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릭 상상 이상으로 집착광공이네...
1989년작 7월4일생을 보고 큐브릭은 탐찌에게 흥미를 가지게 됨
1993년 탐찌가 시드니 폴락 감독의 영화 야망의 함정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은 큐브릭은 촬영기간 내내 폴락에게 전화를 걸어서 탐찌의 일거수일투족을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함
폴락: 스탠리와는 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다. 절친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친해서, 한 25년 정도 알고 지내며 종종 전화통화를 나누곤 했죠. 그는 여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소식이 궁금할때면 전화를 걸어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요즘 가장 핫한 배우는 누구인지, 핫한 작가는 누구인지 묻곤 했습니다. 야망의 함정을 찍던 즈음에 그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주연감으로 크루즈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고, 내게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전화를 걸어 크루즈에 대해 수천가지 질문을 퍼부었죠: 그는 어떤 사람이야? 그는 뭘 좋아하지? 어떤 음식을 먹어? 오늘은 뭐했어? 옷 입는 스타일은 어때? 일할 때는 어때? 시간 잘 지켜? 지각을 하지는 않아?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인지? 질문이 많은 편인지? 대본 가지고 감독을 귀찮게 하지는 않는지? 연기자로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질문은 끝이 없었죠. 그러니까 크루즈의 캐스팅에 저도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탠리에게 크루즈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열심히 설명했으니까요. 한편 크루즈에게는 이렇게 말했죠, “이봐 내가 요즘 스탠리 큐브릭이랑 통화 중인데, 이 사람 너한테 진심인 듯. 그와 영화를 찍게 된다면 그건 [크루즈의 영화가 아닌]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가 될 테지만, 그냥 닥치고 찍게.”
캐스팅 전부터 집착 쩔어…
3년여에 걸친 플러팅 끝에 마침내 탐찌의 아와셧 출연이 확정됨
런던예술대학 큐브릭 아카이브에 소장된 스케치 자료. 탐찌 얼굴 세세하게 측정해서 기록한 찐광기를 봐…
투탑처럼 홍보되었지만 영화를 본 붕들은 알거임 아와셧은 닥터 하퍼드에 의한 닥터 하퍼드에 대한 탐찌 원탑 영화라는 걸
아와셧은 유래없이 긴 촬영기간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영화이고 현재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음. 이게 뭘 의미하냐면 배우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가학적인 촬영방식으로 악명높은 스탠리 큐브릭을 가장 오랜 기간동안 견디면서 가장 많은 씬을 소화해낸 배우가 탐찌라는 거… 상상 속 앨리스의 외도 시퀀스(큐브릭이 의도적으로 탐찌를 배제한 채 촬영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씬에 탐찌가 등장하는데, 2시간 39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끊임없이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정신적으로 유린당함. 계속해서 위기에 빠지고 그때마다 타인에 의해 구해져야 하는, 아름답지만 무기력한 '담셀 인 디스트레스' 타입의 캐릭터 속에 갇혀서 3년여의 시간을 보냄.
좀처럼 컴플레인하지 않는 탐찌 성격상 힘든 촬영이었다 정도로만 코멘트할 뿐 영화 현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건 없었는데, 책의 저자들이 런던예술대학 큐브릭 아카이브를 열람해서 확인한 촬영일지에 따르면 탐찌는 촬영 중에 세 번 이상 쓰러짐.
97년 1월 22–23일 구토와 어지럼증을 동반한 급성 위염으로 촬영 중단
97년 2월 19일–3월 1일 위경련 위궤양으로 촬영 중단
97년 6월 5일 발작적인 기침, 눈물과 콧물이 쏟아지는 증세로 촬영 중단
탐찌같은 꿩강긍정수인이 쓰러질 정도면 배우를 대체 얼마나 몰아붙인 건지…
큐브릭의 찐광기에 비하면 핀처는 카피캣 쯤으로 느껴질 정도. 핀처 영화의 배우들은 최소한 상황의 부당함에 대한 자각이라도 있지만 큐브릭의 배우들은 상황이 가학적으로 흘러갈수록 반감을 가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큐브릭에게 더욱 의존하는 경향을 보임. 오랫동안 큐브릭의 오른팔로 일했던 레온 비탈리는 큐브릭에 대해 그는 심리조종(manipulation)과 마인드퍽(mindfuckery)의 달인이며, 큐브릭과 지내다 보면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고 회고함.
광공빌런짓 극혐인데 결과물 자체는 큐브릭 스스로 본인의 최고작이라 칭했을 만큼 정교하게 아름답고, 개붕적으로 큐브릭의 탐찌 캐해가 너무 취저라서 애증의 필모임……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는 싯구절이 떠오르는 아주 섬세하고 우아하고 사색적인 작품.
여러가지로 해석이 갈리지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엡스타인 사태 이후로 큐브릭 특유의 시대를 앞서나가는 예리한 통찰력과 퇴색하지 않는 미적감각에 대해 재평가하는 분위기고, 영화인들 사이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되고 레퍼런스될 작품인 것은 분명함.