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해서 기억하면 어떻게 하냐

싸늘하고 엄격한 아버지 시니어와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어머니 슈슈 사이에서 자라난 아이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천성은 괜찮은 사람들이고 시대와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버렸으니 저들의 외아들에게 일관적으로 나쁘기만 한 부모는 아니었을거야 이따금 아들을 아끼고 사랑해줬겠지 그런데 100번 중 97번을 자신에게 냉담한 부모에게 내쳐지며 사용인들과의 유대만 쌓아온 아이스가 자신도 모르게 그 기억을 왜곡하고 있으면 어쩌냐

언젠가 어린 아이스가 열감기로 앓아누웠을 때 시니어가 아이스를 업고 미친듯이 달려 응급실에 간 적 있는데 그걸 아버지 시니어가 아닌 언제나 자신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던 집사장 존이 해주었던 일이라 기억하고

한 달에 딱 한 번 둘이 함께 나가는 의무적인 오솔길 산책에서 그날따라 문득 제 어린 아들이 귀여웠던 슈슈가 함께 산딸기를 주우며 산딸기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그걸 어머니 슈슈가 아닌 넉넉한 품 만큼이나 성품도 넉넉했던 조리장 윌슨 부인과의 추억으로 기억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딱 한 번 시니어슈슈와 마당에 걸어놓고 말리던 중인 이불로 숨바꼭질을 한 적 있는데 그걸 제 부모님이 아닌 언제나 둘이 함께 붙어다니며 까르르 웃기 바쁘던 호들갑스럽고 말이 많은 메이드 콤비인 수, 레이나와 함께 놀았다고 기억하면...?

어린 아이스에게 언제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냉정하고 자신을 부정하기 바빴던 부모님이 아주 가끔 잘해주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고 결국 미치지 않기 위해 머릿속 악역인 부모님과 함께 있었던 '좋은 기억'들의 주체를 모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것으로 바꿔버린 것임 나쁜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해주면 안되니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좋은 하루를 보내고 이제는 무언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잠들어도 다음날이면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고 어린 아이스는 기대에 배반을 당하는 것에 지쳐버렸으니까

시니어도 슈슈도 이걸 꿈에도 모르고 있다가 아이스가 해사에 들어갔다가 휴가를 나온 어느 날 디저트로 나온 산딸기 무스를 보고 그 날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수줍게 웃으며 "주니어, 기억나니?"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슈슈인데

아이스의 난생 처음 듣는다는듯한 당황한 얼굴을 보고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다면...?



시니어슈슈 아이스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