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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7 03:37
영웅서사는 인류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져왔고, 변형되어 왔음
길가메시에서 아이언맨까지 다시 아틀란타에서 원더우먼까지
때로는 신화나 꾸며진 이야기로, 다른 때에는 실존 인물의 기록으로 영웅은 만들어졌음

알다시피 이야기 속 영웅들은 공통적으로 고난을 겪음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지거나, 강력한 적을 만나는 등 고난의 형태는 다양함
하지만 고난을 이겨낼만한 성질들은 모두 비슷함
특별한 혈통, 타고난 용기와 지혜, 끈끈한 우정과 동료애, 기개와 힘 등 등
그래서 이런 것들은 종종 영웅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짐

하지만 영웅서사의 필수조건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돌파구들이 아님
그에 앞서,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있어야하는 게' 필수조건임
킴0하 작가는 이순신 장군을 예로 들기도 했음
이순신 장군이 영웅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12척의 배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함(킴0하 작가말고도 이순신 장군은 영웅서사 예시로 많이 쓰이긴함)
그러니까 '잘해 볼 기회'가 한 번 이상은 주어져야 영웅서사가 탄생한다는 의미임

반대부로 이해하면 좀 더 쉬움
예를 들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왜 불행서사겠어
주인공한테 단 한 번도 잘해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임
기회처럼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 된 게 아니었고, 마지막 기회조차 주인공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음
그래서 이 영화는 전형적인 불행서사임
만약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잘해 볼 기회가 있었고, 그걸 주인공이 마지막에 움켜 잡았다면 주인공도 어떤 면에서는 영웅이 됐겠지

서사구조 이론 중 하나인데 어쩐지 위로가 되는 거 같음
고난은 분명하고, 영웅의 조건은 타고나지 못한 거 같아서 슬픈 날들이 있잖아 그때마다 이걸 생각함
어쩌면 단순히 내가 못나고 부족해서가 아니라, 잘해 볼 기회가 없어서 '아직'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거
고난에 지지 않고 견디다가 아주 작은 기회라도 잡으면 누구나 인생을 영웅서사로 바꿀 수 있다는 거

어쩌면 사람들이 영웅을 좋아하는 건 그 인물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대단하지 않은 순간을 잘 견뎠기 때문일지도 모름

(타싸에서 봤다면 나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