허니 비는 단순하니까 뭐. 
넝쿨에 휘감아져 탐스럽게 피어있는 분홍색 장미를 살짝 손끝으로 건드렸다. 가장 크고 울창한 나무를 발견한 허니는 그곳으로 향하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두 사람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멈칫하고 옆에 있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잠깐 나 왜 숨어?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다.
 

 
다시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허니의 약혼자였고 한 명은 처음 보는 여성이었다. 허니는 설마 하는 예감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은 언제라고?"
"잘 모르겠어. 일단 약혼식만 집에서 간단히 치르기로 했거든."
"예정된 날짜도 없는 거야?"
"응. 지금 경황이 없으니까."
 

 
뭐지 저 격식 없는 말투는. 허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언뜻 보니 귀족가의 아가씨처럼 보였으나 말투나 행동을 봐서는 평범한 소녀 같았다. 그런데 후작과 저렇게 얘기한다고?
 

 
".. 넌 언제 떠나?"

 
 
풀이 죽은 목소리가 허니의 귓가에 걸렸다. 

 
 
"일주일 후에. 오, 제발 튜크스베리 그런 표정 하지 마. 누가 보면 나 죽으러 가는 줄 알겠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그래도 런던을 떠나는 거잖아."
"아예 다른 나라도 가는 것도 아닌데 뭘. 편지 자주 할게."
"언제 다시 올 거야?"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너 결혼식 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올 테니까 꼭 초대장 보내줘."
"에놀라.."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허니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곳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다시 가시넝쿨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입을 열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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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대화를 나누던 튜크스베리의 얼굴엔 미소가 떠날 줄 몰랐었다. 설렘과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도.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도. 허니는 단박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의 약혼자의 마음을 차지한 사람일 테지. 기분이 나쁘다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정략결혼이었고 흔한 이야기였다.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뭐 그런 흔한 거. 단지 허니가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 약혼자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해보려고 했는데 시작도 전에 팽당한건 조금 씁쓸하단 말이지. 허니는 기지개를 켜며 흠, 하고 생각에 잠겼다.

 
 
허니는 튜크스베리를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사랑은 죄가 아니니니까. 하지만 허니는 짝사랑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짝사랑은 쓸모없는 부속품 같은 거니까.
 

 
다시 한번 말하자면, 허니는 짝사랑 따윈 길거리에 돌멩이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약혼자의 사랑을 남몰래 지지해 주면 모를까.
 
 
 
 
 
 
 

 
 
 
 
 
 
 
 
 
 
 
 
 
 
"남편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아직 잘 모르겠어. 몇 번 못 봐서."
"그래? 좋은 사람이어야 할 텐데."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튜크스베리는 자신이 앉아있는 나무 근처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들꽃을 바라보고 입꼬릴 살짝 당겨 웃었다.

 
 
"... 좋은 사람인 거 같아."
"그래?"
"응."
 

 
에놀라는 은은히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마주 보고 웃었다. 몇 번 안 봤다더니 벌써 그렇게 된 거야?
 

 
"비록 정략결혼이지만 언젠가 둘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으면 좋겠어. 네가 행복하길 바라, 튜크스베리."
"... 고마워, 에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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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자신은 에놀라를 좋아한다고. 사랑스러우며 총명하고 용감한 그녀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겠냐며,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으니까. 모든 일이 해결되고 에놀라가 떠날 때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던 것도, 다 그녀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이제 그는 알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었고 친구로서의 그리움이었으며 남다른 애정이었다. 죽을 위기를 같이 극복하며 누구보다 끈끈하게 다져진 감정들. 튜크스베리는 에놀라를 특별하게 생각했으며 아끼고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를 사랑했다면 지금 그보다 더한 불행은 없으리라.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일상에 유일한 숨통이었던 그녀마저도 떠난다는 이 상황이 그의 심정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으나 그는 의연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니까. 아무리 멀리 있어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달려와줄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와, 비록 정략이었으나 이제 배우자가 될 허니도 있으니까.
 
 
 


















재업

근데 이미 허니 오해함
원래 사랑은 오해부터 시작하는거 아닌가

루퍁 루이 루이스 패트리지 파트리지 너붕남튜크스베리 너붕붕튜크스베리 에놀라 홈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