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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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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응...”

흐릿한 시야에 하얀 인영이 어른거려 몇 번 더 깜빡이자 한 손에 책을 들고있는 션웨이가 보였다. 윈란은 몸을 일으키려 살짝 뒤척였다가 끄응 소리를 내며 다시 무너졌다. 어젯밤 여파에 흠뻑 잠겨 몸도 못 가누는 자신과는 달리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 온 션웨이가 얄미웠다.

션웨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쓸어주고 윈란이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왔다. 등 뒤로 푹신한 베개 몇 개를 겹쳐서 대주고 목을 가누기 편하도록 작은 쿠션을 놓는 것도 잊지않았다. 탁자에 놓인 하얀 머그컵이 션웨이의 손이 닿자 금방 모락모락 김을 냈다.

 

“이게 뭐야?”

 

컵을 받아든 윈란은 비릿하고 역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밀어냈다.  

 

“싫어. 안 먹을래.”

“약이야. 내가 어젯밤..당신을 다치게 했으니까.”

 

션웨이가 수줍게 웃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과는 달리 그는 다른 한 손으로 윈란의 턱을 잡고 억지로 입을 벌렸다. 밀어내보려했지만 참혼사 앞에서 인간 자오윈란은 어린아이만큼이나 무력했다. 션웨이는 마지막 한 모금까지 남김없이 삼키게 하고 입술에 남은 것도 손가락으로 쓸어 입 안에 넣었다. 

윈란이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잔기침을 하자 션웨이가 가만히 등을 쓸어주었다. 숨을 헐떡이는 윈란에게 이번엔 물이 담긴 컵이 다가왔다. 윈란이 컵에 손 대자 션웨이가 손을 겹쳐서 물을 먹여주고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토할 것 같아... 고약한 냄새가 났다고.”

 

윈란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지금 딱 필요한 약이야. 난 당신한테 안 좋은 일은 절대 안해. ”

“맞아. 대신 기절할때까지 괴롭히지.”

 

션웨이는 목까지 빨개져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어젯밤 일로 너덜너덜해진건 자신인데 초야를 넘긴 새색시같은 모습에 약이 올라 윈란이 입을 샐쭉이다 참고있던 말을 툭 던졌다.

 

“나는....나는...한번도 아래일꺼라 생각해본적 없다고! 당연히 내가 위일 줄 알았는데... 처음이었는데...좀 더 친절하게 할 순 없었어?”

“미안해..”

 

정직하고 간결한 사과에 말문이 막힌 윈란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션웨이는 다시 그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고 좀 더 쉴 것을 권유했다. 윈란은 자꾸만 내려앉는 눈꺼풀을 깜빡였다. 아까 건네준 약에 숙면을 돕는 약재라도 들어있었나보다.

 

“너어... 날 재워놓고 막 만지려고 그러지?”

“아, 아침부터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내가..너..션웨이.......”

 

윈란은 가증스럽다는 듯 무어라 웅얼거렸지만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션웨이는이불을 덮어주고 한결 혈색이 도는 얼굴을 확인했다. 체온을 내리고 살을 가르고 혼을 참하는 몸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고 붉은 피를 낼 수 있는 곳은 윈란을 담은 심장 뿐이었다. 션웨이는 그런 제 몸에 감사하며 셔츠 위를 쓸어내리고 제 피가 담겼던 컵을 씻기위해 쟁반을 챙겼다.

 

 

윈란이 다시 눈을 뜬건 점심때가 한참 지난 늦은 오후였다. 화장실에 가려다 주저앉은 윈란을 션웨이가 빠르게 날아와 안아들었다. 부서질까 깨질까 유리인형 대하듯 자신을 모시는 션웨이 때문에 화내는건 포기하기로했다. 한바탕 웃으며 그의 얼굴을 잡고 콧잔등과 볼에 입을 쪽쪽 맞추자 션웨이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검사를 받으러 갈 때도 휠체어 대신 직접 걷고 싶다고 우기는 통에 결국 반쯤 안긴 자세로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사람이 적고 널찍한 엘레베이터 안에서 바짝 달라붙어 있는 것이 어색해 션웨이가 눈을 굴렸다. 윈란은 좀 더 몸을 기대며 허리에 감은 팔을 아래로 내려 단단한 골반과 엉덩이를 만지작 거렸다. 당황한 션웨이가 팔을 밀어내려하자 윈란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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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허리랑 엉덩이가 아파서 못 서있겠단 말이야. 당신이 어젯밤에 날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잖아.”

 

빨개진 션웨이가 서둘러 열린 문으로 그를 데리고 나갔다. 윈란은 속으로 키득거리며 좀 더 그에게 붙었다.

 

션웨이는 병원식이 담긴 플라스틱 쟁반을 들고 복도를 걷고있었다. 사교성 좋은 윈란이 금새 간호사와 친해졌는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보호자분 오셨네요. 입맛 없다고 하셔도 애인분이 조금이라도 넘기도록 도와주세요, 아셨죠?.”

 

간호사는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병실을 떠났다. 션웨이가 애인이라는 단어에 진지해지자 윈란은 내 몸만 원했던 거냐며 우는 척을 했다. 윈란이 장난치는 줄도 모르고 심각해진 션웨이는 쟁반을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윈란을 달랬다.

 

“난 절대 당신한테 그런 짓 안해.”

“알고있어.”

 

윈란이 뽀송한 얼굴을 들어 션웨이 앞에 쓱 들이밀었다. 놀란 션웨이가 눈을 깜빡였다.

 

“날 그렇게 쳐다보면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마. 안 믿을꺼니까.”

“윈란.. 나는....”

“당신이 참혼사고 내가 인간이라서? 션웨이. 사람은 누구나 죽어.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많아야 오륙십년을 더 살텐데 직업상 내가 장수 할 확률은 지극히 낮아.”

“그런 말 하지 마!”

“봐, 이렇게 화내면서. 날 사랑하지 않는데 왜 내가 죽을 꺼란 말에 화를 내? 날 사랑하지? 그렇지?”

 

대답을 갈구하는 눈은 이제 절박하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션웨이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안돼. 말하면 안돼. 그에게 이래서는 안돼. 하지만 차마 아니라 말할 수 없었다.

 

“내가...어떻게 당신한테 거짓을 말하겠어요, 아란.”

 

그 한 마디에 댐을 막고있던 제방이 무너진 것 처럼 윈란의 감정도 쏟아졌다. 그는 션웨이에게 와락 안겨서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셔츠를 적셨다.

윈란은 감이 좋은 사내였고, 말 하지않았지만 내내 불안했으니까. 그래서 확신이 필요했다. 등을 쓸어주는 손을 느끼며 윈란은 더 펑펑 울었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등을 토닥이고 가슴을 내어줄 것임을 알기에 억지로 참지않기로 했다.

 

진혼 룡백 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